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7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77)
‘너무 방심했나.’
반성하는 생각이 먼저 투란의 뇌리를 스쳤다.
암벽 쪽은 별일 없을 거라고, 아무 근거도 없이 단정 짓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 산맥의 깊은 곳에서 많이 벗어난 다음에도 땅이 무너지고 세상이 뒤집어질 듯한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전과 다르게 거뜬히 벗어날 수 있는 몸이라 해도 역시 너무 섣부른 판단으로 위험한 상황을 방심한 채로 맞이하는 꼴이었다.
키린이 그토록 마음 놓는 순간에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위험이 다가올 것이라 경고했는데도, 투란은 어딘가 마음의 긴장을 풀고 있었던 셈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환경이었는데도!
―날개를 펼칠 때 아닌가?
드라고니아가 냉정하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 아직.’
투란은 침착하게 시알라와 페란드, 제란드와 멜란드를 둘러봤고 모두들 놀라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어쩔 줄을 몰라서 멈출 낌새는 없는 것을 확인했다. 잡념 속에서도 투란이 앞으로 나아가듯, 네 남매 역시 상황이 예상을 벗어났음에도 가야 할 곳을 명확히 깨닫고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급하면 몽땅 낚아채면 돼. 그러니까 그럴 때는 가능한 한 전부 재워두고 싶네!’
약간 엉뚱한 소망을 슬쩍 흘리면서, 투란은 ‘천칭’의 문장을 마음에 보다 세게 품었다. 어떤 일이 어떻게 꼬이더라도 확실하게 문장이 품은 몬스터를 꺼내 대응할 수 있도록!
―뭐?
다소 어이없어하는 드라고니아의 대꾸가 짧게 들렸지만, 투란은 더 이상 드라고니아의 기분에 응할 수가 없었다. 멀리서 서서히 앞쪽과 옆쪽에서 무너져 내리는 땅, 틈새에서 더욱 맹렬하게 치솟는 물줄기, 아직은 얌전한 가까운 물살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며 밧줄을 움켜쥐고 당겨주는 멜란드, 중간에 겹으로 밧줄을 던져서 멜란드가 밟고 잡게 해주면서 뛰쳐나가는 제란드와 페란드, 그런 형제들을 향해 조금이라도 더 몸을 다루기 쉽게 해주려는 듯이 마법으로 체력의 강화를 덧씌우면서 뛰어 달리는 시알라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투란도 뛰어야 했다.
주변을 살피면서, 키린에게서 배운 오러의 재주를 사용해서 투란은 네 남매와 살짝 어긋난 옆길을 이용해 달리듯이 물을 밟고 튀어 오르며 허공을 부유하듯이 미끄러지면서 쏜살같이 멜란드의 곁으로 움직이며 밧줄을 잡고 당기는 것을 도왔다. 그리고 바로 멜란드에게 신호해서 보다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제란드를 잡아 그쪽으로 던져주면서 페란드에게 밧줄을 넘겨주고 시알라가 발을 딛는 것을 확인하며 다음 징검다리를 향해 뛰쳐나갔다.
물과 땅이 뒤엉킨 난장판이 더 좁혀오기 전에, 가능한 한 빠르게 일행은 회색의 암벽에 도달하기 위해서 내달렸다. 물줄기를 건너고, 땅을 박차며!
한참을 그리 달렸지만 회색 암벽에는 쉽게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멀리 보이던 난장판은 보다 가까워진 채였다.
그래도 일행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나아갔다.
여기서 멈춰서 구경해봐야 물과 땅이 뒤엉켜 몰려오는, 산사태인지 해일인지 모를 상황에 쓸려가는 것일 뿐이므로!
―투란, 아무래도 제때에 당도할 수 없다!
‘기다려봐.’
드라고니아가 남은 거리를 가늠하며 말했고, 투란은 짧게 답했다.
그리고 저 멀리 튕겨 나간 멜란드가 소리쳤다.
“땅이 솟아! 조심해!”
