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5)
포만감이 투란을 채우고, 살짝 배부른 기분이 여유를 느끼게 해 줬다. 하지만 이 여유 속에서 투란이 떠올린 생각은 근심과 염려를 불렀다.
‘이놈을 들고 갈 수도 없고, 배낭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있어 봐야 또 어디에 긁히고 찢기면 금방 못쓰게 될 테고…… 최대한 몸을 불려 놔야 하나? 배불뚝이 아저씨처럼 해야 하나?’
산속에서, 숲속에서 길을 잃고 뭘 먹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을 때 믿을 것이라고는 뱃살뿐이라고 외치던 채집꾼이 있었다. 샤오콴 마을에 터를 잡고 사는 이들 중에서는 조금 특이하게 약초를 전문으로 다루는, 배가 불룩 튀어나온 탓에 ‘배불뚝이 아저씨’로 통하는 사람이었다.
그 배불뚝이 아저씨가, 길을 잃은 때는 갖고 다니는 배낭도 잃어버린 상황이기 마련이라며 그런 때 뱃살이 한 겹 더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느냐고 떠벌리던 말! 딱 지금 투란에게 필요할 법한 소리잖은가?
하지만 그 주장을 따르기에는 조금 알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내가 그렇게 살이 찔 수는 있나?’
샤오콴 마을에 사는 사람, 어쩌다 스쳐 가는 사람이 아니라 붙박여 사는 사람들 중에는 배가 나올 정도로 살찐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배불뚝이 아저씨가 특이한 것도 그런 점 때문이었다.
투란 역시 그렇게 살이 올라 본 적은 없었다. 아니, 따져 보면 지금처럼 배가 부르게 먹어 본 적도 드물었다. 비록 사람이 먹을 리 없는 것이긴 하지만, 뭔가를 이렇게 배가 부르도록 먹고도 남은 것을 보는 경험은 거의 처음이었다.
‘양분을 몸에 쌓아 두는 방법은 없을까?’
투란은 조금 더 진지하고 신중하게 고민하며 자신이 뭘 할 수 있는가, 악마의 심장은 뭘 할 수 있을까를 파고들었다.
악마의 심장이 먼저 간결한 답을 내놓았다.
심장에서 나오는 혈관에 새로운 줄기가 가지를 쳤고, 그 줄기는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다만 더 단단하고 농축된 덩어리일 뿐이었다. 한데 그 안에 담긴 것은 악마의 심장이 언제라도 혈관을 통해 녹여 보냄으로써 활용할 수 있는 정제된 양분이었다.
‘이런 것도 되는구나.’
신기해하던 투란은 문득 멈춰 있는 자신의 손을 봤다.
생각을 이리저리 굴리면서도 샤벨투스의 이빨을 움직이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두꺼비 가죽이 아닌 부분, 허옇게도 회색으로도 보이는 두툼한 살가죽에 이르자 손이 저절로 멈췄다.
‘단단해? 아니, 갈라지기는 하는데…… 힘이 부족해.’
샤벨투스의 이빨은 피를 머금었고, 충분히 날카로웠다. 그런데 살가죽의 두툼한 조직이 엄청나게 뻑뻑해서 파고든 이빨을 꽉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으려 했다. 더 파고들 수 없는, 더 썰어 낼 수 없는 부분에 닿은 셈이었다.
그의 힘이 좀 더 강했다면 충분히 썰어 냈겠지만…….
투란은 단단한 살가죽의 두께를 가늠하다가 이빨로 저미듯이 면을 따라 밀어 봤다. 얇은 살점이 살짝 뜨여 올라왔다. 두께를 한꺼번에 가르지는 못해도 저미는 것은 가능한 모양이다. 그 가죽을 잘게 쪼개 삼키니 팔다리에 힘이 붙는 듯한 느낌도 생겨났다.
투란은 그렇게 조금 더 먹다가 손을 멈추고 샤벨투스의 이빨에서 피를 뺐다.
