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5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58)
‘추해!’
‘흉해!’
분명히 은폐(隱蔽) 가능한 색채의 변화라고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카밀 도마뱀처럼 주변 환경에 맞춰서 가만히, 산뜻하게 색채만 깔끔하게 변화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건 진흙탕을 구른 강아지가 온몸에 흙탕물을 묻힌 다음에 땅바닥에 달라붙어 죽은 척하는 거랑 닮았잖은가! 어쩌면 똑같을지도!
시알라가 먼저 심호흡을 했다.
거칠고 큰 숨결이었고, 이는 시알라의 생각을 멈추게 했으며 동생들의 주의도 끌어, 함께 떠올리고 있는 생각을 모두 멈추게 했다. 돌연 마음이 고요해진 듯한 분위기 속에서 시알라는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 보기만 해서는 잘 모르겠는데.”
순간, 페란드와 제란드, 멜란드는 누나를 향해 ‘미쳤어?’라는 눈길을 잠깐 보낼 수 있었다. 평소에 형제들이 흙투성이가 되거나 하면 잔소리 퍼붓고 걸레로 패려 하는 누나였으니까! 비록 깊은 산맥 속을 헤맨다 하더라도 시알라는 될 수 있는 한, 청결하고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근성을 발휘하는 성격이었다.
한데 그런 누나가 지금 뭔 소리를 하는가?
가장 먼저 깨달은 이는 페란드였다. 그래서 페란드도 누나를 돕는 말을 곧 꺼낼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갖춰진 능력이 아니고…… 연습해야 한다고 했지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예요?”
이번에는 제란드와 멜란드가 ‘아니, 페란드 형까지!’라는 눈빛을 잠시 반짝거렸다. 하지만 누나와 형이 모두 진지한 모습은 제란드와 멜란드를 바로 다시 생각하게 했고, 둘은 서로를 흘깃하며 쓴웃음과 함께 알아차렸다.
투석 고블린의 팔을 얻기도 했고, 사티로스의 다리를 구해도 봤다.
모양이라든가 멋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고블린이나 사티로스를 비싼 것으로 고르지도 못했다.
그렇게 싸게 구한 몬스터 에센스를 품고, 단련해서 강해지려 애쓴 경험이 제란드와 멜란드에게 여전히 또렷했다. 당연히 페란드도, 시알라도 그런 경험을 함께 했다.
트리니티 히엔나를 품은 지금,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을 이유가 있던가?
그저 보이는 것에만 얽매여서 새로운 기능(技能)을 연마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물론 세란드를 찾는다는 목적은 이뤄냈다.
하지만…….
“봐요, 봐! 히엔나의 털은 거칠고 엉망으로 보이잖아요! 만져보면 까칠하기만 하고! 그런데 이게 은근히 많이 꼬여서 그물질을 하거든요! 게다가 히엔나는 자기 털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엮이면…….”
투란이 신이 나서 떠드는 이야기가 네 남매의 생각을 덮어버렸다.
하지만 그 생각의 바탕에 깔린 세란드의 말은 네 남매에게 투란의 목소리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무사히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아야 해. 아주 오래오래……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무시하고 행복하게 사는 거야! 내가 지켜줄 테니까!
세란드는 망령이 되어서도 그 소망을 간절히 품었고, 찾아온 동생들에게 전했다.
그 소망을 받은 네 남매는 이런 곳에서 쉽게 죽어줄 수 없었다.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간단히 가볍게 살아가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투란이 네 남매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잖은가.
추하든, 흉하든…… 강하게 살아남기 위한 길을!
그러므로…….
* * *
투탓, 파팍!
발톱에 걸린 돌이 툭 채여서 멀리 날아갔고, 밟힌 땅이 튀어올랐다.
잿빛과 흰색이 탁하게 어우러진 털이 박힌 다리가 정강이보다 굵은 발목을 튕기며 빠르게 땅을 박차며 질풍처럼 몸을 실어 나른다. 몸 하나에 한 쌍인 다리, 여러 몸이기에 밟히는 땅과 차이는 흙먼지도 여럿이었지만 한 줄로 달리는 일행이 남기는 발자국은 혼자 달리는 자가 남기는 것만큼만 남고 있었다. 서로의 간격이 짧게는 십여 미터이고, 길게는 이십여 미터인 채였는데도…….
햇살이 뉘엿뉘엿 기울어진 채로, 밤을 예고하려는 듯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붉은 색채를 살그머니 드러낼 때였다.
선두에서 거센 콧김이 섞인 소리가 울렸다.
키잉, 컹!
일행이 달려나가던 속도가 느려졌다.
선두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서 주변을 빙 도는 움직임을 더 빠르게 드러냈다. 두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는 느려진 걸음으로 양쪽으로 갈라서면서 주변을 관찰하고 냄새를 맡는 모습을 보였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거의 멈춘 것처럼 느긋하게 걸으면서, 뒤쪽의 풍경을 확인하고 주변을 차분히 둘러보고 있었다.
분담된 역할에 따라서, 경계와 정찰이 동시에 이뤄졌고…….