투란은 그 소리에 바로 반응했다. 대뜸 맨 뒤에서 다시 마법에 집중하려는 시아라의 팔을 잡아당기고 번쩍 들어 올려서 멜란드를 향해 내던진 것이다.
시알라는 당연히 놀랐다.
“투……란?”
페란드는 그 광경을 보고는 얼른 투란에게 두 팔을 내밀었다.
날려가던 시알라의 눈에 이것이 보였고, 저편에서 솟구치는 땅에 매달린 멜란드가 손을 내밀면서 ‘누나!’라는 소리를 크게 외쳤다. 날려가면서 시알라는 어떻게 투란이 자신을 이렇게 쉽게 멀리 날릴 수 있었나 따위의 생각을 내버리고, 바로 멜란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뒤이어 페란드가 날려졌다.
멜란드의 손을 잡은 시알라가 다른 손을 내밀었고, 페란드가 그 손을 잡았다.
제란드는 다소 어이없고 놀란 기색으로 보다가 팔뚝에 감은 밧줄을 한 번 더 감으며 뛰어나가며 외친다.
“먼저 가서 당겨줘!”
투란은 바로 길게 늘어진 채로 저편으로 이어진 밧줄을 밟으며, 솟구치는 땅을 붙잡은 채로 함께 치솟고 있는 일행을 향해 뛰었다. 찰랑거리고 휘청거리는 밧줄이었지만 투란의 발가락은 거침없이 밧줄을 잡아채듯이 밟았고, 투란은 내달렸다.
멜란드가 치솟는 땅에 올라서면서 랩티어의 다리로 버티며 히엔나의 한 팔로 누나와 형을 당겨 올렸고, 제자리에서 맴돌 듯이 밧줄을 몸에 감았다. 그 밧줄을 밟으며 치솟는 땅을 딛자마자 투란은 몸을 돌려 밧줄을 두 손으로 잡으며 외친다.
“제란드! 꽉 붙잡아!”
그리고 우왁스럽게 굵어진 투란의 두 팔이 당겨지는 순간, 저 아래에 있던 제란드가 공중으로 튕겨지듯이 치솟아 올랐다. 높이 뜬 제란드를 가늠하고 투란은 바로 앞으로 내달렸고, 멜란드를 향해 말한다.
“뛸 준비 해, 멜란드!”
누나와 형을 내려놓으면서 몸에 감은 밧줄이 허공으로 날려가는 광경에 잠깐 ‘어?’ 하던 멜란드는 잠깐 흠칫했다. 하지만 제란드가 내려오기는커녕 더욱 앞으로 날려 가는 광경에 ‘아!’ 소리 한마디와 함께 앞으로 달려나가며 투란의 곁으로 걸음을 맞췄다.
투란은 밧줄을 놨고, 대신 멜란드의 두 손을 잡아 저 건너편으로 떨어지는 제란드를 향해 내던졌다.
“페란드, 새 밧줄을 멜란드에게!”
짧은 말이었지만 페란드는 이미 달리고 있었고 바로 땅을 긁으면서 마법으로 새 밧줄을 끌어올려 멜란드의 한쪽 발에 내던졌다. 시알라가 이를 마력으로 보조하며 밧줄이 빠르게 형성되게 하고, 보다 단단하게 뻗어 나가게 했다.
투란의 두 손이 바로 시알라의 허리를 움켜쥐었고 번쩍 들어 올린 다음에 내던졌다.
“끼악!”
일단 놀란 비명이 나오기는 했지만, 쏘아진 화살처럼 날아가면서 시알라는 자신이 도달할 곳을 봤고, 거기에 이미 내려앉아 버티면서 팔뚝에 감은 밧줄을 휘두르듯이 당기고 있는 제란드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투란은 페란드가 조금 더 앞으로 뛰어가는 것을 쫓았다.
“페란드, 높이 뛰어!”
다소 뜬금없는 소리를 외쳤다.
하지만 페란드는 곧바로 앞으로 뛰던 발을 세게 구르며 높이 뛰어오르고 있었다. 거의 사람의 눈높이 정도에 발바닥이 올 정도로 뛰어오른 페란드의 두 발목을 잡으며 투란은 좀 더 앞으로 내달리다가 내던졌다.
