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4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50)
“그동안 신세 많이 졌잖아. 이 집은…… 마법으로 지어졌지만, 마법으로 유지되지는 않아. 어느 정도 마법이 남아 있기는 할 테지만…… 그러니까, 여기서 편히 쉬라고…….”
“어, 그런 거야.”
뭔가 감상적인 페란드의 말이 금세 이해가 간다는 듯이 멜란드가 먼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멜란드는 자기 옷 속에 남은 물건이 없는 것을 확인하면서 탈탈 털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멜란드가 덧댐 가죽까지 모두 벗겨내서 지금 차림새에 옮겨 붙이고 나니, 남은 것은 휑하니 뚫린 누더기 한 벌이었다.
“음, 얘도 많이 고생했네. 그러면…….”
멜라드는 잠깐 둘러보는 시늉을 하다가 자신의 누더기를 페란드가 진열해놓은 철갑 어깨 너머로 스윽 걸쳐놓았다. 페란드는 잠시 동생이 자신이 벗어서 이제까지의 감상을 담아둔 갑옷의 광경 위로, 이제는 옷인가 뭔가 알 수도 없게 된 누더기를…… 붙어 있던 덧댐 가죽이라든가 쇠장식을 몽땅 떼어낸 탓에 원형을 알기 힘든 천조각으로만 보이는 것을 얹어놓은 꼴을 바라봤다.
“잘 어울리네?”
멜란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더했다.
그 순간, 바로 페란드가 손을 움직였다.
멜란드의 누더기는 철갑 어깨 위에서 내려졌고, 곧장 벽으로 옮겨졌다.
페란드는 멜란드가 ‘어? 왜?’ 하는 소리를 웅얼대는 사이에 벽에다가 못질을 해서 누더기를 벽지처럼 붙여버렸다. 이 광경에 멜란드는 한층 더 당황해서 뭐라 하려 하는데, 곧바로 돌아선 페란드의 두 주먹이 지긋하게 멜란드의 볼을 양쪽에서 꽉꽉 누르면서 낮은 소리가 흐른다.
“딱 어울리는 자리야, 그렇지?”
“으, 어― 응.”
멜란드는 번뜩대는 페란드의 눈길에 마지못해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둘이 그러는 꼴을 제란드는 아예 못 본 척했고, 시알라는 잔소리를 크게 터뜨린다.
“그만하고, 준비 끝났으면 이리와. 손 모아!”
제란드가 바로 자신의 손 위에서 자루를 굴리던 단도를 허벅지 쪽에 갈무리하며 시알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형제간의 작은 소란을 피우던 페란드와 멜란드도 각각의 표정을 띄운 채로 다가와 시알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네 사람의 손이 겹쳐지고 쌓이니…….
스읏, 단단히 조여둔 옷감을 여미는 소리와 함께 투명한 형상이 겹쳐진 손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네 남매의 손은 그 형상 안에, 팔은 안팎으로 이어진 듯이 자리 잡았다. 형상은 세란드의 모습을 그 굴곡으로 이뤄냈고, 미소지었다.
시알라가 빙그르 도는 세란드의 투명한 얼굴과 눈이 마주치자 말한다.
“이제 가요. 앞으로 우리를 계속 지켜본다고 했으니까…… 지켜봐요, 오빠. 가능하다면…… 오빠가 직접 나설 일이 없도록 열심히 힘낼 테니까, 조금 답답하더라도 참고 봐줘요.”
세란드가 고개를 끄덕였고, 얼굴을 돌려 페란드를 바라봤다.
페란드는 그 투명한 눈동자를 마주 보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했다. 더 다른 말이 필요 없다는 듯, 굳건하게 의지를 다지는 표정이었다. 세란드도 마주 고개를 끄덕하며 제란드를 향해 투명한 눈길을 옮겼다.