선두가 주변을 한 바퀴 돌 듯이 뛰다가 돌아오며 거친 숨결을 토해낸다.
“커엉, 킁! 크킁! 후앗! 아―, 아아! 샘이야. 다 왔어.”
사람보다는 개머리에 가깝던 히엔나의 머리통이 보다 사람처럼, 돌출되었던 코와 입이 꺼져 들어가면서 겨우 숨결은 목소리가 되어 말을 이루고 있었다. 이를 향해 다가가던 두 번째가 히엔나의 머리 형상 그대로, 선명하게 말을 한다.
“멜란드, 아직도 히엔나인 채로 말하기 힘들어?”
“우씨! 잘 안 되는걸!”
멜란드가 완연히 털이 가득하지만 자신의 본래 얼굴 모습이 된 채로 투덜대는 대꾸를 했다. 그 앞에서 사람의 얼굴이 원래 어땠는가를 알아보기 힘든 모습인 채로, 제란드가 히엔나의 혀를 날름거리면서 말한다.
“너무 조급하잖아. 숨을 조금 천천히 쉰다 생각하고 해보라니까.”
“알았다고! 연습 중이라니까.”
멜란드는 제란드가 히엔나의 머리인 채로 사람의 말을 하는 광경을 보며 한숨을 쉬면서 부러운 눈빛까지 반짝일 수밖에 없었다. 그 곁으로 세 번째, 다가오면서 살갗에 돋은 털을 가지런히 유지한 채로 사람의 머리와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시알라가 말한다.
“샘은 어때? 이상한 거 없었어?”
“응. 없어. 주변 냄새는…… 예전에는 못 맡았으니까 비교는 못 하겠는데, 그냥 그래. 물 냄새랑 땅 냄새로 봐서는 이 근처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거든. 어, 저 지네는 좀 구분하기 힘들고…….”
멜란드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시알라가 손목과 발목 아래쪽으로는 트리니티 히엔나의 형상을 유지하고 팔꿈치와 무릎 위, 몸은 완연하게 자기 본래 형태로 갖추는 광경을 보며 대답했다.
남매는 히엔나의 형상을 꺼낸 채였지만, 옷차림도 착실하게 갖춘 모습이었다.
제란드는 허리를 감는 여러 줄의 띠에 투척용 칼날을 착실하게 끼운 채로, 바지와 웃옷은 가벼운 갑옷 형태를 한 차림새였고 시알라는 어깨에서 늘어진 망토가 찰랑거리는 가죽 갑옷 한 벌을 위아래로 차분하게 갖춘 채였다.
그에 비해 멜란드는 조금 가볍게, 팔뚝, 팔죽지나 허벅지, 발목 위를 얇고 넓은 가죽띠로 감은 듯한 차림새였다.
“저거 맛있나? 페란드 형도 계속 먹어대네?”
멜란드는 주변 정황에 대해서 말하고 나서, 일행의 뒤편에서 더 느려진 채로 다가오고 있는 페란드와 투란을 보며 의아함을 토했다. 제란드가 이에 대해 혀를 차는 소리로 대꾸한다.
“뭘 물어봐? 너도 먹어봤잖아.”
“아니, 여기 지네는 맛있을까 궁금하잖아.”
“그럼, 너도 같이 먹어보든가.”
“싫다고!”
멜란드는 생각만 해도 혀가 아프다는 듯이 우엑대는 시늉을 하면서 제란드의 말에 대꾸했다. 시알라가 혀를 차는 말투로 한마디 한다.
“그랑츄라야 씹을 수 있다니까, 말도 안 듣고 히엔나의 입으로 씹어서 그런 거잖아. 그랑츄의 입이면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니까.”
“배고프면 해본다고!”
반항하듯 멜란드는 짧게 대꾸하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막내의 그런 모습에 시알라와 제란드가 동시에 한 번 더 혀를 찼다.
하지만 그다음에 둘은 살짝 웃음을 짓기도 했다.
멜란드가 맛이 있네 없네 투정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상황이므로!
제란드는 뒤를 잠시 돌아봤고…….
“샘 주변을 조금 더 살펴보자. 투란이랑 페란드는…… 좀 더 지네를 파낼 모양이니까.”
“으에! 페란드 형 차례잖아, 다음 집은…….”
멜란드가 다시 투덜거렸다.
시알라가 손을 들었고, 그 손에서 히엔나의 손톱이 툭 튀어올랐다.
“누가 너한테 시킨다든? 같이 가서 좀 더 주의 깊게 살피자고! 대충 보다가 또 저 시체지네 구덩이에 빠질래?”
“실수였다니까!”
멜란드의 입에서 기죽은 듯하면서도 카랑거리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트리니티 히엔나를 형성하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벌써 닷새 정도가 지났다. 그 닷새 동안의 여정 중에서 멜란드가 정찰을 하고 안전한 곳이라고 확신했던 곳에 자신의 세이프티 하우스를 짓다가 땅이 꺼지면서 시체지네가 잔뜩 튀어올라온 일이 있었다. 땅속을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얇은 땅가죽 아래에 큰 구멍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날은 시체지네의 틈바구니에서 붉은 그랑츄의 형상을 두른 채로 헤집고 나와야 했고, 밤새 둥지가 무너진 시체지네 떼에게 집요하게 시달려야 했다.
