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4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48)
‘아니, 그러니까! 가보면 되잖아! 무슨 포스처럼 분위기로 사람 잡으려 하지 말라고! 괜히 무섭잖아!’
시알라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비명을 한마디도 토해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투란은 퀭한 구덩이에 푹 빠진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로 중얼거리면서, 암울한 분위기를 모락모락 시커먼 연기처럼 피워 올리며 중얼거림을 그치질 않는다!
“헌터 숍에 가면…… 강화 붕대가 담긴 갑옷도 있다니…… 늘어났다 줄었다 하는 칼만 파는 게 아닌 줄은 알았지만…… 또 얼마나 신기한 게 있을지 모르는데…… 흐흐흣, 헌터 숍 문턱도 못 보고 이 꼴이라니…… 흐흐흣.”
그냥 뒀다가는 며칠을 저럴 수도 있어 보이는 상황이 시알라의 입을 강제로 열었고, 쥐어짜 내는 한마디를 토하게 한다.
“가, 가보면 되잖아요, 가보면!”
“어?”
갑자기 투란이 발딱 고개를 들었다.
반짝거리는 눈동자에서 아무래도 시알라가 한 말을 듣고서야 ‘가본다’라는 생각이 겨우 들었다는 느낌이 풀풀 휘날리며 새나온다. 하지만 곧 투란은 다시 살짝 음울한 눈빛을 한 채로 묻는 소리를 꺼낸다.
“갈 수 있을까요? 대체 어떻게 도시까지 갈지…… 길을 모르겠는데…… 길을 알아요, 시알라?”
“에? 그거야…… 왔던 길로 돌아가면 되잖겠어요? 우리가 온 길은 변하는 폭이 그리 크지 않은 곳이라고…… 일단 그렇게 들었으니까, 어떻게 되짚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시알라는 조금 진지하게 기억을 더듬으면서 대답했다. 산맥에서 길과 관련해서는 농담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었다.
투란은 눈을 깜박이면서 그런 시알라를 바라봤고, 조심스럽게 잠시 후에 묻는다.
“길잡이가 돼 줄 거예요? 나랑 함께 가줄 거예요?”
“어, 그야…….”
잠깐 시알라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함께 가는 것은…… 오히려 시알라가 부탁하고 싶은 일이었다.
하지만 길잡이로서는…… 시알라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말할 부분이 아니었다. 괜히 엉뚱한 길로 빠져들어서 이상한 곳으로 갈 수도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간다 해도, 그 지형이 반드시 원하는 곳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기, 길잡이는 조금 힘들지도 모르지만…… 우리랑 함께 가도 괜찮겠어요, 투란?”
하나도 아닌 넷이나 되는 남매가 몽땅 짐 더미가 될 수도 있다는 상황을 고려할밖에 없기 때문에 시알라는 진지하고 솔직하게 되묻고 있었다.
투란은 고개를 끄덕였고, 살짝 옆으로 누이면서 다시 묻는다.
“혹시 반대하는 사람은……?”
말끝을 흐리는 소리에 시알라는 뒤돌아서 여관을 바라봤다.
문턱을 막 넘어서는 제란드가 있었고, 그 뒤로 페란드가 성큼성큼 따라 나오고 있었다. 멜란드는 아직 잠이 좀 덜 깬 듯이 볼을 긁적거리고 하품하는 모습으로 끝에 붙어 있었다.
약간 우르르 몰려나오는 꼴이 시알라가 깨고 나서 금세 깨어 나온 모양이었다.
그런 동생들을 보고 시알라는 다시 투란을 마주 보며 단호하게 말한다.
“반대는 없어요. 함께 가준다면, 오히려 고마운 일인걸요.”
“흠? 흠…….”
투란은 시알라의 어깨 너머를 보며 애매한 소리와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때문에 시알라는 자신의 말에 바로 찬성하지 않는 동생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바로 홱 고개를 돌려 동생들 쪽을 노려봤다.
