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7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80)
쿠웅!
나름 차분하고 얌전하게 내려앉으려 했지만, 투란은 발이 땅을 딛는 순간에 울려 나오는 둔하고 깊은 울림을 듣고 자신의 몸무게가 유지하고 있는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무겁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아, 또 실수했네.’
정돈된 채로 몸 안을 맴도는 잘 짜인 마그마 로드였기 때문에 황금매의 경우와는 다르게 체격에 어울리는 무게로 알아서 맞춰질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천칭’의 마그마 로드는 단정한 구조를 이루면서도 그 본질에 어울리는 짙고 높은 밀도(密度)를 갖추면서, 황금매가 품은 마그마 로드보다 더 강력한 무게를 챙겼다!
블랙 애시로부터 바로 짜인 ‘천칭’의 마그마 로드가 오직 투란의 형상을 이루기만 하면 나머지 세상과 닿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성질을 드러낸 셈이었다. 밟히거나 부딪힌 것은 당연히 뭉개고 부숴 버리며, 불태우고 녹여버리면 그만이라는 듯…….
투란은 그 까닭이 스톤 가드가 무너지고 쏟아지는 바위 사태가 되어 앞을 가로막은 것을 돌파해 나온 ‘경험’ 때문임을 느끼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투란이 ‘천칭’의 마그마 로드를 형성하고 세상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지른 실수라고 할 수도 있었다.
몬스터 로드는 몬스터의 형상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성장하는데 ‘천칭’의 마그마 로드가 본격적으로 경험한 것이 광야의 미로를 떠도는 스톤 가드인 탓인지라…… 크기와 상관없이 이 정도 무게는 당연히 유지하는 것이라 본능적으로 착각한 셈이기도 했다. 날려오는 스톤 가드의 무게를 감당하고, 거기에 발자국을 내면서 뭉개고 지나가기에 딱 맞는 중량(重量)…….
‘정신 차려야겠다, 자 그럼!’
투란은 자신을 향해 되뇌면서, 크리스털 캐슬에 덮인 제란드를 바닥에 얌전히 내려놨다. 움푹 파여서 주변이 푹 꺼진 구덩이 꼴이 된 탓에 제란드는 비스듬히 푹신한 흙담요 위에 놓인 듯했다.
가만히 왼손을 크리스털 캐슬에 올려놓으면서, 투란의 눈가에 작은 눈알이 무늬처럼 솟아났다가 사라졌다. 그 다채로운 눈빛을 만난 크리스털 캐슬 위로 검은 그림자가 얼룩처럼 번졌고, 잉크의 부드러운 질감이 맴돌기 시작한 다음에 크리스털의 껍질이 재가 되어 휘날렸다.
그 휘날리는 재 속으로 바로 오른손을 밀어넣으면서, 투란은 윌 라이트 속에 새겨진 주문의 키워드를 외운다.
“세이크리드 힐.”
화아아―! 화륵!
진홍(眞紅)과 금색(金色)이 뒤엉킨 불길이 피어올랐고, 맑은 재와 엮이며 춤을 추듯이 주변으로 번졌다.
‘에? 뭐……!’
투란은 잠깐 그 광경에 놀랐지만 곧 그 불길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불이 아닌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법이 강한 마력을 응집(凝集)시키며 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영역을 드러내는 광경이었다. 마치 불길이 번지듯이.
‘아, 괜히 놀랐…….’
감각을 통해 마법을 확인한 투란이 안심하려는 순간이었다.
“으아앗! 투란! 뭐, 뭐 하는 거야!”
저편 너머에서 놀란 목소리를 터뜨리며 껑충대며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굳이 보지 않아도 투란은 누군가 알 수 있었다.
독특한 랩티어의 다리로, 단번에 10여 미터를 가로지르는 걸음, 멜란드였다.
‘어, 방해되려나?’
