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6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67)
“코뿔소…… 아닐까?”
조용히 중얼거리는 제란드였지만, 그 목소리는 들뜬 기색인 채로 귀를 쫑긋대는 멜란드와 투란에게 똑바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다 같이 길게 뚫린 창가에 기댄 채로 비스듬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중이었으므로.
“코뿔소는 절대 아니지! 입술이랑 목덜미랑 보라고! 절대로 코뿔소는 아니야! 게다가 저 뿔, 저렇게 똑바로 곧게 뻗은 뿔이 아니라고, 코뿔소는! 예전에 봤다니까!”
멜란드가 자신의 기억을 더듬으며, 저기서 어기적대는 놈의 모습이 절대로 코뿔소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면서 투란도 뒤이어 중얼거린다.
“뿔 달리고, 아주 크다는 점만 빼면…… 하마 맞는데? 하마잖아, 하마!”
“맞아, 하마야 하마! 근데 저 하마 지금 토하는데?”
한창 들떠 있던 멜란드가 당황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 어슬렁거리면서 내려다보는 이들을 본 척도 하지 않는 큰 하마는 적당한 풀더미 위에다가 입을 열고 토하고 있었다. 한데 보고만 있어도 뭔가 쉰내가 날 듯이 거하게 토해 풀더미를 짓이겨 놓을 정도였다.
“뭘 하는 거지?”
누가 말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들 하마가 물가도 아닌 이런 곳에 어슬렁대는 점, 어울리지 않는 뿔을 지녔다는 점, 코끼리 덩치에 맞먹을 정도로 크다는 따위와 함께, 이 근처의 사슴은 어깨와 가슴을 단단한 갑각으로 둘러싸고도 다닌다는 점도 고려해보니 저 뿔 달린 큰 하마가 의미 없이 저럴 리가 없다는 것만 어렴풋이 짐작될 뿐이었다.
갸웃하면서 페란드가 말한다.
“되새김질?”
소가 풀을 잔뜩 뜯어먹고, 일단 배 속에 챙겨놓은 다음에 입으로 다시 옮겨 씹는 것이 되새김질, 괴상하게 뿔이 돋은 저 하마가 먹었던 것을 몽땅 다 토해놨다가 다시 차분히 씹어서 삼키려 한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닐 수도 있잖을까 싶어 페란드가 나름대로 궁리해서 꺼낸 소리였다.
하지만 이는 바로 멜란드에게서 웨엑 하는 소리가 나게 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다 토해놨는데, 뭔 되새김질이야!”
“아, 저거…… 미끼였나!”
투란이 눈을 가늘게 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는 곧 남매의 눈길도 가늘게 했고, 모두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뿔 돋은 하마가 쏟아낸 토사물 아래편에서 시체지네가 바글거리며 치솟는 중이었다. 한두 마리가 아닌 시체지네의 한 떼는 순식간에 토사물을 들락였고, 덮어버리듯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토사물은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시체지네가 와글거리며 엉킨 덩어리가 남은 것으로 보이는 그 순간…… 뿔 돋은 하마가 큰 입을 활짝 열고 시체지네 덩어리를 덮쳤다.
와그작, 와그작.
하마의 큰 입이 닫힌 채로 우물거렸고, 씹히는 소리가 꽤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미끼였군.”
투란이 했던 말을 남매 중 누군가 되풀이했지만, 누구인가 다들 따지지 않았다. 보다 빠르게 멜란드의 우엑대는 소리가 먼저 튀어나왔으니까.
“되새김질……이라고 해야 하는 거 맞아! 토해낸 것을 지네한테 먹여서 다시 전부 삼키고 있잖아!”
“어, 듣고 보니 되새김질 맞는 것 같구나.”
제란드가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입안에서 우물거리는 정도에서 벗어나 있었고, 토사물을 미끼 삼아 새로운 먹이까지 꼬드겨 한꺼번에 먹어치운다…… 크게 생각해보면 되새김질이라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었다.
“대체 저게 뭐지?”
