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6)
Chapter 6. 혼돈의 바람 속에서
두근!
강하게 맥동하는 심장에서 흘러나온 격류가 온몸을 맴돌았다.
투란은 손가락에 힘을 주고 당겼다.
‘으엇!’
한 손을 당긴 것뿐인데 몸이 쑥 딸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평소 어딘가에 매달렸을 때 느껴지는 손의 힘이 아니었다.
뭔가 어리둥절한 순간, 투란은 팔의 힘줄과 혈관 틈으로 두껍게 깔린 실그물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악마의 심장이 넝쿨을 더욱 촘촘하게 생성시켜 그의 힘을 강화해 준 것이다.
저 불구덩이를 피하기 위해 날뛰는 것일까?
어찌 됐건 사양할 일이 아니었다.
투란은 바로 더 빠르게 손발을 움직여, 걸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길을 기어 나갔다. 기울어져 이제는 암벽에 수직으로 뚫린 구멍처럼 돼 버린 길을.
그리고 그 구멍의 끝에 도달했을 때, 끊어진 저편을 봤다.
조각난 암벽의 거대한 파편이 이쪽보다 느릿하게 기울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호수를 감싼 분지 전체가 으스러지며 날려 가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하지만 겨우 구멍 안에서 빼꼼히 보는 것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였고, 아래쪽에서 이글거리며 밀려오는 열기를 외면한 채로 계속 구경만 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구멍을 나가야 했다.
차가운 바람이 구멍 주변을 휩쓸었다.
조각난 암벽의 파편이 풍경을 가득 채운 듯했다.
구멍 안에서 밀려오는 열기에 몸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었고, 위험하다는 느낌이 심장에서부터 차올랐다.
투란은 구멍에서 완전히 몸을 빼며, 이제는 기울어 울퉁불퉁한 돌바닥처럼 된 거대한 바위 파편 위를 굴렀다.
콰득, 콰드득.
조각난 바위가 다시 한 번 조각나며 투란은 허공으로 몸이 둥실거리며 튀는 것을 느꼈다. 되는대로 손을 뻗어 볼록한 돌을 힘껏 움켜쥐면서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아주 잠깐 구르는 사이에 그를 싣고 있는 절벽의 파편은 또 깨지는 중이었고, 아래쪽에서는 후끈한 열풍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불이…… 들판?’
깨진 틈새에 대롱거리며 매달린 꼴로 보이는 저 아래편의 풍경이 투란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보이는 곳, 무너진 절벽이 떨어져 내리는 곳이 모두 불길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불길의 열기는 바위를 녹이고 증발시키며 그 안에 섞인 모든 것을 다 태울 듯이 맹렬했다.
투란의 심장이 옥죄면서 정말 위험하다고 다그칠 정도로!
도대체 갑작스러운 이 광경은 무엇 때문인가?
머리 위로 뭔가 휙 스쳐 가는 느낌에 투란은 위를 봤고 적당한 대답을, 이 상황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을 볼 수 있었다.
호수를 감싼 분지, 그 하얀 벽이 마구 갈라져 터져 나오고 있었다.
짙은 수증기를 구름처럼 공중에 퍼뜨리며, 거대한 암벽의 조각들이 사방으로 날렸다.
그렇게 된 이유는 하늘 높은 곳에서 맴돌던 태양 하나 때문이었다. 여러 개의 태양들 중 하나가 둥근 형상을 한껏 낮추어, 이제는 맨 위의 태양과 겹쳐 보이는 일도 없이 낮아진 채로 아래를 향해 붉게 달아오른 기둥을 떨구고 있었던 것이다.
호수의 중심을 관통하듯이 내려온 그 기둥을 중심으로 호수에 맺힌 서리 안개가 반항하듯이 수증기를 뿌리고 분지의 뿌리, 분지의 광활한 테두리를 감싼 땅이 들썩이며 갈라진 틈새로 불길을 뿜어냈다.
절벽이 갈라지고 분지를 이루는 암벽이 파괴되어 날아가는 것은 단지 그 결과일 뿐이라는 듯.
‘어쩌라고!’
투란은 티끌처럼 작은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고, 대체 운이 좋다 해야 할지 나쁘다 해야 할지 정말 알 수 없는 상황임도 알아야 했다.
만약 그가 저 호숫가에 버티고 있었다면 지금 대체 어찌 되었을까?
서리 안개의 격한 흐름에 휩쓸려 얼어붙고, 그대로 산산조각으로 흩어져 버렸을까?
저 황금색의 한쪽을 붉게 물들이며 빛나는 불기둥을 떨구는 태양의 열기에 휩쓸려 재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을까?
하지만 그런 걸 궁금해하며 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발바닥을 달구는 열기가, 투란이 서 있는 암벽의 큰 조각이 불길에 휩싸인 평원에 닿아 사라질 지경이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는 거센 바람과 함께 수증기가 구름처럼 번지고 조각난 거대한 암벽의 파편이, 손을 내밀면 닿을 만큼 가까이 스쳐 가는 중이었다.
‘어?’
