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4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49)
―뭐라는 거야, 이 인간…… 아니, 이거 인간 맞아?
시알라를 비롯한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는 투란의 말을 곱씹으면서 이런 생각을 말없이 가슴 깊이 품은 채로, 서로에게 공감하고 있었다.
투란이 이 산맥 깊은 곳에 들어오게 된 길에 대해, 아주 조금 전에 한 말 때문이었다. 그저 작지만 분명하게, 앞뒤 자른 이야기였지만, 그 토막 난 말 속에 담긴 의미는 네 남매에게 딱 저런 생각을 품게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투란은 이상해져 버린 넷의 분위기를 느낀 듯이 앉은 채로 다리를 꼬고,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다시 중얼거리듯이 말하고 있었다.
“저기, 진짜거든요?”
어린 티가 풀풀 휘날리는 소년의 모습 그대로 한 이야기가 거짓 없다고 스스로 증명하려는 듯한 이 태도에 페란드가 입을 열었다.
“늪에 빠졌다가 나와 보니, 여기였다고요?”
“아, 바로 여기는 아니고…….”
“그러니까, 이 산맥 안…… 이 춤추는 산맥의 깊은 곳이었다는 말이죠?”
“에, 맞아요.”
벅벅, 긁적긁적.
페란드가 다시 묻는 말에 대답하며 투란은 살짝 민망한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를 긁었다. 그 모습은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꽤나 멋쩍어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페란드의 표정은 한층 더 황당해서 살짝 입가에 떨림이 생겨날 지경이었다. 조금 전에 생각하고 느꼈던 것이 몇 배로 더 깊이 가슴속을 후벼판다는 듯!
시알라나 제란드 역시 그런 페란드에게 공감한다는 듯이 표정이 미묘하게 푸들대고 있는데, 멜란드가 ‘음.’ 하는 소리를 잠깐 내다가 불쑥 말한다.
“에, 그러니까…… 투란은 소용돌이치는 늪에 빠져서 이 깊은 곳까지 오게 된 거군요! 몬스터 잡아넣으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 늪 같은데, 누나도 들은 적 있지? 형들도…… 그거 맞는 것 같지?”
투란을 향해 눈가를 떠는 눈길을 보내던 시알라, 제란드와 다시 입을 열려다가 멜란드의 목소리에 멈췄던 페란드가 스윽 고개를 돌렸다. 그 쏟아지는 눈길은 확인하는 소리를 꺼냈던 멜란드를 바로 침묵하게 했다. 너무 당연한 것을 뭘 두 번, 세 번 확인하려 드느냐고 야단치는 듯한 눈길이었다!
하지만 멜란드가 침묵하는 사이, 투란이 입을 연다.
“아하핫, 맞아요! 그거! 어디로 가는지 몰랐지만, 이제는 알게 된 셈이죠! 저 안 깊은 곳에 뚝 떨궈주더라고요. 아, 정말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지…… 아하…… 으흐…… 힘들었어, 정말…….”
밝고 가볍게 웃으며 나오던 말투가 어느 순간에 네 남매를 향하지 않고 자신에게 되뇌는 쪽으로 변하면서 음침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흩뿌리는 소리가 되고 있었다.
이는 멜란드부터 흠칫해서 한 걸음 물러서게 했고, 제란드와 페란드도 물러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움찔거리게 했다. 이런 동생들의 낌새를 향해 시알라가 가볍게 목을 푸는 헛기침을 했고, 동생들이 멈추는 꼴을 본 다음에 시알라의 말이 나온다.
“그래도 살아 있잖아요! 건강하고…… 아니, 아주 강해져서 살아남았으니까…… 어,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투란, 우리랑 같이 나가요! 길잡이는…… 어쨌든 할 수 있는 만큼 해볼 테니까, 우리랑 같이 가요.”
투란은 살짝 숙였던 고개를 들었고, 약간 맹한 눈길로 시알라를 바라봤다.
