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7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73)
콰아, 쏴아아! 철썩!
물결이 흔들리며 괄괄 흐르는 풍경이 그에 어울리는 소리를 내면서 물보라를 피워내며 흘러갔다. 여기저기, 느닷없이 생겨난 크고 작은 샘이 이어지며 그물처럼 흘러가는 물줄기가 땅이 갈라진 틈새를 메우는 광경이었다.
“음, 물이네.”
살짝 그 물가에서 손을 담가 한 움큼 퍼낸 다음에 투란이 소감을 말했다.
밤에 깨어나서 줄곧 지켜보고 있었고, 해가 솟으며 어둠과 별빛을 지워가는 광경까지 모두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불구름이 사라지고 물결이 치솟으며 찰랑거리면서 차츰 틈새를 메웠는가를 잘 보기는 봤다.
하지만 투란으로서는 드라고니아의 설명과 어울리지 않는 이 광경이 쉽게 납득이 가질 않았다.
‘세상 어딘가로 통하는 미로가 물로 채워진 거야?’
과연 이 광야의 미로가, 몽땅 이렇게 물로 채워질 수가 있는가?
지키고 있다는 돌, 자갈의 스톤 가드가 이렇게 경계 밖으로 물이 새서 고이는 광경을 두고 보는가?
―물이잖아. 이상한 힘 따위는 전혀 깃들지 않은…… 이 세상에 명확하게 허락된 물이라고.
‘어? 그 미로를 지킨다는 놈은 그러면?’
문득 투란은 그렇다면 사람이 미로를 들락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런 투란의 생각을 드라고니아는 바로 부정하는 말을 꺼낸다.
―그래. 막아야 할 대상은 뒤틀리고 왜곡된 경우와 미로 안에 떨어진 자들…….
‘응? 떨어진 자들?’
―악마가 들락이던 미로야. 가끔 짐승의 몸을 빌릴 수도, 인간의 몸을 빌릴 수도 있는 악마종이 있다. 그러니까, 어떤 경로로든 물이나 불처럼 세계와 자연의 요소가 아닌 생명이 깃든 것도 스톤 가드는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막는다. 그렇게 수호의 규약이 정해졌다고 했다. 그러니까…… 어린 드라고니아에게도 호기심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말이야.
‘이 물, 금방 빠지려나?’
―모르지. 저 남매는 본 적이 있을까?
드라고니아가 꺼낸 물음에 투란은 시알라부터 차례대로 넷을 둘러봤다.
모두 멍하니 눈을 깜박이면서, 밤새 이 갈라진 땅을 채우며 번져 나가는 물줄기에 뭐라 할 말을 잃은 표정들이었다. 익숙한 광경을 보는 낌새는 전혀 없었고, 그야말로 이게 웬일이냐고 놀라는 표정이었다.
이곳을 꽤 시간을 들여서 건넜다고 했어도, 전혀 본 적이 없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시알라, 이런 경우에 대해서 뭐 들은 것 없었어요?”
투란은 그래도 일단 물어봤다.
직접 보지 않았다 해도 어떤 경고 따위는 들었을 수도 있으니까.
금색의 마도사 아겔페스가 본래 자신보다 조금 어설프고 낮은 수준의 마법사 겔퍼 노릇을 하고 있었다 해도, 이런 변화가 격렬한 상황을 알고 있었다면 뭔가 미리 경계하는 말을 해놓을 수 있었다. 딱히 남매의 상황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해도, 자신까지 휩쓸릴 수도 있었을 테니…….
시알라는 고개를 저으면서 페란드와 제란드 쪽을 돌아봤다. 자신은 들은 바가 없지만, 동생들이라면 뭔가 눈치챘을 수도 있다는 듯한 눈길이었고 멜란드가 먼저 반응해 왔다.
“눈에 띄게 뭔가 변하기 전에 서둘러서 지나야 한다고만 했었지. 스프 마시고 난 바로 뻗어서 다른 거는 모르겠는걸. 제란드 형은? 꿈꾸는 것처럼 또 뭔가 봤어?”
제란드가 고개를 저었다.
“꿈이라고 얼버무려놨고, 자세한 말은 없었지. 이곳을 지나기에 적당한 시기를 알고 있었고, 거기에 맞춰서 우리를 데려온 것 같기는 하지만…… 따로 자세한 설명은 전혀 하지 않았잖아.”
이 말에 페란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서 귀하게 들은 이야기라고, 그중에는 잘못된 이야기거나 틀린 것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나씩 전부 확인해봐야 할 정도로 이곳이 위험하다고 했으니까. 넘어오기 전에 우리에게 주의 줬던 정도가 고작이었지, 분명히…….”
“주의? 어떤?”
투란이 귀를 쫑긋하면서 불쑥 물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없더라도, 남매가 이곳을 넘을 때 들었다는 색다른 주의사항이 있다면 알고 싶다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이에 시알라가 한숨 섞인 대답을 한다.