페란드가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생김새부터 조금씩 어긋나 있는 녀석이 결국 하는 짓도 어긋나서 모호하기 이를 데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떨떠름하게 다시 되새겨진 의문에 투란이 불쑥 대꾸한다.
“뾰족한 외뿔, 왕성한 식욕…… 무척이나 두껍게 살이 찌기는 했지만…… 저거 혹시…….”
네 남매가 투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살짝 긴장했다.
뭔가 짐작 가는 바가 있다면, 그게 위험하지 않은 놈이기를 바라는 미묘한 기대가 담긴 긴장이었다. 알고 보니 저것이 미쳐 날뛰는 습관이 있다든가 하면 이 커다란 마법의 ‘집’만 믿고 넋 놓고 있기도 어렵잖은가. 한데…….
“유니콘?”
투란이 매듭짓는 소리는 네 남매의 눈길을 한꺼번에 돌아가게 했다.
뿔 돋은 채로 토사물에 몰려나온 시체지네를 잔뜩 덮쳐 물고 우물거리는 큰 하마의 모습에서, 투란에게로 돌아간 눈길 속에서 반짝이는 눈빛은 꽤나 우울하고 스산한 분위기가 가득했으니…….
“뿔 달렸고, 식욕도 넘쳐나잖아! 처녀 잡아먹는다는 유니콘이지만, 배가 고플 때는 저렇게 지네도 먹을 수 있잖아! 왜?”
“자, 잠깐! 투란, 유니콘이 처녀를 잡아먹는다고?”
페란드가 입을 떠억 벌린 채로 넋 나간 표정을 짓는 누나 시알라를 보고는 바로 투란에게 말리는 손짓과 표정을 한 채로 되묻고 있었다. 제란드와 멜란드 역시 그런 페란드의 낌새에 동조하듯이 당황한 모습으로 투란을 향해 ‘그건 아니지!’라는 의견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중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정신 줄 놔버린 듯한 시알라의 기묘한 모습과 형제 셋이 느닷없이 당황해하는 모습이 그냥 좀 지나치다고 느꼈을 뿐이라서, 차분하게 자신이 옛날에 들었던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
“어, 나도 들은 이야기니까…… 옆집에 사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말썽부리거나 하면 종종 듣던 얘기가 그거였다고. 가끔 마을에 들렀던 몬스터 헌터들도 같은 이야기를 했으니까, 맞는 말 같던데…… 유니콘은 외뿔 짐승이란 뜻이고, 엄청나게 사납고 센 놈이 처녀를 무지하게 좋아해서 쫓아다닌다고…… 말릴 수가 없을 정도로 처녀를 밝힌다고 했으니까…… 조심하라고! 그랬는데?”
“잡아먹는다는 얘기는 없잖아?”
제란드가 얼른 짚었다.
투란이 입술을 삐죽하며 바로 대꾸한다.
“유니콘에게 걸리면 일찌감치 엄마 아빠랑 헤어져야 하고,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고 했으니까…… 잡아먹는 거 맞잖아!”
“응?”
“어라?”
페란드와 멜란드가 조금 당황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제란드도 입을 벙긋거렸지만, 바로 뭐라 할 수가 없는 표정부터 짓고 있었다.
몬스터 헌터가 저렇게 이별에 대해 말하는 경우라면, 사실 대부분 죽음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 맞다. 그 죽음의 원인이 짐승이라든가 하면…… 잡아먹힌다고 생각하는 것이 매우 타당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아니, 유니콘이잖아!’
‘그거 성스러운 짐승이라고!’
‘처녀에게 평생의 반려를 찾아준다는 이야기는 못 들은 거야!’
이런 식으로 형제에게, 누나인 시알라에게 익숙한 전설의 성수(聖獸)인 유니콘을 놓고 ‘잡아먹어’ 이별을 하게 만든다는 발상은 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산맥의 지역에 따라서는 아주 다른 전설과 이야기가 뒤죽박죽이라, 같은 괴물이나 마수를 놓고도 전혀 다른 소리가 자주 있기도 했다. 그러니 이건 투란에게 잘못 알고 있다고 뭐라 하기도 곤란한 일이었다.
