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6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61)
Chapter 53. 몬스터 로드의 여로 Ⅲ
해는 세상의 유일한 척도처럼 하늘 높이 치솟아서 한낮의 분위기가 무엇인가 보여주겠다는 듯이 환한 햇살을 뿜어냈다. 그 햇살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받아들이면서, 시알라와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가 나란히 앉은 채로 제각각 멍한 표정과 반쯤 감긴 눈으로 샘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해가 뜨면 무엇인가 바뀌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예상은, 결국 적중했다.
다만 그 예상이 실현되기 전까지 밤새 네 남매가 바라본 풍경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대격동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해가 머리 꼭대기에서 그림자를 아주 짧게 드리울 무렵이 가까질 때까지, 네 남매가 반쯤 정신 나간 몰골로 앉아서 투란이 하는 짓을 마냥 지켜보게 할 정도로!
지켜보면서 네 남매는 궁금했다.
대체 투란은 밤새 자신들과 같이 있으면서 함께 봤는데, 어째 아무렇지도 않을까?
어째서 투란은 아침 햇살 아래 사라진 간밤의 괴팍하고 이상한 줄기를 탐색하겠다고 샘을 들락대고 있을까!
촤악, 샘물이 솟구치며 투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네 남매에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고 두꺼운 가죽의 반바지, 훌렁 벗어젖힌 윗몸의 가슴에는 황금빛 무늬가 햇살과 물결 틈새를 과시하듯이 반짝거리는 몰골을 한 채였다.
졸음이 밀려오지만 정신적으로 눌러쓴 압박과 부담으로 잠들지 못한 네 남매는 그저 투란을 멍하니 바라봤고, 투란은 저런 모습으로 ‘왜 아무것도 없어!’라는 소리를 몇 번씩 되풀이하면서 샘을 뒤적이고, 그 깊은 곳까지 닿아보겠다고 들어갔다 나왔다를 아침부터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서 불쑥 페란드가 입을 열었을 때, 시알라나 제란드, 멜란드는 잠깐 그 입에서 나온 소리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몬스터의 흔적도, 마법도 안 쓴 채로 맨몸으로 저러네?”
햇볕은 따스했고, 바람은 잔잔했다.
샘의 물은 시원하면서도 지나치게 차갑지 않았다.
투란이 네 남매의 맹한 몰골을 보고 장난치듯이 처음에 몇 번 튕겨 올린 물살에 맞아봤기 때문에 명확한 사실이었다. 물에 젖어도 햇볕의 따스함과 바람의 잔잔함에 온화한 느낌이 몸에 부드럽게 감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좋은 분위기에서 뭔 몬스터의 형상이고, 마법인가…….
“어?”
멜란드가 움찔한 것이 가장 빠른 반응이었다.
페란드는 그런 멜란드의 반응에 다시 굼뜬 목소리를 흘렸다.
“간밤에 보니, 이 근처도 별로 안전한 것 같지는 않던데.”
간밤이란 말은 시알라와 제란드를 부르르 떨게 했다.
샘에서 흘러나온 불타는 줄기가 미친 듯이 굵어지며 지진(地震)이 뭔가 가르쳐주겠다는 듯한 땅울림을 토하면서 단숨에 눈에 보이는 풍경을 모조리 뒤덮을 것처럼 번져 나갔다. 그 시점에서 투란은 ‘사고’ 쳤다고 배시시 웃어 보였다.
반쯤 붉은 그랑츄의 머리통을 한 채로 그런 웃음을 보인 탓에, 인간적으로 느끼기에는 험악한 협박이나 공갈처럼 들리는 바가 있었지만…… 하도 눈에 보이는 광경이 어이가 없어서 그런 느낌 따위는 금세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겨우 간밤의 소동이 시작된 순간일 뿐이었다.
