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5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59)
시알라는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샘을 바라봤다.
이 샘은 오랫동안 변화하는 지형 속에서 고정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때문에 오가는 길에 이 샘에 도달해서 가야 할 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
마법사는 이 샘을 이용해서 이동해야 할 곳을 찾아냈었다.
그래서 이쪽으로 왔고, 샘을 찾아냈다.
이제 이 샘에서 보이는 다른 지형을 찾아가면 된다.
여기서 문제는 하룻밤을 보내는 곳을 어디로 고를까 하는 점이었다.
이 근처에서 마실 수 있는 물은 이 샘이 유일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이 샘 곁에 머무는 것이 좋다.
그러나 마법사와 함께 왔을 때, 마법사는 완곡하게 길을 서둘러야 한다고 그러지 않았다. 그 완곡함 속에 담긴 완고함은 절대로 이 샘 곁에 머물지 않겠다는 묘한 낌새였고, 그때는 마찬가지로 길을 서두르는 입장이라서 따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찌해야 할까?
시알라가 고민하는 사이에 페란드가 다가와 말한다.
“여기서 밤을 보내자는데…….”
낮은 목소리에는 시알라와 같은 조심스러운 태도가 담겨 있었다.
시알라의 눈길이 투란을 향했다.
투란은 샘물에 손을 담그면서 찰랑여 보고, 냄새를 맡고, 손으로 퍼올린 물을 혀끝에 대보기도 했다. 그리고 갸웃하며 말한다.
“아무것도 이상한 거는 없는데…… 뭔가 들은 일 있어요?”
“아니요, 없어요.”
시알라가 한숨처럼 대답했고, 형제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묘하게 불안한 느낌으로 남은 마법사의 태도가 있기는 하지만, 뭔가 들은 바는 없었고 당장 이상한 점을 느끼지도 못했다. 이럴 때 마냥 조짐이 이상하다고 조심해야 한다고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경계해야 할 태도가 될 뿐이었다.
물론 그렇게 묘한 기분에 따라 움직여서 위험을 피할 수도 있을 테고…….
“그럼, 뭐가 나오는지 하룻밤 머물러 보죠!”
투란처럼 호기심 가득한 태도로 위험한지 아닌지 겪어보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아니, 그건…….”
제란드가 뭐라 하려 했고, 페란드는 그 말을 끊으며 끼어든다.
“그럼, 조금 샘에서 간격을 두고…….”
“어?”
제란드는 조금 당황하면서도 뒤로 물러섰다.
페란드가 느닷없이 호기심 가득한 투란에게 호응해서 이리 서두를 거란 예상을 못 해 당황하는 것은 멜란드와 시알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페란드가 곧 일으키는 금빛 바람결과 함께 모두 날려가듯 사라지고 말았다.
붉은 그랑츄의 어깨, 두꺼워 보이는 윗몸을 털이 무성한 발목이 버텨주는 듯한 모습 그대로 페란드의 붉은 손이 땅을 짚은 채였다. 금빛 바람결은 페란드의 살갗, 모습의 윤곽을 덧씌우는 선으로 나타나서 허공을 부여하며 땅으로 스며들고 저편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바람이 스쳐 간 땅이 들썩거렸고, 저편에 모여든 금빛 바람결이 조금 크고 넓은 담요처럼 지면을 덮어갔다. 그 지면이 뒤집어지고, 땅 아래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것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 거칠게 돌이 마찰하는 소리 따위를 울려대면서 건물의 형체를 갖춰나갔다.
이글거리는 화로가 엿보이는 공방이 생겨났고, 공방 곁으로 거실이 자리 잡고…….
“어? 와, 오늘 대장간은 층이 하나 더 있네!”
투란이 외치고 있었다.
그 말에 시알라와 제란드, 멜란드는 ‘어?’ 하면서 고개를 조금씩 들어 올렸다.
정말로 대장간에 위층이 하나 더 생겨나 있었다. 공방 위로는 원통처럼 보이는 벽돌벽이 자리 잡았고, 거실 위에는 반듯하게 기울어진 지붕을 갖춘 이 층이었다.
투둑, 키익.
공방에 문짝이 달리면서 마법이 완성되었다.
페란드는 천천히 일어섰고, 누나와 동생들을 향해 말한다.
“뭐해? 어서 들어가. 곧 닫힐 거야.”
그 말에 시알라는 페란드 앞쪽으로 금빛이 반짝거리는 포석을 내려다봤다. 포석은 대장간 주변을 채우고 있었고, 안전을 위한 마법의 방어벽을 두를 참이었다. 일단 안에 들어간 다음에는 혹시 모를 뭔가의 접근을 막아줄 방벽이 생기기 전에 들어가야 했다.
“아래층도 넓어 보이는데?”
멜란드가 이리 외치면서 빠르게 페란드 앞쪽의 포석을 밟으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제란드도 ‘그러네?’라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시알라는 투란을 돌아봤고, 투란이 가볍게 걸음을 딛는 모습을 보면서 앞장섰다. 마지막에는 페란드가 포석을 밟고 들어올 것이고, 보이지 않는 방벽의 닫힐 것이다.
