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6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65)
파아아…….
부푼 거품이 깨지듯이 투명한 소의 형태가 부서졌다.
금빛의 바람결이 뭉클거리며 구름처럼 엉기고 투란의 두 손 사이로 모여들었다.
‘희한하네?’
투란은 금전(金錢)처럼 동그랗고 단단하게 변하지 않는 금빛 구름과 바람의 형태에 조금 놀랐다. 이건 마치 네 남매가 히엔나를 삼킬 때 보여줬던 제멋대로 꼬이던 금빛의 모습과 닮았잖은가?
한데 ‘천칭’의 핏빛 고리와 크게 다른 이 형태가 보다 더 황금매에게 어울리는 듯한 느낌이 투란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리고 어떤 형태를 보이든 상관없이 금빛의 흐름은 몬스터 에센스를 담은 채로 황금매의 문장에 스며오고 있었다. 서서히 문장 속 풍경에는 황금으로 빚어진 송아지 한 마리가 묘하게 큰 뿔과 빳빳하고 꼿꼿하게 치켜올린 털가닥을 자랑하며 나타났고!
키익, 크르릉.
검은 암석, 마그마의 눈알이 슬슬 굴러오면서 투란에게 열기와 압력으로 이뤄진 주변을 다시 느껴보라는 듯이 자극했다. 마치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는 듯했고, 투란도 인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지금은 독자적인 길로 들어서는 황금매의 문장과 ‘천칭’을 비교할 때가 아니었고, 두 문장의 마그마 로드가 상당히 다른 형상과 성질을 드러내는 것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분리해서 독립시켜놓은 마그마 로드가 몬스터 로드라는 본체를 잊고 날뛰기 전에 수습(收拾)해야 할 때였다.
‘악마의 심장’만을 품고 모험하던 그때처럼 느껴지지만 지금의 투란에게는 조금 여유롭게 다룰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 놓고 해롱대고 있을 수는 없다!
투란의 가슴팍에 금빛이 집중되었고, 사라졌다.
단단한 바닥을 가르며 붉은 줄기가 가늘게 솟아올라 투란의 다리를 건드리고, 천장에서 흘러내려온 붉은 가닥은 투란의 어깨, 등에 닿았다. 살갗이 붉어졌고 녹아 맺히는 듯한 형상을 이루자, 붉은 줄기는 그대로 그 작은 샘을 헤집듯이 스며든다.
커다랗고 둥글게 이뤄진 장벽이 붉게 달아오르며 사람의 작은 몸을 향해 줄기를 뻗어내서 꿈틀거리며 바닥을 기고, 허공을 가로질러 왔다. 그리고 그 가닥들이 몸 안으로 스며와 더듬는 느낌…….
‘엥? 아니, 왜 이래?’
마치 이 신기한 것은 무엇이냐고 만져보는 듯한 짓은 뭔가!
자신이 자신을 더듬으면서 신기해하는 기괴하고 묘한 느낌은 투란을 당황스럽게 할밖에 없었다. 어째서 이토록 낯설고 이상하게 여기는 걸까, 잠깐 나뉘었던 마그마 로드가!
이 몸을 근원으로 기억하면서, 정작 그 몸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를 완전히 잊은 듯한 이 탐구심은 대체 어찌 된 까닭인가!
혹시 삐약대는 병아리처럼, 다 자랐어도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그 닭대가리 수준의 기억력인가!
하지만 곧바로 돌아온 의문에 대한 답인 듯한, 마그마 로드의 ‘감각’을 투란은 다시 깨닫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작아. 너무 작아.’
오랜만에 마그마 로드의 힘을 제대로 발휘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투란이 살짝 잊고 있었다.
이 녀석은 적어도 2미터 10센티 이상의 체격까지는 기억하지만, 그보다 작은 몸…… 지금 투란의 체격은 제대로 느껴본 적도, 납득한 적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가벼운, 150킬로그램도 되지 않는 무게 따위는 아예 성립할 수 없는 존재!
