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5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60)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페란드는 멍하니 사방에 눈길을 던지는 누나와 동생들을 보며, 모두 같은 생각으로 경계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한쪽에 잔뜩 기대고 있는 투란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투란의 손에는 길쭉한 통이 하나 들려 있었고, 지금 그것을 기울여 한 손 위로 물을 쏟아내면서 투덜거리는 중이었니까.
“물은 그냥 물인데…… 도대체 아무것도 없던 얕은 샘이었는데, 저게 어디서 나왔냐고…….”
귓가에 파고드는 그 말의 의미는 페란드뿐 아니라 시알라에게도 확실히, 제란드랑 멜란드에게도 분명하게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투란은 저 샘에서 뭔가 나올지 어떨지 궁금해하면서도 미리 살펴본 모양이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돌통에 물까지 담아온 것을 보면, 샘에서 무슨 일이 생길 때라도 물이 원인인가 아닌가를 파악하며 변이가 일어난다면 어떤 식인가 보려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투란의 앞선 관찰로도 저 괴기한 느낌의 줄기, 식물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괴물 줄기의 등장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잖은가.
‘마법사는 알고 있었다?’
뒤늦게 네 남매의 뇌리에 스쳐 간 생각이었다.
그리고 마법사는 저것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점을 알기에 아예 스쳐 가며 피하는 선택을 했다! 이 또한 간단하게 추측되는 상황이었는데…….
“방벽을 못 뚫는데?”
멜란드가 조금 의아한 듯한 소리를 냈다.
모두 멜란드의 눈길이 향한 쪽으로 몰려와 함께 바라봤다.
주변을 덮으며 땅을 메우는 듯한 모습인 줄기 가닥이 페란드가 쳐놓은 경계의 마법 방벽과 부딪히면서 움찔거리는 중이었다. 방벽에 닿으면 뭔가 꺼려진다는 듯, 닿았다가 물러섰다가 다시 찔러보는 움직임이었다.
멜란드의 중얼거림이 나직하게 이어진다.
“겔퍼…… 마법사답게 쉴 곳 주변에 저 정도 방벽은 쉽게 세워두곤 했잖아?”
투란이 이 소리에 갸웃했고 확인하듯이 시알라와 페란드를 둘러보며 묻는다.
“그랬어요?”
시알라와 페란드, 제란드까지 한꺼번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멜란드가 말한 의문에 함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법의 방벽을 넘지 못한다면 마법사가 굳이 저걸 꺼릴 필요가 없었을 텐데…… 그렇다면 저 샘에서 흘러나온 줄기 뭉치가 보일 것이 더 남아 있다는 뜻일까?
네 남매가 의아해하는데, 투란이 불쑥 페란드에게 물통을 내밀며 말한다.
“여기 방호 주문을 걸어서 저쪽으로 던져봐요.”
페란드는 일단 말없이 물통을 받아 들었지만, 한층 더 의아해하는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투란이 하라는 짓이야 간단하지만, 투란이 직접 해도 될 일인데 굳이 떠넘길까?
투란은 그 표정을 보며 싱긋 웃으며 보태 말한다.
“몬스터 로드의 마력을 빼고, 황금매의 아케인 포스만을 이용한 주문을 걸어줘요.”
이는 바로 페란드를 납득시켰다.
투란이 무엇을 실험해보고자 하는가, 며칠 동안 남매가 겪은 갖가지 상황을 통해서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황금매의 문장은 몬스터의 형상과 마법을 동시에 펼쳐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새로운 특성도 함께 했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 섞인 채로 펼쳐지는 마법은 굉장히 독자적이면서 배타적인 성향을 갖춘 채였다. 다른 마법과 섞이지 않으려 하며, 마법을 펼친 자에게 지속적으로 공명하는 특이한 주문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마치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를 형성할 때, 거기에 다른 마법의 간섭을 배제하는 특성을 드러내는 것과 꼭 닮은 현상이었다.