한계를 모르는 듯이 굵어져가는 줄기는 한계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듯한 불길에 휩싸인 채로 땅을 내리찍으며, 얼핏 봐도 수 킬로미터…… 자세히 보려 하면 수십 킬로미터의 들판을 덮었고 그 여파(餘波)는 춤추는 산맥의 고요한 들판에 숨어 있던 놈들을 자극했다.
먼 거리라서 작게 보이지만, 그럼에도 그 움직임이 훤히 보이는 녀석들은 밀려나가는 줄기를 거슬러 오지 못한 채로 그냥 떠내려갔다. 덕분에 그 녀석들이 구체적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 수 있는 흉악한 괴물인가는 알 수가 없었다.
네 남매는 이 부분을 매우 다행으로 여겼다.
굳이 숨어 있다가 튀어나온 그런 ‘작게’ 보이는 괴물이 아니더라도 보고 느끼고 알 수밖에 없는 ‘큰’ 놈들이 여기저기 그 힘을 과시했으니까! 굳이 ‘작게’ 보이는 놈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다.
다른 놈보다 앞서서 수십 킬로미터 저편에서도 원통 모양이 또렷하게 치솟았던 검은 웜은 불타는 줄기 따위가 굵어지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기울어지며 내리찍고 흡입했다. 밤인 탓에 멀리 보이는 그림자처럼 보였지만, 불길에 의해 밝혀진 새까만 색은 붉어진 얼룩을 자랑하면서 불길과 줄기 따위는 그저 먹잇감이라는 사실을 밝혔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불길을 휘감으며 맴도는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뭔가가 불길을 휘감으며 빠르게 땅 위를 맴도는 듯한 풍경이었는데, 결국 그 소용돌이는 회오리가 되어 치솟았고, 불기둥이 되고 말았다. 굵은 줄기는 그 불기둥에 말려 들어갔고, 산산이 흩어졌다. 하지만 불타는 줄기는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번성했고, 불기둥은 밤새 그 줄기를 삼키는 채로 우뚝 서 있었다!
하나뿐인 불기둥이었어도 충분히 압도적인 광경이었겠지만, 네 남매를 놀래 죽일 작정인지 땅을 맴도는 소용돌이는 첫 불기둥 이후에도 몇 개가 더 나타났고, 결국 한쪽 방향에 나란히 선 불기둥의 숲이 자리 잡고 말았다.
검은 웜과 불기둥 숲, 두 방향과 다른 한편에서는 자잘한 것들이 잔뜩 치솟았고 몰려 달아나는 광경이 펼쳐졌다. 처음에는 뭔가 작은 노리개나 장난감 인형 같은 것들이 그렇게 달아나는 광경이 불쌍해 보였지만, 네 남매는 그 녀석들이 수 킬로미터 거리를 넘어서 그리 보인다는 점을 떠올리자마자 깨달았다. 저게 사람 앞에 서 있으면 사람이 그 발가락 사이에 끼인 꼴이 될 정도로 큰 놈들이란 것을!
도대체 저런 것들이 어떻게 평온해 보이는 들판 아래에 숨어 있었는가를 알 수가 없었지만, 그런 놈들도 땅울림과 함께 불타며 커지는 굵은 줄기의 등쌀에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는 상황이 먼저 네 남매의 심장을 오그라뜨렸다.
대체 네 남매는 그 중심부에서 뭘 하고 있는 것일까?
그때 투란이 한 번 더 중얼거렸다.
“아, 불을 엄청나게 무서워하나 보네? 불붙은 자리에서 무조건 멀어지려고 하는구나.”
네 남매에게는 뒷골에 못을 치는 듯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저 불타는 줄기가 작고 연약한 세이프티 하우스를, 네 남매와 투란을 먼저 짓이기지 않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
안도감보다는 어이없고 기막힌 심정이 먼저 찾아왔다.
만약 일행이 이 들판의 어느 구석에서 밤을 새려 하는데, 누군가 이 샘 주변에서 줄기를 놓고 불장난을 했다면…… 지금 무슨 꼴이 되었을까!