‘정말…… 이렇게 몬스터의 모습이 된 채로 마법을 쓴다니…….’
포석을 밟으면서 시알라는 다시 그때의 충격이 가슴을 울리는 것을 느꼈다.
황금매는 몬스터 엠블럼이면서도, 마법을 쓰게 해준다.
하지만 마법과 몬스터를 동시에 쓰는 것은 아니었다.
한쪽의 힘을 사용할 때는 다른 한쪽을 재워둬야 했다.
그런데 투란은 히엔나의 은폐술을 알려주면서 보여줬다.
숨어 있다가 툭 튀어나가면서 불꽃이든 뭐든 마법의 일격을 먹일 수 있다고, 은폐술의 효과를 자랑한다면서 보여준 그 광경은 생각 없이 몰입해 보던 네 남매를 잠시 얼어붙게 했었다.
며칠 사이에 익숙해진 듯하지만, 시알라에게는 여전히 짙은 여운을 남기는 충격이었다. 아마도 동생들 역시 같은 기분일 터였다. 그러니까 페란드는 일부러 몬스터의 모습을 꺼낸 채로 마법을 쓴 것일 테고, 딴소리하던 제란드는 조용해진 것이며, 멜란드는 제일 먼저 뛰어 들어가 새집을 구경하겠다고 설레는 것일 터였다.
그리고 투란은 이 새집이 또 어떻게 생겨먹었나 진짜 궁금해하는 중이고!
시알라는 공방에 발을 디디면서, 페란드가 조금 더 세련되게 공방의 형태를 다듬은 것을 느꼈다. 바닥이 조금 더 부드럽고 깔끔한 느낌의 포석이었으니까.
페란드가 공방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몬스터의 형상이 지워지는 것을 보며 시알라가 말한다.
“바닥이 거칠지가 않네?”
“싫다며?”
페란드는 뚱하니 대답했다.
며칠 전에 공방 바닥이라든가 거실 바닥이 까칠했던 것을 지적하면서 투덜대던 시알라였음을 지적하는 대답이었다.
피식 새는 웃음을 띤 채로 시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더 좋아. 그런데 이 위는 뭐야?”
“망루. 제란드의 등대 모양을 흉내 낸 거야. 어쨌든 하늘이 보이고, 사방이 보일 정도로 탁 트인 높은 곳처럼 꾸며놨지. 음, 밤에 파수 보는 일은 누가…….”
페란드는 대답하면서 제란드나 멜란드를 보려 했지만, 둘은 이미 거실을 너머 위층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오호, 더 넓군! 이 층도 넓으려나?”
“올라봐야지!”
제란드가 감상을, 멜란드가 호기심을 곧바로 드러내는 소리를 제각각 남긴 채였다.
그리고 투란이 바로 그 뒤를 따라가면서 말한다.
“파수! 이런 집에서 밤새는 파수라니!”
시알라와 페란드는 잠시 말을 잊은 듯이 투란의 뒷모습을 봐야 했다.
그리고 미묘하게 더듬거리는 말투로 페란드가 중얼거린다.
“오늘은 지붕 위나, 밖에서 머물지는 않겠네.”
“그러지 말라고 이 층에다가 더 넓게 지은 거잖아.”
시알라가 며칠 전의 일을 떠올리면서 대꾸했다.
워낙 네 남매끼리만 있다 보니, 무심결에 넷이 머물만한 곳을 만들었고 투란이 끼면 조금 비좁은 느낌의 집부터 짓고 말았다. 마력을 절약하는 법이라든가, 필요 없이 낭비하면 안 된다든가 하는 압박이 시작된 날이라 빠듯하게 짓다 보니 그리된 면이 있기도 했지만…… 그렇게 저지른 페란드는 곧 다시 짓겠다고 당황한 채로 지었던 집을 허물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때 투란은 ‘아직 구경도 못 했는데!’라며 징징거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집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가 더 궁금할 뿐이지, 이 산맥 안에서 들판을 뒹굴며 자는 상황에 대해 전혀 꺼리는 바가 없는 태도였다.
그 뒤로도 며칠간 남매가 짓는 집에 대해서 투란은 호기심 가득하게 구경만 하려고 했고, 막상 쉬어야 할 때는 지붕 위라든가 바깥쪽의 위치를 정해 머물 뿐이었다.
시알라가 파수라면 번갈아 가며 하자는 말까지 꺼냈지만, 투란은 거절했다.
네 남매가 아직은 황금매에 익숙하지 않고, 마력을 다루는 방법이 미숙하다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상황에 따로 대비하는 편이 좋다고.
듣기에 따라서는 네 남매를 아주 얕보는 듯도 했지만, 네 남매는 뭐라 따질 수가 없었다. 몬스터의 형상을 품고서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일에 흥분해서 며칠 동안 상당히 무모한 짓을 꽤 저질렀던 탓이 컸다. 억지 부리자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요령을 가르쳐준 투란 탓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히죽 웃으며 비전이라고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왜 모르냐고 갸웃하면서 이러쿵저러쿵 투란은 여러 가지 느낌을 설명하면서 황금매를 어떻게 다루는가를 알려줬다.