이 현상은 황금매를 통해 마법을 펼치는 기반이 되는 아케인 포스를 순수하게 유지할 때보다 주문을 더 강화시켜주는 효과까지 일으켰다. 하지만 네 남매가 세이프티 하우스를 지을 때는 더 이상 서로의 주문에 간섭해서 건물을 겹쳐 올리지 못하게도 했다.
한데 보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이쪽이 정상적인 마법의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원래 마법사들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의 마력을 지니기 마련이었고, 자신의 순수한 마력을 이용한 주문을 사용해서 다른 사람이 간섭하기가 꽤 곤란하게 할 수 있었다. 때문에 마법사들이 서로 협력해서 마법을 공유하려 하면, 각자의 특성을 배제한 아케인 포스를 새로 형성시켜야 하는 것이다.
네 남매는 이를 거듭되는 연습을 통해서 확인해야 했고,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들었다.
―금색의 마도사는 이 녀석들을 자신의 마력 창고로 이용하려고 했잖아. 당연히 순수한 형태와 성질을 갖춘 아케인 포스만을 축적시키려 했겠지. 애초에 심연의 각인이 배제된 황금매가 마력을 갖추기 위해서도 아케인 포스가 필요한 점도 있었겠고…… 이모저모로 자기 좋을 대로 이용하기 위한 계략이었을 것 같은데.
이런 이야기를 투란은 네 남매에게 고스란히 옮겨주지는 않았다.
그저 막연하게 몬스터의 형상을 갖췄을 때랑, 순수하게 사람 본래의 모습일 때랑 마력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지 않느냐고 애매하게 떠들어 놓고, 남매가 이리저리 실험하고 겪는 과정을 지켜봤을 뿐이었다.
―뭔 심술이냐?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하며 한마디 했을 때도 투란은 간단하게 되받아쳤다.
‘말만 듣고 내가 척척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그렇게 지켜보는 과정에서 투란도 새로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었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 섞인 황금매의 마법은 몬스터의 힘에 더 강하게 저항하고 버틴다, 라는 것도 그 새로운 앎의 한 가지였다. 단순히 주문의 효과가 강화되는 정도가 아니라, 더 적고 여린 힘으로도 몬스터에게 더 오래 세차게 반발한다!
이는 남매도 느낀 바였고, 페란드가 투란이 권하는 말의 의미를 금방 알아차린 까닭이었다. 몬스터의 형상을 갖춘 채로 세워놓은 마법의 방벽과 그저 순수한 아케인 포스만으로 이뤄진 방호 주문이 저 줄기에 동일한 효과를 낼 것인가?
“프로텍터.”
돌로 된 물통을 감싸는 희미한 마법의 광채가 맺혀졌다.
페란드는 자신이 주문을 건 단단한 물통을 힘차게 샘 쪽으로 내던졌다.
세이프티 하우스의 경계 방벽을 넘은 물통은 곧 치솟은 줄기와 마주쳤고, 소리도 없이 산산조각 나서 흩어졌다.
“헐?”
투란이 먼저 기막혀하는 소리를 냈다.
“맙소사.”
멜란드도 의문을 풀었다는 표정으로 어이없어했다.
페란드는 한층 더 궁금해졌다는 듯이 중얼거림을 토한다.
“설마…… 아케인 포스만을 바탕으로 한 마법은 모두……?”
제란드가 바로 단도와 투척용 날붙이를 꺼내 들었다.
“하나씩 받아서, 이것저것 주문을 걸어 던져보자고.”
시알라와 멜란드가 얼른 단도를 받았고, 페란드도 받았다.
투란은 눈을 가늘게 하면서 본격적으로 구경할 듯한 태도를 보였다. 며칠 동안 넷이 마법을 연습할 때면 자주 보이던 모습이었다.
제란드의 입술이 달싹였다.
“샤퍼(Sharper).”
칼날이 보다 섬뜩한 광채를 품은 듯할 때, 제란드가 바로 내던졌다.
