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8)
그러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뱀처럼 보였던 놈은 사실 이빨거머리랑 좀 더 닮았지만 완전히 다른 이상한 놈이었다. 저 불길 속의 뼈다귀 녀석처럼, 이야기로도 들은 적이 없었다!
가늘고 뾰족한 입을 떠억 벌리고 있는데, 다가오는 꼴을 보니 단숨에 사람의 허리 정도는 동강 낼 정도로 길다! 절대로 이빨거머리일 리가 없다. 게다가 물을 밀어내는 유연한 몸놀림은 물뱀보다 더 부드럽고 빠르기까지 했다.
투란이 어, 어, 하는 순간에 이미 녀석의 입은 가위처럼 벌어져 허리를 깨물려 들었다. 그 꼴을 보고 투란보다 먼저 황당해하며 화를 낸 것은 불길 속에서 악악대는 뼈다귀 머리가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로 냉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녀석의 입이 다가오는 순간, 몸을 굽히고 손과 발을 움직여 그 입이 깨물려는 자리에서 피했다. 그리고 옆을 스쳐 가는 녀석의 긴 몸이 자신을 중심으로 뱀처럼 굽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녀석은 그를 깨물기 위해 꼬리로 퇴로를 차단하며 머리 쪽을 돌리는 짓을 하고 있었다!
‘사냥을 할 줄 아는 놈이다!’
투란의 사고가 분명해졌고, 순간적인 생각의 흐름이 다음 상황을 여러 갈래로 그려 냈다. 그리고 몸이 그 생각에 따라 움직였다.
녀석의 꼬리와 머리가 그리는 원에서 벗어나는 쉬운 방법은 원의 위나 아래로 튀어 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냥에 능숙한 녀석이 그런 뻔한 방법을 모를까? 몬스터니까, 정상적인 놈이 아니니까 모를 수도 있기는 했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하지 않는 것이 몬스터이기도 하므로.
하지만 그런 예측에 기대는 것은 행운을 믿고 저지르는 도박이기에 투란의 냉정한 생각 속에서 바로 제외되었고, 대신 더 위험한 방법이 선택되었다.
투란은 녀석의 중심, 굽어지는 몸의 한복판으로 달라붙듯이 움직였다. 손발의 넓어진 틈새로 물방울을 움켜쥐고 밀어내는 방식으로, 허리를 굽히고 펴는 역동적인 동작을 통해서 짧은 순간에 사람의 한계를 넘는 속도로.
그러는 동안에도 녀석의 동작은 똑똑히 보였다.
꼬리와 머리가 살짝 주춤하며 위아래로 움직이려던 동작을 억지로 멈추는 모습이었다.
확실히 녀석은 제 긴 몸으로 그려 내는 원에 갇힌 사냥감이 어떤 식으로 쉽게 도망치는지 알고 있었다. 그에 대응해서 꼬리나 머리를 따로 움직이는 일에도 익숙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원을 그리는 제 몸에 달라붙는 투란에게 대응하는 속도가 조금 둔해진 듯했다. 그럼에도 녀석이 벌린 입은 여전히 그를 동강 낼 기세로 덮쳐들었고, 그 가위 같은 입을 피할 길은 없어 보였다.
투란은 가까스로 두 발을 내질러 녀석의 몸통을 걷어찼지만 악마의 심장이 키워 낸 두꺼운 발톱이 바로 깨져 버렸다.
비명을 지를 수도 없고, 그럴 틈새도 없었다.
다만 그 반동과 손의 갈퀴를 이용해 열린 녀석의 입을 넘어 반대편으로 튕겨질 수 있었다.
가위가 벨 수 있는 것은 맞물리는 날 사이에 뭔가 끼었을 때이고, 그 틈새를 건너기만 하면 가위에 베이지 않는다, 이것이 투란이 생각하고 쥐어짜 낸 생존 방법이었다.
가능한 한 녀석의 몸에 붙어서 계속 녀석을 걷어차거나 밀어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딱 한 번 닿는 순간 깨달았던 것이다.