―아니, 세란드도 몬스터인 채로 마법 썼는데?
이런 소리까지 곁들여 그러는 바람에 네 남매는 뭔가 정신 줄을 좀 놓은 상태로 몰입해서 연습하고 말았다! 정작 간밤에 네 남매끼리 있을 때, 슬그머니 힘을 합쳐 부른 가디언 모습의 세란드는 ‘미안, 자세히 기억할 수가 없군!’이라며 시치미 뗀 일이었다. 아무래도 숨 넘어가기 직전에 있던 일은 잘 모르겠다며 가디언 세란드는 거의 배를 째는 듯이 시침 뗀 것이다.
때문에 네 남매가 슬그머니 세란드에게 화난 표정까지 지었고, 세란드는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투란이 알려주는 것만큼만 배우라고…….
너무 많이 알아도 좋지 않다고.
언젠가 더 높은 수준에 이르러서 알아야 할 것이라며 그리 말하는 세란드에게 네 남매는 더 뭐라 따질 수가 없었다.
너무 중요한 일이 불렀는데 왠지 꾸지람과 잔소리만 들은 듯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밤새 이야기하며 각자의 경험을 나누는 쪽으로 네 남매는 방향을 바꿨다. 그렇게 서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따져보며, 무엇에 서투른가를 알고 모자란 점을 채우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도움이 된 며칠이었다.
“일단 쉬자. 간밤에 파수 교대라도 하려면 제대로 쉬어야지.”
시알라가 계속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페란드에게 말했다.
“응, 그러네.”
페란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위층에서는 그 사이에 호기심 넘쳐나는 왁자지껄함이 번져 나가지만…… 어차피 낮 동안 줄기차게 달려온 탓에 오래 저럴 수는 없을 것이다. 투란은 몰라도 제란드와 멜란드는 반드시 한구석에 나뒹굴며 잠들 터였다.
이러한 판단으로 시알라와 페란드는 군소리 없이 아래층의 거실에 자리 잡은 침대 위로 몸을 누였고…….
“일어나! 얼른!”
멜란드의 소곤거리면서도 급한 목소리에 깨야 했다.
시알라가 눈을 껌벅이니 멜란드는 바로 페란드 쪽으로 붙고 있었다.
‘밤?’
햇살은 완전히 사라진 듯했고, 실내는 멜란드가 들고 있는 횃불과 벽에 걸린 횃불로 밝혀진 채였다.
“형, 어서 일어나라고!”
아직 출발할 때가 아닐 테고, 그럼에도 멜란드가 저리 깨우고 있는 것은…….
시알라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페란드가 부스스하니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묻는 소리를 꺼낸다.
“왜? 무슨 일이야?”
“샘에서 뭐가 나왔어!”
멜란드가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있었다.
시알라는 바로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뭔데?”
“몰라, 구불거리는 거 보고 바로 누나랑 형부터 깨우려 온 거야.”
멜란드의 말에 페란드도 침대에서 빠져나와 시알라의 뒤를 쫓듯이 공방으로 뛰어나갔다.
화로의 불빛, 걸어놓은 횃불의 광채에 밝혀진 공방의 열린 문 너머…… 애초에 뒀던 간격인 이십여 미터 거리 저편의 샘에서 굵고 긴 줄기가 가닥가닥 꼬이고 뭉친 형상으로 높이 치솟은 것이 어두운 배경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저게 뭐야?”
시알라가 중얼거렸다.
페란드는 주변을 둘러보고 묻는다.
“멜란드, 제란드는? 투란은?”
멜란드가 거실 저편에서 답해온다.
“위층!”
“응? 위?”
약간 잠이 덜 깬 기색으로 대꾸하다가 페란드는 문득 깨달았다.
열린 문 너머로 불빛이 밝혀진 곳을 노리듯이 샘을 메우듯이 솟는 줄기의 작은 가닥들이 꾸물거리며 기어 나오고 있다!
시알라도 이를 알아차린 듯이 말한다.
“페란드, 방벽은 무사하지? 문 닫고, 잠가. 우리도 위로 가자.”
“먼저 가.”
페란드는 시알라의 말에 따라 움직이며 대꾸했다.
문을 닫고 걸어버린 다음에 페란드는 벽의 횃불 하나를 내려 쥐고 위층을 향해 뛰었다. 계단을 밟고, 공방과 거실의 사이에 둔 것처럼 고스란히 위에도 자리 잡은 문턱을 넘어 페란드가 뛰어나갔다.
망루의 흉내를 낸 둥근 원통, 그 속에 모두 모이듯이 선 채로 둥글게 쌓인 얕은 원형의 벽 너머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들 무사……?”
일단 수를 세면서 말하던 페란드는 문득 모두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말꼬리를 흐리는 페란드를 향해 제란드가 말한다.
“포위당했어. 저거…… 샘 안쪽에서 땅속을 파고 움직이기도 한 모양이야. 우리 주변을 싹 메우듯이 퍼져 있어.”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