방벽을 넘어간 칼날은 줄기 한구석에 꽂히는가 싶었지만, 바로 뒤틀린 줄기에 휘말리면서 부서져 버렸다.
“음, 쇠붙이 정도는 그냥 으스러뜨리네…… 꽂히기는 했는데, 크게 아파하는 것 같지도 않네요.”
투란이 지켜본 바를 그대로 말했다.
시알라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쇼크.”
푸른 빛이 가시넝쿨처럼 시알라의 손에 들린 칼날에 들러붙었다.
시알라는 주문이 꽤 잘 먹힌 것에 만족하며 던졌고…… 날아간 칼날은 줄기에 닿자마자 빛을 잃고 저쪽으로 튕겨졌다. 저쪽에서 닿은 가는 줄기는 바로 그 칼날을 휘감아 부숴 버렸다.
“에, 시알라…… 던지는 힘이 너무 약해서 박히지도 않았어요.”
투란이 조금 냉정하게 평가하는 소리를 내놓았다.
발끈한 시알라는 바로 제란드의 허리띠에서 새로 칼날 둘을 꺼내서 똑같이 쇼크의 주문을 걸었다. 그리고 슬쩍 굵어진 팔뚝, 손등에 불끈거리는 힘줄이 돋아난 채로 세게 내던졌다.
이번에도 푸른 빛의 마법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그래도 칼끝은 살짝 줄기에 꽂히는 듯했다. 결과는 마찬가지로 칼날이 부서지는 것이었지만…….
“저거, 마법은 확실하게 지워버리네! 순전히 던지는 힘으로만 칼끝이 조금 박히는군요.”
투란이 눈을 가늘게 한 채로, 조금 답답하고 짜증 난다는 듯이 말했다.
이는 두 손에 한 자루씩 단도를 들고 있던 멜란드를 멈칫하게 했다. 한 손의 단도에는 서리가, 다른 한 손의 단도에는 불꽃이 맺힌 듯이 일렁이는 중이었는데…….
제란드가 그 꼴을 보고 말한다.
“던지든 말든 얼른 하라고.”
입술을 삐죽거리는 모습으로 멜란드는 두 팔을 힘껏 당기며 뒷걸음질까지 쳤다가 앞으로 내달리면서 서리와 불꽃이 맺힌 단도 두 자루를 내던졌다.
서리와 불꽃이 줄기에 닿자마자 사라졌고, 단도는 기세 좋게 줄기껍질에 조금 박히다가 뒤틀린 줄기에 휘말리며 박살났다.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결과였다.
상황은 아주 단순하게 정리된 셈이었다.
페란드가 이를 입으로 옮긴다.
“마법사가…… 아케인 포스만을 바탕으로 한 주문을 쓰고 있었다면, 저거랑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겠군요.”
“음, 마법사의 마력은…… 몬스터 로드의 마력과는 다를 테니까…… 자다가 쇠도 으스러뜨려 부수는 줄기에 감기면 살기 힘들었겠군요.”
투란도 정리된 결과에서 예측한 바를 그대로 말했다.
시알라와 제란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멜란드는 살짝 갸웃했다.
마법사의 마력은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처럼 거칠게 마도구를 망가뜨리는 짓을 하지 않는다. 그 마력에 의해 형성되는 주문 역시 아케인 포스의 정련된 마력에 비하면 오히려 효과가 낮을 경우가 많기도 했다. 그러니까 마법사가 아케인 포스를 형성해 사용한다면, 수준이 높은 경우라는 뜻도 되는 것인데…….
한밤중에 저 샘에서 흘러나온 줄기는 그런 마법사에게 아주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특성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건 어떻게 되려나.”
투란이 중얼거리면서 낮은 벽에 꽂혀 있던 횃불을 집어 들었다.
곧 작은 손짓으로 횃불을 쓰다듬는 듯하니, 불꽃이 커지면서 조금 둥글게 다듬어졌다. 불꽃의 심지 노릇을 하는 횃대로 불이 번져갔고, 부드럽게 산들거리는 바람결이 불꽃 주변을 감싸며 크기를 키웠다.
