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7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71)
Chapter 55. 갈라진 땅과 회색 암벽 Ⅱ
땅의 갈라진 틈새는 깊었고, 그 바닥은 그저 어둠으로 채워진 그림자처럼 보이기만 하는 곳이 많았다. 때문에 내려다보는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그 틈새로 떨어져 내리는 꼴은 피하고 싶다고, 본능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틈새가 말라버린 땅을 뒤틀린 그물처럼 채우고 있는 곳을 떨어지지 않고 지나려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서 땅이 맞물린 채로 길이 되는 곳을 고르든가, 폭이 좁은 틈새를 찾아서 뛰어넘든가의 방법이 당연했다.
날개 없이 걸어서, 발을 땅에 딛고 넘으려 하는 자에게는.
“으랏차!”
높은 소리를 터뜨리면서, 멜란드는 20여 미터의 폭을 지닌 틈새를 뛰어넘었다.
여전히 멜란드가 이름을 모르는 랩티어의 두 다리는 멀리 도움닫기를 위해 달린 거리가 몇 미터인지 과시하듯, 가뿐하게 20여 미터의 폭을 무시하는 듯했다. 거의 반쯤은 허공을 쏘아진 화살처럼 가로지른 기분에 멜란드는 착지하고 돌아서면서 환하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 광경에 시알라가 중얼거린다.
“좋기도 하겠다, 제자리 뛰기도 아니고 뒤에서부터 달려와서 뛰어넘고는.”
페란드가 이 말을 받았다.
“음, 누나…… 멜란드가 밧줄을 안 쥐고 뛰었거든.”
“뭐?”
시알라는 페란드를 향해 눈길을 돌렸고, 페란드 손에 다소곳하니 쥐어진 밧줄의 끝자락을 쳐다봤다. 제란드가 형과 누나를 보고, 건너편에서 신나 하는 막내를 향해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 물론 저편의 멜란드는 이쪽에서 주고받는 이야기 따위는 전혀 못 알아듣는 눈치였고…….
“솟는 바람이 심하긴 심하네. 저쪽에서 멜란드가 하는 말이 뭔 소리인지 전혀 들리지를 않을 정도라니.”
투란이 멜란드가 건넌 틈새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격렬한 소리 따위는 없이 조용히 밀려 올라오는 바람은 두껍고 세차게 하늘을 향할 듯하다가 회오리치고 사라지는 중이었다. 딱 저쪽과 이쪽 사이에 소리가 넘지 못할 정도로 방해만 하는 듯하지만, 어설프게 이 틈새를 넘으려 하는 자를 집어삼켜 바닥에 떨굴 힘도 확실하게 보이고 있었다.
때문에 멜란드는 한 3, 40미터 저쪽에서 달려오면서 바람의 상태를 보는 투란의 신호에 따라 뛰어야 했다. 그렇게 뛰면서 페란드의 손에 들린 밧줄을 낚아채서 저편에 도달해야 했는데…….
“도로 넘어오라고 할 수도 없잖아. 내 생각대로 해볼게.”
제란드가 상황을 정리하며 나섰다.
투란은 옆으로 비켜섰고, 페란드가 묻는다.
“도울까?”
“마력의 보조만 부탁할게.”
제란드의 대답에 시알라도 그 곁으로 움직였다.
투란은 조금 더 옆으로 물러서면서 셋이 마력을 연동시켜 마법을 발휘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주변을 경계했다.
콰아아― 우르릉!
땅이 치솟았고, 높이 30여 미터에 달하는 등대가 우뚝 선 채로 틈새를 내려다보듯이 자리 잡았다.
투란은 등대의 맨 아래층이 머리 위에 둥실 떠 있는 광경을 봤고, 이쪽의 네 사람을 보호하는 지붕처럼 자리 잡으며 단단하게 네 귀퉁이에 굵은 기둥을 내린 것도 확인했다. 이 정도라면 꼭대기에 올라가서 저쪽으로 길게 밧줄을 늘어뜨려도 될 듯한데…….
