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7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79)
맑은 하늘에 맑은 크리스털의 날개가 둥실거리며 떠 있었다.
날개의 중심은 사람의 등을 고스란히 베어낸 껍질인 듯한 형상을 한 채였고, 날개로부터 흘러온 가닥들이 꼬이면서 그 투명한 껍질에 무늬를 그리며, 무늬 속에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눈동자를 채워 넣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닥의 가늘고 선명한 크리스털의 실 가닥이 저 아래를 향해 길게 늘어져 내린 채이기도 했다. 맑은 수정의 재가 살며시 실 가닥의 주변을 맴돌며, 실 가닥이 저 지상의 하얀 덩어리 속에 박혀 있는 곳까지 이어진 가늘고 긴 흔적처럼 반짝였다.
눈동자의 무늬는 그 아래편을, 저편의 회색 암벽을 바라보는 듯했다.
제각각의 무늬가 한 방향으로 고정된 채로 지켜보는 듯…….
땅은 하얀 암반(巖盤)이 울퉁불퉁한 채로 그물처럼 두껍게 빈틈없이 채워놓은 것처럼 보였다. 누구든 이 땅을 지나는 자라면 암반이 마차 사암(砂巖)처럼 보이고, 부스러지며 가볍게 바람결에 휘날리기도 한다는 것을 금세 알 듯싶었다.
그 하얗게 채워진 암반 속으로 관통해 들어간 듯한 크리스털의 가는 실 가닥이 맑고 투명한 재를 휘날리면서 검은빛을 머금었다.
날개의 눈동자 무늬 몇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아래를 향했다.
무슨 이상한 일이 터지든 똑바로 보겠다는 듯…….
뿌드득, 촤아아―!
암반이 쪼개지고 갈라지는 듯하면서 붉게 달아오르다가 무너져 내렸다.
둥글고 깊은, 붉게 녹아 흐르는 듯한 큰 구멍이 열렸다.
그 구멍 한복판에는 검은 빛줄기처럼, 크리스털의 실 가닥이 색다른 빛을 머금은 채로 관통하는 듯했다. 조금 더 아는 사람이 본다면, 크리스털의 날개가 가늘고 검은 실 가닥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연이라 할 듯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지상에 선 자에게 쥐어져 자유를 잃은 연과 다르게, 크리스털의 날개는 자유롭게 더 높이 치솟았고 이어진 실 가닥이 무슨 색이든 상관없다는 듯이 고고하게 맑은 하늘에서 온 세상을 내려다보듯이 눈동자 무늬를 데굴거릴 뿐이었다.
그 실 가닥을 휘감는 여린 크리스털의 재가 검게 변했고, 구멍 깊은 곳으로 이어져 들어가는 나선(螺線)의 궤적을 그리며 맴돌았다. 그리고 붉게 녹아 무너져 내리는 구멍 깊은 곳에서, 검은 암석의 살갗과 붉은 줄기, 마그마의 눈알을 얼굴과 어깨, 몸 곳곳에 지닌 거인(巨人)의 형상이 치솟았다.
한 손에는 사람을 조각한 듯한 크리스털을 쥔 채로, 하늘에서 도도하게 날고 있는 크리스털의 날개로부터 흘러내린 가는 실 가닥을 다른 빈손으로 잡고 있는 것처럼…….
쾅, 콰앙!
큰 구멍 깊은 곳에서 격렬한 음향이 울려 퍼졌다.
검은 암석의 거인 형체를 움켜쥐려는 듯한 바위의 손아귀처럼 보이는 형상이 치솟아 오르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수 미터의 거인을, 가볍게 한 손으로 쥐겠다는 듯이 거대한 손아귀 형상이었다.
그러나 그 손아귀는 검은 암석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검은 재의 회오리와 만나면서 갈라져야 했고, 붉게 달아오르며 녹아야 했다.
검은 암석의 거인, 등과 어깨로 이어진 듯이 불끈 튀어나온 돌출부에 박힌 마그마의 눈알이 데굴거렸고…….
‘저게 스톤 가드?’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소리 없이 물었다.