문득 투란은 강렬하게 번져가는 ‘세이크리드 힐’의 마력을 느끼면서, 그 효과가 제란드의 몸에 스며들고 퍼져가는 것을 확인하면서 멜란드의 접근을 막아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생각했다. 일단 멜란드가 지닌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 이 주문에 끼어들게 된다면, 마법이 뒤엉키면서 망가질 수도 있잖은가?
―그럴 일 없다. 세이크리드 힐은…… 지금 너를 근원으로 삼아 펼쳐지는 이 주문은 몬스터 엠블럼에 방해받지 않아. 오히려…….
“꾸엣! 왜, 왜 이래!”
드라고니아의 설명 위로 투란은 멜란드의 비명 같은 소리가 겹쳐지는 것을 들었고, 슬쩍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멜란드가 엉거주춤하니 허우적거리는 걸음을 하고 있는데, 그 다리가 랩티어의 형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멜란드는 랩티어의 다리를 한 것처럼 걸으려 하는 모습이었고, 덕분에 걸음새가 아주 이상해 보였다.
‘이거?’
―성스러운 힘을 끌어내는 마법이다. 이 세이크리드 힐은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의 형상을 하고 있더라도 통하는 마법이야. 오히려 몬스터 엠블럼을 진정시키고,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의 본능에 휘둘리는 일도 막아낼 수 있는 주문이다.
‘그랬어?’
설명은 확실하게 투란을 놀라게 했다.
도대체 드라고니아는…… 드라코눔의 아칸은 어떻게 이런 마법까지 갖췄을까?
‘너 정말 왜 키린에게 삼켜졌냐?’
새삼 투란은 궁금했다.
드라고니아는 침묵했고, 투란은 눈앞에서 허우적거리는 멜란드에게 묻는 말을 꺼내야 했다.
“멜란드, 그 상처는?”
랩티어의 다리로 빠르게 날 듯이 오다가 허우적대는 멜란드의 얼굴, 어깨와 몸통에 이리저리 긁히고 패인 흔적이 있었다. 그런 채로 멜란드는 오는 속도를 줄이지 못해서 바로 제란드의 앞까지…… 불길이 번지는 듯한 마법이 펼쳐지는 풍경 안으로까지 들어왔고, 바로 상처가 아물며 치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강력한 마법에 의해 바로 아물어가니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했지만, 가볍게 보이지 않는 상처였다. 하물며 황금매의 마법으로 웬만해서는 이 ‘세이크리드 힐’의 영역 안에 들어서기 전에 회복이 이뤄지고 있어야 할 텐데 그런 모습도 아니었다.
멜란드는 투란의 물음에 자신의 상처를 다시 봤고…….
“어? 아, 이거…… 으앗! 낫고 있잖아!”
놀라는 소리부터 질러대고 있었다.
투란은 멜란드의 어깨 너머를 봤고, 저쪽에서 히엔나의 다리를 힘차게 움직이며 다가오는 시알라와 페란드를 볼 수 있었다. 둘 또한 멜란드와 비슷한 상처를 입은 채였다. 다만 멜란드와 다르게 둘은 상처가 아물어가는 모습이 선명했다.
멜란드가 바로 둘에게 손짓하며 말한다.
“누나, 형! 이리 와! 이거 금세 낫고 있어!”
시알라와 페란드는 이 소리에 상관없이 빠르게 다가왔고, 제란드부터 내려다봤다.
뒤틀렸던 모습이 거의 제 모습인 채로, 제란드는 몸 곳곳에 갈라진 상처만 입은 듯이 보였다.
투란은 그런 제란드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럭저럭 위험하지 않게 된 모양이므로…….
덤으로 멜란드와 시알라, 페란드의 상처도 회복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래저래 좋은 상황이 아닌가.
하지만 잠깐 상황을 좋게 보려던 투란은 귀를 쫑긋하며 빠르게 고개를 돌려야 했다. 저쪽에서 큰 돌덩이가 기운차게 날아들고 있었으니까!
