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6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62)
“헤에…… 저 녀석 건드리지 않으면 그냥 풀만 뜯어먹는 놈이라며요오오?”
투란이 말꼬리를 길게 늘이면서, 얌전한 척하는 말투로 시알라에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시알라에게는 이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듯했다. 당황한 표정을 한 채로 시알라는 검은 소를 노려보며 중얼거림을 토해 내고 있었다.
“왜? 어째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왜 저게 우리한테 와?”
페란드가 시알라의 어깨를 짚으면서, 곁에 붙어 말한다.
“누나, 우리를 노리는 게 아니라…… 그냥 주변에 움직이는 것을 찾는 모양이라고. 뜯어먹을 풀이라고 해봐야…… 지금은 거의…… 음, 있기는 있지만.”
짙은 불꽃에 검게 그을린 땅의 풍경 사이로, 어느 틈엔가 옹기종기 몽실거리는 꼴을 한 풀잎 더미가 몇 군데씩 보이고 있었다. 일행이 여기까지 오는 사이, 불과 하루가 지난 정도였음에도 산맥의 초원(草原)은 강인하게 재앙에서 회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이틀이나 사흘 정도면 어느 날 밤에 벌어졌던 불타는 줄기의 일 따위는 홀랑 잊히고 지워질 것처럼!
그러니까 저 검은 소, 몬스터인 플레임 불은 일행에게 다가올 이유가 전혀 없다고 여겨지는데, 녀석은 그딴 것 모르겠다는 듯이 뒤뚱거리며 다가오는 중이었다.
다시 투란의 입이 열린다.
“저거 소 맞아요? 너무 띠룩띠룩 생겨먹었는데?”
시알라를 놀려보려는 것은 포기한 듯, 본격적으로 저 괴상한 검은 소에게 관심을 두는 말투였다. 앞으로 나가다가 돌아온 제란드가 바로 이 말을 받는다.
“불 뿜는 소, 플레임 불 맞아요. 단지…… 저것도 쳐처먹으면 살찐다는 거겠지, 뭐.”
중얼거림으로 제란드는 말을 맺고 말았다.
멜란드가 눈을 가늘게 하면서 여기에 보탠다.
“그러고 보니, 경쟁할 만한 놈이 근처에 없어서 혼자 신나게 뒹굴면서 살이 오른 거라고 했었는데…… 어, 겔퍼가 그랬어. 소처럼 생긴 돼지 아니냐고 슬쩍 내가 물어봤었을 때 말이야.”
“흠, 그러니까 그때는 그냥 지나쳐도 풀만 뜯어먹고 구경만 하던 녀석이었다, 그런 거네요?”
투란이 점차 거센 불꽃을 흘리면서 다가오는 검은 소를 보며 묻고 있었다.
시알라가 한껏 낯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고, 동생들도 그런 누나처럼 고갯짓을 하고 있었다. 눈길은 다가오는 검은 소에 고정시킨 채였다.
그 사이에 투란은 오른손을 볼에 대고 긁적이는 시늉을 하면서, 손목 안의 맥동과 딱 맞춰 찰랑이는 윌 라이트의 드라고니아에게 확인하고 있었다.
‘저거, 좀 이상한 놈인가? 저런 품종에 대해서 몰라?’
―품종이고 뭐고, 소의 수컷 모습을 한 채로 불을 뿜는 놈이잖아. 불꽃의 형상이 또렷하니까 플레임 불이고, 그저 길게 불을 토하면 파이어 옥스(Fire Ox)라고도 하지. 그냥 섞어서 파이어 불Fire Bull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든, 일단 뭔가에 자극받으면 제 혼자 지칠 때까지 사방에 성질부리고는 해. 그래도 털가죽이랑 눈가에 핏대가 서서 붉어진 것을 보니, 그다지 문제될 듯하지는 않은데? 몸이 금속으로 만들어진 놈이 진짜 위험한 놈인데 말이야.
‘금속?’