이 광경을 보면서 시알라가 말한다.
“그냥 불……?”
마력으로 인도(引渡)되는 불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피어난 불꽃을 이용하려 하는 모습인 줄 알아차린 것이다. 심지라든가 불의 소재는 마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지언정, 저 불꽃은 그 소재를 태우면서 순수하게 일어나는 자연적인 것이었다.
투란은 그렇게 키운 횃불을 냅다 저쪽으로 던졌다.
마법의 바람이 불꽃을 덮은 채였지만, 줄기에 닿자마자 역시 사라졌다.
그리고 불꽃은 불티를 휘날리면서 줄기에 떨어져 내렸다.
화아아아앙!
퍼어억!
“어흐으으으!”
“꽤에에?”
난데없이 치솟는 불꽃의 포효였고, 한순간에 굵어진 줄기가 땅을 내리찍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때문에 투란부터 시작해서, 시알라와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까지 모두 식겁한 소리를 질러야 했다.
하지만 곧바로 사방에 절벽처럼 치솟는 줄기가 통나무 몇 그루를 뭉쳐놓은 굵기로 커지면서, 불타오르는 광경은 지르던 비명을 멎게 했다. 너무 어이가 없고 놀라서 소리가 목구멍을 떠나지 못하는 탓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솟아오른 줄기가 모두 세이프티 하우스의 대장간 반대편으로 기울어지며 땅을 후려치고 있었다. 불길이 번졌고, 굵어진 줄기마다 불타며 땅을 덮는 그물처럼 보였다.
샘에 솟아난 줄기는 샘의 깊은 곳에 담긴 부분까지 모조리 불타며, 물로는 꺼지지 않는 강렬한 화력(火力)이 뭔가를 보여주는 광경을 보여줬다.
마치 불을 먹고 굵어지며 빠르게 성장하는 듯한데…… 묘하게도 줄기는 불로부터 달아나려는 듯이 보였다. 심지어 불붙은 굵은 줄기가 갈라지면서 새로 돋아난 몇 가닥의 줄기마저도 불과 더 먼 쪽으로 기울어지며 뻗어가는 듯했는데, 불꽃이 이를 놓치지 않고 달라붙고 있었다.
화르르릉!
샘이 물 대신에 불줄기를 뿜어내는 듯한 광경이 이어졌고, 거기서 솟아난 줄기는 순식간에 굵어지면서 저쪽으로 기울어졌다.
콰앙!
굵어진 만큼 무거워진 것을 과시하는 굉음이 땅을 울려왔다.
그 굵은 줄기가 갈라지며, 잠깐 불붙지 않은 줄기가 치솟았지만 역시나 불꽃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사방을 덮으며 번져가는 불길은 곧 투란의 숨통을 조여오는 뜨거운 파문을 던졌고, 투란은 이를 붉은 그랑츄의 목과 허파로 버텨내며 남매를 둘러봤다. 어느 틈엔가 네 남매도 투란처럼 붉은 그랑츄의 형상을 턱부터 가슴까지 끌어낸 모습으로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살짝 안도하는 기분으로, 투란이 멋쩍은 웃음을 흘리면서, 굵어진 음성으로 말한다.
“하핫, 아무래도…… 사고 친 것 같죠?”
시알라부터 시작해서, 페란드와 제란드, 멜란드까지 작게 한꺼번에 이 말을 받는 중얼거림을 토한다.
“사고?”
지평선까지 불태울 위세로 번져가는 불의 그물을 보면서, 과연 장난이 지나쳐서 사고 났다고 할 수 있을까? 이게 대체 무슨 강대한 담력이란 말인가!
투란은 재빠르게 한마디 더한다.
“날이 밝으면 어떻게 되잖겠어요?”
남매는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미 사방은 낮보다 더 밝고 뜨거웠다.
밤하늘만이 어두운 기색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