“쟤는 뭐야?‘
그 돌덩이를 날린 녀석, 어떻게 봐도 뿔비비를 닮았는데 한쪽 뿔이 머리가죽과 함께 찢겨 날아간 묘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날아드는 돌덩이를 페란드가 후려치면서…… 팔뚝이 순식간에 쇠비늘로 덮인 형상이 되면서 돌덩이가 파쇄(破碎)되는 광경을 만들면서 페란드는 평온하게 말한다.
“저쪽 너머 숲에서 날뛰는 놈인데, 아무래도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계속 시비를 걸어오고 있지.”
멜란드가 으득, 가볍게 이를 갈면서 덧붙인다.
“망할 놈이 손톱에 이상한 독까지 바르고 있어서 깊이 긁히면 잘 낫지를 않는다니까! 그런데 이 불길은 어떻게 금방 낫게 하는 거지? 어, 제란드 형? 형, 괜찮아?”
투란은 제란드를 내려다봤고, 시알라도 얼른 몸을 낮추면서 제란드의 상태를 살피려 했다. 어느새 눈을 반쯤 떴다 감았다 하는 채로 제란드는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주 심하게 지친 모습이었고, 고갯짓도 어려운 듯이 눈알만 굴리는 것처럼도 보였다.
투란이 시알라에게 말한다.
“얼마 동안 쉬게 해야 하는데…… 저 녀석 때문에 쉼터도 못 만들고 있었던 거야?”
시알라가 제란드가 약하지만 숨을 쉬는 중이고 맥박이 뛰는 채로 정신이 희미하나마 돌아오는 꼴을 보며 대답한다.
“응? 쉼터야 만들었지. 기다리다가 저 귀찮은 녀석이 더 귀찮게 굴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던 중이었어. 그런데 갑자기 높이 뛰어올랐던 멜란드가 뭐가 날아온다고 해서…….”
이 대답에 투란은 갸웃했다.
셋을 이리저리 긁었고, 한 명에게는 꽤 심각하게 보이는 상처까지 입힌 놈이 저쪽에서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저 뿔비비로 보이는 녀석이 어지간해 보이지 않는데, 저 녀석과 이렇게 툭탁거리면서 그새 쉼터까지 만들어 놓을 수 있었을까? 대충 보아하니 여기 떨어지자마자 저놈과 싸우고 있었을 것 같은데…….
“이미 쉼터를 만들었다고? 저놈이랑 싸우면서?”
궁금함을 바로 투란이 꺼내놓자, 시알라가 조금 이상하다는 듯이 투란을 보며 말한다.
“저거랑 벌써 열흘째 다투고 있었는걸. 저 녀석도 사납기는 하지만 어쨌든 하루 내내 덤비지는…….”
“열흘? 뭔 열흘!”
투란은 화들짝 놀란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약간 난폭한 낌새까지 섞인 말투였고, 그르륵거리는 억센 음향이 투란의 어깨와 몸에서 세차게 울려 나오기까지 했다. 저편에서 으르렁대던 뿔비비의 모습이 이 음향에 놀란 듯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시알라는 그 소리에 흠칫하면서도 차분하게 대답한다.
“투란, 우리 여기 떨어지고 열흘째야. 투란이 제란드를 구하러 들어갔다가…… 열흘 만에 나온 셈이라고.”
“헐!”
멜란드가 기겁하는 투란을 보며 갸웃거렸다.
“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어? 아니, 그렇다고 해도 열흘이나 시간을 헷갈리는 거는…… 투란?”
투란은 자신의 형상을 정리하면서, 폴싹 주저앉는 모습이 되어 중얼거리는 소리로 궁금해하는 남매를 향해 답한다.
“길어봐야 두어 시간도 걸리지 않은 줄 알았다고…… 아, 진짜…… 저놈의 미로는 대체 뭐야…….”