페란드가 쓴웃음을 지었지만, 그 표정에는 반대하는 낌새가 전혀 없었다.
멜란드는 아직 졸린 모습이었고…… 제란드가 은근히 눈매를 찌푸린 채로 뭔가 의혹을 품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알라의 말투가 약간 무겁고 날카로워진 채로 제란드를 향해 묻는 소리가 나온다.
“왜, 넌 따로 가고 싶어?”
제란드가 흠칫하다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얼굴에 가득 채웠다.
“아니, 누가 뭔 소리를! 난 그냥 궁금하다고! 투란이라면…… 투란이 여기까지 온 길도 있을 텐데 굳이 우리와 함께…… 어, 우리를 길잡이로 삼을 이유라고는…….”
엉겁결에 대답을 하면서도 제란드의 말꼬리는 흐려졌고, 더듬거리며 채워지지를 못했다. 순수한 호의, 갚을 수 없는 호의를 품었냐고 따져보는 것도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대체 그런 경우에는 뭐라 해야 하는 것인지 할 말이 없는 탓이었다.
이는 곧 시알라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생각한 바였지만 막상 제란드가 말머리를 내놓고 나니, 거기에 이러쿵 저러쿵 하기가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페란드는 조금 더 분명하게 말을 꺼낸다.
“누나가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고마운 일이에요. 하지만 투란, 제란드가 말한 것처럼 투란에게도 여기까지 온 길이 있잖아요? 그 길로 가지 않고 우리가…… 음, 마법사에게 이끌려온 길로 갈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은데요. 함께 가더라도…….”
“에, 에헤헷! 그게 길이 아니라서…….”
투란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조심스럽게 말하는 페란드를 향해 얼른 대꾸하고 있었다.
이는 시알라 남매 넷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길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제란드가 살짝 눈매를 좁히면서 물었다.
시알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묻는 말을 보탠다.
“투란은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오게 되었는데요?”
세란드를 만난 곳이 더 깊숙한 곳인지, 아닌지를 따질 필요가 없었다.
이미 충분히 산맥 깊숙한 곳에 들어왔기 때문에 만난 것이니까.
그런데 어째서 그 길을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처럼, 길이 아니라 말하는 것인가?
잠깐 곤란한 표정을 짓던 투란은 문득 알아차렸다는 듯이 얼른 손짓을 하며 말한다.
“아, 그보다 아까 시알라도 그러더니…… 다들 일단 기본적인 갑옷 정도는 입고 있어요. 여긴 별일 없이 안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고 일어났다고 그렇게 있기에는 좀 위험한 곳이잖아요.”
페란드는 ‘어?’ 소리부터 내며 누나와 자신들의 차림새를 비교했다.
듣고 보니 누나인 시알라는 당장 여행에 나서도 될 정도의 무장을 갖춘 꼴이잖은가.
그저 잠자리 차림새에서 갈아입은 정도가 아니었다.
제란드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한다.
“그렇긴 그렇네.”
한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서 있는 곳이 일단 세이프티 하우스의 영역 안이라고는 하지만 언제 어디서 뭐가 날아올지 알 수 없는 것도 분명했다. 갑옷 한 벌을 챙겨 입고 있느냐 아니냐가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완전히 방심해서 바람결에 스쳐 간 뭔가에 긁히지 않는 것도 상당히 중요할 수도 있었다.
제란드는 곧장 몸을 숙이며 마당의 흙을 손으로 짚었다.
마력이 세찬 파동(波動)을 일으키며 제란드의 손끝에서 시작되어 제란드의 몸을 감싸듯이 번졌다.
“오?”
투란이 제란드가 갖추는 차림새를 보면서, 시알라의 망토를 본 것처럼 감탄하는 소리를 냈다. 하품을 참던 멜란드도 ‘어? 와!’ 하는 소리를 냈고, 페란드도 ‘과연…….’ 하는 낮은 목소리를 울렸다.