“자, 간다!”
제란드의 외침과 함께 천장의 한쪽이 올라가고, 한쪽이 기울어졌다.
―엥? 뭐야, 이 녀석?
투란과 비슷한 생각을 했던 듯,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하는 말을 투란의 뇌리에 쏟아냈다. 투란도 마찬가지로 조금 놀랐기에 그냥 지켜봤다.
등대는 기울어졌고, 저편을 향해 누워버렸다.
쿠웅.
멜란드가 먼지 사이를 뚫고 옆으로 도망가는 광경이 보였다.
그냥 서 있었으면 등대의 몽둥이질에 맞는 꼴이 될 뻔한 듯했다.
제란드가 다시 한 번 힘찬 소리를 냈고, 등대는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둥근 난간을 지닌 돌다리처럼 변했다. 바닥도 둥근 채로 저편까지 이어진 돌다리 주변으로 거세게 흘러간 회오리는 아까와 다르게 크게 우는 소리를 내며 흩어지고 있었다.
휘이이!
―아니, 왜 처음부터 다리를 만들지 않고!
드라고니아가 의문에 가득 찬 소리를 징징대듯이 토해냈다.
이는 투란에게는 금세 답이 떠오르는 의문이었다.
‘아, 그거 못 해서 저런 모양이네.’
―뭐? 왜 못 해?
‘야, 네 말대로 바람 사이에다가 마법으로 물체를 생성시켜 넣는 짓은 못 한다고! 나도 어렵드만! 바람이랑 마력이 뒤엉키면서 뒤죽박죽이었다고.’
―그게 어렵다고!
어이없어하는 드라고니아의 되물음에 투란은 그냥 팔짱을 낀 채로 손목의 맥박을 죽이는 자세가 되어 어슬렁거리면서 등대가 변한 돌다리 위로 올라섰다. 바닥이 웅웅거리는 꼴이 틈새에서 올라오는 바람이 자신의 보금자리에 걸쳐진 이물질을 치우겠다고 난동을 준비하는 낌새가 역력했다.
“어서 넘는 게 좋겠어! 서두르자고요오!”
외치면서 투란은 얼른 앞장서서 멜란드가 기다리는 저편으로 뛰었다.
제란드가 자랑스러우면서도 지친 표정을 짓다가 서둘러 뛰었고, 페란드와 시알라도 달렸다. 그리고…….
“등대를 몽둥이 삼아 사람을 패려고 하다니! 아무리 내가 밧줄 안 쥐는 실수를 했더라도 너무하잖아!”
멜란드가 징징대는 소리로 맞이해줬다.
짧게 뛰었지만 묘한 긴장감에 땀이 좀 맺힌 제란드는 그런 멜란드를 보며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페란드도 비슷한 낯빛을 띠었고, 시알라는 눈가에 살짝 힘줄을 곤두세운 채로 말문을 연다.
“그 혀, 정말 어떻게 해야겠다.”
투란은 한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로 킥킥거리는 중이었다.
멜란드는 나름대로 봉변당한 일에 대해서, 실수에 대한 벌치고는 과하지 않느냐고 억울해서 말한 것이지만 그 말과 함께 살짝살짝 날름대는 혀는 ‘내가 맞을 줄 알았어? 어림도 없지!’라고 뽐내는 듯이 보였으니!
확실히 입이 튀어나와 뭔가 덥석 구멍 내듯이 삼켜버리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역시 두고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닌 셈이었다.
그리고 시알라의 말을 시작으로 삼은 듯, 제란드와 페란드가 스윽 멜란드에게 등을 돌리면서 한쪽으로 움직여 두런대는 소리를 낸다.
“성질 더러운 놈 만나서 저러면 어쩌지?”
“글쎄…… 항상 제란드 네가 따라다녀도 문제겠지?”
“더 이상해 보이지 않겠어? 하나는 혀를 날름대고 하나는 나쁜 버릇이니 이해하세요 하면…… 어떻게 봐도 대놓고 시비 거는 거라고, 그거.”