난데없는 부분에서 투란은 의아함을 느꼈다.
소가 쇠로 만들어졌다는 소리인가?
드라고니아는 그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아, 물론 저것도 이 남매들에게는 꽤나 위험할 수 있겠지. 어쨌든 저 불꽃이 선명해지면 바위도 뚫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머리통부터 날아가면 아무리 투란 너라도 그리 좋은 꼴은 못 볼걸?
현재 상태에 대한 경고가 선명할 뿐이다!
투란도 지금 더 자세히 금속으로 된 소에 대해서 물어볼 때가 아닌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멋대로 지칠 때까지 사방에 화풀이한다는 몬스터가 띠룩띠룩 치솟은 살덩이가 무럭무럭 자란 털에 가려졌음에도 잘 느껴지는 채로 씩씩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는데, 어느새 거의 이십여 미터 거리까지 간격이 좁혀져 있었다.
네 남매는 슬슬 물러서며 반대편으로 움직일까 말까 하며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저 녀석을 저 녀석을 자극하는 몸짓을 피하려 하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꼴로 두어 걸음도 못 옮긴 꼴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엎드린 채로 앞으로 배를 깔고 기어 나갔다.
“소일 헛.”
간략한 중얼거림과 함께, 둥글게 치솟은 흙벽이 일행을 감쌌다.
“어? 투란?”
페란드가 흠칫하며 중얼거렸고, 시알라와 제란드, 멜란드는 자신들을 감싼 흐릿한 색채의 흙벽이 느닷없어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사이에 투란은 분명한 드라고니아의 소리를 들었다.
―뚫린다. 이 정도는 바위를 관통하는 불꽃은 못 버텨.
‘아, 그렇겠지.’
투란이 간단하게 대답하는 사이, 검은 소도 입을 크게 열면서 네 남매가 반응한 것처럼 놀란 표정이라도 짓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붉게 물든 눈자위, 윤곽이 없이 벌겋게 채색되고 번진 듯한 눈동자 자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열린 검은 소의 입에서 짙고 붉은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투란은 바로 일어섰고, 앞으로 나아가며 날아드는 불덩어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새끼손가락이 없는, 엄지만 둘인 듯한 큰 손이 붉은 살갗을 드러내며 불덩이를 받아내려 했다.
―무리야! 붉은 그랑츄의 손으로 받아낼 수 있는 불꽃이 아니다!
날카로운 경고가 뇌리를 울리는 순간, 투란은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경고와 함께 손바닥이 자글거리며 끓어오르니까 마치 드라고니아가 저질러 놓은 짓 같잖은가!
‘쳇.’
가볍게, 소리 없이 드라고니아를 향해 혀 차는 한마디를 뱉으면서 투란은 좀 더 앞으로 나아갔고, 불꽃에 닿은 손에 집중했다. 붉은 그랑츄의 손이 더욱 커졌고, 손바닥을 짓이기던 불꽃은 미세한 간격을 둔 채로 살갗에서 밀려났다.
―파이로–칸?
드라고니아가 조금 쓴웃음을 짓는 듯이 웅얼거렸다.
이에 투란은 문득 엉뚱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거, 아겔페스는 파이어 몽거라고 하지 않았나?’
한창 싸우던 와중이라 흘려들었던 한마디가 어째서인가 지금 투란의 뇌리에 불쑥 떠올라 버린 셈이었다.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한다.
―오러 몽거의 변종이니까. 오러보다 불꽃이 짙은 형상 때문에 그냥 파이어 몽거라고 불러대는 마법사도 없지는 않지. 그런데 지금 그런 거 생각할 때가 아니잖아! 저놈, 불을 제어하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응?’
투란은 손아귀에 움켜쥔 불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려는 듯한 느낌을 확실히 깨달았다. 파이로-칸의 힘에 눌려, 이제는 투란의 의지에 복종해야 하는 불꽃이 반항하고 있었다.
