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5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56)
Chapter 52. 몬스터 로드의 여로 Ⅱ
“그전에는 없던 거죠. 마음속의 풍경이라고…… 우리가 지닌 심상이 전과 다르게 변했는데, 그 속에 아주 또렷하게 새로 자리 잡으면서 전과 아주 다른 느낌의 풍경을 보게 되었거든요.”
페란드가 침착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는 투란을 조금 놀라게 하는 이야기였다.
“심상……?”
분명히 거기에 도달하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몬스터 로드라고, 키린이 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심상, 문장의 풍경은 사람마다 전혀 다른 형태를 지닌다고 했었다. 때문에 ‘아래’라든가, ‘깊은 곳’이라든가 하는 표현으로 몬스터 로드는 자신이 지닌 심연의 풍경에 대해 막연하게 에둘러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경험을 통해 얻는 감각적인 상황일 뿐이니까.
한데 시알라 남매 넷이 투란과 마찬가지로 고리 모양을 갖춘 심연의 풍경을 지녔다니.
시알라가 투란이 짓는 미묘한 표정을 느낀 듯, 페란드의 말에 보태 이야기한다.
“오해하지 말아요, 투란. 우리는 몬스터 로드의 심상을 제대로 갖춘 게 아니에요. 음, 뭐랄까…… 황금매가 지닌 특성이라고 해야 하겠네요. 황금매는 마법을 갖추면서, 각인된 자에게 처음부터 심상을 형성하게 해요. 그게 다른 몬스터 로드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고, 그 덕분에 부적 없이 몬스터의 본성을 제압할 수 있다는 거니까요.”
멜란드가 고개를 갸웃하며 누나를 바라봤다. 너무 당연하고 기초적인 이야기를 왜 이제 와서 하느냐는 듯, 멜란드는 누나가 지나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는 느낌에 한마디 꺼내고 만다.
“에이, 그런 거야 투란도 알고 있는 걸 텐데…….”
투란은 눈을 껌벅거렸다.
듣고 보니 확실히 황금매는…… 처음부터 기묘한 심상과 풍경을 투란에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전에 이미 심상을 갖췄던 투란이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이제 보니 아예 바닥부터 시작한 모양이잖은가!
‘썩을! 세란드, 그딴 이야기는 쏙 빼놓고!’
그러나 세란드가 투란에게 그런 초보적인 이야기를 할 이유도 없기는 했다.
이미 투란이 단숨에 돌파한 상황에서 새삼스럽게 ‘네가 지금까지 거쳐온 길은…….’ 이라면서 어쩌고저쩌고해 봐야 들을 자신도 없고!
여린 한숨과 함께 투란은 남매를 향해 바로 고개를 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몰랐어요. 워낙…… 좀 희한한 상황에서 황금매를 품는 바람에…….”
시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모로 투란은 우리랑 다르겠죠. 세란드 오빠의 무모한 짓까지 다 겪은 다음일 테니…….”
멜란드는 ‘헉?’ 하는 소리를 내고 있다가 세란드의 이름이 나오자 입을 꾹 다물었다. 굳이 더듬을 필요도 없이, 투란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세란드는 느닷없이 만나서 이런저런 부탁만 잔뜩 늘어놓고 위험한 짓까지 덤터기를 씌운 것일 테니까.
이 부분에 있어서 남매는 뼛속까지 깊이 투란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십여 년 이상을 찾아다니던 맏이 세란드의 부탁을 받아주고, 찾아온 남매의 굴레를 확실히 벗겨줬으니…….
투란은 잠깐 머리를 벅벅 긁다가 갸웃하고는 다시 묻는다.
“그러면, 모두 둥근 고리에다가 둥근 천장을 지닌 그런 풍경의 심상을 보는 거예요? 금빛 반짝거리는?”
이번에는 제란드가 어리둥절한 표정부터 지었다.
“둥근 천장?”
페란드가 제란드의 의아한 소리에, 투란의 물음에 동시에 답한다.
