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6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68)
“저것도 같은 놈인가?”
투란이 한쪽을 가리키며 가늘게 중얼거렸다.
그 손짓을 따라 네 남매의 눈길이 돌아갔고, 거기서 오는 또 한 마리의 도마뱀 닮은 녀석을 볼 수 있었다.
하마를 잡아 뜯어먹는 중인 녀석과 꼭 닮은, 그 비늘가죽이 붉은 색채를 바탕으로 검은 얼룩이 진 듯한 것만 아니라면 조금 작지만 똑같은 놈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한 마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도마뱀 닮은 녀석이 나타났던 반대 방향에서.
“어, 저건 좀 느린데?”
멜란드가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처음 나타나서 지금 하마를 뜯어먹는 녀석의 움직임과 비교하면 새로 나온 붉은 비늘인 녀석은 몸놀림이 유난히 가볍게 통통 튕기는 채로, 아주 느긋하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서두를 일 따위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이.
하지만 다른 것은 비늘가죽의 색깔뿐이 아니란 듯, 하마를 뜯어먹던 녀석이 거침 숨과 위협적인 소리를 바로 토해내며 적대감부터 드러내고 있었다.
카아앗!
하마 몸통 위에서, 두 발로 그 몸통을 주름이 잡힐 정도로 꽉 쥔 채 내뱉는 협박은 바로 다가오던 녀석을 반응하게도 했다.
팍!
순식간에 붉은 비늘가죽의 형체가 사라졌고, 멀리서 두 마리 도마뱀과 늘어진 하마를 바라보는 탓에 그 광경을 모조리 시야에 담고 있는 이들에게는 협박하는 소리를 내던 도마뱀의 머리통이 함께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엑?”
“헛!”
“뭐야, 저거!”
투란이 깜짝 놀랐고, 멜란드도 화들짝 놀란 소리를 냈다.
그 사이에 제란드는 뭔가 따져보려다가 실패한 소리를 냈고, 페란드와 시알라는 신음하는 듯한 작은 울림을 입술 사이에 실었을 뿐이었다.
너무 빠른 움직임의 잔상을 시각으로 놓쳤다든가 하는 부분은 이미 하마를 잡은 도마뱀 녀석에게서 충분히 느꼈다. 하지만 시각(視覺)으로는 놓쳤어도, 그것이 어떻게든 움직였다는 최소한의 지각(知覺)은 지닐 수 있었다.
한데 저 붉은 녀석은 그런 지각조차 느끼기 전에 행동을 마치고 있었다.
단숨에 색이 다른 동족의 머리통을 물어뜯어 지워버린 포악한 짓이었다.
으적, 와득, 으적.
머리통이 사라진 도마뱀은 기우뚱하고 선 채로 기울어지다가 그 몸이 쑥쑥 사라졌다. 벌레 먹은 넓은 풀잎처럼, 뻥뻥 뚫려 지워지는 것처럼.
그 뒤를 이어 쓰러져 있던 하마의 몸통도 다시 사라지고 지워졌다.
곧 동작이 느려진 붉은 비늘가죽의 도마뱀이 입을 열고 툭툭 뿜어내는 입술 없는 입의 확대는 날카로운 이빨이 한순간에 하마의 몸통에 닿아 박히고 사라지는 광경이 선명하게 펼쳐졌다.
탁탁, 붉은 꼬리가 몸통에 어울리지 않게 굵은 것을 자랑하듯이 하마의 남은 몸통을 내리찍었고 짓이겼다. 그다음에 입이 거기 박히면서 다시 구멍을 내듯 지워간다.
“빠르네…… 하마 주제에 두 다리로 선 놈도 엄청 빠르게 주먹질해대더니…… 이 근처에 있는 놈들은 소 빼고는 다 이상하게 빠른 건가.”
투란이 중얼거렸다.
이는 곧 네 남매의 고개를 제각각 끄덕거리게 했다.