시알라의 뒤를 이어 페란드도 ‘헉?’ 하는 소리를 잠깐 냈지만, 곧 저편을 향해 날면서 정신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 뒤를 따르듯, 투란은 발을 굴렀고 불꽃처럼 일렁이는 오러의 형상을 날개처럼 두르며 활강(滑降)하듯 제란드 곁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바로 부른다.
“제란드! 저 건너편으로!”
“가능한 한 멀리!”
제란드는 투란이 하는 짓을 대강 파악한 듯이 대꾸하고 있었다.
“그럴게!”
힘차게 대꾸하며 투란은 살짝 뛰어오르는 제란드의 두 다리를 잡았고 멜란드와 페란드, 시알라가 내려앉은 저 너머를 향해 내던졌다.
―야! 이제 보니, 너 아까부터 볼텍스 오러를 쓰고 있었냐! 그거 쓰지 말라니까!
‘오러라고, 오러! 키린이 알려준 대로 쓰는 거야!’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이 바쁜 상황에서 세차게 뇌리를 찌르는 소리를 내지른 것에 둘러대며 빨리 대답해야 했다. 드라고니아도 투란이 둘러댄 바가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을 인정하듯, 이 상황이 꽤 심각해지고 있는 것을 파악하듯이 말을 잠시 멈추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몇 번을 반복하면서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치솟은 땅은 높은 절벽으로 이뤄진 길처럼 변해갔고, 물보라와 무너지는 땅에서 벗어날 외길처럼 일행을 받쳐주는 꼴이 되어 있었다.
―투란, 너 이걸 감지하고 있었나?
변화하는 지형 속에서 투란이 네 남매를 몰아가는 방향으로 치솟는 땅이 좌우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저쪽을 향해 이어진 외길이 되어가는 광경에 드라고니아는 놀란 소리를 내고 말았다.
‘어렴풋이!’
그에 대한 투란의 답은 아주 간단했다.
지금은 그에 대한 설명을 할 시간이 없다는 듯이.
그리고 잠시 일행은 높이 솟은 절벽의 정상을 달려나갔다.
트리니티 히엔나의 발로 건널 수 있는 틈새가 몇 번 나왔고, 멜란드가 랩티어의 다리로 건너뛰어서 밧줄로 이어줘야 할 큰 틈새도 나타났다. 하지만 저 아래로 내려앉은 물살과 뒤틀리며 가라앉은 주변의 땅조각은 더 이상 일행의 질주를 방해할 수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상해! 뭐가 올라오는데!’
투란은 ‘천칭’을 통해 중첩되고 강화된 감각, 분별과 예상을 통해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지각(地殼)의 뒤틀림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 감지된 부분은 곧바로 드라고니아가 걸러냈고, 대답이 금세 나온다.
―미로가 치솟고 있어. 이제까지는 미로 위에 얹힌 채로 물과 땅이 뒤흔들리며 꼬이는 것이었다. 지금 치솟는 것은 그런 것과 달라, 미로가 바로 치솟아서 삼키려 하고 있다. 자신의 경계면을 어지럽히는 것을 모두 정리하겠다는 거야!
‘뭐야, 그거! 살아 있기라도 한 미로야?’
―그렇다고 해야겠군. 지금 미로의 반응은 확실히 그래. 물결과 지표의 변화가 거슬리니까 정리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아직 거리가 좀 있는데…… 무슨 마법 없어? 드라고니아의 마법 말이야, 일행을 한꺼번에 옮겨주는 그런 마법! 큰 바람에 태워서 단숨에 날려주는 그런 마법!’
―이 녀석이…… 있다, 있는데…… 이 지역에서 사용하기에는 상당한 마력을 소모하는데…….
날개를 끝까지 꺼내지 않으려는 투란에게 잠깐 투덜거림을 토하려는 듯하다가 참으면서 드라고니아는 대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은 보다 뻔뻔하게 말한다!
‘모자라지는 않잖아, 마력이 부족한 거 아니잖아!’
―주문을 구성하는 데 시간이 필요해! 아, 갈라진다!