“그건 투란의 심상이군요? 나는…… 일단 금빛이 반짝거리는 고리는 있지만, 그 속에는 불길이 가득해요. 깊이 파여 들어간 불구덩이라고 해야 하나…… 그게 내가 품은 고리에요.”
“어? 불길이라고? 그냥 새카맣게 어두운 우물처럼…… 연못인 것처럼 고리가 자리 잡고 있는 거 아닌가?”
멜란드가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페란드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내 고리는 벽에 걸린 채로, 금색 화로 위에 장식되어 있는 그런 모양이다. 심상에 공통점은 있겠지만, 너랑 같을 리가 없잖아. 제란드, 너는 어때?”
“음, 내 고리는…… 녹색 거품이 가득해. 깊은 물을 내려다보는 그런 느낌이랄까? 단지 내가 아직 진짜 깊은 물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녹색 거품이 한없이 깊어지는 느낌만 있는 것도 같고…….”
제란드가 눈을 가늘게 하면서, 자신의 심상을 되새기는 모습으로 답했다.
이런 이야기는 투란의 눈을 색다른 호기심으로 깜박거리게 했다.
황금매는 심상을 묘하게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성격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풍경을 생성해주고 있는 셈이었다.
시알라가 동생들이 늘어놓는 소리에 더 말한다.
“세이프티 하우스의 모양이랑 닮은 풍경이겠구나? 페란드는 분명히 대장간 닮은 모습일 테고, 제란드는 언젠가 봤던 폭포 위의 풍경을 하고 있지? 등대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으로…… 맞아? 음, 그리고 멜라드…… 넌 계속 땅굴 파는 느낌이네.”
멜란드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대꾸한다.
“어쩔 수 없잖아. 난 그게 편안하다고! 포근하고 아늑한…… 여우굴 속의 낮잠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내가 제일 편하게 느낀 때니까…… 황금매가 당연히 그때 기억을 바탕으로 심상을 작성한 거겠지, 뭐…….”
페란드가 미묘하게 한숨을 쉬며 한탄하듯 말한다.
“그래, 황금매의 마법은 우리가 가장 깊이 편안하게 느낀 곳을 골라주지. 근데, 왜 넌 짐승굴이냐고. 제란드만 해도 가고 싶은 등대의 풍경을 상상한 모양인 듯한데……. 집도 아니고…….”
“아, 정말! 그러니까, 세란드 형이랑 사냥 갔던 그때 기억이라고! 어쩌겠어! 꼬마일 때, 그때 이후로는…… 힘들었잖아!”
멜란드는 약간 반항하는 말투로 다시 대꾸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소한 형제간의 티격태격하는 추억들…….
이렇게 오가는 이야기를 통해서 투란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몬스터 로드가 스스로 성장하며 심상을 형성하는 것과 다르게, 황금매는 시작부터 분명하게 심상을 작성한다. 그 심상의 배경이 되는 것은 황금매를 새긴 사람이 가장 아늑하고 포근하게 느끼는 기억이다.
‘그럼, 내가 품은 그 풍경은 대체 뭐지?’
투란은 그렇게 낯선 풍경이 기억에 없었다.
그건 분명히 황금매와 함께 나타난, 완전히 처음 보는 풍경인데…….
―기억이란, 원래 망각과 함께 하는 거다. 너 자신이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언젠가 넌 그런 풍경 속에서 아늑하고 편안함을 느꼈을 거야. 뭐, 거기에 금박을 입힌 것은 지금의 네 성향을 반영한 듯도 하지만…….
‘앙?’
난데없이 뇌리를 찔러오는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잠깐 눈꼬리를 꿈틀했지만, 눈앞에서 서로의 심상에 대해 아옹다옹하는 시알라 남매를 보고 ‘나중에 보자!’라는 기분으로 억누를 수 있었다. 지금 드라고니아의 말에 대꾸하면, 미친놈 취급받을 수 있다! 자세한 설명을 하려고 한다면, 키린에 대해서까지 늘어놔야 하니…… 더 미친놈 취급받기 쉽다!