제란드가 그 눈길에 고개를 끄덕이며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걱정 마. 쉽게 죽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미묘한 쓴웃음이 세란드의 투명한 낯빛 위로 굴곡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세란드는 곧 기운찬 끄덕임으로 제란드를 봐주고는 멜란드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멜란드는 잠시 갸웃거리며 누나와 형들을 둘러보다가 세란드의 눈동자를 마주 보고는 살짝 흠칫하며 어색한 웃음부터 띠었다.
“어, 뭐…… 난 막내지만 조숙한 막내잖아. 그러니까…… 가끔 마력에 여분이 있으면 어울려 놀아줘. 누나나 페란드, 제란드 형들이랑 보낸 시간보다 나랑 보낸 시간이 짧잖아. 이 정도 어리광은 괜찮지?”
멜란드의 말꼬리는 세란드보다는 시알라와 페란드, 제란드를 향해 있었다. 눈치 보는 표정과 함께…….
시알라와 제란드는 눈가를 살짝 꿈틀거렸고, 페란드는 미묘한 한숨을 쉬었다.
투명한 세란드의 형상은 가만히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넷이 내밀고 있는 손을 그 몸을 꿰듯이 박고 있는 세란드의 손은 가볍게 멜란드의 어깨를 짚었고 즐거운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여졌고…… 세란드의 투명한 모습이 사라졌다.
아쉬움과 함께 네 남매는 잠시 서로를 마주 보았다.
투란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 방금 뭐였지?’
무엇 때문인지 징징거리며 자신을 따라다니던 세란드, 노골적으로 저 풍경의 물 쏟아지는 곳에서 자신의 형상을 금빛 안개인 채로 드러냈던 세란드의 기척이 아주 희미하고 미묘하게 느껴졌다. 거의 눈앞에 있어도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릴 듯한 엷은 기척이라 있는 듯 없는 듯할 것 같았다.
―마력의 교차를 통해서 공유하고 있는 가디언을 잠시 함께 본 모양이다. 그럴 경우에 이런 미묘한 감각의 교란이 생겨나지.
‘어? 교란?’
―느꼈잖아. 있는 듯, 없는 듯…… 분별하기 애매한 것…….
‘아, 그러니까 세란드가 슬쩍 모습을 내비쳤다 사라진 거 맞다는 거네?’
―그럴 거야. 꽤 가까운 곳에 있는 데다가 생텀에 의해 네 감각이 저절로 증폭된 상태라서 느낀 거고…… 보통 저렇게 미묘한 경우에는 당사자들 말고는 알 수가 없어. 뭐, 가디언의 계약이 네게도 어느 정도 유효하다는 점도 있는 탓이겠지.
‘흠…… 앞으로 자주 볼 일은 없다는 거네. 그런데 왜 나왔지?’
투란은 아까와는 다른 의아함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살짝 코웃음을 치는 듯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대답한다.
―인간들이 좋아하는 의식(儀式) 아닌가? 여행을 시작한다든가, 무슨 일을 새로 벌일 때…… 서로 힘을 모으자고 의식을 통합하는 것처럼, 마주 보고 손을 모은다든가 소리친다든가 하는 짓…… 자주 하잖나?
‘그게 꼭 의식이라고 하기에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투란은 뭐라 설명하기가 막연해서 말꼬리를 흐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힘내자고 서로 손을 마주치거나, 다시 만나서 반갑다고 주먹을 맞대거나 하는 짓은 헌터 사이에서 자주 보던 일이었다. 덤으로 사냥을 시작할 때 잠시 둥글게 앉아 식사를 하기도 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술 한잔을 나눠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가 짚는 것처럼 굳이 의식이라고까지 하기에는…… 좀 애매하잖은가?
―인간들은 그런 다양한 의식과 부적, 주술(呪術)을 열심히 일상에 담아두더군. 효과가 있는 게 얼마나 되는지는 전혀 모르면서 말이야. 뭐, 인간의 풍속이 그렇다니까 뭐라 따지기도 곤란하긴 하더군.
‘야, 너넨 그런 거 없어?’
―있다. 없으면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하나씩 짚어가며 전부 따져봤을 테니, 인간들 입장에서는 우리에게도 비슷한 풍속이 있는 게 다행이겠지.