실제로 유니콘을 만나서 정말 평생의 반려를 만났다는 여자 이야기는 의외로 없기도 했으니까…… 아니, 그 이전에 유니콘에 관한 유명한 전설은 여럿 있어도 실물로 유니콘을 봤다는 경우가 없잖은가!
남매에게도, 투란에게도 말로만 듣던 유니콘이었다.
성스러운 낌새는 전혀 없지만, 이 춤추는 산맥 깊은 곳에 어울리는 육중한 몸매가 어떤 전설에도 나오지 않는 꼴이지만…… 과연 저것이 유니콘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저 뿔 돋은 하마가 진짜…….
“아니야!”
시알라의 격한 목소리, 억세게 창틀을 이루는 단단한 벽돌을 움켜쥐어서 반쯤 으스러뜨리는 손짓이 형제 셋과 투란의 논쟁과 의견을 멈추게 했다. 너무나 과격한 낌새가 역력한 한마디라서 모두 시알라를 바라봤고, 핏대가 살짝 오른 시알라의 눈동자와 험악한 눈매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저런 게…… 저딴 것이 유니콘일 리가 없어! 절대로 아냐!”
투란은 이 말이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고, 침착하게 이성적인 말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멜란드가 번개처럼, 투란의 입술이 달싹이려는 것을 앞지르는 큰 소리를 내질렀다.
“앗! 저기 이상한 놈이! 어? 저게 일어섰어!”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멜란드가 먼저 말한 ‘저기’에서는 뭔가가 쏜살같이 흙을 밟아 높이 튕기면서 똑바로 가로질러 튀듯이 달려오고 있었고, 여태 정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게 했던 ‘저것’인 뿔 돋은 하마는 뒷다리에 힘을 주고 앞다리를 팔처럼 치켜올리는 자세로 일어서고 있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갑자기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여태 네발짐승처럼 보이던 놈이 느닷없이 두발짐승처럼 일어서더니, 앞발에서 손가락을 꺼내 꾹 쥐는 시늉을 하고 있다!
저쪽에서 툭툭 발자국마다 흙을 튕겨 올리면서 뛰어오는 녀석은 굵고 긴 꼬리가 인상적이기는 한데, 확실히 두 발로 뛰고 있었다. 다리가 꼬리와 이어진 엉덩이에서 흘러나온 둘뿐이었으니 어쩔 수 없어 보였다. 앞다리라든가, 팔이라고 할 부분이 아예 없는 짙은 회색과 녹색의 비늘가죽으로 덮인 도마뱀을 떠올리는 모습이었다.
“뭐야, 저놈은?”
투란이 중얼거렸고, 이 소리는 네 남매에게 새로 나타난 도마뱀 닮은 녀석 또한 정체불명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줬다. 네 남매도 모르고, 투란도 모르니 여기 저 두 다리, 꼬리만 분명한 도마뱀의 정체를 아는 이가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뿔 돋은 하마는 아는 모양이었다.
푸으읏!
거센 콧김과 함께, 뭔가 걸쭉한 콧물까지 뿜어내면서 쥐어 올린 앞발, 이제는 완연하게 주먹이라 할 것을 내뻗고 있었으니!
퍼펑, 퍼엉!
그 주먹질이 향한 곳에서 흙이 튀어 오르고 작은 구덩이가 파였다.
그 구덩이가 파인 자리를 가로지르려던 도마뱀 형체가 번개처럼 좌우로 흔들거리는 잔상(殘像)을 남긴 채로 움직이며 두 다리를 꼬았고, 굵은 꼬리가 바닥을 긁었다. 큰 돌덩이가 꼬리에 휩쓸려 날아갔다.
퍼억!
뿔 돋은 하마가 머리를 흔들며, 다시 주먹질을 했고 날려 간 돌덩이가 부서졌다.
빠악!
