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7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72)
낮게 쌓아올린 돌 울타리를 두른 채로 네 남매는 잠들어 있었다.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이든 일단 울타리에 막혀 비켜 가게 해둔 채였고, 두툼하니 흙으로 자아낸 담요를 덮고 있으니 따로 모닥불을 피우지 않아도 되는 상태였다.
투란은 원래라면 모닥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놓인 지도, 울퉁불퉁하니 그림을 그렸다기보다는 주변의 모양을 장난감처럼 만들어놓은 꼴인 지도를 보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늘에는 별빛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반짝였고, 달은 오늘이 날이 아니란 것처럼 어디론가 숨어 있는 듯 보이지 않았다. 구름에 가려졌다고 해야 할지, 저 암벽 너머 지평선에 걸쳐 있다고 해야 할지 애매한 느낌인 달의 흔적이었다.
조금 더 주변을 둘러본 다음, 낮은 돌 울타리 너머를 보는 자세를 꾸미고서 투란은 손목에 집중해서 묻는다.
‘자, 모두 잠들었고 내가 경계를 맡은 때라고. 그럼 말해봐. 광야의 미로라는 게 뭐야? 얼마나 위험하지?’
―혼돈의 틈새라고도 부르는 거고…… 소용돌이 늪과 좀 비슷하다. 거기 빠져들면, 정말 어디로 나가게 될지 몰라. 대부분의 경우에는 마경(魔境)의 어딘가로 이어지니까…… 빠져서 좋을 일은 거의 없다.
‘소용돌이 늪?’
다른 부분보다 먼저 투란의 관심을 끈 한마디였다.
―그래, 이 미로는 혼돈이 세상에 거의 직접 간섭하면서 생겨난 것이라 그 틈새가 세상 어디에 닿았는가를 알 수가 없어. 소용돌이 늪에 빠지면 어디로 빠져나갈지 모르는 것처럼, 이 미로도 그 안을 헤매게 되면 어디로 갈지 전혀 모른다. 심지어…… 언더월드로 통하기도 한다니까.
‘야, 언더월드라니? 그거 죽어서 가는 곳 아니야?’
―맞다. 삶과 죽음의 경계 너머로까지 이어지는 미로, 그게 바로 광야의 미로다. 때문에 고대의 전쟁에서 악마들이 수시로 들락였고, 우리 쪽은 그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미로를 파괴하려고 했었지. 하지만 이 미로는 파괴할 수 없었고, 할 수 있는 일은 찾아내지 못하게 묻어버리는 것뿐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상하잖아, 그거…… 악마들은 미로에서 안전했어?’
―그건 아니야. 악마들도 처음에는 이 미로를 통해서 자신들이 왔던 곳,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돌아갈 길을 찾는 대신에 언더월드의 경계를 넘어온 괴물들만 잔뜩 끄집어내서 세상에 풀어놨거든. 그 괴물들 중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은 자신들의 병력으로 삼고 말이야. 말하자면…… 돌아갈 길을 못 찾는 대신에 최대한 자신들의 이점으로 사용하려고 한 셈이지. 거기서 나온 것이 세상에 도움이 될 리가 없었고…….
‘헤에…… 그런데 대체 어떻게 파묻었는데? 오면서 전혀 몰랐어?’
투란은 갈라진 땅과 틈새를 둘러보며 갸웃했다.
여기처럼 지상으로 돌출된 틈새, 그 아래가 미로라면 이건 딱히 파묻어 감췄다고 하기가 어려웠다. 혹은 땅속에 숨겨뒀는데 이 춤추는 산맥이 특성으로 인해 이렇게 다시 땅을 가르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이렇게 넓은 지형에 펼쳐져 있는 미로란 것을 어떤 식으로 땅 아래로 밀어넣었을까?