‘아, 네…….’
투란은 비슷하다는 부분에서 더 묻기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날개 달린 녀석들, 몬스터를 맨몸으로 패서 잡을 수도 있는 녀석들이 비슷한 것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직접 봐도 뭔 짓인지 모를 게 뻔했다. 투란으로서는 이제부터 자신이 혼자 있는 것도 아닌데, 드라고니아와 수다 떨다가 미친놈처럼 보일 생각은 전혀 없으니 이 대화는 나중에 혼자 될 때, 아주 한가할 때에 이어가는 것이 똑똑한 결정이잖은가!
―무식하고 무지한 채로 버티자는 거냐?
투란의 기분을 느끼고, 그 생각을 알아차린 듯 드라고니아가 한숨 쉬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투란은 약간 발끈하려 했지만, 여관에서 나오는 시알라 남매를 보고 자제할 수 있었다.
드라고니아랑 이야기하는 꼴을 보일 수는 없는 일행이 있으니, 앞으로 진짜 조심하기로 마음먹는 투란이었다.
드라고니아 역시 자신의 존재를 다른 이에게 별로 알리고 싶지 않은 듯, 시알라 남매가 다가오자 윌 라이트의 맥동을 아예 투란의 손목 맥동 속에 담아버린 듯이 감추고 있었다.
* * *
휘이이이― 화아아앙!
거센 바람이 언덕 아래에서 치밀어 올라와 솟구쳐 지나갔다.
이제까지 머물고 있던 분지에서 문턱 노릇을 하는 언덕이었고, 바로 몇 걸음 전까지는 매우 포근하고 평온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막상 언덕의 정상에 한걸음 딛자마자 몸을 때려눕힐 듯한 강한 바람이 짙은 냄새와 함께 밀려들고 있었다.
“으앗! 여기서부터였구나!”
투란이 치솟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누르면서, 아예 한 걸음 물러나는 태도로 외쳤다.
두어 걸음 뒤에 있던 시알라가 놀랐고, 그보다 두어 걸음 더 뒤에 있던 셋은 투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잔뜩 치솟는 광경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아, 비린내…….”
투란은 한마디 더했다.
이는 네 남매를 의아하게 했다.
투란이 말한 냄새의 흔적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탓이었다.
혹시나 해서 킁킁거려봐도 달라진 냄새는 없었다. 특히나 비린 것은 전혀…….
투란은 시알라의 표정부터 주욱 둘러보고 간단하게 손끝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일단 한 걸음씩…… 직접 맛보는 게 좋겠죠. 이제 이 언덕을 넘으면 안전한 구역이 아니니까…….”
시알라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등 뒤에서 멀뚱거리는 동생들의 기척을 느끼고는 입을 꽉 다문 채로 언덕 위에 섰다.
휘이이!
“히익?”
살짝 언덕에 발을 걸치고 얼굴을 들이대는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벽을 그대로 통과하는 느낌에 이어서 곧장 거센 바람과 비린내가 시알라에게 몰려들었다. 마치 세상맛이 어떠냐는 듯, 독했고 바로 물러섰음에도 콧속을 헤집는 비린내는 시알라를 황당하게 했다.
“대체 이게 무슨 냄새인데……!”
더듬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알라는 투란을 봤고…… 그 입가에 살짝 맴도는 미묘한 웃음을 간파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뭐라 하는 대신, 시알라는 잠깐 사이에 위로 치솟은 자신의 앞쪽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누르면서 페란드 쪽을 향해 말을 이어간다.
“페란드, 예전에 고기 사냥꾼이랑 일했었지? 한번 맡아봐. 이게 무슨 냄새인지,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
페란드의 눈매가 조금 좁혀들었다.