회오리에 휩쓸린 듯한 잔상과 함께 도마뱀이 휘두른 굵은 꼬리가 뿔 돋은 하마의 굵고 큰 다리 한쪽을 후려갈겼다. 네 발이 아닌 두 발로 선 탓에 바로 하마의 균형이 무너졌다. 꼬리에 맞은 다리가 부러지거나 한 기척은 없지만, 그 힘에 가랑이를 찢듯이 한쪽 다리가 쭈욱 밀려난 탓이었다.
“저렇게 체격차가 나는데!”
엉겁결에 페란드가 놀란 소리를 냈다.
하마가 코끼리 얘기가 나올 정도의 체격이라면, 도마뱀은 꼬리를 제외하면 겨우 2미터를 넘기는 키에 불과했다. 그런 체격인 녀석이 굵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저 굵은 하마 다리보다 얄팍할 수밖에 없는 꼬리를 휘둘러 맞췄는데 저런 결과였다.
푸흐흣!
쩌억!
뭔가 다른 말이 나오거나 생각이 이뤄지기 전에 하마와 도마뱀은 그 이형(異形)의 이질(異質)적인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듯이 움직였다.
하마는 강제로 다리를 벌리게 한 도마뱀이 꼬리를 번개처럼 내리찍었고, 잡았다.
도마뱀의 꼬리는 가죽옷감이 괴력을 만나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뚝 끊어졌다.
철썩!
하마가 잡은 꼬리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아무래도 도마뱀의 몸통을 통째로 휘두를 모양이었는데, 끊어진 탓에 꼬리만 땅바닥을 찍은 꼴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꼬리를 잃은 도마뱀은 잔상을 느끼기도 힘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빠각!
하마의 뿔이 부러졌고, 콧등은 발톱자국이 남겨지며 움푹 파여 들어갔다.
뻐억!
하마가 채인 다리의 몫까지 굳건하게 땅에 박듯이 버티며 힘주던 다리가 덜렁거리는 모습으로 옆으로 무릎을 접듯이 몸 바깥으로 꺾이는 광경이 보였다. 거기서 세게 울린 소리가 있었기에 뭔가에 심하게 채여 부러졌다는 것을 뒤늦게 느낄 수 있었다.
기우뚱하며 하마의 큰 몸통이 쓰러지려 했고…….
파삭, 사악!
하마의 목덜미, 어깨, 굵고 넓은 몸뚱어리 곳곳에 벌레 먹은 잎사귀를 떠올리게 하는 빈 곳이 생겨났다.
“어떻게?”
누가 중얼거린 소리인가는 따질 필요가 없었다.
다들 흐릿하니, 이제는 여유가 있다는 듯이 잔상을 보이는 도마뱀의 형체를 보고 있었고 그 머리에서 뭔가 넓게 펼쳐지며 튀어나온 다음에 하마의 형체에 손상(損傷)이 발생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문제는 저게 번개처럼, 벼락처럼 도마뱀이 물어뜯는 것이라 해도, 그 사라진 부분이 도마뱀의 머리통보다 커서야 앞뒤가 맞지 않는 광경일 뿐이라는 점!
하지만 이 또한 금세 원인을 볼 수 있었다.
하마의 가슴, 등짝이 지워지듯 사라지면서 도마뱀의 머리통이 더 느려진 덕분이었다. 그 머리에서, 입술을 까뒤집으며 튀어나오는 대롱 같은 잇몸, 아래위로 침이 가득 맺힌 이빨을 드러내며 열린 그 속살뿐인 듯한 입이 깔때기처럼 활짝 펼쳐진 채로 큰 하마의 몸통에 꽂혔다가 빠질 때마다 하마의 형체 일부가 사라지고 있었다.
꼬리가 끊어진 도마뱀의 엉덩이 부분에서 핏줄기가 가늘게 터지는 것도 보이기는 했지만, 그 피거품 속에서 다시 꼬리가 물컹거리며 눈에 보일 정도로 자라나는 탓에 전혀 아파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