뿔 돋은 하마가 두 다리로 섰을 때, 그 걸음은 기우뚱거리고 느릿했지만 내지르는 주먹은 바람을 가르는 충격파를 일으킬 정도로 빨랐다. 그 빠르기로 첫 번째 도마뱀 녀석의 꼬리가 다리를 때렸을 때, 붙들기도 했었다. 별 소용없는 짓이었고 꼬리가 없어진 뒤부터 더 빨라지는 도마뱀의 꼬리를 보게 해줬을 뿐이지만…….
새로 나타난 붉은 도마뱀 녀석은 그보다 더 빠르고, 더 흉포할 뿐이었다.
체격은 제일 작았지만!
“젠장, 히엔나로는…… 저거 꼬리도 못 잡겠잖아!”
멜라드가 부르르 떨면서 중얼거렸다.
제란드는 이 말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가까이 붙었다가는 어디든 단숨에 물려 없어질 것 같네.”
페란드는 이 말에 갸웃하며 중얼거린다.
“미리 마법을 준비해서 막아야 하나…….”
시알라는 이런 소리를 밀어내듯이 급히 한마디 해야 했다.
“저게 우릴 보는데!”
붉은 도마뱀, 두 다리뿐이고 꼬리와 몸통이 전부인 녀석이 창백하고 파릇한 눈알을, 눈동자 없는 눈알을 굴리는 채로 일행이 내려다보는 세이프티 하우스의 등대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 입으로 하마의 잔해를 계속 먹어치우면서도, 이 장소에 있을 리가 없는 이질적인 건물…… 그에 대한 작은 호기심이 있다는 듯이 보였다.
그 호기심이 곧바로 붉은 도마뱀의 꼬리를 흔든 모양이었다.
파앗!
꼬리에 휩쓸린 땅에서 자갈과 돌멩이가 뿜어지며 창가로 날아왔다.
마법의 방벽이 창가에 자갈, 돌멩이, 흙먼지가 닿는 것을 차단했다.
카핫.
붉은 도마뱀의 입에서 아주 재미없고 짜증 난다는 듯한 소리가 새 나왔다.
멜란드가 이에 반응해서 울컥했다.
“저게!”
단숨에 창을 넘어 뛰쳐나갈 듯한 소리는 바로 제란드가 곁에서 멜란드의 팔뚝을 잡게 했다. 몬스터가 놀린다고 씩씩거리며 뛰어나가면 어쩌자는 것인가, 진정하라고 제란드가 권하려 하는데…….
“멜란드, 저 녀석 다리 갖고 싶어?”
투란이 먼저 소리 내서 묻고 있었다.
멜란드가 움찔했다.
이는 입을 열려던 제란드가 원래 꺼내려던 것과 다른 말을 하게 했다.
“멜란드, 네 힘으로 저걸 잡을 수 없어. 너무 빠르다.”
멜란드는 곧 기운 없는 목소리로 답한다.
“알아, 지금 내 다리로 못 쫓고 딱히 저놈에게 통할 주문도 모르겠으니까. 나 혼자 어쩔 수 없는 놈이라는 거 알아.”
“흐흠, 그러니까 멜란드, 저 다리가 갖고 싶고 잡을 방법이 있다면 잡겠다는 거지요오오?”
투란이 말꼬리를 일부러 길게 끌면서, 친절한 말투로 다시 짚어주겠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 멜란드는 눈을 껌벅거렸고, 제란드가 긴장했다. 더불어 페란드와 시알라는 움찔하며 투란을, 멜란드를 번갈아 봐야 했다.
“잡을 방법이 있어?”
겨우 다시 입술을 움직이며 멜란드가 물었다.
투란의 입가에 웃음이 슬그머니 피어올랐다.
“갖고 싶은 몬스터가 있는 몬스터 로드라면, 직접 잡아야 하는 것이 기본! 그러니까 멜란드가 직접 잡아야 해. 아, 방법은 있지! 당연히! 도와줄 수 있어. 그래도 멜란드 혼자 녀석을 맞상대해야 해. 그렇게 하겠어?”
멜란드가 투란의 말에 바로 눈을 빛내면서 힘찬 소리로 대답하려는 순간, 제란드의 손이 먼저 그 입을 막았다. 그리고 제란드가 재빠르게 투란에게 묻는다.