제란드는 단정한 가죽 바지와 웃옷의 갑옷에 줄줄이 감긴 띠를 갖춘 차림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허벅지를 가로지르는 띠에는 손가락 크기의 작은 자루가 달린 투척용 도편(刀片), 쇠살이라고도 하는 날붙이가 촘촘하게 꿰어진 채인…… 등과 허리에도 단검이 몇 자루씩 꿰어진 무장을 갖춘 차림새였다.
일어서며 제란드는 다리에서 쇠살 하나를 꺼냈고, 허리춤에서 단도 한 자루를 뽑았다. 괜히 모양 보려고 빼 든 것이 아니란 듯, 제란드는 조심스럽게 쇠살과 단도의 칼날에 손가락을 대고 눌렀다가 떼었다.
핏방울이 바로 베인 흔적에서 돋아나며 손가락 끝마디에 나타났다.
“모조품이 아니네. 쓸 만한데?”
제란드가 자신이 갖춘 무장의 칼날에 만족하는 소리를 꺼냈을 때, 손가락에 맺혔던 핏방울은 순식간에 살갗 속으로 스며들었고 칼날에 갈라진 흔적이 맞물리며 지워졌다.
멜란드는 눈을 부릅뜨다가 가늘게 하며 다시 ‘와아!’ 하는 소리로 말한다.
“그거 힐링 팩터야? 엄청 좋은데! 자국도 안 남았잖아!”
“그렇군…….”
제란드가 손끝을 이리저리 돌려 확인하면서 끄덕였다.
페란드는 제란드에게 손을 내밀었고, 제란드가 건네주는 단도를 받아 살피며 중얼거린다.
“쇠는 아닌데, 쇠만큼 단단하고…… 쇠붙이 날보다 더 날카로운 느낌이네.”
“어, 그거 도자기 칼날이야.”
제란드는 페란드에게 설명하듯 말했다.
페란드가 곧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검을 만드는 소재로 금속을 선택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몬스터 중에서는 금속에 대해서 괴상한 대응이나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때문에 그런 몬스터를 상대로 칼을 휘둘러야 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금속이 아닌 소재를 이용한 칼날을 지닌 검도 헌터는 자주 사용했다.
페란드는 제란드가 마법의 소재를 이용한 것이라 잠깐 착각한 셈이었다.
흙을 마법으로 바로 가공해서 헌터 숍의 특별한 물품을 바로 상상해서 만들어낼 것이라 기대하지 않은 것인데…….
“그렇군. 누나처럼 한 거로구나.”
도자기 칼날, 흙을 구워 도자기처럼 만들어내는 검이었고 밴디지가 내장된 가죽 갑옷은 근력을 보좌해주면서 뼈대가 버틸 수 있는 한계도 더 높이 잡아준다. 저렇게 상상해도 된다면, 굳이 모양만 갖춘 무장을 할 필요가 없었다.
고개를 두어 번 더 끄덕이고 페란드는 몸을 낮췄다.
두 손으로 땅을 짚고, 무릎도 땅을 짚으며 허리를 가능한 한 높이 세운 채로 페란드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뭔가 깊이 생각하는 자세였고, 잠시 뒤에 페란드에게서 마력이 번져 나 왔다.
제란드가 멜란드의 팔뚝을 잡아당기며 얼른 페란드와 간격을 뒀다.
시알라도 성큼 뒤로 물러서면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페란드를 바라봤다.
투란은 여전히 앉은 채였지만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눈을 반짝거렸다.
투득, 우드득.
거칠고 단단한 것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페란드는 암회색(暗灰色) 조각으로 덮여 갔다. 마치 바위라도 입고 있는 듯한 광경이었고, 그 과정에서 돌무늬가 맞물리며 조각나 흩어지기도 했다.