“여기 들어서기 전에 우리가 했던 말, 투란은 이곳을 처음 본다고 해서 우리가 말했잖아. 틈새는 빠지면 안 되고, 가능한 한 이어진 길을 따라 빠르게 통과해야 한다고…… 그게 마법사가 우리에게 한 주의사항의 대부분이야. 지치지 않게, 꾸준히 걸어서 주변을 조심하고…… 그 정도였고, 뭐가 튀어나온다거나 이렇게 물이 채워지는 경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었어.”
투란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건 정말 알아서 해야 할 상황인데…… 음, 마법사가 한 말의 한 가지 정도는 무리 없는 것 같고 바로 그 말대로 해야 할 것 같네.”
시알라는 곧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페란드와 제란드, 멜란드 역시 귀를 쫑긋했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주의사항 중에 어떤 것이 쓸모가 있었을까?
투란이 살짝 웃으면서 네 남매에게 짧게 말한다.
“다른 일 또 생기기 전에 얼른 지나가는 것. 마법사랑 왔을 때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갈 수 있을 테니까, 얼른 여길 건너자고요오!”
“그렇네.”
시알라가 가벼운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마법사의 주의사항이 아니더라도, 이런 위험한 곳에서 뭔가 예상할 수 없는 변화를 만나게 되면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라는 말은 흔했다. 그 흔한 말을 지킬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찾아오면 그 때는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자, 물도 충분하니까…… 으엑?”
투란은 손바닥을 살짝 혀로 핥으며 말하다가 인상을 구겼다.
이는 마음을 조금 놓고 있던 네 남매를 흠칫 놀라게 했는데…….
“뭐야, 짜! 왜 물이 이렇게 짜!”
다음 순간에 투란이 손을 흔들면서 하는 말은 이랬다.
“짜?”
“짠물?”
“바닷물?”
시알라부터 페란드, 제란드가 어리둥절한 소리를 냈고, 멜란드는 얼른 물가에 붙어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혓바닥을 긁듯이 묻혀보고 있었다. 그리고…….
“으앗, 이거 진짜 짠데? 으, 조금 쓰기도 하다!”
바로 투란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제란드는 다시 ‘짜고 좀 써? 그럼 바닷물인데?’라고 중얼거리면서 멜란드처럼 물을 찍어 맛봤다. 시알라와 페란드는 의아한 듯이 눈을 깜박였지만 굳이 맛을 보려 하지는 않았다.
“진짜 바닷물 같은데, 이거?”
결국 침을 뱉으면서 제란드가 말했다.
투란이 하핫거리면서 말한다.
“난 바다 구경도 못 해봤는데, 바닷물부터 맛본 거야? 아하핫, 이러다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걸 여기서 구경하려나? 아, 진짜 바다도 아닌데? 아하핫, 얼른 가죠, 얼른!”
다른 의견은 없었다.
의외의 변화가 심하면 심할수록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는 기대하기보다는 보지 않기를 희망하게 되는 곳이었으므로!
그래서 투란과 남매는 보다 빠르게 방향을 잡으며, 회색의 암벽을 향해 나아갔다.
마법으로 흙을 엮어 만든 한 무더기의 밧줄을 어깨에 둘러 감고, 폭이 좁은 물줄기는 그대로 뛰어넘으며 폭이 넓은 곳은 밧줄을 땅에 박고 몸에 감은 채로 뛰어넘다가 빠지면 헤엄치면서, 갈라진 땅의 틈새가 비어 있을 때보다 빠르게 나아갔다.
“아, 눈에 훤히 보이는데 엄청 멀어!”
투정 부리듯이 투란이 투덜거렸다.
“그렇지? 정말 지겨웠어!”
멜란드가 바로 호응하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해가 정상에서 많이 기울어지고 있었고, 주변의 물줄기가 갑자기 넘쳐난다 하더라도 쉽게 쓸려나가지 않을 정도로 대강 수십 미터 정도의 넓이를 갖춘 빈터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제란드는 한편의 물가에 다가가 다시 물맛을 보며 침을 뱉는 중이었고, 페란드와 시알라는 그런 짓 하지 않고 조용히 익혀온 대로 마법 ‘엘레멘탈 링’을 이용해서 물주머니를 채우고 있었다.
투란은 제란드가 고개를 저으며 되돌아오는 꼴을 보다가 묻는다.
“여전히 물만…… 짠물만 가득?”
제란드는 혀를 손바닥으로 털기까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멜란드가 그 꼴에 자기 혀까지 짜고 얼얼하다는 듯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투란은 시알라와 페란드가 물주머니를 사람 수대로 모두 부풀려 올리는 것을 보다가 멀리 눈길을 돌렸다. 틈새가 메워져서 일단 쉽게 바닥에 빠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마시기 곤란한 짠물뿐이라서 지속적으로 마법을 통해 마실 물을 마련해야 했다. 그나마 짠물이라도 확실히 넉넉하니 ‘엘레멘탈 링’으로 마실 물 만들기가 쉬운 점도 다행이기는 한데…….
‘지네가 없어! 새도 없어!’
투란에게는 다른 것보다 걸리는 부분이었다.
며칠 굶었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일행이 모두 이 정도에는 체력저하도 그리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강력한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었고 이런 경우에도 나름대로 대비해서 이 갈라진 땅에 들어서기 전에 잔뜩 먹어두고 먹을 것도 준비해왔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저 회색의 암벽이 생각보다 멀었다.