“한번 물리면 머리통도 바로 사라질 텐데, 저 빠른 놈을 맞상대할 방법이 있다고? 멜란드가 혼자 맞서서 잡을 방법이 정말 있다는 거야, 투란?”
“응. 그건 별문제가 아니야. 어쨌든 쉽게 잡힐 놈이 아니기는 해도, 아무튼 멜란드가 고생할 테니까. 할 건지, 말 건지 멜란드가 확실히 정해야 돕든가 말든가 할 수 있다고.”
창가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속에서, 붉은 도마뱀이 입을 우물거리며 이쪽에서 활발히 오가는 이야기가 뭔가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발에 깔린 하마는 거의 몸통의 반 이상이 사라진 채였고 저 식사가 오래가지 않을 것임을 쉽게 예상하게 해주고 있었다.
투란이 그런 붉은 도마뱀의 형체를 흘깃하며, 눈살을 찌푸리는 제란드, 눈을 번뜩이는 멜란드…… 곤혹스러워하는 페란드와 시알라를 향해 다시 강조해서 말한다.
“저게 멀리 달아나기 전에 얼른 정해야 해, 멜란드…….”
“할게! 할 거야! 나, 저놈 다리 갖고 싶어!”
멜란드는 더 머뭇거리지 않고, 누나와 형들의 눈치를 외면하는 강렬한 눈빛으로 투란에게 대답하고 있었다. 시알라부터 그런 멜란드를 일단 한 대 칠까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페란드와 제란드처럼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멜란드가 지금 장난감을 갖겠다는 것이 아니었고, 투란이 무책임하게 그저 부추기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시작하기도 전에 붙들고 말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잘 듣고 도울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그래서 네 남매가 입을 다물 때, 투란은 상쾌하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했고…….
캇? 크륵!
붉은 도마뱀은 고개를 쳐들었고, 머리 위를 보고 놀란 소리를 토해냈다.
갑자기 이글거리며 불타는 고리가 붉은 도마뱀의 위편에서 불쑥 나타나 떨어져 내리고 있는 때문이었다. 불타는 고리는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고, 순식간에 사방에 불길로 벽을 세워 붉은 도마뱀을 포위했다.
그 불길의 벽과 자신 사이에 거리가 꽤 있었기 때문에 붉은 도마뱀은 놀란 소리 이후에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며 빈틈을 찾을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 여유 속에서도 다시 붉은 도마뱀의 입에서 놀란 소리를 내게 한 상황이 이어졌으니…….
쿠르르, 쿠쿵!
불타는 고리, 둥글게 쳐진 벽 안쪽의 땅이 함몰(陷沒)해 버렸다.
더불어 벽이 기울어지며 불길은 천장처럼, 가라앉은 땅의 뚜껑처럼 덮였다.
함몰된 땅의 깊이는 4, 5미터 정도였고 고리의 지름은 거의 20여 미터에 가까웠다. 천장이 된 불길은 뚝뚝 방울처럼 불덩이를 흘릴 정도로 짙어진 채로 그 열기를 더하며 넓고 큰 구덩이 안쪽을 후끈하게 데웠다.
카아앗!
이 상황에 붉은 도마뱀은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숙였고, 꼬리를 높이 치켜올리면서 두 다리를 굽혔다. 마지막 한 조각의 하마 몸통이 사라졌고, 도마뱀의 눈알이 양쪽으로 데굴거리면서 단숨에 돌파해 나갈 틈새를 찾으려 할 때, 구덩이 한쪽에 구멍이 열리면서 멜란드가 들어섰다.
온몸에 치렁거리는 옷감이 너덜거리는 채로 멜란드에게 입혀져 있었다.
콰르륵.
붉은 도마뱀은 멜란드보다 구멍을 더 주시하는 듯했지만, 구멍은 바로 무너지며 메워졌다. 상황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붉은 도마뱀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더불어 입술 위쪽의 살갗이 꿈틀거리며 주름을 잡았다.
카핫.
붉은 도마뱀이 눈을 가늘게 하며 이상하다는 듯한 태도로 멜란드를 바라봤다.