시알라는 갑작스런 눈길에 흠칫했고, 옆에서 동생들이 혀를 차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자신도 모르게 발을 뒤로 반 발자국 정도 끌며 뺀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바로 시알라가 곁눈질로 동생들을 흘겨보니, 금세 혀 차는 소리가 사라졌다.
그 대신이라는 듯, 페란드의 목소리가 담담한 척 노력하는 말투로 울려 퍼진다.
“솔직히 말해서…… 함께 가는 일은 우리가 부탁하고 싶은 거예요. 여기까지 오기는 했지만, 우리 힘으로 온 것도 아니고…… 이용당하는 꼴이었는 데다가 우리를 데려왔던 마법사는…… 음, 투란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아는 길이라도 더듬어 나가는 것이라면, 투란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랑 함께 가주겠어요?”
이어지면서 뭔가 어눌해지며 스스로 헤매는 듯한 이야기였고, 이 소리를 듣던 제란드와 시알라는 씁쓸하니 페란드를 쳐다보고 말았다. 말투는 꽤 담담했지만, 나오는 이야기가 저 모양이면 듣는 이가 수상하게 쳐다볼 지경 아닌가!
이런 상황을 멜란드가 바로 입으로 토해낸다.
“우리 형이 말을 좀 못해요, 투란. 뭐, 사람 속이는 재주가 없어서 저런 거라고 보면 좋은 거겠지만…… 암튼, 간단히 말하자면…… 우린 투란이 함께 가는 데 찬성이란 소리죠. 굉장히 염치없고 낯짝 두꺼운 말 같지만…… 뭐랄까, 기왕 신세 진 김에 끝까지 좀 살려달라는 거예요. 어쩌면 우리가 길잡이 노릇을 할지도 모르니까.”
투란은 눈을 껌벅거렸고, 시알라와 페란드, 제란드도 자신처럼 눈을 껌벅거리며 멜란드를 쳐다보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주 신나게 툭툭 내뱉고 있는데, 뭔가 속이 시원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이 시원함을 놓치지 않고 바로 이야기를 맺으려 했다.
“으흠…… 그러면, 서로 돕는 걸로 하고…… 같이 갈까요?”
말과 함께 투란이 몸을 일으켰고, 그 모습과 태도에는 다들 옷차림도 갖췄으니 바로 출발하자는 낌새가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멜란드가 바로 여기에 찬성하듯이 ‘좋아, 바로 출발하죠!’라며 고개를 끄덕였다가 제란드의 손에 귀를 꼬집히듯 잡히고 말았다. 비틀리는 귀가 아프다는 듯이 멜란드는 ‘왜? 왜!’라고 제란드에게 항의했지만, 제란드는 오히려 그 귀를 더 세게 당기면서 지긋하게 ‘이 한심한 놈아!’라는 소리 없는 눈빛만 번뜩일 뿐이었다.
이 광경에 투란이 고개를 갸웃했고, 페란드가 한숨을 쉬듯이 이 상황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꺼내놓아야 했다.
“여관 안에…… 우리가 벗어놓은 장비가 있어요. 많이 망가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쓸 만한 것도 있고…… 음, 몇 푼 안 되지만 돈도 있고 해서…… 이렇게 차려입을 수 있다고 해도, 몇 가지 추려내서 가져가야 할 것 같거든요. 누나도 약초 주머니랑 챙겨야 하지?”
“그러네.”
가만히 한 걸음 떨어진 듯한 태도로 바라보던 시알라가 끄덕거리며 답했다.
그리고 이 말을 듣고서야 멜란드도 생각난 듯이 낮게 소리친다.
“아! 내 주머니칼…… 그거 아주 좋은 건데…… 두고 갈 뻔했다…… 켁! 그만 좀 해, 제란드!”
소리 내다가 제란드에게 더 세게 귀를 잡혀 여관 쪽으로 질질 끌려가는 멜란드였다.