소리가 멈추고 휘날리는 회색 티끌 사이로 페란드가 일어섰을 때…… 그 몸은 광택 없는 돌을 조형(造型)해서 맞물려놓은 갑옷을 걸친 채였다. 어깨, 팔, 가슴과 허리, 다리에서 발까지…… 단단한 바위 덮개를 채워놓은 듯한 꼴은 투구만 씌워놓으면 페란드가 사람인지 바위조각인지 애매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페란드는 그 상태로 잠시 허리를 돌리고, 어깨를 돌렸고…….
와득, 우득!
조금 거센 소리와 함께 암회색 갑옷의 형태가 살짝 고쳐지면서 재구성되었다.
움직임에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페란드의 동작은 반복되었고, 마침내 만족한 것처럼 페란드의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음, 이 정도면 괜찮겠지?”
아직 무장을 하지 않은 멜란드가 이에 대해 못 참겠다는 듯이 한마디 한다.
“아니, 형…… 이제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아도…….”
강력한 쇠갑옷으로 몸을 감싼 채로, 형제의 둘째로서 페란드는 이제까지 방패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겠다고 보여주는 셈이었다. 이제는 저렇게까지 심하게 서서 버티는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될 듯한데…….
하지만 그런 지적에 대해 페란드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괜찮아, 이제는 전보다 더 튼튼하니까. 더 확실하게 버틸 수 있다.”
멜란드가 ‘그게 아니라!’라는 의미로 입을 벙긋거렸지만, 아무 소리도 못 꺼냈다.
그리고 제란드는 그런 페란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음, 이제는 그렇게 오래 버티지 않아도 될 테니까. 조금 둔하더라도 더 튼튼해도 괜찮을 것 같은걸.”
말과 함께 제란드는 자기 어깨를 더듬어서 쇠뇌 둘을 꺼내고 있었다. 척 봐도 웬만한 통나무를 관통시킬 듯한 살이 장전된 쇠뇌였다. 말하는 모습이 멜란드가 버티는 사이에 제란드 자신은 더 빠르게 상대를 부숴 버리겠다는 의지가 철철 넘쳐나는 꼴이었다.
멜란드가 입을 다물었고, 시알라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를 보던 투란이 활짝 웃으며 말한다.
“아하핫, 좋군요! 맡은 역할이 분명한 건, 좋은 거래요. 아, 멜란드도 어서…….”
재촉과 함께 형들, 누나의 눈길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보고 멜란드도 자신의 차림새가 지금 상황에서 혼자 따로 노는 꼴이 된 것을 깨달았다. 딱히 시원한 잠자리 차림새로 나돌아다닐 것도 아니고.
“어, 그럼 나도.”
멜란드가 발로 땅을 슥슥 문지르는 동작에 맞춰서, 마력의 파동이 경쾌하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멜란드의 무장은 금세 완성되었는데, 이를 본 제란드나 페란드가 인상을 구겼고 시알라는 한숨을 쉬었다.
곧 팔뚝과 무릎 아래 정강이가 훤히 살을 드러낸, 아주 가벼운 차림새를 한 채인 멜란드가 ‘손발은 변신할 때를 대비한 거니까, 괜찮잖아?’라고 눈치 보며 한마디 했고, 제란드와 페란드의 대답은 사납게 돌아갔다.
“찢어 먹어도 되거든!”
“얼른 제대로 된 장화랑 장갑을 신어!”
시알라는 입술을 깨물며 잔소리를 참았고, 투란은 즐겁게 웃었다.
그리고 멜란드가 손발에 제대로 장갑과 장화까지 끼워 입은 꼴이 되었을 때, 제란드는 진지한 물음으로 투란의 웃음을 지웠다.
“투란, 어떻게 산맥 깊이 들어왔길래 돌아가는 길로 사용할 수가 없다는 거죠?”
“에? 어, 에헷…….”
투란은 일단 얼버무리는 웃음으로 때우려 했지만, 시알라를 비롯한 네 쌍의 호기심 가득한 강력한 눈빛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