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6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70)
“아, 이젠 괜찮다고! 이봐, 멀쩡하잖아!”
멜란드는 랩티드의 변이종(變異種)이라고 일단 결론 내린 도마뱀의 두 다리를 드러내 보이면서 억울한 사람처럼 외치고 있었다. 입술과 볼을 손으로 젖히고 꼬집어 보이기도 하면서!
하지만 투란부터 시작해서 멜란드의 누나와 형 둘은 멀찌감치, 멜란드에게서 대략 4, 5미터의 거리를 둔 채로 슬슬 앉은 자리를 옮기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절대로 이 거리를 좁히게 두지 않겠다는 듯!
그리고 제란드는 멜란드에게 반박하는 소리까지 한다.
“너, 간밤에 침대 좀 물어뜯어 놨더라?”
페란드도 여기에 바로 보태 말한다.
“등대라서 다행이었지. 한 층에 혼자 놔둘 수 있었잖아.”
시알라 역시 한숨을 쉬며 멜란드가 억울해하는 것보다 제란드와 페란드가 지적하는 부분에 동의하는 모습이었다.
투란은 이런 남매의 모습에 밝은 소리를 살짝 덧씌운다.
“아하핫, 그래도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잖아……요? 아, 멜란드도 괜찮고!”
“투란, 돌덩이 침대를 물어뜯은 놈이 괜찮으면 이상한 거라고!”
제란드가 바로 반박했다.
페란드와 시알라도 흠칫하다가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편에서 멜란드가 욱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꼴을 보며 투란이 조금 머쓱하니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그러니까, 멜란드는 다치지 않았으니까 괜찮……. 으흠! 아, 고기 다 익었나?”
“아, 그 고기…… 물소도 내가 잡아왔잖아!”
멜란드는 편들어 주려 하다가 누나와 형들의 눈빛에 말꼬리를 돌리는 투란을 알아차리고, 다시 자신의 억울함을 외치면서 아침 사냥의 성과마저 들먹였다. 하지만 이는 조금 더 심한 반발을 바로 시알라가 토해내게 했다.
“응, 그래. 잡아왔지. 엉덩이를 뻥 뚫어놨고, 목덜미도 뻥 뚫어놓은 이상한 물소를 잡아왔지. 그래, 이 물소의 솟구쳐 올라 있었을 거로 보이는 엉덩이는 어디 갔고, 든든해 보이는 목덜미 살은 다 어디 갔니?”
멜란드의 입이 닫히고 말았다.
멜란드는 랩티드……로 추정되는 괴물의 빠른 발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써먹어 보려고 뛰쳐나갔고, 주변에서 간간이 보이던 물소 떼를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밤새 뒹굴며 누워 잤던 침상이 어떤 몰골을 했는가를 자세히 보지 않았던 멜란드는 괴물 도마뱀의 본능에 충실하게, 대뜸 물소의 엉덩이와 목덜미를 벌레 먹은 나뭇잎 모양으로 물어뜯고 말았다!
어쨌든 사냥은 성공했기에 그 물소를 짊어지고 왔건만, 멜란드에게 돌아온 것은 침상에 남겨진 흔적…… 물어뜯어 파먹은 듯한 꼴과 물소의 몸에 남은 흔적, 벌레 먹은 나뭇잎의 참상(慘狀)에 대한 추궁이었다.
멜란드 스스로가 되짚어 자신에게 묻는다 해도, 이건 뭔가 제대로 몬스터를 다스린 몬스터 로드가 할 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다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간밤에 멜란드를 한 층에 혼자 놔뒀고, 투란의 말처럼 누가 다치지도 않았잖나!
일어나자마자 신나게 물소까지 잡아왔건만, 이런 취급은 멜란드에게 아무래도 억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억울함에 다시 멜란드가 욱해서 한마디 하려는 순간이었다.
“내 엉덩이를 물었으면 창자까지 뚫렸을까?”
제란드가 중얼거렸다.
“팔이라도 물렸으면 가슴팍까지 같이 없어졌을걸.”
페란드는 보태서 더욱 위험한 상황까지 상상하잖는가!