투란은 그 모습을 재미있어하면서 바라보는 시알라와 페란드에게 대답한다.
“어서 챙겨와요. 여기 오래 머무를 수는 없으니까. 물만 마시다가 쓰러질 수 있는 상황이거든요.”
간단한 말이었지만, 시알라와 페란드는 바로 낯빛이 무거워졌다.
저쪽에서 물이 찰랑거리며 흘러내리는 광경이 훤히 보였지만, 뭔가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열리는 풀이나 나무 따위는 전혀 없는 풍경이었다. 그저 바람이 불고 물방울이 튀어 오르며 땅이 촉촉하게 젖는 것뿐이었다. 그 중심에 놓인 기괴하게 둥실거리는 세모꼴로 보이는 큰 덩어리, 얼마 전까지 네 남매와 투란이 함께 서 있었던 금빛 무늬가 새겨진 크고 네모난 바위를 고려해볼 때…… 이곳은 정말 안전하기는 하지만, 위험했다.
몬스터라든가 마수, 맹수 따위랑 싸우다 죽는 게 아니라 사람을 굶겨 죽이기 좋은 환경인 셈이었다. 물만 마시다 쓰러져 죽을 수 있는…….
투란이 사냥해와서 네 남매에게 먹게 해준 고기 역시도 이 안전한 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란 점이 분명했다. 이 산맥 안에서 사냥이 쉬울 리도 없고, 사냥감이 한자리에 지속적으로 머물지 못한다는 것은 시알라 남매도 오면서 이미 알고 있는 바였다.
지형이 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짐승들은 보다 안전한 곳을 향해서 끊임없이 이동한다.
“서둘러야겠어, 누나.”
페란드가 가슴 깊이 파고드는 현실을 느끼면서 시알라에게 말했다.
시알라도 다른 소리 하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렸다.
투란은 여관 안으로 들어가는 남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볍게 배웅하듯이 손을 흔들면서, 흔드는 오른쪽 손목 속에 담긴 윌 라이트를 통해 드라고니아에게 소리 없이 속삭인다.
‘그럭저럭 잘 넘긴 것 같지? 조금 수상하게 여기는 낌새는 있었지만…….’
―수상하게? 불쌍하게 보는 것 같던데?
왠지 삐딱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대꾸하고 있었다.
‘뭐? 불쌍? 그럴 리가 없잖아! 역시 넌 사람을 잘 모르는구나! 드라고니아라서 어쩔 수 없구나!’
투란이 조금 우쭐대며 거창하게 반박했지만…….
―불쌍한 눈길이 아니면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쪽인데, 그게 더 낫냐?
드라고니아는 한층 더 투란을 불끈하게 하는 말로 되받아치고 있었다.
‘뭐냐, 그게!’
도대체 어디서 나온 말인가, 투란으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였다.
그저 늪에 빠진 일에 대해서 의아해하며 놀란 표정이었을 뿐 아닌가!
투란에게는 그저 그런 정도로만 보였을 뿐이었다.
“음, 형…… 형은 어떻게 생각해?”
벗어놓은 옷 사이를 뒤적이면서 멜란드는 제란드에게 물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장비를 하나씩 벗어놓은 갑옷에서 해체하며 늘어놓던 제란드는 눈길도 돌리지 않고 되묻는다.
“뭘?”
멜란드가 흘깃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시알라와 페란드를 곁눈질하면서 얼른 말한다.
“투란이 대체 어쩌다가 늪에 빠졌을까? 실수였을까?”
“알아서 어쩌게?”
제란드는 여전히 돌아보지 않은 채로, 자신의 장비만을 가늠하는 눈길로 퉁명스럽게 되물을 뿐이었다. 이는 곧 멜란드가 입술을 삐죽거리게 했다.
“아니, 궁금하지 않아? 이런 곳까지 오게 된 일이니까…….”
“넌 여기 올 때까지 겪은 일을 전부 떠들고 싶냐?”