‘그만하자.’
배불뚝이 아저씨를 떠올리고 그의 말을 생각하며 먹다 보니, 어느새 투란의 팔다리에도 살짝 살이 올랐고 배도 약간 불룩해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몸이 둔해지는 감각을 확실하게 깨닫고 있었다.
되새겨 보니, 배불뚝이 아저씨도 몸이 좀 둔한 편이라 사냥꾼은 될 수 없다고 했다. 투란으로서는 지금 둔해졌다가 어떤 위험과 만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일단 악마의 심장이 축적한 양분의 가지를 믿고, 약간 더 부풀린 채로 여기서 나가야 했다.
말랑해지고 얄팍해진 이빨을 손등 살갗 속에 밀어 넣으며 투란은 걷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태양이 뿜어내는 빛살과 서리 안개의 호수를 등지고, 그늘진 절벽의 틈새를 향해 나아갔다.
굽이치는 틈새로 들어선 지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등 뒤의 빛살도 서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로 이어지는 길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분지 밖으로 나가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대로 죽 가면 아예 춤추는 산맥을 벗어날지도 모른다고 약간은 미심쩍은 희망마저 품게 되었을 즈음, 투란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바닥에 바싹 붙이며 엎드려야 했다.
길이 툭 끊어지고, 틈새 안쪽으로 넓은 동굴 같은 구역이 나타났다.
저 맞은편에는 동굴의 입구라도 되는 것처럼 훤히 열린 부분이 보였다.
‘저게 뭐지?’
투란을 조심하게 하는 것, 위험을 느끼게 하는 것은 열린 입구가 아니었다.
넓게 퍼진 동굴의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들!
투란이 엎드린 곳보다 더 낮은 쪽, 갑자기 툭 끊어진 길 아래, 돌로 된 알처럼 생긴 것들에서 삐져나오는 것들이 있었다. 어떤 종류의 생물이 부화하는 장소인가 싶을 정도였는데, 그 알의 수가 동굴 바닥을 가득 채울 듯이 많았다.
투란은 눈을 가늘게 한 채 소리 내지 않으려 애쓰며 그것들을 지켜보았다.
그가 엎드린 곳은 동굴 바닥 쪽에서 보면 위로 툭 튀어나온 선반 같은 형태로, 그 위에 움푹 파인 자리일 뿐이지만 조용히 있으면 저 아래서 꿈틀대는 것들에게 들키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투란은 곧 그것들이 아예 위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돌 껍질을 부수고 나온 녀석들은 바닥만 보며 이리저리 기어 다니고 있었다. 뭔가를 찾는 듯한 모습인데…….
‘두꺼비…… 아까 그놈의 새끼들인가?’
투란은 더욱 숨을 죽이면서 놈들의 형체를 가늠해 보았다.
녀석들의 생김새는 그를 잡아먹으려다가 죽어서 오히려 그에게 먹힌 두꺼비 오우거랑 똑같았다. 다만 몸집은 50센티 정도에 불과했는데, 대신 알이 많은 만큼 나오는 녀석들도 많았다.
투란은 건너편을 보며 살짝 고민했다.
그냥 냅다 뛰어서 저 녀석들을 지나칠 수 있을까?
녀석들은 자기네 틈새로 뛰는 날 그냥 두고 볼까?
투란이 이것저것 궁금해하는 사이에, 알에서 나와 바닥을 더듬으며 꿈지럭꿈지럭 움직이던 녀석들이 서로 만나는 경우가 생겨났다. 서너 마리가 한꺼번에 만나기도 했고, 달랑 두 마리가 만난 경우도 있었다.
‘대체 뭘 찾는 거지?’
이윽고 투란은 놈들이 바닥을 더듬으며 뭘 찾는지 알게 되었다.
‘뭐야, 알에서 나오자마자 동족…… 형제를 찾…… 엑!’
서로 만난 녀석들이 입을 열더니, 스스럼없이 상대를 물어뜯고 있었다.