‘껍질이 왜 그래!’
바위도 할퀴고 힘을 주면 절벽에 박아 넣을 수도 있는, 투란의 발톱이 세차게 한 번 걷어차는 동작으로 으깨져 버렸다! 터진 발톱 자리로 핏물이 새 나오는 대신에 물줄기를 쭉쭉 빨아들이는 것은 악마의 심장이 본능적으로 저지르는 짓이었다.
‘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투란이 기대한 적이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가 피한 곳으로 입을 한껏 벌리고 머리를 들이민 녀석은 깨무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로 인해 녀석의 몸통이 뾰족한 입에 가위질당해서 동강 나고 있잖은가!
사냥감을 물어 토막 낼 수 있다는 확신 속에 머뭇거림이라고는 전혀 없이 이뤄진 깔끔한 연속 동작이었다.
그것이 제 몸을 토막 나게 만든 원인인데도 녀석은 멈추지 않았다. 고장 난 물레가 쓸데없이 바퀴를 돌리는 것처럼 녀석의 머리가 뒤로 빠졌고, 잘려 나간 몸통의 절반이 버둥거리는 사이에 다시 한 번 투란을 향해 열린 가위처럼 입이 휘둘러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투란은 녀석의 입을 뛰어넘어야 했다.
아까와 다른 점은 입의 틈새를 넘은 것이 아니라 닫혔다 열리는 입의 위턱 부분을 잡고 굴러 아예 머리통을 통째로 넘어 버린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녀석이 당황한 듯, 공황에 빠진 듯 몸부림치는 꼴이 보였다.
아까처럼 빠르게 그를 노리지 못하고, 토막 난 몸으로 주황색 체액을 뿌리며, 꼬리는 꼬리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갈팡질팡 발광하는 뱀처럼 난리 치는 모습이었다.
투란은 거기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다.
그 와중에 새로 뭔가가 툭 끼어들었다.
물속의 상황을 지켜보던, 아주 짧은 순간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 있던 뼈다귀 머리였다.
놈의 발톱이 물을 후비자 물살이 갈라지며 틈새가 생겨났다.
그 틈새로 보다 흉흉하게, 이번에는 물 덩이를 맞아도 태워 버리겠다는 것처럼 뼈다귀 머리통에 색이 다른 불꽃을 두른 채로 놈이 들이닥쳤다.
투란보다 먼저 토막 나 발광하던 크고 굵고 긴 뱀처럼 생긴 괴물의 몸통이 그 머리에 닿았다. 덩치가 크니 당연한 일이기는 했지만, 뼈다귀 머리통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토막 난 녀석의 머리 쪽을 물고 불길 속으로 후퇴했다.
투란은 갈라진 물살을 건너면서 아직 바동대는 녀석의 꼬리 부분을 피하기 위해 애쓰다가, 불길 속의 풍경을 보았다.
물뱀 괴물은 불길 속에서 끌려 들어가서도 뾰족한 주둥이를 가위처럼 놀려 뼈다귀 놈의 어깻죽지, 머리통을 마구 깨물고 있었다. 그 과격한 기세에 잠깐 뼈다귀 놈의 뼈대가 깨지는 듯했지만…….
‘안 되는군.’
투란이 엉겁결에 던진 물 덩이를 맞고 으스러졌다가 회복된 뼈다귀 괴물이었다.
하지만 불길 속에 으스러지는 물뱀 녀석쯤은 으적으적 씹어 없앨 수 있었다.
그 틈에 투란은 가능한 한 불길에서 멀어져, 허공을 가로지르는 물줄기의 반대편에 붙으려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불길 속의 뼈다귀 괴물은 그를 잠시 잊은 듯, 토막 나 발버둥 치는 물뱀 괴물의 꼬리 부분도 마저 채 갔다! 아무래도 투란처럼 작은 놈보다는 큰 놈이 더 취향에 맞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게 큰 놈을 다 씹어 먹고 나자 뼈다귀 놈의 머리통이 흔들거리며 다시 투란을 찾지 않는가!