검은 소를 바라보니, 머리에 살짝 얹힌 듯한 모양으로 짙고 굵은 털 사이로 감겨 들어간 듯했던 뿔 두 가닥이 펼쳐지며 앞쪽으로 돌출되는 중이었다. 그 뿔이 점차 앞으로 나와 뒤로 굽어지는 형상을 또렷하게 드러내며 높이 치솟는 변화를 보임에 따라 불덩이가 꿈틀거리며 파이로-칸의 손을 짓이기려는 압박을 시작하는 셈이었다.
‘그냥 불을 뿜는 소라며!’
투란은 붉은 그랑츄의 형상을 기반으로 한 손만 얹은 파이로-칸의 힘으로 억누를 수 없는 불꽃의 움직임에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불길에 대한 파이로-칸의 이글거리는 분노가 슬슬 배 속에서 뿜어 올라오는 듯한 탓도 컸다.
―춤추는 산맥의 몬스터가 규격대로, 소문대로 움직이길 기대했냐?
심술궂은 드라고니아의 대꾸였다.
‘아, 너 진짜!’
심통을 터뜨리지만 소리를 못 내면서 투란은 앞쪽의 검은 소, 등 뒤의 남매를 동시에 염두에 둔 채로 상황을 가늠해보려 했다. 하지만 투란이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검은 소, 플레임 불이 발을 구르면서 먼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으음매에엣!
격한 소울음 소리는 검은 소의 모습이 그냥 껍데기만이 아니고, 목과 몸속의 구조에도 착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을 드러냈지만, 뒤이어 뿜어져 나오는 불꽃 몇 송이가 무슨 쐐기처럼 날아들며 펼쳐지는 광경은 생긴 것과 능력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과시하는 듯도 했다.
그 사이에 검은 소의 뿔 두 가닥은 앞으로 흘러나와 뒤쪽으로 높이 향한 모양을 굳혀버린 듯이 보였다. 이런 변화에 대해 투란이 뭔가 생각하기 전에 드라고니아가 윌 라이트의 빠른 맥동과 함께 재빠르게 파악한 상황을 전해온다.
―파이로키네틱(Pyrokinetic)! 저거 플레임 불의 변종이다! 완전한 파이로-칸이 아니면…… 젠장, 그 전에 네 팔이 불꽃에 먹히겠다! 피해!
투란은 피하지 않았다.
연이어 날아드는 불꽃의 수는 다섯 송이였고, 한 송이가 투란의 손에 쥐어진 불덩이에 꽂혀 드는 사이에 나머지 네 송이는 뒤편의 네 남매를 노리고 날아가는 것을 분명히 알아차린 탓이었다.
‘하!’
굉장히 언짢은 기분과 함께 배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짜증이 투란의 마음을 물들였다. 어째서 저런 시커멓게 생긴 ‘작은’ 송아지가 감히 투란을 무시하고 불꽃으로 까불고 있는가?
가슴 깊은 곳에서 당장 저 ‘작고 어설픈 불꽃’을 뿜어내는 놈을 녹아 흐르는 바위 속에 담가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투란의 정신으로 스며들었다. 저런 가녀린 불꽃을 휘둘러대는 녀석 따위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다!
―투란!
드라고니아가 버럭 투란의 뇌리에 함성(喊聲)을 박아넣었다.
투란이 몬스터의 본능에 휩쓸리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 외침이었다. 하지만…….
‘알아.’
냉정한 투란의 대답은 빠르고 간결했다.
하지만 견고하고 자신만만한 대답과 어긋나게, 더 커지고 사나워진 불꽃에 관통당하는 투란의 손이 갈라지고 흩어졌다. 살갗이 찢어졌고, 핏줄이 튀어 오르며 힘줄과 함께 불타오르는 듯한 광경 속에서 순식간에 시커먼 재가 피어올랐다.
그런데 이 변화는 불꽃을 받아내지 않은 다른 손에서도 함께 일어났다.