“입에다가 뭘 씌워놓으면 어떨까? 왜 있잖아, 호흡용 마스크라고 입이랑 코만 가리는 거 말이야. 말하는 데 지장도 없고…… 간단히 대충 모양만 만들면 되잖아.”
둘이 이러는 틈새에 시알라가 끼어들면서 보탠다.
“마스크, 좋은 생각이네. 저렇게 날름대면 사람이 아니라 지나가던 몬스터도 열 받아서 뛰어올지 모르잖아.”
투란은 입을 막고 푸풋거리며 웃었고, 멜란드는 누나와 형 둘을 향해 으르렁거리고 말았다.
“이 인간들이……! 다 들려! 그딴 상의는 나 안 보는 데서 안 들리게 하라고! 나도 이러고 싶어 이러는 게 아니잖어!”
조금 더 이어질 수 있었던 남매 넷의 티격태격은 누워버린 등대, 돌다리가 파괴되면서 멈춰져야 했다.
휘이― 잇! 콰릉!
“히엔나.”
투란이 그 광경이 시작되는 순간, 남매를 향해 짧게 외쳤다.
남매 넷이 말을 멈추고 틈새로 깊이 떨어져 내리는 마법의 돌다리를 바라볼 때는, 모두 트리니티 히엔나의 팔다리를 한 채로 목과 얼굴 일부에도 털을 곤두세운 형상을 하고 있었다.
투란은 손발만 가볍게 히엔나의 형상으로 바꾼 채로 틈새에 고개를 내밀며 내려다보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까마득해서 검게 물든 틈새의 아래편에서 보이는 것은 여전히 없었다.
“역시 마법을 훼손하는 바람이었네. 마법사가 이곳을 건널 때는 가능한 한 마법을 쓰지 않으려 했다는 말이 이 바람 때문이었나 보네요. 몬스터 로드에게는 어떻게 못 하지만, 마법의 방호는 확실히 조금만 지나도 망가지나?”
말 끝에 갸웃하면서 투란은 페란드의 허리춤을 바라봤다.
역시 마법으로 만들어진 밧줄…….
‘아, 저건 그냥 만들고 끝이었지. 등대처럼 마법의 방어 따위는 없으니까 지속되지 않는 마법은 괜찮나?’
자신의 착각을 깨달으면서 투란은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시알라는 투란의 말을 듣다가 손끝을 올리면서 가볍게 속삭였다.
“비트.”
작은 불꽃의 조각이 시알라의 손끝에서 춤을 추며 날아올랐다.
시알라는 가만히 그 조각을 손끝으로 받쳐 올렸고, 지켜봤다.
불꽃의 조각은 바람결에 흔들리며 찰랑이다가 사라졌다.
“이런 거는 괜찮은가 봐, 투란.”
시알라가 간단히 투란이 생각한 바를 토하듯이 말했다.
작게 생성된 불꽃이 유지되는 시간은 어차피 짧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는 어떤 방해도 없이, 불꽃 조각의 마법은 유지된 셈이었다.
페란드가 조용히 정리하듯이 중얼거린다.
“단기(短期), 즉효(卽效)인 마법만 괜찮다라…… 그러고 보니 겔퍼는 이곳을 지날 때는 밤새 지속되는 경보(警報)나 경계(警戒) 마법을 쓰지 않았어. 불을 피운다든가, 잠깐 쓸 물을 가죽 주머니에 채우는 정도였지.”
제란드도 말을 더한다.
“마법을 썼을 때는 꼭 그 자리에서 어느 정도 머물기도 했어. 마치 뭔가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잠깐 아닌 척하고 숨는 것처럼…….”
멜란드는 주변을 둘러봤고, 누나와 형들의 말, 투란의 이야기를 되새기듯이 눈알을 굴리다가 불쑥 말한다.