당연히 마그마 로드로서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본체가 이렇게 작은가, 이 작은 본체가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나…….
거대한 용암의 호수일 때도 그 호기심이 가장 큰 특성이었던 마그마 로드였다. 그 본능을 검은 소를 향해 한창 발휘했고, 투란의 호기심도 덧붙여졌다. 그런 채로 잠깐 독립된 채였으니…… 돌아오면서 그 본능을 남김없이 발휘하려 드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는 투란에게는 새삼스럽게 의아한 물음을 던지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천칭의 마그마 로드였다면 처음 주먹질에 송아지 한 마리는 가볍게 때려잡았을 텐데……?’
그 생각으로 주먹질을 했다가 너무 가벼운 자신의 상태에 울컥했었다.
어느 쪽이든 마그마 로드인데, 이 차이는 어디서 나왔을까?
어쩔 수 없이 치솟는 의문에 대한 답은 금세 투란을 찾아왔다.
몸 안으로 스며오는 마그마 로드가 내장을 제대로 더듬지 못하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문득 알아차린 것이다. 황금매를 통해 삼킨 거대한 마그마 로드, ‘천칭’이 블랙 애시를 잔뜩 삼키고서 그 에센스를 통합해 구성해낸 마그마 로드…… 둘은 차이를 지닐 수밖에 없다!
‘아아, 이럴 줄은 몰랐는데.’
콰앙!
폭음과 함께 투란의 앞쪽 장벽이 무너졌다.
장벽이 순식간에 녹았다.
붉게 찰랑이는 용암, 마그마의 흐름이 거침없이 투란에게 밀려들었고…….
투란은 가벼운 손짓으로 이를 모두 흡수했다.
몬스터 엠블럼으로서 황금매가 흡수한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지워나갔다.
마그마 로드의 본능이 꿈틀거리며 그 과정을 더듬는 것을 느끼며, 투란은 생각하지 않은 채로 ‘천칭’과 황금매의 차이를 조금 더 섬세하게 알아갔다.
그 ‘앎’이 투란의 마음에 드리워졌고, 황금매의 문장이 분명하게 호응했다.
우득, 콰드득.
마그마 로드의 검은 결정이 투란의 살갗 사이에서 울퉁불퉁하게 돋아 있다가 깔끔하게 응축되며 매끄럽게 다듬어졌다. 이는 몇 차례 반복되었고, 투란은 그럭저럭 본래의 체격으로 검게 물든 살갗, 붉은 매듭이 맴도는 몸을 꾸밀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외형일 뿐이었다.
심장을 비롯한 내장, 몸을 지탱해주는 골격이 있어야 할 자리를 소용돌이치는 ‘힘’이 차지하고 있었다. 아직 황금매의 마그마 로드가 사람의 구조, 몸의 구성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탓이었다.
보다 본능적이고, 보다 감각적인 황금매의 문장은 심상으로 결정한 형태보다는 그 본능과 감각으로 결정한 형상을 이루기 때문에!
‘이건 정말 계속 해봐야 하는 건가.’
경험을 통해 숙련하는 수밖에 없다고, 투란은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정교하게 맞물린 톱니바퀴를 통해 몬스터를 형성하는 ‘천칭’과는 다르다!
‘천칭’이라면 일단 형성시키는 순간부터 바로 그 미세한 부분까지 투란의 마음대로지만, 황금매는 그 본능에 보다 익숙해지기를 요구한다. 그 본능이 생각대로 되어야 완벽하게 다룰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다 빠르게 익숙해질 것인가.
이렇게 더 깊은 생각에 투란이 몰입하려는 순간, 짧고 센 드라고니아의 소리가 투란의 뇌리를 울렸다.
―투란, 잊고 있지?
‘응? 뭘?’
그리고 투란은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투란!”
“투란?”
겹쳐진 목소리, 낯익은 기척…….
‘앗차!’
시알라와 페란드, 그리고 제란드랑 멜란드.