―아, 그렇군. 계속 움직이는 바위의 흐름이 이상하다 했더니, 맞아. 저게 바로 광야의 미로를 지키며……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막는 스톤 가드야.
드라고니아는 한동안의 침묵을 깨는 것이 어색하다는 듯이 덤덤하게 대꾸해서, 투란을 조금 의아하게 했다.
‘왜 그래? 내가 빠져나온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뭐? 아…… 마음에 들고 뭐고, 이렇게 정교하게 마그마 로드가 제어되는 광경이 낯설어서 그렇다. 천칭의 마그마 로드는, 황금매와는 다르게 아주 정밀하게 그 힘을 사용하고 있잖아.
‘응? 그야 천칭이니까!’
투란은 가볍게 대꾸하며 허공을 향한 눈동자에 집중했다.
위로 치켜올린 검은 암석의 손을 휘감으며 팔을 거쳐 몸으로 스며오는 크리스털 애시와 블랙 애시의 섞여진 가닥은 더 빠르게 투란의 몸 안을 맴돌면서 물레처럼 감기며 투란을 위로 당겨 올리고 있었다.
스톤 가드는 자신의 미로를 벗어나는 자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달려들다가 녹아버릴 정도의 맹렬하고 강력한 열기 따위는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이 다시 녹아버린 부분을 버린 채로 새로운 손아귀를 만들어 검은 암석의 거인을 향해 뻗어왔다.
하지만 새로 만들어진 손아귀가 구멍 안에서 움켜쥐는 시늉을 할 때, 검은 암석의 거인인 투란은 이미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우왓! 새하얗잖아!’
갈라진 땅이 드러낸 새로운 풍경은 투란을 새삼 놀라게 했다.
구멍을 벗어난 순간, 투란은 크리스털 날개에서 데굴거리는 눈동자의 시야를 받으면서 변해버린 이 풍경이 더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차렸기에 다소 편해진 마음으로 느낀 바를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었다.
크르르― 콰득.
검은 암석의 거인이 그 형상을 줄이면서 바위가 마찰하고 우그러지는 소리가 격하게 울려 퍼졌다. 거인이 손에 쥐고 있던 크리스털의 인형은 서서히 팔뚝에 끼인 꼴로, 옆구리에 바싹 대진 채로 들린 꼴이 되어 갔다.
작아진 검은 암석의 형체를 향해 붉게 흐르는 벽을 두들기는 것처럼 치솟는 바위 무더기가 다시 손, 혹은 촉수를 뻗어내듯이 뿜어져 올라왔다. 이는 새하얀 풍경에 뚫린 붉고 검은 구멍에서, 아주 이질적인 바위의 마수(魔手)가 치솟는 듯했다.
―아, 이런…… 여기가 거기였나!
드라고니아가 이 풍경에 대해 새삼 놀라는 소리를, 투란과는 조금 다른 감탄인지 한탄인지 모를 소리를 뇌리에 전해올 때…… 투란은 발을 교차시키며 아래쪽을 향해 그림을 그리듯이 휘저었다.
발아래로 붉게 번지는 엷은 마그마의 막이 생겨났고, 그 속에서 검은 조각이 소용돌이가 되어 번지다가 검은 재가 되어 아래를 향해 쏟아졌다. 검은 재는 여전히 소용돌이처럼 맴돌았고, 치솟는 바위의 마수와 만나자마자 달아오르며 붉은 회오리처럼 파고들었다.
‘거기가 어디?’
투란은 녹아내리는 바위의 형상을 내려다보면서, 차분하게 물었다.
검고 붉은 구멍 속으로 마그마의 파편이 되어 떨어져 내리는 스톤 가드는 더 이상 미로를 지키는 수호자가 아닌, 마그마 로드의 일부인 것처럼 보였다. 그 광경을 놓고, 그 구멍 주변을 덮은 새하얀 암반의 풍경을 드라고니아가 설명한다.
―소금의 정원, 우리가 그렇게 부르는 곳이다. 저 회색의 암벽은…… 헬 임프의 정원이고 말이야.