오면서 만난 폭이 넓은 틈새는 20 혹은 30미터 정도였고 좁은 곳도 5, 6미터는 가볍게 넘는 폭이었다. 좁은 곳은 히엔나의 다리를 이용하면 가볍게 넘을 수 있었고, 10여 미터 정도를 넘는 곳은 멜란드가 랩티어의 다리를 이용해 밧줄을 쥐고 먼저 넘고, 그다음에 다들 밧줄을 잡고 넘어왔다. 막판에 멜란드가 실수를 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넘을 때마다 아래편의 분위기가 좀 묘하다 하면서도, 드라고니아는 이곳이 광야의 미로이니 뭐니 하는 곳인 줄은 몰랐던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즉, 드라고니아가 윌 라이트의 마법으로 주변을 감지하면서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고, 이런 곳에 미로가 자리 잡았을 거란 생각도 전혀 못 했다는 뜻이다.
투란에게는 그 모든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대규모 지형변화를 일으키는…… 그러면서 탐지를 막는 조건을 붙이는 대마법이 발휘되었다고 했다. 정확하게 어떤 식으로 구성된 마법인지는 기록에도 없고, 우리 선대의 아칸들도 알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
‘너네가 쓴 마법 아니야?’
―아니다. 그 마법은…… 그 미로를 통해서 시대(時代)를 초월(超越)해버린 대마도사의 마법이었으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미로를 통해서 초월을 해? 시대를?’
―언더월드로 통할 지경인 미로야. 가끔 시간조차 뒤죽박죽 엉켜버리기도 하는 곳이란 말이다. 때문에 자신이 살던 시간과 전혀 다른 시간 속으로 빠져버리게도 하지. 거기 빠져버린 대마도사가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마법을 발휘했다는 거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군. 어쨌든 빠지면 안 된다는 건데, 저기서 마법을 느끼고 나온다는 마물은 또 뭐야?’
―수호자. 미로가 감춰질 때, 악마들이 다시 그 미로를 찾아내지 못하도록 해놨지만 악마가 괜히 악마가 아니라서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은 다른 자를 이용해서 기어코 저지르려 하거든. 그래서 대마도사는 애초에 악마가 다시 찾을 수 없는 미로에 악마가 아닌 다른 누군가 접근하는 것에도, 뭔지 모를 것이 찾아올 경우에도 대비해서…… 한편으로는 미로 안의 것이 밖으로 나오는 것도 막을 겸해서 수호자를 미로에 배치해놨다. 시간에 의해 파괴되지 않는 수호자, 스톤 가드라고 불리는 부정(不定)의 형상(形相)을 지닌 수호자를 말이야.
‘좋은 말 같은데, 마물이야?’
―누가 접근하든 다 쫓아내려고 하거든. 적당히 쫓겨나지 않으면 멸절(滅絶)시키려 하니까, 당하는 입장에서는 괴물이나 다름없고 악마로 착각하기도 쉽다. 그래서 마물이라고 불러. 몬스터는 아니지만 몬스터 같은 녀석들이지.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머리를 벅벅 긁적이고 말았다.
뭔가 대단한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쉽게 이해가 되질 않는 이야기였다. 한편으로는 살살 겁주면서 말하기 꺼리는 낌새를 보이는 드라고니아에게 더 캐묻는 것도 귀찮아지고 있었다.
‘어쨌든 마법을 쓰지 말고, 너무 아래쪽으로 가까이 가지 않으면 상관없는 거네? 가능하면 틈새를 직접 넘지 않아야 하고?’
―맞아. 이렇게 땅을 가르고 노출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대마도사의 이적(異蹟)은 그 위력을 유지하고 있다. 금색의 마도사 아겔페스조차도 두려워하게 할 정도로 말이지. 가능하다면, 이어진 곳을 따라서 틈새와 거리를 둔 채로 지나가는 것이 좋다.
‘음, 며칠 동안 그냥 넘어왔는데…… 낌새 이상한 틈새만 비켜가면 되겠지. 되도록 빨리 통과하는 게 더 낫잖아?’
―그도 그렇군.