제란드가 빠른 손짓으로 장비를 분류하면서 여전한 되물음으로 답하고 있었다.
멜란드는 이 소리에 잠시 뚱한 표정부터 지었다.
맏형인 세란드가 실종된 이후로,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일을 전부 떠들고 싶은 생각이나 기분은 네 남매 모두에게 별로 없었다. 세란드가 실종된 것도 벌써 십, 삼사 년은 지난 일이었다.
마법사가 꺼낸 이야기…… 세란드가 아직 살아 있으며 혼자 힘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산맥의 깊은 곳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꼴이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남매는 거의 포기할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이제 돌이켜 생각하면 마법사가 진짜로 세란드가 살아 있다고 여긴 것인지, 세란드가 죽은 뒤에도 남겨져 있을 수 있는 황금매의 문장을 표본으로 회수하기 위해서였는지조차 아리송했다.
가디언인 세란드는 단호하게 불완전한 황금매의 문장을 회수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멜란드에게는 고작 그런 것 때문에 마법사가 목숨까지 걸려 했는가 생각하면 아리송한 일이라고만 느껴질 뿐이었다.
세란드에게 새겼고, 네 남매에게도 새긴 황금매의 문장이었으니…… 또 다른 사람에게 새겨서 계속 원하는 형태가 완성될 때까지 다듬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마법사는 대체 세란드 형의 문장을 왜 그리 원했을까?”
“앙?”
제란드가 잠시 손을 멈추고 멜란드를 바라봤다.
갑자기 말머리 돌리는 꼴이 어이없다는 듯한 눈빛이었고, 이런 제란드를 보며 막 들어온 페란드가 둘에게 묻는다.
“왜 그래? 멜란드, 뭐라고 한 거냐?”
멜란드는 제란드의 반응에 움찔하면서 슬슬 옆으로 앉은 채로 피하는 몸짓과 함께 답한다.
“아니, 난 그냥 궁금해서…… 마법사가 왜 굳이 우리를 데리고 여기까지 왔나, 이상하잖아?”
“그렇군. 너 일찍 잠들었지.”
페란드는 잠깐 지긋하게 멜란드를 보다가 말했다.
제란드가 눈을 한 번 깜박거리다가 한숨 쉬며 다시 자신의 장비를 나누고 가늠하며 챙기는 손짓에 몰두했다. 이런 모습과 페란드의 말은 멜란드에게 분명하게 느끼게 해줬다.
“뭐야, 나 일찍 잠들고 나서 그런 얘기를 했어? 그래서 나는 모르는데 다 알고 있는 거야?”
어딘가 삐친 듯한 막내의 말은 막 계단을 밟고 들어온 시알라에게 입을 열게 했다.
“너 잠들고 나서 한 이야기를 지금 되풀이할 때가 아니야. 어서 짐 챙겨…… 별로 챙길 것도 없는 거니? 그럼, 나머지는…… 페란드, 뭐 하는 거야?”
멜란드를 향한 잔소리를 늘어놓다가 페란드가 하는 짓을 보며 시알라는 바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는 곧 제란드와 멜란드의 눈길도 페란드에게 향하게 했고, 둘은 곧 시알라처럼 의아해했다.
페란드는 멜란드에게 핀잔을 주고서는 바로 자신이 벗어놨던, 상처투성이의 갑옷을 들어 올려 한구석에 옮겨놓고 있었다. 그냥 던져놓는 것이 아니라 갑옷 전용걸이까지 마법으로 일으켜 세우면서 차분하게 진열하듯이 꾸며놓고 있었다. 시간이 없으니까 서두른다는 기색으로, 그러면서도 아주 반듯하게 자신의 갑옷을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마치 이제 여기 두고 가지만, 언젠가 다시 찾으러 올 다짐이라도 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잖은가!
누나와 동생들이 한껏 궁금해하며 던지는 눈길을 받으면서도, 페란드는 갑옷을 쓰다듬으며 진열을 마치고 아주 천천히 답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