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7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76)
Chapter 56. 갈라진 땅과 회색 암벽 Ⅲ
치이익, 출렁.
“뭐 이래? 크엉!”
투란이 당황해서 코가 맹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 상황을 제란드가 딱 부러지게 정리한다.
“반만 익고 반은 생살인데?”
멜란드는 ‘과연 몬스터!’라면서 더 보태는 소리를 한다.
“불을 질러도 반만 타는 놈이었네!”
시알라가 투란을 보며 갸웃하며 묻는다.
“전에 먹어본 것 아니었어? 그때는 다 잘 구워졌어?”
“그때는……!”
투란은 그 기억을 더듬어 대답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미묘한 야유처럼 드라고니아가 그 멈칫하며 떠올린 바를 되새겨주겠다는 듯이 투란의 뇌리에 소리를 쑤셔박는다.
―드레이크의 플레임 버스터로 구웠지? 아, 그러고 보니 인간들 사이에서는 드래곤 브레스라고 한다고 했나? 불이 그냥 불이 아니라고 말이야. 그렇지?
‘아…… 젠장.’
화력(火力)의 차이가 분명하다는 것을 투란은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적당한 마법으로 피워낸 고기를 구워낼 정도의 불꽃으로는 이 쇠비늘의 물고기는 완전히 구울 수가 없다! 그나마 잘 구워지는 반 토막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남매는 덜 익은 고기를 손에 들고 낑낑거리는 표정의 투란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반만 익은 것을 과연 어떻게 할 참인가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데…….
“앙! 냠!”
투란은 큰 소리를 내면서 덥석, 손에 쥔 반은 익고 반은 생살인 것을 물어뜯고 있었다. 이쯤 되면 오기로라도 먹어버리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지켜보던 입장에서는 당연히 어이가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곧 네 남매는 그 어이없는 기분을 치우고 의아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어? 투란?”
“맛있어?”
시알라와 멜란드가 입을 열고 그 궁금함을 바로 드러냈다.
익은 부분, 익지 않은 생살을 함께 으적대고 있는데 투란이 몹시 밝은 표정을 짓는 탓이었다.
“응! 어!”
우물거리는 와중에 낸 대답은 아주 긍정적이었다.
제란드는 그런 투란을 바라보면서 ‘진짜?’라는 듯이 눈을 가늘게 했지만, 멜란드는 꿰어 걸린 채인 물고기의 살점을 스윽 떼어서 살짝 입에 넣고 있었다. 시알라 역시 갸웃하며 한 점을 뜯어내서 맛봤다.
“맛있나 보네?”
아직 얼굴에 땀이 맺힌 채로, 조금 진정하고 안정된 상태가 된 페란드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바로 멜란드와 시알라가 고개를 끄덕였고 투란은 아예 고기를 떼어내서 제란드와 페란드에게 내밀고 있었다.
반은 익고 반은 생살인 채로!
제란드는 어정쩡하니 고기를 받으면서 중얼거린다.
“그러고 보니 바닷가에서는 고기를 날로 썰어 살을 발라내 먹기도 한다고는 하던데…….”
자신을 설득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제란드도 고기를 먹고 말았다.
페란드는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쓸어내면서 받아 든 고기를 들고 제란드를 유심히 보다가 그 얼굴이 밝아지는 광경을 본 다음에야 입에 넣었다.
“맛있지!”
투란이 고기를 씹는 네 남매를 향해 밝게 외치고 있었다.
네 남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묘하게 반은 익고 반은 생살인 쇠비늘 물고기는 먹을 만했고, 맛있었다!
잠시 자신들이 몬스터의 고기를 맛보고 있다는 사실을 홀랑 잊을 정도로.
하지만 입안에서 주는 즐거움은 멀리서 울려오는 소리까지 잊게 하지는 못했다.