“뭐?”
“두어 시간?”
시알라와 멜란드가 투란의 말에 당황하고 말았다.
여전히 저편을 경계하던 페란드가 잠깐 몸을 움찔하다가 차분하게 말한다.
“일단…… 우리가 지어놓은 쉼터, 세이프티 하우스로 가지. 제란드를 옮겨도 되는 거지, 투란?”
“어, 응……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쉬어야겠어. 나도 좀 자고 일어나야 할 것 같으니까…….”
한숨처럼 투란은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 말과 함께 투란의 몸에서 검은 암석의 살갗, 뜨겁고 붉은 줄기, 여러 개의 눈알 형상이 모두 사라져갔다. 투란은 허리를 단단히 조이면서 무릎 위까지 덮는 두꺼운 가죽바지를 남긴 채로, 온전한 사람의 형상만을 남기면서 새삼 지친 모습을 보였다.
시알라가 굵어진 히엔나의 두 팔로 제란드를 안아 올리면서 멜란드에게 말한다.
“멜란드, 투란을 부축해줘. 페란드, 앞장서.”
페란드는 두말없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주변을 경계했다.
멜란드도 가만히 투란의 팔을 잡아 어깨에 두르면서, 버텨주는 자세를 잡았다.
투란은 뭔가 고요해진 드라고니아의 기척, 갑작스럽게 열흘 지났다는 말을 듣고 느낀 허탈함을 타고 한꺼번에 밀려오는 피로를 느끼면서 그냥 멜란드에게 기대버렸다.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해체한 덕분인지 이제 몸은 한껏 가벼워진 듯했으니, 아무런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는 것처럼!
높이 치솟은 회색의 암벽, 그 곁을 장식하듯이 들러붙은 우거진 숲을 바라보는 울퉁불퉁한 바위가 가득한 곳에 세이프티 하우스가 쉼터로 자리 잡고 있었다. 암석이 마법에 의해 뒤틀리고 형상을 변화시켰지만, 원래 그런 모양이었다는 듯이 생겨먹은 걸로 보이는 네모난 집의 형태를 한 쉼터였다.
그 돌집의 절반은 땅에 묻힌 듯했고, 절반은 위로 더 높이 치솟은 듯했다.
돌문이 꿈틀거리는 바위처럼 열렸고, 바로 보이는 안쪽에는 벽화로를 놓고 있는 넓은 거실이 자리 잡았다.
멜란드에게 질질 끌려가듯이 매달린 채로 문턱을 넘어서면서 투란은 이 세이프티 하우스의 형태가 이전과는 또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벽의 화로는 쇠를 녹일 듯한 대장간의 화로가 아니라 그저 따뜻하게 실내를 데워주기 위한 난로인 것부터 달랐다. 그리고 난로가 박힌 벽의 반대방향으로는 문과 계단이 있었다. 위로 오르는 계단과 비스듬히 아래로 향한 계단을 품은 문이었다.
시알라는 제란드를 안은 채로 그 아래로 향한 계단과 문을 넘어갔다.
멜란드도 투란을 그리로 부축해 끌고 갔다.
그 안에는 두 개의 침대가 나란히 놓인 채였다.
누가 잔 흔적도 없이, 나눠진 침대였고 아주 푹신해 보이는 담요로 덮여 있었다.
“멋지지? 돌아오면 방해받지 않고 바로 쉴 수 있게 하려고 일부러 만들고 비워놓은 침실이야.”
멜란드가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시알라는 말없이 제란드를 한쪽 침대에 올려놨고, 멜란드도 투란을 다른 침대에 내려놓았다. 그다음 시알라가 말한다.
“그러면…… 일단 쉬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제란드가 완전히 눈을 감은 모습을 보며 투란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 눈을 감으면서 잠들어갔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듣는 것은 열흘의 시차(時差)를 넘은 다음이 좋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