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8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81)
Chapter 57. 헬 임프의 정원 Ⅰ
투란은 잠이 들었다. 투란은 깨어 있었다.
‘흠?’
자신이 깊은 잠에 빠진 것을 느끼면서, 그러나 동시에 아주 선명하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깨달은 투란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의아함은 곧 맥동하는 ‘악마의 심장’을 느끼는 순간, 바로 투란의 마음에서 사라졌다.
잠이 들었으나 ‘악마의 심장’은 윌 라이트의 의지에 따라서, 쉬지 않는 몬스터의 본능에 따라서 투란의 심장과 겹쳐진 채로 두근거리는 채로 ‘기억(記憶)’하고 ‘사유(思惟)’하며 제란드를 구해낸 상황을 되짚고 있었다.
크리스털 캐슬로 덮은 제란드를 데리고 나오던 과정…… 낯설고 이상한 미로 안에서 자신이 발휘했던 몬스터의 능력…… 오랜만에 ‘천칭’을 꺼냈기 때문에 살짝 어긋나게 느껴지던 감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던 상황까지, 투란은 ‘기억’하고 ‘사유’했다.
미로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을 때, 마그마 로드의 형상으로 거대해진 채로 크리스털 애시를 감는 물레가 되었던 듯한 순간까지…… 거기에 도달할 때까지의 과정이 투란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으면서 새로운 경험을 정신 깊이 새겨 넣는 과정이었다.
이전이었다면 잠든 채로 생각하고 깨어나서 대강 기억하고 말았을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잠이 든 자신, 생각하는 자신이 모두 선명하게 투란의 정신에 드리워지고 있었다.
‘신기하네, 왜 이렇지?’
―윌 라이트의 효용이다.
투란이 혼잣말처럼 던진 물음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고요하게 대답했다.
‘왜?’
한층 더 의아해하며 투란이 되물었다.
―글쎄…… 이번에는 너 스스로 잠을 자야 할 필요와 함께, 광야의 미로에서 겪었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했던 짓을 기억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품었기 때문일까?
‘음…… 분명히 세란드…… 괴물 세란드의 힘을 빌려 쓴다는 그 이상한 계약 마법까지 동원했지. 윌 라이트로 황금매의 마법을 이것저것 써보기도 했고…… 아빈가의 여우가 어떻게 주변을 보고 느끼는가도 익혔고…… 그래서 그런가.’
―너 스스로 성장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 지닌 능력을 끄집어낸다는 것은 그런 면이 드러나게 되는 일이니까.
‘응? 그런 것도 있어? 어…… 아, 그런데 제란드는 그때 깨어 있었나? 정신 못 차리고 있었던 것도 같고…… 크리스털 캐슬 안이었으니까 내가 뭘 하는지 볼 수 없었겠지?’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제란드가 너의 역량에 대해 아는 것이 걱정되나?
‘잘 모르겠어. 키린은 가능한 한 그런 일이 없게 하라고…… 원래 몬스터 로드가 자기 몬스터의 능력에 대해서 숨기는 게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니까.’
―그렇게 걱정되면 직접 묻지 그러나? 너의 잠이 끝나가고 있고, 제란드는 이미 깨어나 있다.
‘응?’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에 숨을 크게 들이쉬는 자신을 느꼈고, 아련하고 포근한 어둠이 열리듯…… 자신이 눈을 뜬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에 선 채로 벽에 기댄 듯한 침대가 보였고, 거기에 앉은…… 벽에 엉덩이를 붙이고 벽을 향해 다리를 늘어뜨린 모습으로 보이는 제란드가 있었다. 이건 기대도 안 한 꽤나 신기한 광경인가 싶었는데, 바로 투란의 뇌리에 드라고니아가 잔소리를 찔러넣는다.
―네가 누운 거야!
‘아? 아하.’
가만히 숨을 내쉬고, 다시 들이쉬면서 투란은 몸을 일으켰다.
제란드는 조금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일어나는 투란의 모습에 흠칫하며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 그리고 가만히 투란을 향해 말한다.
“투란…… 고마워.”
“응?”
투란은 조금 의아하고 뜬금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눈을 껌벅거렸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채로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팔다리를 뻗으며 눈을 껌벅거리는 그 모습에 제란드가 쓴웃음을 지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누가 앞에 있다가 뭐라 한다면 그게 무슨 말인가 알아듣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조금 늦게 제란드의 머리에 떠오른 모양이었다.
“구해줘서 고맙다고…….”
“어? 아, 몸은 괜찮아?”
투란이 알아들었다는 표정을 짓다가 조금 심각하게 물었다.
황금매에 세란드가 정성껏 부여해놓은 마법으로 간신히 버티고, 그나마도 몬스터 로드의 독특한 마력을 지녔기에 겨우 형체를 유지한 채로 버틸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 몸을 치유하기 위해 드라고니아가 특별히 준비한 주문을 썼다지만…… 그렇게 마법 하나에 전부 괜찮아질 수 있을까?