역시 마법사가 건드리지 말고 지나간 것은 그냥 지나쳤어야 했던가!
하지만 이런 복잡한 생각은 돌연 튀어나온 멜란드의 말에 절단당하고 말았다.
“저기, 갈라진 땅이지? 우리 가는 방향이 저기 맞지?”
그때 멜란드는 손가락질도 하고 있었다.
몰려가는 줄기의 불길 속에서 훤히 빛나는 땅과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벼락의 소나기가 거기 있었다. 줄기가 내리찍는 땅울림과는 다른, 벼락 치는 소리는 그러고 나서 몇 초 뒤에 한꺼번에 몰려왔다.
불길과 벼락 너머로, 메마른 땅이 갈라지는 모양이 얼핏 보였었다.
이 샘을 거쳐, 가야 할 다음 길목이었는데…….
“푸핫! 시원하네!”
투란이 샘물에 하반신을 담근 채로 손으로 떠올린 물방울을 몇 모금 삼키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이 소리는 네 남매를 다시 햇살 가득한 낮으로 되돌려 놨다. 간밤에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봤던 악몽(惡夢)에서 겨우 생각을 돌리도록!
“투, 투란!”
시알라가 필사적으로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페란드가 뭐라 했던가…… 사람의 맨몸, 마법의 힘도 몬스터의 힘도 꺼내지 않은 모습! 심지어 투란 스스로도 강조하던 기본적인 방어 무장도 없는 몰골!
제란드의 입이 세란드의 소리를 받아 외친다.
“사람 살냄새를 맡고 오는 놈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멜란드가 ‘앗?’ 하는 소리를 내면서 바로 이 말을 받는다.
“위험하잖아요, 투란!”
순간 멍하니 중얼거리던 페란드의 표정도 확 변했다.
“물속은……!”
투란이 네 남매가 갑자기 깬 듯한 모습을 보면서 머리를 긁적이며, 손의 물방울을 머리카락에 떨구며 쓸어올리는 손짓으로 대답한다.
“없어요. 아무것도. 이러고 있으면 혹시나 뭐라도 나올까 했는데…….”
시알라가 이에 바로 반쯤 이성이 날아간 듯한, 반쯤은 억울함에 격노한 듯한 소리를 버럭 지른다.
“투란! 지금 자기 몸을 미끼로 내걸었어! 미쳤어!”
험악한 말투에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는 분명히 느꼈다.
누나가 정신 줄 놓았다는 것을…….
꽤 오래된 일이었지만, 세란드에게도 시알라는 저렇게 정신 줄 놓고 야단친 적이 있었다. 동생들이야 적당히 야단칠 수 있으니까 가능한 한 정신 줄 잘 붙잡고 있지만, 가장이자 맏이였던 세란드처럼 쉽게 야단치기 곤란한 상대라면 시알라는 꾸짖을 때에 정신 줄 놔버린다!
“에? 에헤헷.”
투란이 시알라의 모습에 슬그머니 뒷걸음질하면서, 다시 샘물 속에 몸을 담그는 몸짓으로 얼버무리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확실하게 시알라를 완전하게 격분시켰으니…….
“당장 나왓!”
곁에 앉은 세 형제가 슬슬 누나로부터 멀어지려고 엉덩이를 꿈틀거리기 시작할 지경이었다.
* * *
“갈라진 땅이야. 저기 회색 암벽도 보여.”
멜란드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언덕에 올라, 엎드린 채로 고개만 치켜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었고…… 이는 일행 모두 마찬가지였다.
“벼락 치는 놈 같은 거는 없어 보이는데…….”
웅얼거린 소리는 투란의 입에서 나왔다.
팔뚝에 턱을 올리고, 아예 언덕마루에 편안하게 기댄 모습인 투란은 긴장하는 네 남매랑은 약간 분위기가 달랐다. 바로 시알라가 으르렁거리는 말투로 확실하게 잔소리를 토해낸다.