아련한 땅울림, 치솟는 물보라의 형태는 먹는 것과 별개로 주변을 둘러보던 눈과 귀에 금세 걸려들었고, 꽤 멀기는 하지만 언제 자신들 앞으로 저 광경이 다가올지 모른다는 점도 금방 깨닫게 해줬다.
“오래 있으면 안 되겠는데?”
투란이 중얼거렸고, 바로 시알라부터 고개를 끄덕였다.
제란드가 다른 쪽도 둘러보면서 말한다.
“저런 거는 지난번에 본 적 없어. 암벽 쪽으로는 별일 없어 보이지만…….”
“언제까지 별일 없을지는 모르지.”
페란드도 기억을 더듬으며 보탰다.
멜란드는 그 소리에 잠깐 고민하면서 꿰어 있는 쇠비늘 물고기를 바라봤고, 아쉬움 가득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럼, 이건 보자기에 싸가야 하나?”
이는 바로 투란이 발로 바닥을 두드리다가 고개를 젓게 했다.
“아니, 뭘 짊어지고 갈 여유가 부족한 것 같은데? 빨리 뛰어야겠어! 저거 생각보다 빨리 덮쳐올 것 같아! 그냥 가! 내 뒤로!”
말과 함께 투란은 바로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네 남매도 뭔가 더 묻거나 따지지 않고 바로 투란의 뒤를 쫓았다.
하얀 물보라가 거대한 장벽처럼 치솟았고, 틈새에서 물줄기가 범람(氾濫)했다.
갈라진 땅의 조각이 틈새에서 솟아난 물의 그물에 덮이고 잠겨버리는 광경이었다. 마치 물의 융단(絨緞)이 조각난 땅을 삼키는 것처럼, 큰 물보라의 결을 만들며 넘쳐나는 듯했다.
거의 지평선이 물보라의 수평선으로 보일 지경이었고, 아련한 소리가 아직은 멀다고 느껴지는 상황이었지만 그냥 넋 놓고 구경하기에는 그 위험이 살갗을 스며드는 듯했다.
과연 저 물보라에, 저 물살에 휘말리게 되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 것인가?
아무 관계 없이 멀리서 보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저 세상에 보기 드문 광경을 눈에 담는다고 놀라는 정도에 그칠 상황이었지만 그 희귀한 것이 자신들을 덮쳐올 미지(未知)의 위협이었기에 투란과 네 남매는 쉬지 않고 뛰어야 했다.
히엔나의 다리로, 랩티어의 다리로.
미리 만들어둔 밧줄을 이용해서 폭이 넓은 곳도 협력해서 뛰어넘으며 일행은 거의 한나절을 쉬지 않고 달렸다. 밤이 찾아왔어도, 그 뜀박질은 멈출 수가 없었다.
별빛 아래에서 물보라의 광경은 더욱 하얗게 보였으니!
이러한 질주는 결국 넉넉하게 며칠을 잡아야 할 거리를 다음 날 해가 뜰 무렵에는 거의 하루 안에 도달할 정도로 좁혀놨다.
그리고 해가 선명해질 무렵,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경고를 들어야 했다.
―투란, 잠깐 쉬어야 해. 너는 괜찮지만, 저들은 마력이 고갈되어서 더 이상 달리면서 회복할 수 없다. 잠시 쉬면서 골든 서클의 마력을 받아야 한다. 잠깐 멈춰서 몸과 마음, 모두 여유를 둬야 해.
“멜란드, 잠깐!”
바로 투란이 외쳤고, 랩티어의 다리로 뛰어 물줄기를 넘으려 하던 멜란드가 발가락으로 땅을 움켜쥐면서 멈췄다. 혀를 내민 채로, 튀어나오려 하는 입은 완전히 억누른 모습이 조금 이상해 보였지만 그래도 완전히 자제하는 데 익숙해진 멜란드의 모습이었다.
“쉬어야 할 때야.”
투란은 돌아보면서 간단히 말했다.
더 뭐라 할 필요는 없었다.