시알라가 그런 동생 둘을 보다가 붉으락푸르락하는 막내를 흘깃하며 손가락질했다. 가까이 다가오라는 것이 아니라 거기 그대로 눌러앉으라는!
멜란드로서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그냥 앉을 수밖에 없었다.
억울한 마음이 가득하기는 했지만, 멜란드도 느낄 수 있었다.
몬스터 로드가 자신을 억제했다고 착각해서 벌어졌다는 참극(慘劇)…… 그게 단지 소문으로 듣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멜란드 자신이 간밤에 저질렀을 수도 있는 일이 된 셈이다.
시무룩한 멜란드를 향해 투란이 다리 한 짝을 잘라내서 던졌다.
“일단 배가 잔뜩 고플 테니까, 잘 구워진 고기맛 좀 보고!”
멜란드가 날아오는 고기를 향해 손을 내밀었는데, 그보다 먼저 입술이 뒤집어지면서 잇몸과 이빨이 활짝 열린 깔때기 모양의 입이 날아오는 고기를 덥석 물고 있다!
텁, 터텁!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편으로는 얼굴 가득히 당황한 기색을 띄운 채로 멜란드는 황급히 손으로 입술 없이 길어진 깔때기 입에 물려 퍽퍽 사라지는 고기를 잡고 버텨야 했다. 그래서 겨우 반을 남기는 했지만, 입안에서 느껴지는 고기맛보다 먼저 멜란드가 맛봐야 한 것은 누나와 형들의 서늘한 눈빛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맛이었다!
“음, 뭐…… 하루에 익숙해질 수 없어도 이틀이면 되겠지.”
그런 상황에서 나온 투란의 하하거리는, 어딘가 어색한 웃음이 서린 말!
멜란드로서는 좌절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투란, 제대로 이야기해주지 않을 작정이냐?
드라고니아는 아주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아직 해가 저물려면 멀었지만, 아침부터 점심 무렵까지의 소동에서 피곤을 느낀 투란이 일찌감치 등대 아래층, 깊은 그늘이 어둠처럼 드리워진 곳에 모닥불을 만들고 꾸벅거릴 때였다.
‘어? 제대로?’
졸음 속에서 투란은 말을 걸어온 드라고니아를 향해 반사적으로 되묻고 있었다.
―랩티어, 디바우어의 입을 가진 랩티드라고 내가 자세히 설명해줬잖아. 녀석의 입이 지닌 한계점에 대해서도 말해줬고! 그래서 그렇게 사냥시키고 삼키게 한 거잖나? 그런데 왜 멜란드에게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고 저렇게 놔두는 거냐?
‘음? 음…… 너한테 나도 막 들은 이야기였잖아. 잘 아는 척하기도 어렵다고. 게다가…… 그 디바우어의 입인가 뭔가를 원했던 것도 아니고…… 그걸 빼놓은 채로 삼키게 할 수도 없었고……. 졸려, 나중에…….’
―나중은 무슨! 간밤에 그 입이 튀어나와 뭔 짓을 할까 감시하느라 자는 시늉만 하고 잠을 못 잤으니 지금 졸립지! 오늘 밤에도 그럴 거냐? 그러느니 차라리 자세히 설명을 해주는 편이 제어에 더 쉽지 않겠어?
‘야, 이보셔. 그 설명이 뭔 이야기인지 나부터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그냥 없는 셈 치고 알아서 자제하게 놔두면…… 멜란드가 알아서 할 거야. 황금매라고, 황금매. 마력 회수라는 파워 서클…… 그래, 우리 골든 서클로 비전마법의…… 에, 그거까지 터득했잖아, 그거…….’
―오의(奧義)?
‘응, 그래! 오의! 그러니까…… 멜란드가 문장으로 계속 부딪히다 보면, 알아서 제어할 요령을 알아차릴 거야. 기다리면 돼…… 자면서 말이야. 조심하면서 잘 수 있을 때 자둬야지.’
―잠깐, 내 설명이 어렵다는 말은 뭐였지? 설마 디바우어의 입이 원자론(原子論)에 근거한 물질구성(物質構成)의 연금술적(鍊金術的)인…….