투란으로서는 변한 상황이 거의 없었다.
그저 불길에서 조금 멀어지고, 녀석의 발톱이 뿜어내는 이상한 힘과 조금 더 두꺼운 물결의 간격이 생긴 정도가 고작이었다! 아니, 그보다 고약한 점은 발톱이 터져 나갔고 사람의 한계를 넘는 과격한 움직임에 체력이 급격하게 소모되었다는 것이다!
‘망할!’
이 격한 물결 속에서는 물을 쭉쭉 빠는 것으로 체력이 회복될 수가 없었다.
저놈처럼 뭔가 먹어야 하는데…….
운 좋게 죽어 주는 두꺼비 닮은 놈 같은 것은 없었다.
있는 거라고는, 격한 흐름 속에 함께 휩쓸려 가는 중인 주황색의 체액뿐.
투란의 손길이 엉겁결에 그 주황색을 향해 뻗어 갔다.
물결 속에 흩어져 엷어지는 주황색과 닿은 손의 넝쿨이 찌릿하며 선명한 감각을 전해 왔다.
‘이거 독한데!’
맹물보다는 낫다, 맹물보다는…….
물과 함께 주황색의 체액이 몸으로 흘러들면서 조금 힘이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두꺼비 닮은 놈의 살덩이를 삼킬 때만은 못하지만 물속에 흩어지는 잔해인 것을 감안하면 꽤나 효과적이었다!
‘아까 막 새 나왔을 때, 농도 짙은 그 자리로 지나갔으면…….’
뭔가 아닌 듯하기는 한데, 힘이 죽죽 떨어지는 것을 느끼는 투란으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아아!
그의 아쉬움을 달래 주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불길 속에서 울퉁불퉁하니 부푼 형상이 된 발톱이 뻗어 오며 물살이 세차게 갈라졌다. 불길의 한 가닥이 물결을 가를 정도로 세차게 뻗어 오기도 했다.
하지만 투란이 몸을 담고 있는 물결은 불길을 그대로 삼키고 제 영역을 지켰다.
‘홀랑 타 버릴 뻔했잖아!’
아찔했다.
투란으로서는 힘이 있든 없든, 몸부림치는 것만이 할 일이었다.
다 포기하고 물에 몸을 맡긴 채 드러누워 도박하듯이 버티는 것은 전혀 취향이 아니므로!
‘피가 새지도 않으니까, 또 뭔가 올…… 어?’
다시 물결을 타고 저 멀리서 오는 것이 보였다.
급한 상황에서 나름대로 몸 간수를 했는데, 대체 뭐가 어떻게 또 오는가?
투란은 흩어지는 주황색 체액을 보면서, 부글대는 입을 열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괴물의 피가 또 다른 괴물을 부른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새로 오는 놈들도 아까 그놈처럼 주둥이가 뾰족하고 뱀처럼 흐느적대는 녀석들이었다.
‘대체 몇 마리냐!’
투란은 몸을 떨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두리번거렸다.
갈 곳이 없었다. 그저 물결 따라 허공을 떠내려갈 뿐이고, 저 아래는 여전히 불꽃이 가득하니.
‘에라, 모르겠다!’
그의 몸이 불길 쪽으로 슬그머니 밀려갔다.
불길 속에서 뼈다귀 머리의 눈구멍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이 보였다.
먹잇감이 다가오는 것을 즐거워하는 낌새가 역력했다.
하지만 투란은 바로 녀석의 발톱이 닿을 거리에서 미묘하게 벗어났다.
무리해서 찌른다 해도 갈라지는 물살을 따라 슬쩍 밀려 나갈 거리.
뼈다귀 괴물이 이빨을 드러내며 그 간격을 노려보고, 투란은 신나게 헤엄쳐 오는 놈들과의 간격을 쟀다.
그리고 한순간, 투란의 손발이 넝쿨로 넓은 갈퀴를 꾸미며 세차게 휘저어졌다.