투란은 마법사도 죽이고, 몬스터 헌터나 몬스터 로드도 죽일 정도로 지독했던 미로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직접 그 험악함을 겪은 제란드가 괜찮은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처라면 단순히 몸이 회복된 정도로는 완전히 나았다고 할 수가 없을 텐데…….
“괜찮아. 손발 제대로 움직이고, 눈도 귀도, 코도 제대로 느껴져.”
제란드는 미묘한 웃음과 함께 답하고 있었다.
투란은 그 표정을 예전에 다른 사람에게서 봤던 것을 금방 깨달았다.
팔다리가 마수에게 물려 거의 끊어질 지경에서 간신히 가죽만 이어진 몰골로 실려 왔던 사냥꾼…… 보이는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했던 그 중상을 치유하기 위해서 효과는 좋지만 꽤나 끔찍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는 지독한 약물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사냥꾼은 겨우 일어난 다음에 지금 제란드처럼 말했다.
“썩을! 움직이잖아, 멀쩡하잖아! 그래, 난 멀쩡해! 봐, 내 손가락 내 발가락!”
나아서 좋다는 것인지, 낫게 해서 울컥한 것인지 모를 애매한 울분이 가득했던 그 모습은 험한 꼴을 자주 보는 샤오콴 마을 사람들에게도 꽤 인상적이었다.
지금 제란드가 그 사람과 비슷한 표정으로…… 다만 울컥하는 깊은 울분 따위는 없는 모습으로 투란에게 말한 것이다. 그래서 투란도 제란드의 몸 상태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기로 했다. 더 묻게 되면, 그때 그 사람이 울분을 울화로 터뜨리던 모습이 나올지도 모르잖나!
“그래…… 어, 그런데 제란드…… 그 안에서 나오기 전에 정신이 있었어? 에, 그러니까 그 주변에서 뭘 보고 들었다든가…….”
“없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제란드의 대답은 빠르고 분명했다.
투란은 그 빠름과 분명함에 멈칫해야 했다.
구체적으로 묻고 싶었던 것은 아직 입 밖으로 내지도 않았는데…….
제란드의 눈동자가 투란을 똑바로 담으면서 또렷하게 말이 이어진다.
“그 속에 빠져들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제대로 기억하는 일이 없어. 투란이 날 구해냈고…… 어떤 모습으로 나왔는지, 내게 엄청난 마법을 썼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나와 형에게…… 멜란드에게 들은 게 전부야. 투란,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아. 저 이상한 곳에서 있었던 일은 전혀 기억하지 않아.”
강한 말투는 투란의 입을 다물게 했다.
선명한 의지가 담긴 그 눈빛에서 투란은 어렴풋이, 그러나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제란드가 저 안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을 작정이라는 것!
그 이유에 대해서 투란은 굳이 묻지 않았다.
제란드의 지금 모습도 투란에게는 언젠가 봤던 누군가의 모습과 닮았으니까.
함께 몬스터를 사냥했던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이 떠난 다음에 찾아온 누군가가 묻거나 하면 지금 제란드처럼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나는걸.’이라고 대답하는 이들의 모습…….
몬스터가 와글거리는 왕국의 경계 밖에 자리한 마을에서 다른 곳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묻고 따지는 일은 나름대로 금기였었다. 밖에서 엄청난 원한을 품은 이들도 샤오콴 마을을 들락일 때는 사이좋은 경우가 꽤 있기도 했다. 물론 저놈이 죽는 꼴을 본다면 내가 죽어도 좋다고 어떻게든 원한을 풀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이들은 대부분 엉뚱한 사람까지 험악한 꼴을 당하게 하기 때문에 상당히 따돌려지는 경우가 많기도 했다.
―호오, 침묵의 현명함을 보이는 건가?
드라고니아가 재미있다는 듯이 제란드의 태도에 대해 평했다.
투란은 말을 돌리기로 했다.
“그래…… 근데, 왜 이리 조용하지? 다들 어디 갔나?”
제란드의 상태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고, 침대 주변의 고요함에 대해서 묻는 말에 제란드가 돌연 쓴웃음을 지으며 답한다.
“쉬는 동안 방해하지 않는다고, 저 문턱이랑 벽에다가 무슨 바람의 보호를 걸어놨다고 하던걸. 그리고 저렇게 담요로 막아놓기까지 했지. 덕분에 이 안은 등불을 따로 켜야 할 정도로 컴컴했고 말이야.”
“어? 바람……?”
투란은 문득 침대가 놓인 방을 다시 둘러봤다.
제란드의 말처럼 입구, 문턱이라 할 곳에는 늘어진 담요가 장막과 문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광경이었고 벽의 모서리를 따라 기울어진 여러 개의 등불이 고요하게 불꽃을 품은 채로 환한 빛을 방 안에 드리우고 있었다.
―바람의 벽은 소리를 막는 역할을 할 때가 있지.