‘뭐야, 그게?’
한층 더 의아해져서 투란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드라고니아는 이곳에 광야의 미로가 있다는 것부터 놀라고 있었다.
그런데 새삼 이곳이 어디인가 알겠다니…… 거기에 헬 임프는 또 뭔가?
―저 새하얀 것이 모두 소금 덩어리거든. 이 지형은 수십 년에 걸쳐서 주기적으로 소금이 생성되었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그 아래편에 스톤 가드가 지키는 광야의 미로를 두고 말이야. 어째서 소금으로 덮개가 생기는지는 몰라. 이 미로가 어떤 특정한 지형과 연계된 탓이라고 막연하게 추측만 할 뿐이지. 소금이 없을 때는…… 매번 다른 모습이라서 이곳이 어디인가 모를 때가 많다고 했다. 과연, 나도 전혀 단서를 얻지 못했어.
투란은 가만히 드라고니아의 말을 들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세로 등을 크리스털의 날개에 맡겼다. 투란의 등 모양에 겹쳐지면서 크리스털의 날개는 보다 크게 펼쳐졌고, 투란을 가볍게 해줬다.
흘깃, 투란은 이제 제법 사람의 얼굴에 박힌 듯하지만 여전히 마그마의 광채를 띤 눈동자를 굴려 옆구리에 낀 채인 크리스털의 조각상, 제란드를 살폈다. 제란드는 크리스털 캐슬에 의해 보호되는 순간부터 계속 같은 상태인 그대로였다.
이제 투란은 자신이 다음에 할 일을 두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그 요약한 바에 따라 바로 물음이 흘러나온다.
‘어쨌든 이제는 대강 알았다면…… 저 스톤 가드, 어디까지 쫓아올지 알겠네? 제란드의 몸이 회복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아는 것 있지?’
―어, 저 스톤 가드는 미로를 벗어난 자를 다시 잡아 가둘 때까지 세상 어디로든 쫓아올 거야.
그 첫 번째 부분의 물음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다소 난감하다는 듯이 대답했고, 투란의 눈꼬리와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돌덩이가 그렇게 멍청해?’
―당연하잖아. 애초에 스톤 가드가 저기 놓인 이유도 그 안에서 밖으로 뭔가 나오지 못하게 막을 작정이었다고. 저 미로를 들락일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세상이 감당하기 힘든 괴물이라고. 그러니까 대마도사는 스톤 가드를 이용해서 세상을 위협하는 것을 막으려고…….
‘아니, 그 대마법사인가 하는 작자는 자기도 빠졌다가 나왔으면서 남들은 그냥 가둘 참이었데? 엄청 성격 나쁘구만! 우연히 빠진 사람도 못 나오게 하는 못된 심술이잖아, 그건!’
드라고니아의 말을 끊으면서 투란은 투덜거렸다.
이에 조금 씁쓸하게 드라고니아가 답한다.
―대부분의 경우, 빠지는 순간 산산조각 나고 흩어져 죽는다. 안쪽에 네가 뚫고 지났던 그 이상한 느낌의 장막, 그거 마그마 로드 정도나 되니까 아무렇지도 않았던 거야. 제란드만 해도…… 심연의 각인을 지닌 황금매가 골든 서클의 마력까지 품은 채라서 흩어지지 않고 겨우 형체를 유지하는 거야. 시공을 뒤틀어 버리는 힘의 장막이라고, 그거.
‘그럼, 제란드는?’
투란은 아래를 향해 발을 밟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투란의 발짓에 따라서 검고 붉은 구멍은 마그마의 장막이 덮어씌워졌고, 출렁거리는 연못처럼 큰 구멍을 채웠다.
―황금매의 마법이 제법 높은 수준이라서,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거야. 의식도 불명확하고, 정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이고. 저 안이었다면 뭘 어떻게 할 수 없이, 크리스털 캐슬로 더 악화되지 않게 해놓는 것이 최선이고 적절한 대처가 맞았다. 그런데…… 지금 뭐 하는 거냐, 투란?