더듬거리고 꾸물대던 모습은 이제 없었다. 두꺼비 입을 열고 가지런한 이빨을 드러낸 채 손톱으로 서로를 찢어 잡아먹으려 들었다!
그렇게 찢겨 나간 한 점의 살점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혀를 길게 뻗어 날름대고, 난투극을 벌이며 서로를 물고 뜯고 씹어 삼키고 있었다.
서너 마리가 만난 녀석들은 물고 물리는 황당함 속에 난투가 오래갔고, 두 마리가 만난 경우는 툭탁대다가 한 놈이 다른 놈의 머리통을 왕창 깨물어 뜯어내면서 끝났다.
어느 쪽이든 싸우다가 뜯어 먹는 결말이었고, 싸움을 끝낸 놈은 바닥을 샅샅이 혀로 핥아 살점 한 조각,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삼켰다.
투란은 그런 광경을 그저 멍하니 지켜보았다.
바닥에 깔린 알은 아직도 절반 이상이 깨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제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와드득, 콰드득.
뼈와 살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한 놈을 완전히 삼킨 놈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투란의 생각을 멈추게 했다.
‘뭐……!’
50센티짜리가 1미터로 커졌다.
키도, 덩치도 두 배로 불어났다!
그렇게 커진 놈이 얼굴을 문지르자 눈꺼풀 언저리가 찢겨 나가며 눈알이 드러났다. 개구리나 두꺼비의 눈동자가 아닌, 위에서 아래로 확 갈라진 눈동자가 스산하게 주변을 쓸어 봤고, 아직도 난투극을 벌이는 서너 마리를 찾아냈다.
커진 놈은 주저 없이 껑충, 두꺼비처럼 뛰어서 그쪽으로 내려앉았다.
두꺼운 손아귀가 열리고, 아직 치명상을 주고받지 못한 채로 싸우는 놈들 중 하나를 움켜쥐더니 활짝 열린 입에 던져 넣었다.
그렇게 50센티짜리를 한입에 털어 넣은 1미터짜리는 배불뚝이가 돼 버렸다!
꾸륵, 꾸르륵!
거친 소리가 울리고, 투란은 배불뚝이의 배가 확 꺼지는 것을 봤다.
1미터짜리는 다음으로 손에 잡히는 녀석을 집어삼켰다. 다시 배가 부풀고 꺼지고, 다시…….
‘뭐야, 저놈!’
투란이 어이없어하거나 말거나, 녀석은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다가 여기저기서 툭탁대는 놈들을 찾아가 집어삼키고 꾸륵거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1미터짜리였던 놈이 다시 한 번 꽈득거리며 뼈와 살이 부풀고 갈라지는 소리를 내더니 2미터짜리가 되었다.
지켜보는 투란으로서는 정신이 혼란스러운 광경이었다.
한 마리 먹고 두 배로 커진 놈이 두 배로 커지려고 몇 마리를 삼켰나?
‘……응?’
저놈의 꾸륵대는 요란한 소리에 입구 언저리에서 쓱 나타나는 녀석은 또 뭔가?
투란은 더욱 몸을 낮추고, 알이 깔린 바닥과 알에서 나온 것들을 지켜봤다.
저 건너 입구로 조용히 들어선 놈은, 그가 먹어 치운 녀석보다 좀 더 커 보였다. 3미터가 훌쩍 넘을 듯이 큰 그놈은 넓은 동굴 안을 둘러봤고, 2미터로 커진 녀석을 발견했다.
놈이 혀를 날름거리는 사이로 뭔가 입꼬리가 말리는 것이 웃는 것처럼도 보였다.
‘저게 알을 깠나?’
투란은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놈이 껑충 뛰어 2미터짜리를 덥석 집어삼키는 광경은 그런 생각을 싹 날려 버렸다. 놈은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을 바닥에서 뜯어내 그대로 깨물고 씹어 삼키기도 했다!
‘대체 너넨 뭐냐?’