드라고니아의 말이 어렴풋이 투란에게 이해가 되었다.
바람이 심할 때, 혹은 심한 곳에서는 정말 가까운 곳에서도 악을 써야 할 정도로 목소리를 높여야 겨우 소리가 들릴 수도 있었다. 마법으로 고요하게 세워놓은 바람의 벽이라면, 저 문턱 너머의 소리도 확실히 차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모두…… 음, 식사 중이라고 해야겠지.”
제란드가 조금 띄엄띄엄한 말투로 약간 모호하게 보이는 표정과 눈빛으로 투란에게 말했다. 그 태도에는 마치 식사 중이기는 하지만 식사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는 기묘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바로 묻기로 했다.
“식사 중인데…… 제란드도 먹어야 하잖아?”
“그렇기는 하지.”
뭔가 제대로 떨떠름한 표정, 입맛이 없다는 말투에 투란은 눈을 껌벅일 수밖에 없었다. 대체 저 담요로 된 장막 너머에서 뭔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식사 중일 뿐이다. 별로 대단하다 할 일은 없어.
윌 라이트의 감지 능력으로 저쪽 상황을 파악한 듯한 드라고니아는 그저 이렇게 확인해줄 뿐이었다. 그러니까 위험하거나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뭔가 제란드에게서 입맛을 앗아가는 광경이 있다는 뜻인데…….
“뭘 하고 있길래!”
투란은 재빠르게 침대에서 일어났고, 얼른 담요를 걷어 올리면서 내다봤다.
바람소리가 먼저 투란의 귓가에 가늘고 여리게 스쳐 갔고, 투란의 눈과 귀는 문턱 너머의 풍경을 확실하게 포착했다.
와작, 와작.
으적, 으적…… 냠, 냠!
핡짝! 텁텁!
“에, 개? 아, 히엔나?”
투란은 담요를 내려놓고 스윽 한 걸음 물러서며 다시 고요해진 상황에서 제란드를 향해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제란드는 살짝 저쪽 벽을 보는 시늉을 하면서 답한다.
“히엔나. 요리하기 힘들고…… 먹는 것이 좀 수상하다고…… 여기서 열흘 머물면서 줄곧 저렇게 먹어댔다더군.”
투란은 제란드의 더듬거리는 설명에 눈을 깜박였고, 다시 담요를 걷고 내다봤다.
“컹, 투란!”
“음? 일어났군.”
“크킁, 하루를 꼬박 자더니…….”
히엔나의 머리통이 살짝 변해서, 사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느 정도 당연해 보이는 형상을 한 다음에 멜란드, 페란드, 시알라가 말하고 있었다.
투란으로서는 처음 봤던 광경에서 그다지 변한 풍경은 아니었다.
입고 있는 차림새로 시알라, 페란드, 멜란드를 알아봤었고…… 지금도 히엔나의 낯짝에 슬슬 셋의 모습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보다 차림새로 먼저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음, 뭐 먹는 거야?”
제란드가 한 말을 되새기며 투란은 세 남매가 바닥을 채운 불구덩이에 넣어 통으로 굽고 있는 고기의 정체에 대해서 물었다. 거실의 바닥에 구멍을 파내고 달아오르고 타오르는 돌과 숯을 깔아 구워지는 고기는 갈기갈기 찢기고 노릇하고 거뭇해서 원래 뭔 놈이었는가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으므로!
멜란드가 이에 대해 빠르게 답한다.
“응? 아, 저거.”
간략한 턱짓, 히엔나의 돌출된 코와 입 형태 탓에 입술을 삐죽대며 가리키는 듯한 모습이었다.
투란은 그쪽을 봤고, 거기에 토막 난 채로…… 칼날에 의해 얌전히 동강 난 것이 아니라 굵은 손톱과 억센 손아귀에 박박 찢긴 형체를 하고 있는 것을 봤다. 그 토막 난 것들은 아직 구워지지 않았고, 비늘도 있어서 그럭저럭 뭔가 알아볼 수가 있었다.
“어? 흙도마뱀…… 뚱보?”
키린이 구웠던 흙도마뱀의 비늘, 형태가 엿보였다.
그런데 그보다 두 배는 부풀어 오른 듯한 살집이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페란드가 구운 고기를 집어 잘게 찢으면서 답한다.
“잘 모르겠어. 어쨌든…… 히엔나의 내장이 버텨주고 먹을 만해.”
멜란드도 보태 말한다.
“음, 이 근처에서는 이 녀석이 그럭저럭 잡히거든. 구워 먹을 수도 있고…….”
시알라는 슬쩍 투란이 선 문턱 너머를 보며 외친다.
“제란드, 투란도 깨었으니까 이제 나와. 너도 좀 먹어야 한다니까! 주문만으로 체력 회복이 안 되는 거 알잖아!”
투란은 문득 세 남매가 열흘 동안 굉장히 이곳 상황에 익숙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란드는 너무나도 이 상황에 능숙한 피붙이들의 모습에 다소 당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