‘어?’
투란은 달려나가는 앞쪽의 땅거죽이 갈라지면서 아래로 떨어지듯이 기울어지는 광경을 봤다. 일행이 밟고 나아가던 외길이 갑자기 판자처럼 쪼개지면서 아래로 기울어지는 듯했다. 분명히 길고 튼튼하게 솟구쳐 오른 채워진 땅이었는데, 그 한복판이 으스러지며 어디론가 사라지는 탓에 위편이 쪼개진 판자처럼 금 간 부분을 향해 기울어지고 있었다.
덕분에 일행은 갑자기 비탈 아래로 미끄러지는 꼴이 되고 말았다.
바로 투란은 멜란드에게로 붙었고…….
“멜란드, 날려줄 테니까 저쪽에 꽉 붙어서 밟고 뛰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로 투란의 한 손이 멜란드의 허리를 붙잡아 내던졌다. 어느 틈엔가 검은 색채로 광택을 번뜩이며 붉은 줄기가 맴도는 투란의 한 팔은 사람 하나는 가볍게 한 손으로 움켜쥘 정도로 커진 채란 것을, 그제야 시알라와 페란드, 제란드는 알아차렸다. 한순간에 커졌고, 한순간에 멜란드를 잡아 던진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페란드가, 시알라가 차례대로 던져졌다.
제란드는 자신이 던져질 차례에 급히 한마디 한다.
“멜란드 위로! 미끄러지고 있어!”
투란은 무슨 말인가 금세 알아들었다.
멜란드가 저편의 기울어진 비탈을 밟고 뛰어오르고 있는데, 그 발판이 되어 줄 비탈이 먼지티끌처럼 흩어지는 통에 계속 헛발질을 하며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때문에 나중에 날려보낸 시알라와 페란드가 더 위편에 붙은 채로 멜란드를 끌어올리려 하는데, 밧줄은 제란드에게 이어진 채였다.
지금 시알라, 페란드의 밧줄이 제란드에게로 이어진 다음에 제란드에게서 멜란드에게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제란드가 중간 부분에 떨어져서 멜란드를 끌어올려야 할 차례인 셈이었고, 이를 투란에게 알리며 요청한 것이다.
“발에 힘줘!”
투란이 한마디 하며 제란드를 내던졌다.
제란드가 원한 대로, 멜란드 위편을 향해…….
그다음에 투란도 바로 비탈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오러가 불꽃 날개의 형상을 갖췄고, 투란의 부풀었던 팔다리는 사람의 크기로 바로 오그라든 채였다.
투란은 허공을 미끄러지면서 멜란드의 곁으로 붙었고, 바로 멜란드의 뒷덜미를 잡아채서 제란드 쪽을 향해 던져 올렸다. 그리고 곧바로 오러의 날갯짓을 통해 그 뒤를 따르는데…… 섬뜩한 느낌이 바로 투란의 뒷덜미를 찾아왔다.
‘으앗, 이거 뭔!’
―미로의 곁가지다!
투란의 몸이 꼬이며 옆으로 튕겨졌다.
반사적으로 피해낸 것이 투란의 옆을 스쳐 지나갔고, 투란은 눈앞에 있지만 눈앞에 없는 기괴한 뭔가의 풍경을 느낄 수 있었다.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뭔가 꼬이고 엮인 ‘미로(迷路)’의 한 가닥이 스쳐 갔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바로 투란의 입이 열린다.
“제란드, 피해!”
거센 경고가 튀어나가 허공을 울렸다.
제란드는 그 순간, 투란처럼 뭔가 닥쳐오는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하지만 제란드의 다음 행동은 그 닥쳐오는 것을 피하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제란드의 팔이 붉은 그랑츄의 굵고 억센 형상을 드러냈고, 날려진 멜란드를 받아 위쪽을 향해 내던지고 있었다.
‘어?’
투란은 그 순간에 제란드가 멜란드를 밀어 올리면서 그대로 밀려 ‘미로의 한 가닥’에 휩쓸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순간에 투란도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며 그 곁을 스쳐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