‘아, 그런데…… 이 미로에 물이라도 채워졌나? 아까부터 물소리가 나는데?’
―어?
‘들어봐.’
―그렇군. 이건…… 아, 미로의 어느 부분이 세상 어딘가에서 물과 만난 모양이군. 그럴 경우에는 미로 안으로 물이 채워질 때도 있다. 어쩌면…… 이 틈새가 무슨 강줄기처럼 변할 수도 있어.
‘헐?’
투란이 어이없어하는 사이, 폭음이 저편에서 울렸다.
불구름이 먼 곳에서 피어오르는 광경이 환하게 그 주변을 밝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시알라가 벌떡 일어나면서 외치는 소리도 투란의 뒤통수에 울린다.
“뭐야, 뭐가 터졌어?”
덩달아 세 형제도 바로 깨어났다.
투란은 네 남매를 향해, 드라고니아가 한 말을 바로 전한다.
“울타리 안에 있으면 안전할 테니까…… 음, 그냥 구경해도 될 것 같은데?”
자세한 부분은 전하지 못한 채, 대강 얼버무리는 말이었지만 네 남매에게는 그럭저럭 통한 듯했다. 그리고 투란은 곧 남매의 반응에 신경을 여유가 없어졌다.
저편 먼 곳에서 치솟은 불구름, 그 속에서 시커멓게 날개를 펼친 형상이 바로 투란의 가슴을 후끈하게 만들었고 뇌리에 생생한 기억을 되살아나게 했으니!
‘어, 저놈!’
―불꽃의 엘레멘탈 몬스터로군. 뒤틀린 세계의 파편(破片)과 미로가 닿은 모양이야. 하지만 저런 거는…….
드라고니아가 설명하는 말은 투란에게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불구름 속에서 시커먼 날개, 강력한 발톱을 펼친 놈은 뭔가를 피하려는 듯했고 그 과정에서 불구름을 어느 정도 벗어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곧 그놈을 쫓아 불구름을 관통하며 따라붙은 자갈과 돌 더미가 흙먼지를 짙게 휘날리며 움직이는 광경이 이어졌다. 그 자갈, 돌 더미가 닿기 전에 시커먼 날개가 불티를 휘날리며 으스러졌고 발톱이 재처럼 흩어지는 모습이 보였지만…… 자갈과 돌더미는 그 잔해마저 세상에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뒤덮으며 다시 틈새로 쓸어담아 상황을 끝내고 있었다.
그리고 불구름이 솟구쳐 올랐던 곳에서 이번에는 세찬 물줄기가 솟아났다. 이 물줄기는 불구름처럼 한 곳의 틈새로만 나오지 않았고, 갈라진 지형의 곳곳에서 펑펑 터지듯이 치솟았다. 그 속에 꿈틀거리며 이빨과 함께 거대하고 긴 몸을 자랑하는 놈이 여럿 있었고, 이는 투란의 기억을 다시 짙게 건드리는 광경이었다.
‘아하하…… 세상의 어딘가에 닿을지 모르는 미로라고? 정말 그러네. 이 산맥의 아주 깊은 곳에도 닿아 있다니…… 아하하.’
―투란? 저 정령의 뒤틀린 현상을 본 적이 있었어?
‘아, 그래. 물려 죽고 잡아먹힐 뻔했지. 아하하…… 망할 것들!’
―너 대체…… 어디까지 깊이 들어가 있었던 거냐!
‘몰라! 어, 근데 저거 물결에서 벗어나니까 그냥 부서지네?’
투란은 갸웃하면서, 아까 불구름 속에서 튀어나온 녀석처럼 물결을 가르며 튀어나온 길고 굵은 뱀을 닮았지만 뱀 일리가 없는 형상이 저절로 으스러지는 것에 대해 의아해했다. 그 또한 물결을 가르며 나온 자갈과 돌더미에 휩쓸린 채로 다시 틈새로 끌려들어가기는 했지만…… 웬지 저것들은 불구름, 물줄기에서 벗어나면 저절로 죽어나가는 듯하잖은가?