투란은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처음 무슨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손이 닿지 않은 채로 머리 위를 스쳐 가는 큰 암벽을 짧은 순간 동안 보면서 투란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발바닥을 데워오는 열기, 머리 위로 날아가는 무엇!
그대로 머물면 저 열에 마르고 타 버릴 것이며, 날아가는 것에 매달리면 일단은 위기 하나를 넘긴다!
그런데 손이 닿지 않는다!
돌연 모든 풍경이 느려진 듯한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거듭 생각해야 했다.
‘망할, 뻗어! 닿으라고!’
느린 손을 허우적거리듯 꿈틀대며 투란은 자신을 향해 간절하게 외쳤고, 그 염원이 통했다. 느려진 것들이 다시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여린 파문이 섬광처럼 투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며 몸으로 번졌고, 투란이 반사적으로 내밀고 허우적대던 왼손이 살갗을 가르며 혈관과 힘줄로부터 넝쿨을 터뜨렸다. 왼팔이 길게 늘어난 것처럼, 뼈와 살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손톱이 억세게 돋은 손이 굵은 넝쿨 끝에 매달린 것처럼 스쳐 가는 것을 잡았다!
투란은 이 광경을 마음속에 새길 수밖에 없었다.
손목, 팔뚝, 어깨로 이어지는 굵고 억센 넝쿨, 그 끝에 달린 손, 발바닥이 허공에 대롱거리고, 팔은 굵은 덩굴줄기처럼 변해 바위에 손톱을 막은 꼴이었다. 집채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바위는 빠르게 날고 있었다.
손에 힘을 주고, 넝쿨이 된 팔을 당기며 투란은 아직 멀쩡한 다른 팔도 바위로 붙였다. 두 손이 바위를 붙들고 나자 팔랑대는 몸을 바로 당겨 붙일 수 있게 되었다. 두 발도 붙이고 나서는 기어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바로 위를 향해 기어올랐다.
불길 가득한 아래쪽이 위로 차오르든 날고 있는 바위가 추락하든, 그를 덮치려 하는 뜨거운 위기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파라락!
바위 상부까지 기어오르자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듯이 억센 바람이 수증기를 가득 품고 휘몰아치는 것이 느껴졌다. 바위를 움켜쥔 두 손, 넝쿨의 형상에서 다시 제대로 살과 피, 뼈로 이뤄진 손이 된 왼손과 두툼하니 힘줄을 부풀린 오른손의 힘이 부족하면 바람에 휩쓸려 날아갈 듯했다.
‘응?’
투란은 잠깐 머리를 들었고, 방금 느낀 것이 진짜임을 깨달았다.
이 바람, 호수의 서리 안개가 녹아 버린 듯한 수증기가 가득 실린 이 강풍은 확실히 그 정도는 나뭇잎처럼 실어 날릴 수 있다!
‘바위보다 낫잖아?’
매달릴 필요가 없잖은가!
투란의 생각보다 팔다리가 더 빨랐다.
바로 두 손의 힘을 풀어 버린 투란은 바위를 걷어차며 바람에 몸을 맡겼다.
등덜미를 잡아채듯이 그를 쥔 바람이 위로 솟구쳤고, 그의 눈에는 아래로 계속 추락하는 바위가 불더미 속에 휩쓸리며 거뭇하다가 붉게 변해 스러지는 꼴이 보였다.
바람에 몸을 맡기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 것인가?
떠오르려는 또 다른 결과를 뇌리에서 지우며 투란은 바람결을 느끼고 주변을 보려 애썼다. 바람이 약해진다면 추락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또 뭐 없나?’
그냥 수증기만 가득했다.
안개나 구름 속에서 헤매는 기분이 이럴까 싶었다.
그러나 이렇게 대책 없이 바람결에 허우적대기만 할 수는 없었다.
투란은 좀 더 감각을 날카롭게 하면서,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느끼기 위해 애썼다. 바로 섬세한 지각 능력이 확장되고 눈이나 귀로 파악하지 못한 색다른 것이 느껴졌다.
수증기의 농도, 바람의 강도…… 위편에 더 큰 줄기가 있었다.
투란이란 티끌을 싣고 가는 바람보다 더 촉촉하고 강해서, 결코 아래로 떨어질 일이 없을 듯한 큰 힘의 줄기였다.
투란의 손이 바로 오므려졌고, 위로 뻗으며 갈고리를 걸듯이 압력을 잡으며 당겼다. 바로 몸이 쑥 올라가지는 않았다. 몇 번 더 팔다리를 움직이며 어떻게든 저 압력에 몸을 싣고자 애를 써야 했다.
‘좀 더 손을 펼치고…… 그물로 바람을 잡듯이…….’
허우적대는 사이에 투란은 원하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마음속에 그려 낼 수 있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광경이 기억나기도 했다.
세찬 바람이 불던 날, 넓은 망토가 펄럭대는 것을 한 손으로 잡아당기려다가 바람을 가득 담고 부풀어 오른 망토 자락에 질질 끌려가던 사람. 그 모습을 보면서 세상의 여러 곳을 다녀 봤다는 연금술사가 말하지 않았던가?