제란드의 상태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아래쪽에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의아해했다. 빠져나온 구멍을 메우는 것이 보이기는 하는데, 마그마로 채워진 연못이라니…… 대체 뭘 어쩌자는 것인가?
‘뭐 하냐니? 그야 스톤 가드가 저 경계 안쪽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막는…… 마그마의 수호자를 만들고 있는데?’
―뭐?
‘그보다 제란드를 회복시킬 방법은? 있는 거지?’
―아니, 뭔 마그마의 수호자를……! 아, 제란드는 아칸 고유주문인 세이크리드 힐(Sacred Heal)로 회복시킬 수 있다. 저렇게 강력한 힘의 왜곡을 바로잡으면서 회복시켜주는 주문이지. 본인의 체력과 회복력이 약하다면 쓸 수 없기는 하지만…… 황금매로 저 정도까지 버틸 수 있다면, 통할 거야. 그러니까, 대체 마그마의 수호자라니! 그게 뭐냐!
빠른 설명과 함께 드라고니아는 바로 투란에게 다시 묻고 있었다.
투란은 크리스털의 날개에 집중하면서, 저편의 회색 암벽에 주의하면서 활공(滑空)하는 자세가 되며 대답한다.
‘뭐긴, 스톤 가드처럼 저 미로의 경계를 지키는 수호자란 거지. 내 마그마 로드의 나눠진 조각이고…… 스톤 가드보다 훨씬 똑똑해서 잘못 빠져든 사람은 바로 내보내주기도 하는 착한 놈이라고!’
―너, 지금 몬스터의 파편을 분리 독립시켜서 던져놓았다는 거냐! 그것도 마그마 로드를……?
쏴아아―!
투란은 크리스털 날개의 윤곽 속으로 드레이크의 금빛 비늘을 잠시 채워 넣으며 바람을 삼키고 뿜어내서 보다 빠르게 회색 암벽을 향해 날았다. 곧 아래로 길게 늘어졌던 크리스털의 맑은 광채를 머금었다가 검은 재의 회오리 궤적이 되어버린 가는 가닥이 끊어지면서 투란과 마그마의 연못을 향해, 흘러들어 사라졌다.
‘왜 그래? 처음도 아니고…… 책임지는 자세잖아! 못된 대마법사인지 대마도사인지보다 훨씬 깔끔하잖아! 착한 수호자라니까, 저 못된 스톤 가드가 날 쫓아 나오는 것도 막고 말이야.’
―그, 그건……!
잠시 드라고니아는 당황하면서 할 말을 잃은 듯했다.
과연 저렇게 쳐막아 놓는다면, 스톤 가드는 마그마의 연못만을 긁어댈 것이다.
그 너머로 완전히 투란이 벗어나 멀리 가버렸다는 것을 알지 못할 테니!
그리고 마그마의 연못은 작은 마그마 로드로서, 스톤 가드를 상대할 터였다. 투란의 의지에 따라…….
한데 시간이 흐르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광야의 미로 속으로 흘러들어간 마그마가 언제까지 저 작은…… 사실은 거인의 형체가 뛰어나올 정도로 큰 구멍만을 채운 채로 머물까?
드라고니아로서는 뭐라 할 수 없는 큰 사고란 느낌만이 강렬했다!
하지만 투란은 이미 그런 일은 잊은 듯이 재촉한다.
‘세이크리드 힐, 준비는 된 거야? 크리스털 캐슬을 해제하면 제란드의 상태가 바로 나빠질 것 같다고. 정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눈알도 한쪽만 구르고, 한쪽은 완전히 눈동자가 풀렸구만! 세이크리드 힐, 어서 줘!’
―나오는 동안, 윌 라이트에 이미 전사(轉寫)시켜놨다. 키워드 역시 세이크리드 힐이고…… 안정적으로 마법이 작용하도록, 땅에 내려놓은 다음에 시작해. 황금매도 안정적인 땅 위에서 제대로 골든 서클의 마력을 보급받을 테니까.
화아앙!
투란은 바람결을 가르고 날면서 드라고니아의 말을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