놈은 큰 덩치로 거침없이 동굴 안을 움직였고, 알에서 깨어난 50센티짜리들과 이제 막 커진 1미터짜리들, 거기서 좀 더 커진 2미터짜리까지 가리지 않고 마구 잡아먹었다. 간간이 입이 마른 듯 바닥에서 알을 뜯어 먹기도 했다.
아무리 봐도 동족 혹은 동족의 새끼들일 텐데 대체 뭐 하는 짓인가, 투란으로서는 어이가 없어 저절로 한숨이 샐 지경이었다.
크르…… 꾸륵!
갑작스러운 기괴한 울음에 투란이 흠칫했다.
놈의 세로로 열린 눈동자가 데굴거리며 그를 훑고 있잖은가!
‘젠장, 돌아서 뛰어……?’
투란은 저놈도 서리 안개 호수와 여러 태양의 햇살 아래로 유인해 죽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놈의 손톱, 체격, 살가죽을 봐서는 도저히 그가 잡을 만한 견적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투란은 몸을 일으키는 대신에 더 바싹 바닥에 달라붙어야 했다.
‘엑!’
그가 달라붙은 바닥이 기울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눈알을 데굴거리며 그를 쳐다보던 놈도 둥실 떠서 입구 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 동굴, 절벽의 틈새가 통째로 기울고 있는 탓이었다.
투란은 자신이 바닥으로 떨어지다가 저놈 근처에 이르면 놈이 혀를 내밀어 잡아먹으려 드는 광경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기울어지는 바닥이 세워진 벽이 되는 이 상황에서 버텨 저놈이랑 거리를 둬야 했다.
그런데 그때, 동굴 입구가 새로운 풍경을 보여 주었다.
저편을 향해 훤하게 열린 입구였기에, 투란이 엎드린 자리가 기울어지면서 동굴이 어디로 열려 있는지를 보여 주게 된 것이다.
한데 그 풍경이…… 시뻘겋게 이글대는 불로 가득했다!
갑자기 몸속에서 맥동하고 덜덜거리는 것을 느끼며, 투란은 자신이 달라붙은 곳과 저 두꺼비 오우거가 돌아다니던 동굴 바닥이 갈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저쪽이 먼저 불길 속으로 떨어지는 중이고, 그가 매달린 곳은 아직 조금 삐걱대며 뒤편에 매달린 모양새였다.
그 바람에 투란은 좀 더 끔찍한 꼴을 봐야 했다.
불길 가득한 곳을 향해 제일 먼저 추락한 두꺼비 오우거가 한쪽에는 알을 들고, 다른 쪽에는 2미터짜리를 든 채로 재가 되어 사라졌다. 뒤이어 알에서 깨어난 놈들도, 알들도 순식간에 재가 되거나 녹아 없어졌다.
‘젠장!’
투란은 고개를 젖혀 돌리며 뒤를 봤고, 그늘진 절벽 틈새의 길 너머로 화창하게 갠 하늘을 확인했다.
‘이게 뭐야!’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개미굴 속의 개미가 된 셈이잖은가!
개미는 세상이 뒤집히는 줄 알겠지만, 사실은 개미굴이 부서지는 것뿐이다.
그 와중에 투란이란 개미는 왜 저기 있는지 알 수 없는 불길 속으로 떨어지는 것뿐이고!
투란은 이 혼돈 속에서 몸부림치고 발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즉시, 악마의 심장이 다른 악마의 심장으로부터 얻은 기억을 바탕으로 갖게 된 손톱과 발톱이 굵고 강인하게 치솟아 기울어진 바닥을 파고들었다.
투란은 불구덩이가 기다리는 아래쪽을 외면하고 반대편, 찢긴 틈새로 인해 보이는 하늘 쪽을 향해 온 힘을 다해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결국은 자신이 매달린 자리까지 불구덩이로 떨어진다 해도, 벌써부터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악마의 심장이 힘차게 맥동하며 그런 투란에게 호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