엄청나게 귀찮았지만 살아남을 수는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투란은 ‘와, 이놈들 둥지도 있었네?’라고 말하며 한 마리씩 집어 올려 으적거리며 씹어먹는 모습을 보여줬다. 덕분에 시알라 남매도 밤새 시달림의 울분을 마찬가지로 풀어내기는 했다. 하지만 한참 달려 쉬고 싶은 때에, 쉬어야 할 때에 다시 같은 꼴을 겪고 싶지는 않다!
자기 때문에 그리 되었다는 것 때문에 멜란드는 꽤나 풀이 죽었고, 덕분에 날이 밝은 다음에야 누나와 형들이 씹는 시체지네 맛을 보겠다고 한 입 댔었다. 완전히 으스러진 시체지네였고, 히엔나가 지닌 잡식성을 믿고 씹다가 시체지네의 갑각에 혀와 입안이 찢기는 꼴을 당했다.
고작 손가락 굵기에 불과한 녀석이, 완전히 꽉 쥐어져서 으스러진 녀석의 껍질이 그리 단단하고 독할 줄은 몰랐던 멜란드가 호되게 당한 셈이었다. 상처야 금방 치유가 되고 말았지만, 그 뒤로 멜란드는 시체지네를 입에 대려 하지 않았다.
덕분에 멜란드만 배가 많이 고픈 처지가 되었는데, 멜란드는 아직도 자기 배는 덜 고프다고 고집부리는 중이었다.
“하여간…… 조심하고 주의해도 뭐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잖아. 귀찮다고 하지 말고, 가자.”
시알라는 다시 막내를 향해 잔소리를 한 다음에 앞장섰다.
멜란드의 입이 살짝 삐죽거렸지만, 다른 소리없이 그 뒤를 따랐다.
제란드는 잠깐 멈춘 채로 페란드와 투란을 조금 더 지켜봤다.
삐죽한 황갈색 갑각처럼 보이는 갑옷을 걸친 붉은 그랑츄의 윗몸, 두껍고 넓은 트리니티 히엔나의 발목이 버티기 힘들 정도로 우람한 모습이었지만 페란드는 저 형상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한 가지가 아닌 두 가지를 나름대로 융합하려고…… 그 노력을 투란이 도우면서 비슷한 형상으로 여러 가지 행동을 시범 보이고 있었다.
‘굳이 땅 파서 시체지네 꼬여내는 것까지 해봐야 하나?’
제란드에게는 투란이 보여주는 행동이 과연 단련이 되는 것인가 의아한 구석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페란드는 묵묵히, 침착하게 그 한 가지 한 가지를 따라 하고 있었고, 어느 틈엔가 트리니티 히엔나의 다리와 붉은 그랑츄의 윗몸을 어우러지게 하는 중이었다.
과연 투란이 보이는 시범이 효과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페란드의 고집스러운 집착이 결실을 맺는 것인지…….
‘잘못될 일은 없겠지.’
제란드는 일단 이렇게 결론짓고 몸을 돌려 누나와 막내 쪽으로 움직였다.
잠시 투란과 페란드의 주변을 함께 관찰했지만, 별다른 것이 없었기에 안심한 다음의 움직임이기도 했다.
그런 제란드에게 보이는 누나와 동생은…….
퍼억!
“대뜸 머리부터 담그지 말라고!”
잔소리와 손짓을 겸한 꾸지람을 주고 받는 중이었다.
“여긴 안전한 샘이잖아! 아무것도 없구만!”
“그게 언제인데? 지금 확인도 않고 머리부터 들이밀었잖아!”
옥식각신하는 꼴을 보면서 제란드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어째서인가, 멜란드는 요새 한동안 보이지 않던 성급하고 생각 없는 막내의 모습을 슬슬 돌출시키고 있었다. 뭔가 막내가 막내다운 모습을 되찾는다고 안도하는 기분도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저러다 한번 크게 다칠까 봐 걱정되는 기분이 더 크고 무거웠다.
덕분에 누나도 슬슬 잊었을까 싶었던 잔소리가 점점 되살아나는 낌새였고, 제란드에게는 이 부분이 더 걱정되었다. 멜란드에게 잔소리하다가 시알라조차 주변을 잠시 잊는 경우가 있으니까.
그래서 제란드는 뛰었다.
“흐흠, 저 샘 마실 수 있나 보네요.”
투란은 으적거리는 그랑츄의 입으로 말했다.
“이 근처에서 거의 유일하게 안전한 샘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밤에는 꽤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도 했지요.”
페란드가 우물거리는 것을 일단 삼킨 다음에 침착하게 기억을 더듬으며 답했다. 그런 페란드의 얼굴은 붉은 그랑츄의 형상으로 크게 부푼 채였다.
“헤에? 그럼, 한번 지켜봐야겠네!”
투란의 말에 페란드는 살짝 스산한 낌새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