“투란! 아무거나 건드리지 마욧! 제란드, 앞장서고! 멜란드, 주변을 살펴! 페란드, 뒤쪽 보고!”
투란은 턱을 언덕 맨땅에 올려놓으면서, 언덕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향해 눈알만 굴려야 했다. 그리고 미묘한 한숨을 쉬면서 세 형제는 누나의 말에 따라서 각자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알라는 투란을 지켜보는 자리에서 세 형제의 움직임에 주의하는 모습이었다. 뭔가 투란이 엉뚱한 짓을 하면 바로 말릴 기색이 역력한 태도였다.
덕분에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놀림으로 뇌리를 흠뻑 물들이는 중이었다.
―엄청난 신뢰로군! 이건 네가 확실하게 사고 친다고 믿는 태도잖아! 인간은 이렇게 신뢰받는 입장이 되는 것을 아주 즐긴다던데…… 즐겁나, 투란?
‘시꺼.’
입술을 꼬물거리면서, 투란은 소리 없이 도움이 안 되는 드라고니아의 소리를 한구석으로 치우면서 이 주변에 대해 기억해보려 하고 있었다. 투란에게는 처음 와보는 곳이었지만…… 지워진 골든 드레이크의 기억 속에는 이 부분의 지형이 낯익었다.
높이 내려다봐도 길고 넓게 펼쳐진 갈라진 땅, 그 땅과 저편 너머를 가로막는 것처럼 치솟은 회색의 암벽…… 자잘하게 암벽에 들러붙은 듯한 작은 조각 같은 숲…….
골든 드레이크는 그 너머의 풍경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검게 물든 듯한 땅이 상당히 이어지고, 작게 꼬물거리는 것들이 옹기종기 뭉쳐 있는 곳이 여럿인 새로운 지형…….
‘그게 사람 사는 마을이었나?’
투란은 드레이크의 기억을 조금 더 더듬었지만, 분명하지 않았다.
드레이크에게는 사람 정도 크기의 짐승이나 몬스터 따위는 사람과 딱히 구별할 필요가 없는 대상이었으니까…… 그저 오래된 어렴풋한 기억으로 대충 섞어서 작게 꼬물거리는 것들로 뭉뚱그려 떠올릴 정도에 불과했다. 중요하지 않으니, 금세 잊어버린 경우라고 할 수 있었다.
‘벼락 소나기도 본 적 없는 것 같고…… 어?’
눈알만 굴리던 투란은 턱을 땅에서 떼고 고개를 조금 쳐들었다.
바로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던 시알라의 목소리가 울려나온다.
“왜?”
뭔 사고를 치려 하느냐고 그냥 얌전히 있어 달라는 듯한 의미가 짧은 한마디에 담뿍 담겨서 전해왔다!
하지만 투란은 한편으로 팔을 뻗으며 말해줘야 했다.
“저거, 그 피해가야 한다는 검은 소잖아? 아냐?”
시알라는 바로 그쪽을 봤고, 재빨리 휘파람을 불었다.
뒤쪽에서 페란드가 얼른 다가왔고, 앞쪽으로 주변으로 거리를 둔 채 움직이던 제란드와 멜란드도 돌아왔다. 되돌아오던 멜란드는 자신이 보던 반대방향을 보고 바로 반응했다.
“아, 저쪽에 있었네! 어라? 저거 우리한테 다가오는 거 아냐?”
제란드도 그쪽을 보며 말한다.
“입에 이미 불을 머금고 있는 것 같은데?”
플레임 불, 검은 소의 모습을 한 몬스터가 훅훅거리는 숨결 사이로 불꽃을 몇 송이씩 토해내면서 언덕을 향해 뒤뚱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네놈들이 범인이냐!’라고 추궁하는 낌새가 느껴지는 것이 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