올 때 거의 두 달 가까이 걸려서야 이 갈라진 땅을 통과했다는 말이 저절로 이해가 될 지경이었다.
그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는 중인데도, 벌써 며칠째 회색 암벽은 눈에 보이기만 하고 그림자조차 닿지 않을 거리 저편이었다.
거기에 묘하게도 이 근처에는 시체를 쫓는 지네도, 하늘을 날며 사냥을 하는 새도, 뛰어노는 괴상한 짐승의 흔적도 없었다. 심지어 몬스터조차 이 땅에서는 기척이 없을 지경이다!
‘몬스터는 여기 얼쩡대다가 바로 빠진다고 치고, 왜 새도 없고 지네도 없냐고! 젠장.’
먹을 것은 사냥을 통해서 대충 구하면 되는 곳이 바로 이 춤추는 산맥의 안쪽 깊은 곳이 지닌 유일한 미덕이었을 텐데!
―기껏해야 열흘, 넉넉히 잡아도 보름이면 걸어서 지날 곳이라니까. 틈새 탓에 얽히고설켜서 인간의 보행(步行)으로 두 달 걸린 거지. 춤추는 산맥 전체에 비하면 꽤 작은 지역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이 정도 크기로 텅 빈 것처럼 보이는 곳은 여럿 있다니까.
달래는 것인지 놀리는 것인지 모를 드라고니아의 잔소리였다.
투란에게는 확실히 놀린다는 쪽으로 느낌이 기울어지는데…….
“그래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통과하고 있어. 어쩌면 준비한 식량이 바닥나기 전에 지나칠 것 같은걸.”
페란드가 뭔가 여유롭게, 둘러보며 말하고 있었다.
아무 일 없이, 그래서 안전하게 가는 길인 것은 좋지만 역시 지루함과 함께 찾아오는 단조로움의 위협, 먹을 것에 대한 상황을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투란은 살짝 입술을 삐죽거렸다.
원래 눈에 보이는 광경을 보고 제멋대로 대충 잡았던 시간은 한 여섯 일곱 날이었다. 투란에게는 정말 이런 텅 빈 채로 갈라지기만 한 땅을 지나는 데 그 정도면 아주 넉넉하려니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 생각을 품자마자 드라고니아가 바로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면서 최소한 열흘 이상을 잡으라고 했었다. 그런 드라고니아의 말은 전혀 듣지 못했을 텐데, 시알라나 페란드는 아예 한 달 정도는 아껴서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고기를 쟁여서 큰 배낭에 담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설마 했는데, 정말 생각 이상으로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곳이었다.
‘와, 아무것도 없다는 게 이렇게 짜증 날 줄은 몰랐어! 혹시 뭐든 물속에 지나가는 것 없나?’
결국 이 지경에 이른 생각을 하며 투란은 뒤로 발라당 드러누웠고…….
―조용하면 다행이지!
드라고니아는 으르렁거렸다.
멜란드가 눕는 투란을 보면서 헤헷거리다가 페란드와 제란드까지 앉아 있는 상황에서 서 있는 시알라에게 말한다.
“아침부터 계속 뛰고 헤엄쳤잖아. 누나도 좀 앉아서 쉬어.”
“저게 뭐지?”
시알라의 대답은 전혀 멜란드의 말과 관계가 없었다.
투란이 발딱 일어나면서 시알라가 보는 쪽을 봤다.
페란드와 제란드도 엉거주춤하니 반쯤 일어서며 주변을 경계했고, 멜란드는 ‘엥?’ 하면서도 일어서고 있었다.
물결이 철렁대는 것과 다르게, 물속에서 뭔가 튀어 오르면서 물살의 흐름에 엮여 흘러내려오는 듯한 광경이 보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없던 것이 새로 물속에서 튀어 오르는 듯이 보였다.
투란은 눈을 가늘게 하며 그것을 좀 더 자세히 봤고, 곧 의아한 소리를 냈다.
“어라? 저거…… 왜 저리 작지?”
“응? 투란, 저게 뭔지 알아?”
“어? 어…… 그러니까…….”
시알라의 물음에 투란은 조금 말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쇠로 된 비늘을 두른 물고기, 조금 괴상한 모양으로 이리저리 삐죽한 그 형상은 확실히 투란에게, 투란이 삼킨 드레이크에게 익숙한 먹잇감이었다. 드레이크의 불꽃에 구워지면, 새끼 드레이크가 아주 좋아했던 바로 그 물고기인데, 지금 이 갈라진 땅의 틈새를 메운 물살 속에서 튀어 오른 놈은 사람을 덥석 삼킬 정도였던 녀석이랑 다르게 사람의 머리통이나 팔 하나 정도의 크기에 불과했다.
“구워 먹으면 속살이 맛있는 놈인데…… 전에 본 것보다 꽤 작네?”
“작아? 저게?”
멜란드가 눈을 가늘게 하며 되묻고 있었다.
보통 물고기가 저 정도면 크다는 것을 강조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