“돛을 펼친 배 같구만! 푸하핫.”
투란은 그게 뭔지 몰랐다.
아직도 본 적이 없다, 돛을 펼친 배란 것은.
다만 궁금해하는 아이들, 호기심 가득한 눈길에 연금술사가 보여 줬다.
조그만 나무토막에 바퀴를 붙이고 작은 천으로 묶은 꼬마 기둥을 세워, 나무토막이 부푼 천에 바람을 받으며 굴러가는 꼴을 보여 주며 물 위에서 그런 식으로 가는 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 그렇게 손을 최대한 펼쳐서 붙잡아야 해!’
손을 오므린 꼴로 저 거센 바람을 잡아 봐야 몸까지 옮겨질 리는 없어 보였다. 바람결을 호미로 파듯이 오므린 손이 계속 파내고 스쳐 갈 뿐일 터였다.
하지만 투란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손을 내뻗으며 ‘상상’했다.
‘보다 넓게, 바람이 새지 않게!’
자신을 밀어 줄 정도의 바람을 움켜쥘 돛이 되는 손을!
‘상상’이 그의 심장을 자극했다.
두근!
몸을 떨게 하는 악마의 심장 고동과 함께 격류가 혈관을 타고 뻗었고, 손아귀 속에 가득한 넝쿨의 자잘한 감각이 자극을 전했다. 마치 이래도 되느냐고, 마지막으로 확인하려는 듯한 감각이었다.
‘해!’
그것이 무엇이든, 투란에게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몸 아래를 받쳐 주는 바람이 서서히 약해지고 있으니 이대로 계속 허우적거리다 보면 결국 저 가득한 불길의 들판에 떨어지고 말 터!
뜨드드득.
살이 갈라지고 뼈가 뒤틀리는 기분 나쁜 음향이 팔뚝을 통해 들려오는 듯했다. 그러나 거기에 신경을 쓰기도 전에 손이 활짝 펼쳐지고, 넓적해지고 얇아지면서 바람의 줄기를 붙잡았다.
투란은 선명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몸이 확 당겨지더니, 바로 다음 순간 더 거칠고 사나운 바람결과 짙은 수증기 속으로 올라왔다!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은 머리통 두셋 정도는 그냥 감쌀 수 있는 보자기처럼 넓고 얄팍하지만 질기게 변한, 덩굴줄기로 짜인 손이었다.
잠시 그 손의 감각에 집중하던 투란은 뱃살이 오그라든 것도 함께 느낄 수가 있었다. 마치 뱃가죽 안의 살덩이를 빼다가 두 손으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그랬나?’
투란은 쉬지 않고 바람을 잡듯이 손을 움직였다.
좀 더 위로, 좀 더 굵고 강한 바람을 찾아서.
그러다가 축축하게 손이 젖었다 느낀 순간, 물살에 휩쓸려 버렸다.
푸아핫!
갑작스럽게 눈과 코, 입을 덮친 물결은 확실하게 투란을 놀라게 했다.
눈꺼풀을 대신하듯 투명한 줄기가 뿜어지며 눈동자를 덮었고, 보이는 광경은 아주 분명했다. 그는 진짜 물결에 휩쓸려 있었다.
‘아니, 여기는……?’
분명히 바람을 타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티끌 신세가 아니던가?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으며 투란은 위아래, 오른편, 왼편을 빼놓지 않고 둘러봤다.
‘날고 있잖아!’
여전히 자신이 허공에 있는 것을, 억세게 휘말려 날려 가는 중인 것을 확인했다.
다만 조금 전까지 축축하고 더운 수증기를 밀고 가는 바람결에 몸을 맡겼던 것과 다르게, 허공을 가로지르는 물의 격류에 실려 가고 있다는 것뿐!
‘위아래는 여전히 위아래로군!’
투란은 위를 향해 허우적거리며 손발을 움직였다.
아직도 저 아래에는 불길과 열기가 넘쳐 나는 풍경이 물거품 너머로 보였다.
느닷없이 그 물살이 바닥을 향해 내리꽂히기라도 한다면…….
아니, 계속 위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하얀 포말이 허연 수증기를 대신해서 시야를 가로막는 물결을 가르며 위를 향해 가다 보니 결국 흐르는 물 위로 머리를 내미는 꼴이 되었다. 허공을 흐르는 물살을 관통하며 머리를 내민 투란의 감상은 간단했다.
‘앗, 뜨거!’
물살보다 더 높은 곳에, 하늘을 가로지르는 불줄기가 있었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화창한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물의 격류와 엇갈려서 불의 격류가 껑충거리는 호(弧)를 그려 내는 것이 보였고, 느껴졌다! 그 불똥 하나가 그의 머리카락을 스쳐 갔다.
투란은 돌연 정지된 듯한 아주 느린 풍경 속에서 박살 나 산산이 흩어지는 분지의 형상을 선명하게 느끼고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알았다. 지금 자신이 놓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망할! 이게 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