안전하게 장벽 너머에 ‘소일 헛’을 짓고 치워놨던 네 남매가 다가오고 있었다.
잔뜩 놀라고, 깊이 걱정한 말투로 투란의 이름을 부르며…….
“투란!”
시알라는 시커먼 장벽이 응축(凝縮)되는 광경을 보며 흠칫했다.
얼핏 봐도 이글거리는 불덩이 같은 붉은 줄기가 매듭이 되며 뭉쳐들고, 시커먼 장벽이 오그라드는 광경은 심장을 조일 정도로 무서웠다. 하늘 높이 치솟았던 강렬한 질풍과 함께 뻗어 올라갔던 불꽃의 회오리가 섬뜩한 다음이라 더 무서웠다.
대체 저 장벽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투란?”
페란드의 목소리는 응축되는 시커먼 바위가 사람의 형상 속으로 스며가는 광경이 보이는 순간에 터졌다. 그리고 계속 고개를 기웃대던 멜란드가 ‘소일 헛’을 박차고 뛰쳐나갔고, 제란드도 거의 동시에 달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시알라는 흠칫하면서 얼른 손을 내밀었고, ‘소일 헛’이 아직 부드럽게 벽을 유지하는 것을 느꼈다! 페란드 역시 그 저항감을 느낀 모양이지만, 불끈 힘을 주면서 돌파해 가는 모습이 바로 시알라에게 보였다.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도 없고, 벽을 돌파할 수 있는 것을 형제 셋이 몸으로 보여주는 셈이었으니, 시알라도 힘차게 발길질을 하며 ‘소일 헛’의 흙벽을 넘어갔다. 하나 발목이 시큰한 느낌이 곧장 시알라를 찾아왔다!
밖에서 안으로 뚫는 것보다, 안에서 밖으로 뚫는 것이 훨씬 쉽고 힘이 덜 들기는 하지만 역시 되도록 하면 안 되는 짓이라고 몸으로 때우며 알았지만, 그래도 시알라는 시큰거리는 발목을 내디디면서 동생들의 뒤를 쫓아 투란에게로 뛰었다.
우뚝 선 채로, 등을 검게 물들인 채 버티고 있던 투란이 허리를 굽히는 모습은 네 남매에게 지쳐서 앞으로 쓰러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불과 십여 미터의 거리를 몇 킬로미터를 뛰는 기분으로 네 남매는 뛰어야 했다.
“에, 에헤헤…… 미안! 남기질 못했네. 이거 굉장히 희한한 놈인데…… 한참 두들기다 보니, 깜박했어!”
뿔과 뼈, 이빨의 파편을 놓고 멋쩍은 표정을 지은 채로 투란이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네 남매는 그런 몬스터의 잔유물보다 투란을 보느라 바빴다.
눈에 보이는 상처가 없고, 상당히 멀쩡한 투란의 모습에 우선 가볍게 안도했고 그다음에는 혹시 보이지 않는 손상이 있는가를 생각하다가…….
“힐링.”
제란드가 먼저 주문을 읊으며 투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응? 왜……?”
투란은 잠깐 의아해했지만, 곧 시알라나 페란드가 손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이랑 멜란드가 손을 내민 채로 주문을 외우려다가 멈칫하는 모습을 보고 이해했다. 아무래도 조금 전에 자신이 심하게 다쳤다고 착각한 것이라고.
제란드의 손은 결국 투란의 어깨에 올려졌고, 순수한 아케인 포스의 마력이 차분하게 투란의 몸에 스며들었다. 그 마력을 통해 제란드는 투란이 다친 곳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손을 떼고 말한다.
“응, 멀쩡해.”
거부하지 않고 그 마력의 효과를 받아들인 투란도 얼른 말한다.
“나는 멀쩡하지! 어, 그런데…… 이게…….”