―세계의 이치가 일그러진 곳에서 태어난 것들이니까. 세계의 이치와 닿으면, 저절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조금 전에 놀란 듯한 낌새를 지우면서, 침착하게 나오는 드라고니아의 말이었다.
‘저 돌, 자갈이 스톤 가드?’
―맞아. 어쨌든 일그러진 것이 세상에 그 흔적을 남기지 못하도록 다시 주워 담는 중이라 할 수 있겠지. 상대가 뭐냐에 따라서 크고 강력한 형상으로 뭉칠 수도 있다. 그러니, 상대하지 않는게 좋아.
‘그래…… 나도 저런 것들이랑 다시 엮이기 싫어.’
투란이 소리 없이 되뇌는 사이, 곁에서는 놀란 시알라와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뭐, 뭐야! 저거 거머리야 뱀이야?”
“틈새 위아래로만 오르내리는 건가? 우린 괜찮은 건가?”
“왜 물에서 벗어나니까 부서져!”
“저 돌멩이 더미는 뭐야? 날아다니는 거야, 저거!”
투란은 연이어 튀어나오는 넷의 목소리에 겨우 지난 기억을 떨쳐낸 듯, 돌아보면서 물을 수가 있었다.
“저번에 여길 지날 때는 본 적 없었어?”
바로 시알라가 고개를 저었다.
페란드도 멜란드도 고개를 저었고, 제란드는 약간 갸웃거리다가 대답을 한다.
“꿈을 꿨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마법사가 억지로 우릴 재워서 못 본 것일 수도 있잖을까?”
이는 바로 시알라, 페란드, 멜란드를 놀라게 했고 투란의 호기심을 끌어냈다.
“무슨 말이야?”
누나와 형, 동생을 둘러보면서 제란드는 느릿하니 투란을 향해 말한다.
“이곳에서 마법사가 우리에게 늘 먹이던 것이 있어. 아주 달콤하고 피로를 덜어주는 스프였지. 하지만 그 스프를 마시고 나면 늘 금세 졸음이 왔고, 모두 깊이 잠들었거든. 그때…… 나는 가끔 묘한 꿈을 꿨어. 뭔가가 틈새에서 나와 주변을 날아다니는 그런 꿈…… 저번에 우리가 여길 지나는 데는 거의 두 달이 걸렸으니까, 틈새를 넘지 않고 이어진 곳만 따라 걸었거든. 꿈은 몇 번 꾸지 않았지만…… 너무 생생해서 기억해. 다만…… 그 꿈마다 마법사가 내게 말했어, 꿈이니까 잊으라고. 지금까지 잊고 있었는데…….”
말끝을 흐리면서 제란드는 낮은 울타리 너머를 바라봤다.
투란은 갸웃하다가 드라고니아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암시로군. 기억하지 말라는 암시를 계속 걸었던 모양이네.
‘응? 암시?’
―아, 간단한 요술이야.
‘이제는 풀렸고?’
―아겔페스의 영향이 사라졌으니까. 애초에 큰 영향을 끼칠 의도도 아니었던 모양이고…….
콰아아!
물줄기가 조금 가까운 곳에서 높이 치솟았다.
잠시 허공에서 요동치는 듯한 강줄기가 보였고, 틈새를 메우듯이 다시 떨어져 내리며 안개와 작은 비를 뿌리는 듯했다.
그 물줄기 속에 담겨서 꿈틀거리며 이빨과 긴 몸을 자랑하는 것들은 물을 가르고 몰려나온 돌더미에 잡혀 다시 틈새 깊은 곳으로 끌려 들어갔다.
하지만 물줄기는 틈새를 가득 메우면서 채우고 있었다.
투란과 네 남매는 우두커니 돌 울타리에 기댄 채로 밤을 새며 구경했다.
이에 호응하듯 가끔 터지는 물줄기와 불구름은 뒤엉기고 흩어지며 세상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묘한 광경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