“그러고 보니까…… 여기, 지나왔던 곳 맞는 것 같은데? 저기 암벽의 굴곡이 딱 우리가 새벽에 걸으면서 보던 거 아냐? 이 근처에서 새벽까지 쪼그리고 앉아서 자다가 일어났었잖아.”
이 이야기는 곧 시알라와 페란드, 제란드가 주변을 둘러보게 했고 곧 동의를 얻어냈다.
“그러네. 저쪽이었던 것 같네.”
제란드는 구체적으로 방향을 잡았고…….
“틈새를 바로 넘지 못해서 계속 빙빙 돌며 헤맨 곳이니까, 확실히 기억나네.”
페란드에게는 살짝 씁쓸한 말투로 속삭이게 했다.
그때의 마법사 겔퍼는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었고, 남매가 맏이를 찾는 데 아낌없이 도움을 주는 자였다. 비록 그 학파의 중요한 마법을 찾는 중이었다고는 해도, 네 남매에게 정말 필요한 것 이상이라고 느낄 정도로 섬세하게 돌봐줬었다.
시알라가 미묘하게 눈가를 찌푸리다가 말한다.
“그때 여기를 뭐라고 했는데…… 음…… 아, 광야(廣野)의 미로(迷路)라고 했었어!”
투란은 가만히 오가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냥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은 경험하지 못한 낯선 추억 같았으니까.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흠칫하며 놀라며 윌 라이트의 맥동을 바로 세게 휘둘러서 투란의 뇌리에 속닥대고 있었다.
―광야의 미로! 여기가?
‘알아?’
투란은 슬슬 주변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면서 미심쩍은 기분을 그대로 흘려내며 되물어야 했다. 이미 이 갈라진 땅, 틈새를 건너기 시작한 지가 사흘째였다. 그 사흘 동안에 아무것도 모르던 드라고니아가 새삼 이름을 듣고 놀라다니, 괴상하잖은가.
페란드가 누나의 말에 의아하다는 듯이 대꾸한다.
“알려지지 않은 미로라고 하지 않았나?”
제란드도 ‘그러지 않았나?’ 하는 소리를 더했고, 멜란드가 기억났다는 듯이 말한다.
“알려지지 않은 광야의 미로, 그 일부가 여기 나타난 채라고 했었어. 하도 신기하게 말해서, 대체 뭔 소리인가 모르는데도 기억해버렸네.”
“그래, 그렇게 말했어.”
시알라가 겨우 온전하게 기억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페란드와 제란드도 잠깐 더 기억을 더듬는 듯하다가 ‘그러네.’라며 끄덕거렸다.
투란은 계속 주변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며 짧게, 소리 없이 드라고니아에게 말한다.
‘야, 아니란다. 좀 다르다네.’
―같은 거다, 이 바보야!
세찬 대꾸가 바로 돌아왔다.
‘힝, 왜!’
―얘기가 길어. 그보다…… 여기서 이렇게 마법을 썼다면, 일단 쉬는 편이 좋아. 오래가고 강력한 마법은 이 틈새의 바람을 끌어들이게 되고…… 저 아래의 영역을 넘어서 마물(魔物)을 끌어낼 수 있다. 마법의 흔적이 제대로 지워지고, 진정될 때까지 정말 쉬는 편이 좋아.
‘마물?’
―몬스터라고 하기 힘든 놈들이거든? 피곤하기만 할 거야. 한번 나오면 여길 벗어날 때까지 계속 따라붙는다. 보고 싶냐?
‘관둬.’
투란은 짧게 드라고니아에게 대꾸하고, 남매를 향해 돌아섰다. 짜악하고 가볍게 손뼉을 치며 투란의 입이 열린다.
“자, 그러면! 마법사도 쉬어갔다니, 우리도 쉬어가죠! 이 근처를 빙빙 돌았다면, 기억나는 대로 다시 방향도 잡아보고, 암튼 쉬어봐요.”
네 남매는 곧바로 찬성했고, 간략한 야영(野營)의 준비를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