제란드부터 바로 바닥에 엎어지면서 숨을 몰아쉬었고, 페란드도 느릿하니 몸을 낮추며 드러눕고 있었다. 시알라는 그래도 앉은 채로 버티며 주변을 돌아보는 시늉이라도 하는 중이었다. 멜란드는 발목을 휘두르면서 혀를 삼키듯이 입을 다물며 훅훅거리다가 발라당 누워 버렸다.
투란은 남매를 둘러보다가 멀리 회색의 암벽을 보며 거리를 가늠했다.
‘이 속도면 해 저물기 전에 도착하려나? 저 물살에 휩쓸리지는 않겠지?’
―저 물보라의 속도가 저대로라면…… 하지만 땅울림의 조짐이 심상치가 않다. 물보라에 휩쓸리는 영역이 넓어지면서 뭔가 땅 아래쪽에도 영향을 심하게 끼치는 것 같은 반응이다. 이 틈새에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는 편이 좋아. 회색 암벽 쪽으로는 물보라라든가 땅의 반응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암벽 지역에 도착하면 일단 안심할 수 있어 보이는군. 하지만 투란, 만약을 대비해서 날개를 쓰는 것도 생각해둬. 날개를 쓴다면, 당장 여기서 벗어날 수도 있잖아.
‘그건 좀 나중에.’
투란은 흘깃 네 남매를 둘러보면서 날개에 대한 드라고니아의 제안은 마음 한쪽으로 치워놓았다. 의아해하는 낌새가 드라고니아에게서 흘러나왔지만, 거기에 대해 자세한 대답은 회피하는 투란이었다.
‘천칭’으로 문장을 전환시킨 다음, 투란이 가장 강렬하게 느낀 것은 역시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드레이크의 날개였다. 아직은 덜 여문 새끼 드레이크의 날개에 불과하더라도 사람 하나를 단숨에 수백 미터 저 높이 날게 해줄 수 있는 ‘힘’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투란은 뇌리 깊은 곳에 각인된 키린의 속삭임을 느끼고도 있었다. 드라고니아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한, 투란만이 기억할 수 있는 키린의 경고.
“여기서, 이 산맥의 깊은 곳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면 조심해야 해. 너를 구해주고, 네가 구해주는 사이가 되었을지라도…… 너의 몬스터를 함부로 보여주지 마라. 전부 보여주지도 말고. 네가 믿을 수 있다고 해도, 언제라도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한두 가지 몬스터의 힘은 감추고 아껴둬.”
어째서인지 키린은 이 부분을 아주 집요하게 투란에게 각인시켜줬다.
이는 모두 ‘괴물이 없는 곳에서는 인간이 괴물 노릇을 한다.’라는 말과 이어지고 있기도 했다.
투란으로서는 아리송하고 이상한 이야기였지만, 몸에 새겨진 그 말은 투란의 본능처럼 투란에게 세란드가 보호하는 남매를 향해 ‘천칭’에 관계된 일은 감추도록 하는 셈이었다.
때문에 남매가 히엔나와 랩티어의 다리로 뛸 때도 투란은 겉은 사람의 다리인 채, 속은 붉은 늑대의 힘을 부여한 채로 뛰었다. 미묘하게 오러의 힘도 동원된 채이다 보니 어렵지 않게 남매와 비슷하게 달릴 수도 있었다.
“마력이 회복되었어?”
투란은 완전히 드러누운 채였다고 천천히 일어나 앉은 네 남매를 향해 묻고 있었다. 숨이 가다듬어진 채로, 네 남매는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잠깐 쉬는 사이에 황금매의 문장이 맥동하며 골든 서클이 부여하는 마력을 받아들여 빈 그릇을 채운 것이다.
“그럼 체력을 회복하고…… 조금 더 서둘러야 해. 가능한 한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암벽에 닿았으면 좋겠거든.”
투란의 말은 네 남매를 흠칫하게 했다.