다시 뿔과 뼈, 이빨을 놓고 뭐라 나오는 소리는 남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시알라부터 털썩거리며 무릎을 꿇듯이 접으며 앉았고, 페란드는 지친 기색으로 몸을 낮추다가 그냥 엉덩이를 깔고 앉아버렸다. 멜란드는 후우 하고 안도하는 한숨과 함께 머리를 긁적였고, 제란드는 힘이 빠졌다는 듯이 누나와 형 곁에 주저앉았다.
조금 묘한 분위기에 투란은 말을 잇기가 어색해서 입을 다물어야 했다.
뜨거운 열기가 바람에 흩어지고, 주변이 보다 서늘해질 때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 주변이 식고, 모두 차분하게 숨을 고를 정도가 되고 나서야 멜란드가 웅얼거리는 목소리를 낸다.
“마법사가…… 괜히 건드리지 말고 지나가자 한 것이 아니었지? 역시…….”
제란드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 소리에 보탠다.
“그렇지. 설마 불 뿜는 소란 것이 벼락 소나기를 뿌리던 놈일 줄이야…… 그런 얘기는 쏙 빼놓고 했으니까.”
시알라와 페란드는 다시 깊이 숨을 고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남매는 샘에서 튀어나와 불타오르며 땅울림을 일으키던 줄기가 뻗어나가던 밤, 이쪽에서 벼락이 소나기처럼 내리꽂히던 광경을 떠올리면서, 나름대로 끔찍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은 둘이 하는 말에 알아차렸다.
남매가 장벽 너머에서도 이쪽의 상황을 꽤 많이 보고 있었다는 것…… 하지만 모두 본 것은 아니기에 투란이 멀쩡한지 다쳤는지는 제대로 몰랐다는 것…… 그래서 걱정했다는 것!
이런 것, 저런 것을 놓고 볼 때…… 남매는 아무래도 투란이 검은 소를 삼켰나 말았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아니, 왜? 나름대로 센 놈이라고, 이거!’
투란에게는 조금 아리송한 상황이었다.
혹시 남겨진 것이 너무 없어 보이는 탓일까?
그래도 뿔은 온전한 형상…… 전혀 휘어질 낌새 따위 없이 빡빡하고 단단한 채로 속이 좀 빈 듯하지만 겉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다. 거기에 뿔과 닿은 채로 조각난 듯이 남은 머리뼈의 일부, 삭고 으스러진 모양이 역력하지만 뭔가 있어 보이잖은가? 부서진 꼴이기는 했지만, 턱과 이빨도 남은 것은 아주 단단했다.
이 정도면 혹시나 해서라도 몬스터의 정수가 있나 더듬어볼 만한데…… 투란이 몽땅 삼킨 것을 알아서 저러는가?
투란이 아리송해하며 갸웃대는데, 서 있던 멜란드가 고개를 숙이면서 겨우 몬스터의 잔유물을 보며 말한다.
“남긴 것 없이 확실하게 불타버린 것 같기는 한데…… 이거라도 발토우 할배라면 뭐든 만들 수 있을까?”
앉은 채로 고개를 들며 제란드도 한마디 한다.
“그 할배라면 장신구에 붙이기라도 하겠지. 깊은 곳에서 나온 거라면, 뭐든 써먹으려고 들잖아. 하지만 가져갈 수 있겠냐? 아직 길이 멀어. 자잘해 보이더라도 짐은 없는 편이 좋다고.”
“음…… 보자기 하나 만들어서 갖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갖고 가보지. 발토우 할배한테 은전이라도 받고 팔면 좋잖아.”
멜란드가 나름대로 생각하듯이 말했고, 이는 투란의 입을 열게 했다.
“그러니까, 여기 남은 에센스가 없는데…….”
“없는 게 좋아! 있으면 버리고 가!”
시알라가 바로 외쳤고, 페란드도 얼른 고개를 끄덕대는 모습으로 말한다.
“그거 삼켰다가 도시에서 한 번만 실수해도…… 현상 수배당해서 평생 쫓겨 다닐 테니, 없는 게 나아요.”
“어?”
투란은 눈을 껌벅거리면서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무슨 이야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