‘바로 그거! 그 원자론부터가 뭔지 모르겠거든? 뒤에 나오는 말은 외우지도 못하겠어! 나도 못 알아듣는 걸, 뭘 설명하라고! 포기해. 원래 몬스터 로드는 그런 거 몰라도 몸으로 때우면서…… 여기는 몸으로 때우면서 뭘 익히기도 편한 곳이니까, 그렇게 일단 힘을 익히면 된다고.’
―언젠가, 반드시, 네 대가리 속에! 연금술이라는 학문과, 마법의 소양이란 것을, 강제로, 꼭, 쑤셔박아 주겠다!
‘나중에.’
이렇게 투란은 일단 드라고니아가 밝혀준 괴물 도마뱀, 랩티어의 실체에 대해서 네 남매에게 말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다. 비록 이 세이프티 하우스의 등대 근처를 맴돌면서 멜란드가 누나와 형들에게 시달리며 조금 과격하게 몬스터의 형상을 제어하느라 고생하지만, 전부 도움이 될 좋은 경험일 것이라 확신하며!
그리고 나흘이 더 지났다.
우걱, 우걱…… 쩝!
“오호? 잘 먹는데!”
투란이 감탄해서 말했다.
“음, 이제 제법 씹어먹는군.”
페란드가 칭찬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보탰다.
시알라와 제란드는 한숨 돌렸다는 듯이 조금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멜란드는 자신의 입에 고기를 물려놓은 채로, 아직 2, 3미터의 간격을 둔 채로 구경하는 이들을 향해 눈꼬리를 치켜뜨면서 분한 눈빛을 절절히 흘렸다. 이 고기를 사람처럼 씹어먹는지 어떤지, 고기를 던져주면 손보다 입이 먼저 튀어나오는지 아닌지 열심히 관찰하고 있는 모습이 밉다는 듯!
“뭘 그렇게 노려봐!”
시알라는 바로 막내 멜란드의 눈길에 울컥한 소리를 냈다.
누가 화를 내야 할 상황인가, 제대로 알라는 듯!
멜란드로서는 아무 말 할 수가 없었다.
투란이 하루 걸린다고 한 것이 하루 지난 다음에는 이틀이 되었고, 이틀이 지난 다음에는 사흘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흘이 전부 지나기 전, 이틀째 저물어가는 지금에서야 멜란드는 겨우 튀어나가려는 입을 억누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삼킨 몬스터의 기괴한 본성을 억누르는 데 마침내 성공했으니까, 좀 그럴듯하게 칭찬이라도 해주거나 환호하며 기뻐해주면 좋으련만…… 멜란드는 이제야 겨우 길 가다가 사람 머리 물어뜯을 멍청이 꼴에서 간신히 벗어난 사고뭉치로 찍힌 상태일 뿐이다!
그리고 누나와 형들, 투란 앞에서 멜란드는 그런 점을 부인할 수도 없었다.
우걱, 우걱.
처량하게 조금 더 사람답게 고기를 씹어 보이는 수밖에!
괴물 도마뱀의 본성, 주둥이 내밀어 구멍을 뚫듯이 덥석 물어뜯어 삼키는 꼴이 아닌 사람의 입술, 입으로 뭔가 먹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며칠 만이니…… 멜란드로서도 뭔가 묘한 감회가 있기는 했다.
투란이 그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고, 제란드가 이를 눈치챘다.
“왜? 뭔가 아직 이상한 것이 남아 보여, 투란?”
“음…… 멜란드한테 이상한 버릇이 생긴 것 같아서…….”
계속 갸웃거리며 투란은 대답했다.
제란드는 어리둥절했고, 페란드와 시알라도 ‘버릇?’ 하면서 멜란드를 바라봤다. 뭔가 딱히 달라진 행동이라도 있는가? 하지만 이전보다 맛있게 고기를 뜯어먹는…… 괴물이 아닌 사람처럼 혀로 입술을 핥으면서 맛있게 먹는 모습의 어디에도 그리 이상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멜란드도 자신의 어딘가가 이상하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차분하게 다시 고기를 뜯어먹으면서 자기 관찰을 했지만, 역시 느끼지 못한 채로 투란을 바라봐야 했다.