그래서 투란은 시작부터 심상을 지녔다는 남매들을 향해 묻는 말을 꺼냈다.
“잠깐, 그렇다면…… 시작부터 상당한 수준의 몬스터 로드가 되는 셈인데…….”
시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겔퍼…… 그 마법사는 오랫동안 몬스터 로드에 대해서, 엠블럼에 대해서 연구를 해왔다고 했어요. 혼자서도 아니고, 그에게 마법을 전승시켜준 학파가 그렇게 해왔다고요. 그 덕분에 우리는 어지간한 몬스터 로드가 막연하게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꽤 여러 가지로 미리 들을 수 있었죠. 심상도 그렇고…….”
“그러니까, 그렇게 비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얘기를 다 들었는데…… 삼킨 몬스터가 대체 뭐였어요? 뭐였기에 겨우 한두 가지만 삼키게 했지요?”
투란은 보다 구체적으로 파고들었다.
강력한 본성과 힘을 지닌 몬스터라면, 한두 가지로도 확실히 벅찰 수 있었다.
부적을 쓴다 해도 하나로 감당이 안 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아무리 황금매라 하더라도, 몬스터의 본성을 완벽하게 짓이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몬스터 로드에게 아주 유리한 입장에서 시작하게 해주는 것뿐이다!
투란이 ‘천칭’을 통해 쌓은 경험이 없었다면, 황금매를 통해 삼킨 녀석들을 어떻게 다루게 되었을지는 투란 자신도 뭐라 할 수 없는 곤란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투란이 의아해하는 것은…… 이 남매가 뭔가 강력한 몬스터를 품었던 낌새가 아니란 점이었다.
도대체 아겔페스는…… 때로는 아겔으로, 때로는 겔퍼란 이름으로 세란드를 비롯해 남은 남매까지 이곳으로 끌고 온 마법사는 이들에게 어떤 몬스터를 삼키도록 했을까?
한창 궁금해하는 투란을 보며 시알라가 조금 민망한 듯한 낯빛을 띠면서 답한다.
“음, 그러니까…… 황금매가 조금…… 아니, 많이 특별하잖아요. 그래서 몬스터보다는 이미 담고 있는 마법만 잘 써도 된다고…… 에, 내 시작은 고블린이었어요. 고블린의 팔을 싸게 얻어서 황금매의 주문 두루마리에 올려놓고, 각인했죠.”
“두루마리?”
투란은 문득 알아차렸다.
마법사가 이들에게 황금매의 문장을 전이시킨 방법은 몬스터 로드랑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주문이 새겨진 두루마리를 이용했을 터였다. 특히 재료, 몬스터의 정수를 품은 잔해가 필요할 테니까…… 주문에 따로 소재가 들어갈 경우에 마법사들은 안정성을 위해서 별개로 작성된 두루마리를 애용한다.
금색의 마도사라던 아겔페스는 확실히 그런 모범적인 수단을 이용한 셈이었다.
그런데…….
“고블린?”
투란의 의아함이 아주 다른 방향에서 강렬하게 튀어나왔다.
사티르, 혹은 사티로스라 불린다는 몬스터처럼 대규모로 번창하기 쉬운 몬스터가 고블린…… 왕국의 군단병들이 산맥 안쪽을 향해 방책을 세우고 늘 싸우는 품종 중에 확실히 속하는 녀석이었다.
고블린이라고 불린다 해도, 정말 다양한 품종으로 다시 세분되는 탓에 그 능력도 뒤죽박죽인 데다가…… 가끔 말하는 경우도 있어서, 몬스터 로드가 삼키기에는 굉장한 주의가 필요로 한 경우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심상까지 작성(作成)된 황금매의 몬스터 로드, 비록 불완전한 것이었다 해도 세란드의 경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강력한 몬스터 로드에게 삼키게 한 고블린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특이한 녀석일까?
투란은 이것이 궁금했다.
한데…….