뼈다귀 괴물이 불길을 휘감고, 발톱을 후리며 투란을 채 갈 동작을 드러냈다.
멀리 보이다가 한순간에 다가온 뾰족한 주둥이 몇 개가 일제히 열리면서 불길 속의 괴물, 투란을 향해 가위질을 했다.
온 힘을 다해 투란이 물살을 가르며, 물결의 표면 위로 헤엄치듯이 허우적거리면서 등살을 태울 듯한 불길을 느낄 때, 불길 속에서 투란을 낚으려던 괴물이 여러 주둥이에 물려 물속으로 끌려 들어왔다.
불길이 꺼지고, 놈의 뼈다귀는 흐물흐물 녹는 듯했지만, 그 전에 이미 여러 토막으로 잘린 채 뾰족한 주둥이 사이에서 튀며 씹혀야 했다.
투란은 물속의 풍경을 보며 몸을 뒤집었다.
등짝에 쏟아지는 불길의 열기가 몸을 태울 듯했다.
한쪽만 그리 있다가 정말 몸에 불이 붙는다면, 물속에서 불타오르는 끔찍한 경험을 할지도 모르는 일!
투란은 저 불길 속, 저 먼 곳에서 눈을 크게 뜨며 날갯짓을 하고 다가오는 놈들을 봐야 했다.
불과 물의 전혀 다른 환경을 날고 헤엄치는 괴물 떼의 패싸움이 시작되었다.
덩치 큰 먹잇감을 놓고, 두 패의 괴물들은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서로가 용납하지 않는 영역으로 끌어당기고, 물고, 할퀴고, 씹어 으깨며 싸웠다.
그 틈새의 작은 기포 하나보다도 작은 것이 투란이었고, 두 패거리의 괴물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무시당하는 이 상황에 감사하면서 투란은 온몸을 보다 과격하게 움직여 물결이 흘러가는 앞쪽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헤엄쳤다. 너무 깊이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너무 가까이 불길 쪽으로 붙지 않으면서, 허공의 물줄기 표면을 긁어 대며 기듯이 열심히 움직여야 했다.
두 패거리 괴물들의 몸짓에 스치기만 해도 투란으로서는 몸이 절반쯤 간단히 갈려 나갈 수 있으니!
그렇게 투란은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과도한 개헤엄을 쳐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멀리,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다음에야 그의 눈길이 뒤를 향했다.
‘씨! 뭐 이리 가까워!’
꽤 열심히 멀어졌다 싶지만, 그래도 저놈들 중 하나가 여유롭게 따라붙을 거리는 되어 보이잖은가!
이쯤 되면 두 패거리가 서로 다 잡아먹고 파편과 이상한 핏물만 질질 흘려 주든가, 이 물결과 불길이 놈들을 다 갈아 버리든가를 기대해야 했다.
‘앞에는 뭐가 있지?’
흐르는 물줄기가 기울어지는 것을 느끼며 투란은 불안함에 다시 눈길을 돌려야 했다. 날개 없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강의 끝이 불꽃 이글대는 땅을 향하고 있었다. 아직은 닿지 않았지만 떨어질 수밖에 없을 듯했다.
투란은 기대를 하나 더 늘렸다.
이 크고 굵은 물줄기가 닿은 곳의 불꽃이 바로 꺼지기를!
진흙탕이 되어서 그를 받아 주기를!
뼈가 욱신거리는 느낌 속에서 그저 기도만 하면서, 괴물들의 싸움터에서 멀어져 다가오는 물살의 종착지를 바라보면서, 투란이 할 수 있는 일은 달리 없었다.
그리고 그의 기대에 보답하는 듯한 일이 벌어졌다.
허공을 가로질러 결국 불타는 땅에 물결이 닿는 순간, 불기둥이 치솟았다가 흩어지며 물기둥이 하늘을 관통하듯이 드러났다.
‘엑!’
그 물의 기둥에 휩쓸려 투란을 실어 나르던 물줄기도 같이 하늘 높이 휘말려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