하지만 네 남매는 더 쉬자든가 왜냐고 묻는 대신에 황금매의 마법에 집중하며, 차분하게 체력을 회복했다. 예리해진 감각이 멀리서 벌어지는 상황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경고해주는 데다가 투란이 말까지 꺼내놓은 때문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멜란드가 문득 묻는다.
“이 물줄기는 저쪽으로 조금 돌아가야 하나? 이거 한 40미터는 돼 보이는데…….”
멈춰선 물줄기는 달리던 와중에 가속을 이용하면 그럭저럭 저편 땅의 10여 미터 앞에는 떨어질 듯했고 그러면 돌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던져 헤엄치듯 건널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멈춰선 지금은 단숨에 건너기 난감했다. 뒤로 다시 가서 가속하든가, 아니면 옆으로 조금 움직여서 폭이 좁아진 곳을 이용하는 편이 나아 보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온 물음이었는데, 투란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대로 건널 거야. 멜란드, 도마뱀이 가끔 물 위로 달리는 거, 본 적 없어?”
“어, 엥?”
놀란 소리부터 냈지만, 결국 멜란드는 휴식 후에 도마뱀이 어떻게 물을 밟고 뛰는가를 바로 체험해야 했다.
촤아악! 파파박!
“저런 짓도 할 수 있었군.”
제란드가 새삼 감탄하는 말을, 한심하다는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페란드와 시알라는 말없이 멜란드가 물을 밟으며 첨벙거리고 저편으로 넘어가는 꼴을 바라봤다.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밧줄 한 가닥을 쥐고 한 발로 세게 물을 밟으며 그 발목이 빠지기 전에 다른 발을 내딛는다는, 뭔가 전혀 요령 같지 않은 요령을 실행하며 멜란드는 저편에 도달하고 있었다.
세 남매가 보이는 놀라는 건지 어이없어하는 건지 애매한 태도에 투란은 멜란드에게 했던 설명의 다음을 짧게나마 이어줘야 했다.
“눈에 보일 정도로 달리는 도마뱀도 가끔 해 보이는걸. 멜란드의 도마뱀은 몬스터인 데다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달리잖아. 그리고…… 하니까 되잖아?”
말과 함께 투란은 밧줄을 흔들었고, 저편에서 멜란드가 붉은 그랑츄의 형상으로 힘쓸 준비를 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럼, 모두 매달려야지?”
주섬거리면서 투란과 함께 남은 세 남매는 밧줄에 매달렸다.
밧줄은 곧바로 쑥쑥 당겨졌고, 물살을 가르면서 매달린 사람 넷을 저편으로 옮겨줬다. 이렇게 새로 생긴 수단을 통해서, 일행은 더욱 빠르게 회색 암벽을 향해 내달릴 수 있었다.
물보라와 땅울림의 기묘한 합창(合唱)은 점점 거세지면서 갈라진 땅을 보다 빠르게 잠식해갔다.
누가 더 빠르게 암벽에 도달할 것인가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잠깐, 저거 뭐지!”
페란드가 놀란 외침을 터뜨린 것은 다시 반나절이 지난 다음이었다.
멜란드가 아침에 새로 물 위를 달리는 법을 깨달았고, 이제는 거의 앞장서서 물줄기를 달려 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때였다.
이제는 힘이 든 것을 참고 견디면서 암벽 지역에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고 마음 한구석이 미묘하게 풀린 채였을 때, 페란드가 한쪽에서 뭔가를 발견한 것이다.
먼저 투란이 바로 그쪽을 바라봤고, 살짝 그늘진 듯한 눈매를 가늘게 하며 확실하게 확인했다.
“땅이 가라앉는데?”
투란은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물보라가 치솟으며 덮어씌우는 광경과 조금 다르게, 물줄기 사이의 땅이 함몰되면서 물결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제껏 조용하던 암벽 지역의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었고, 저 멀리서 다가오는 물보라보다 먼저 일행을 덮칠 것이 너무 분명해 보였다.
투란은 바로 남은 거리를 가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