멜란드의 손발은 허연 털이 무성한 히엔나의 형상이었고, 붉은 도마뱀은 그 광경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딘가 히엔나를 닮기는 했는데 히엔나가 아닌 것이 이상하다는 듯이.
저벅, 저벅.
멜란드는 침착하게 걸으면서 속도를 높였다.
붉은 도마뱀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다가서는 멜란드를 물어뜯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멜란드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고, 거리는 곧바로 3미터 정도로 좁혀들었다.
순간 붉은 도마뱀의 몸이 좌우로 튕겼다.
아무래도 지나치게 자신만만하게 겁 없이 다가오는 멜란드를 일단 피하고 보자는 듯한 움직임이었는데…… 좌우 어디로도 갈 수가 없는 꼴이었다.
카핫!
성난 소리가 붉은 도마뱀의 입에서 터졌다.
곧 붉은 도마뱀은 뒤로 물러서려 했고, 이번에도 몸을 미는 부드러운 압력에 움직이지 못했다. 어느 틈엔가, 붉은 도마뱀은 멜란드를 향한 방향만을 남겨놓은 채로 바람의 장벽에 가로막힌 상황이었다. 이는 상황을 아주 단순화시켰고, 붉은 도마뱀이 취할 행동을 제약했다.
캬아아!
허파를 토해내는 듯한 괴성과 함께 붉은 도마뱀이 멜란드를 향해 뛰었다.
멜란드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가속했다.
쩌억, 텁!
캬핫!
붉고 두꺼운 팔뚝이 붉고 검은 도마뱀의 입술 사이를 채워 넣었고, 열리려던 입을 꽉 눌러 막은 꼴이 되었다. 이 느닷없는 상황에 붉은 도마뱀의 거친 숨결이 놀란 소리를 낼 때였다.
“좋았어! 잡아, 멜란드! 방심하지 말고!”
멜란드가 살짝 안심하려는 것을 막는 듯한 고함이 터지고 있었다.
멜란드는 붉은 그랑츄의 살갗을 거침없이 꿰뚫고 박히는 이빨에 흠칫했다가 세차게 들려오는 투란의 외침, 덤으로 ‘어서!’ ‘빨리!’라고 울리는 형들과 누나의 재촉에 자유로운 한 손을 더 빨리 움직이며 두 발로 땅을 걷어찼다.
붉은 그랑츄의 팔뚝으로 입에 재갈이 물린 붉은 도마뱀의 머리 뒤편을 붉고 큰 손이 잡았고 부푼 멜란드의 몸은 붉은 도마뱀을 덮치면서 바닥에 뒹굴게 했다. 달라붙은 둘이 바닥을 뒹굴 때, 굵은 도마뱀 꼬리가 멋대로 휘둘러졌다.
단단히 입을 채워 이빨과 입술 없는 입이 튀어나오지 못하게 한 팔뚝, 그 뒷머리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멜란드는 꼬리가 휘둘려지며 자신에게 이모저모로 충격을 주려 하는 상황을 견뎌냈다.
다리 둘, 팔이라 할 수도 있는 앞발이 없는 형체인 붉은 도마뱀은 결국 멜란드의 두 팔에 완벽하게 끼인 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주변으로 마음껏 구르지도 못하는 꼴도 돼야 했다.
불길의 고리, 벽이 멜란드와 도마뱀의 형체를 감싸듯이 조여들고 있었다.
멜란드는 붉은 도마뱀의 뒷덜미를 잡은 손에 한껏 힘을 줬다.
이대로 그 두개골을 으스러뜨려 버릴 참인데…….
퍼억!
“크으……!”
손발의 역할을 모두 하는 민첩함을 지닌 붉은 도마뱀의 한 발이 멜란드의 배를 걷어차 올렸다. 멜란드의 두 팔은 여전히 기묘한 자세로 도마뱀의 머리통을 끌어안고 있었지만, 그 몸은 훌쩍 뒤로 튕기며 위로 날려가는 꼴이었다.
마치 닻을 내린 배처럼, 멜란드는 여전히 도마뱀의 입과 머리통을 잡고 버티면서 더 힘껏 힘을 줬다.
캬아아오오오!
“으아아압!”
괴물과 사람의 포효가 뒤엉키고 엮여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