“음, 어,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시알라가 앞뒤로 말을 더듬었고, 제란드가 그 꼴을 보다 짧게 덧칠하듯 말한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싼 놈이었잖아, 그뿐이지 뭘.”
“어, 엥?”
투란이 눈을 끔벅거리면서 ‘진짜?’라는 표정을 지었다.
시알라는 한숨과 함께 답한다.
“처음 각인할 때였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했어요. 그때 대규모 고블린 토벌이 있기도 했어서, 아주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아주 값이 쌌으니까. 일단 황금매는 새긴 것만으로도 마법을 쓸 수 있잖아요. 굳이 처음 몬스터를 힘들게 고를 필요가 없기도 했어요.”
뭔가 마법사가 했던 이야기를 다시 변명으로 내놓는 듯한 말이었다.
그리고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 대량으로 발생했다는 점이 특징일 뿐인 고블린을 몬스터란 이유만으로 황금매를 새기는 데 그냥 이용했을 뿐이란 이야기!
투란은 이에 대해 아주 세게 비평했다.
“아겔페스, 쪼잔하기는! 세란드에게 당했다고 아예 처음부터 사람 골탕 먹일 작정을 했구만!”
시알라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고, 페란드와 제란드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멜란드는 고개를 젖히면서 잠시 처음의 일을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불쑥 말한다.
“그래도 누나는 제대로 독손톱을 가진 고블린이었잖아. 난…… 하도 짓이겨져서 손톱이 다 나간 놈이었어. 아, 정말 고블린이란 놈은 왜 몸의 에센스가 분산된 경우인지…….”
“그래, 독손톱이 있기는 했지. 쓰려면 내 손이 애기 손이 돼서 문제였던!”
시알라는 살짝 부러워하는 낌새를 보이는 멜란드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투란이 듣다가 ‘애기손?’ 하는 한마디를 되뇌었고, 시알라는 한숨처럼 설명한다.
“일 미터 조금 넘잖아요, 고블린 체격이란 거……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몬스터의 모습이 될 때는…… 삼킨 녀석의 크기가 그대로 튀어나왔거든요. 그러니까 일 미터도 안 되는 놈의 팔이다 보니…… 거의 애기 손처럼 작아지더라고요. 그 손톱으로 어딜 할퀴고 어쩌고 하기 전에, 들고 있는 쇠국자를 떨굴 정도였어요.”
“그건 진짜 미니언 고블린이었군요.”
투란은 이제 뭐라 위로할 기분도 아니란 듯이 중얼거려야 했다.
특이(特異)한 품종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병정(兵丁)으로 분류되는 고블린도 아니었다. 그냥 갓 태어나서 무리에 휩쓸리고 밀려나온 덜 자란 고블린…… 미니언 고블린은 그런 경우였다. 때문에 숫자는 압도적으로 많을 때가 대부분이지만, 터무니없이 약하다!
단지 그 덜 자란 부분을 보충하듯 가끔 손톱이나 이빨에 제법 지독한 마비독을 품은 경우가 있을 뿐인데, 이 또한 절반 정도의 경우라고 했다. 나머지 절반은 독도 없고, 그저 숫자를 채울 뿐이다.
“그러면, 일단 시작은 그랬다고 해도…… 다음에는 조금 더 신경 썼을 것 같은데……?”
투란이 말꼬리를 흐리며 물었다.
처음이야 마법사가 저리 하자면 하겠지만, 눈치 보니 남매들도 나중에는 조금 더 신경 썼을 듯한 느낌이 있었다. 세란드를 찾는 일에 힘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신경 썼을 것이다!
제란드가 살짝 입꼬리에 웃음을 담고 대답한다.
“난 다음에도 고블린이었지요.”
“헐?”
투란은 제란드의 옅은 웃음을 보고서도 일단 놀랬다.
한번 데이면, 두 번째는 아예 다른 것으로 고르는 게 보통 아닌가?
“돌 잘 던지는, 투석(投石) 고블린의 팔이었어요. 쓸 만하더라고요, 그놈은…….”
제란드는 장난기를 지우면서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