“흐흠, 그러니까…….”
결국 투란은 멜란드 앞쪽으로 살짝 몸을 기울인 채로, 손을 내밀어 오락가락하다가 갑자기 한쪽으로 홱 팔을 젖혔다. 마치 개구리를 놀리는 파리처럼!
그리고 그 순간, 멜란드는 입술을 오므리며 내민 혀로 입술꼬리를 핥았다. 며칠간 뭔가 얼굴 앞에서 오락가락하면 바로 주둥이가 튀어나가는 짓을 했고, 이제는 확실하게 억제하는 모습을 보인 셈이었다.
한데 투란이 바로 그 입술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한다?
“봐, 혀!”
누나와 형들이 뭐라기 전에 멜란드는 혀를 앞으로 쭉 내밀었고, 잘 보이지 않아서 무슨 이상이 생겼나 손끝으로 먼저 더듬어봐야 했다.
아무 이상 없었다.
“괜찮은데? 뭐, 보여?”
멜란드가 혀를 내민 탓에 나오는 묘한 소리로 물었다.
시알라나 페란드, 제란드는 갸웃하며 잘 모르겠다는 눈치부터 보였고 이는 바로 투란의 손을 움직이게 했다. 가볍게 손가락을 퉁기는 소리가 멜란드의 얼굴 주변에서 따닥거리며 울렸다.
“어?”
“에?”
“아!”
세 마디가 바로 페란드, 제란드, 시알라의 입에서 놀란 기분을 실은 채로 터져 나왔다. 이는 바로 멜란드에게 뭔가 이상한 상황임을 알려줬지만, 멜란드는 대체 뭐가 이상한 것인지 아직 몰랐다.
“왜? 뭔데?”
딱, 따닥.
다시 투란이 말보다 손가락 튕기는 소리를 냈고, 멜란드는 그 손끝을 따르면서 ‘뭔데, 뭐?’ 소리를 내다가 겨우 느낄 수 있었다. 그 느낌에 바로 멜란드의 손이 자신의 혀를 붙들었다
“뭐야, 이거?”
멜란드는 혀를 쥔 채로 이상한 소리를 터뜨리며 당황함을 드러냈다.
투란이 손을 내린 채로, 멜란드의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말한다.
“입을 내미는 대신에 혀가 나오는 거네. 자제하기 위해서 다른 동작으로 대신하는 것 같은데…… 음, 좋은 방법이야! 부적이 없을 때를 대비해서 그렇게 미리 훈련해두는 몬스터 로드도 있다고 들은 것 같거든!”
“헐?”
멜란드가 기막혀하며 투란을 바라봤다.
투란은 ‘진짜야, 진짜!’라고 중얼거리며 마주 봐 주고는…….
“어, 근데…… 혀 내미는 걸 보고 누가 날 약 올리냐고 덤빌 수는 있겠는데? 음……. 뭐 어쨌든 일단은 잘했네, 멜란드!”
라고 덧붙이고 있었다.
제란드가 이 소리에 바로 보탠다.
“머리통 씹어먹은 다음에 실수라고 하는 것보다는 그냥 약 올리려 한 짓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쪽이 낫기는 낫겠네.”
이에 페란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을까?”
시알라는 한숨을 쉬면서 결론을 내려야 했다.
“어쨌든, 우리가 지닌 기초마력으로는 세 번째 몬스터부터 조심해야 한다는 거잖아. 그거라도 확실히 알아둔 셈으로 하고…… 멜란드, 가는 길에 그 혀 내미는 짓도 고칠 수 있지? 고쳐.”
“헐?”
멜란드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은 이런 버릇이 생긴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불과 며칠 사이에 새로운 버릇이라니!
“음, 그러면…… 오늘은 자고 내일 해 뜰 무렵에 출발할까?”
투란이 일단 상황을 종결하는 말을 꺼냈다.
하지만 멜란드는 이 밤 또한 혼자 등대 한 층을 차지한 채로 보내야 했다.
갈라진 땅 너머의 회색 암벽을 마주 보며, 일행은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