다른 한쪽 팔의 살갗이 들떠 오르며, 힘줄과 핏줄이 허공을 향해 그물처럼 뻗었고 검은 재와 함께 휘날리며 투란을 스쳐 가던 불꽃 네 송이를 잡아 붙든 것이다.
“투란!”
“어어? 투, 투란?”
등 뒤에서 시알라와 멜란드가 놀란 소리를 내며 주춤했고, 페란드와 제란드가 ‘소일 헛’의 흙벽을 넘으려 하는 기척이 투란에게 느껴졌다. 남매는 아무래도 검은 소, 플레임 불의 불꽃이 투란의 두 팔을 터뜨렸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기다려.”
짧게, 고개를 돌려 한마디를 던져놓고 투란은 앞으로 뛰어나갔다.
퍼엉! 퍼펑!
으스러져 사라진 투란의 어깨로 이어진 검은 재가 폭음(爆音)과 함께 폭염(暴炎)을 일으켰다. 사납게 뿜어져나가는 불길 속에서 검은 광택이 맴도는 암석(巖石)의 얇은 판막(瓣膜)이 생겨났고, 곧바로 두꺼워졌다.
“어?”
“이거?”
네 남매가 뒤엉켜 흘리는 놀란 소리는 두꺼워진 검은 광택의 벽에 가로막힌 듯했다. 하지만 그 벽이 자신의 한 부분인 투란은 그 소리를 분명히 들었고, 네 남매가 자신의 말에 흙벽 안에서 주춤거리며 당황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검은 소 모습을 한 몬스터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음무에에엣!
치솟아 번져 나가는 사나운 불꽃을 향해 검은 소의 두 가닥 뿔이 꿈틀대는 기척을 드러냈고, 불꽃은 그 뿔의 기척에 따라 흩어지지 않은 채로 뭉쳐서 투란의 머리부터 짓이기려는 듯이 뒤틀리며 날아들었다.
‘그 뭔 키네틱이 남이 만든 불꽃도 만지작거리는 거야?’
투란은 블랙 애시가 점화하며 터진 불꽃조차도 검은 소의 뿔에 조작되어 덮쳐오는 광경을 깨닫고 드라고니아에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차분한 물음이었고, 당황한 낌새가 전혀 없는 침착한 태도였다.
―파이로키네틱. 불의 속성(屬性)이 담긴 것이라면, 그 감지영역 안에서는 언제라도 제어하는 능력을 말한다. 불을 일으키고 뿜어내는 거랑은 달라. 일단 발생(發生)한 상태에서 불을 제어하는 거야.
‘송아지 따위가 별 재주를!’
조금 울컥한 평을 하며 투란은 더 빠르게, 한두 걸음 뒤로 빼는 검은 소의 형상을 향해 뛰어나갔다.
―플레임 불의 경우에는 원래 입안에 담긴 불꽃을 빗어내는 능력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입안에서 불을 담은 채로 혀로 핥거나 다듬는 정도였지 저렇게 뿔을 변형시키며 제어하는 경우는 아닌데 말이지…….
어딘가 느긋해진 드라고니아의 설명을 한편으로 흘려내면서, 투란은 검은 소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어느새 투란의 어깨에는 검게 흘러나온 듯한 암석의 팔이 들러붙은 채였고, 시커먼 돌주먹이 검은 소의 볼을 때리는 상황이었다.
퍽.
두꺼운 가죽, 옆으로 스윽 기울어지듯이 돌아간 검은 소의 머리통에서는 그저 짧고 둔탁한 소리만 났을 뿐이었다.
“아, 짜증 나!”
투란은 이 결과가 자신의 체격이 너무 작고 가벼운 탓인 것을 금세 알아차렸고, 그 울화를 거침없이 터뜨렸다. 그리고 검은 소, 플레임 불도 이 상황을 깨달은 듯이 투란의 가슴에 뿔을 들이밀면서 휘감긴 불꽃과 함께 연약한 사람의 몸통을 그대로 뚫어버리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