투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고, 누나인 시알라는 머리카락과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 어서 상황을 파악하라고 하는 중이었다. 페란드가 거절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데…… 뭔가 미묘하게 덫을 향해 고개를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드는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과거 고기를 얻기 위해 짐승을 사냥하던 사냥꾼과 함께하며 페란드가 많은 냄새에 익숙해져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 나서기는 나서야 할 참이었다. 그래서 페란드도 곧 앞으로 나서며 언덕 정상에 발을 딛고 머리를 들이밀었고…….
화아아앙!
“윽?”
귓가를 울리는 거센 바람소리에 밀려나면서, 입으로 한마디 소리를 내며 페란드는 뒤로 물러야 했다. 바로 시알라가 곁에서 조금 진지하게 묻는다.
“어때?”
페란드는 고개를 돌렸고, 그제야 뒤편에 서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투란이 미묘하게 꿈틀거리는 웃음 비슷한 것을 입가에 매달고 있는 꼴을 봤다. 그리고 그 어깨 너머로 약간 겁에 질린 듯, 잔뜩 긴장한 듯한 제란드와 멜란드의 모습도…….
“썩은 고기 냄새 같기도 하고, 피비린내 같기도 하네. 히엔나 무리가 가까이 맴돌면서 남기는 입냄새랑 닮았는데…… 그 녀석들이라면 오줌 냄새가 더 독해서 이런 비린내는 남지 않을 테니까, 아니고…… 뭔지 모르겠어. 하지만 뭔가 있기는 해. 저 언덕 아래에 잔뜩, 보이지 않더라도 있어.”
차분하게 한마디씩 꺼내 늘어놓다가 페란드는 문득 알아차렸다.
누나인 시알라는 진지하게 듣는 중이었고, 투란은 페란드의 이야기에 여전히 웃음을 띤 채이기는 하지만 고개를 끄덕거리는 중이었다. 귀를 기울이던 제란드와 멜란드가 좀 더 긴장한 듯했지만…… 어느새 시알라는 단호하게 각오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페란드는 보다 직접적으로 묻기로 했다.
“투란, 뭐가 매복하고 있는 거죠?”
“파이어워커.”
투란의 대답은 아주 간단하게 나왔다.
페란드가 눈을 깜박였다.
“파이어워커?”
“파이어러너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네요.”
투란은 소문이 다 그렇지 뭐 하는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애매한 이름, 모호한 정체…….
멜란드가 참지 않고 묻는다.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생겨먹은…… 뭔 짓을 하는 놈이란 거죠?”
“보라색으로 입김도 뿜어내고, 몸에서 안개 같은 것도 뿜어내는 도마뱀. 좀 큰 도마뱀이라 사람도 삼키려 할 수 있어요. 오면서 본 적은 없나요?”
투란은 다시 답하고 물었다.
시알라부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고, 페란드는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란드는 어깨를 으쓱했고, 멜란드는 멍하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페란드가 조금 더 가라앉은 침착한 소리로 묻는다.
“그러면, 얼마나 위험한 놈이지요? 상대하는 특별한 방법이라도?”
몬스터에 대항하기 위해 긴장하는 남매를 투란은 스윽 둘러봤다. 그리고 빙긋, 환한 웃음과 함께 말한다.
“불. 불에 구워져요. 그런데, 그 녀석이 내뿜는 보라색이 불에 닿으면…… 아주 지독한 불길이 돼 버려요.”
“응? 아니, 그러면 그놈은 자기도 못 견디는 주제에 불 속을 뛰어다녀요?”
멜란드가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투란은 고개를 저으며 답한다.
“불을 꼬리에 붙인 것 같은 꼴로 뛰어요. 누가 못 따라오게 불을 질러대는 마수이고, 원래 이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던 녀석이에요. 이 언덕은 잘 넘지 않으려 하는데, 지금까지도 계속 주변을 맴돌고 있을 줄은…… 흠, 왜 그럴까?”
말꼬리에 의혹을 담으면서 투란은 고개를 갸웃했다.
시알라 남매는 그런 투란을 보고, 서로를 흘깃하며 느낄 수 있었다.
춤추는 산맥이 첫걸음을 디뎌야 할 곳부터 제대로 그 영역을 과시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