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8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83)
“여태 못 잡았으면서…….”
제란드가 미묘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거의 잡을 뻔했다고! 형이랑 투란이 나타나는 걸 보고 놔준 거란 말이야!”
바로 튀어나온 멜란드의 대꾸는 힘차면서도 조금 억울한 느낌이 담긴 채였다.
제란드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시알라와 페란드를 바라봤다.
멜란드의 말을 시알라와 페란드가 전혀 부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거의 잡을 뻔했는데, 투란과 제란드의 상황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잡을 뻔한 것을 내팽개쳐 놓고 달려왔다는 것이잖은가.
투란은 그런 사정은 제쳐 놓듯이 묻는 말을 꺼낸다.
“묶어두거나 잡아 가둔 다음에 못 움직일 정도로…… 안 죽어도 죽은 것처럼 조용하게 패놓거나 하는 거는? 안 해봤어?”
뭔가 사람이나 짐승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라면 참으로 지독하고 잔혹스러운 짓을 잘도 묻는다고 따질 내용이었다. 하지만 몬스터를 상대로 이는 아주 당연히 시도해볼 일이었다. 어떻게든 몬스터를 없애려면, 쉽게 죽지 않는 경우에는 일단 잡아 가두고 묻어버리는 것도 꽤 자주 선택되는 방법이므로!
페란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여유가 없었지. 생긴 거는 분명히 뿔비비인데…… 저게 정말 뿔비비인지 의심스러운 꼴만 봤어. 뭣보다 그렇게 패고 찢어놓으려 할 때마다 저놈이 우리를 패고 걷어차는 게 가볍게 볼 수가 없었거든. 멜란드는 발길질로 맞섰지만, 나나 누나는 그냥 맞고 버티는 게 고작이었어. 그나마도 그랑츄의 몸으로 버티면서 나름대로 불도 질러놓고 그래서 바로 죽는 상처는 피했지만…….”
“응? 페란드, 쇠비늘은? 물고기 비늘은 안 써봤어?”
“아, 써봤지. 조금 나중에…… 그때부터 나는 상처를 덜 입었어. 하지만 누나나 멜란드는 어떻게 해도 놈의 손톱에 긁혀졌지. 그 긁힌 상처가 이상하게 부풀면서 독처럼 몸 안에 스며들고 자라나는 이상한 살점 덩어리를 만들어서…… 살짝 긁혀도 얕볼 수는 없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는…….”
페란드가 인상을 확 구기면서 살짝 이를 갈았다.
투란과 제란드가 어리둥절해하는데, 시알라가 말을 이어간다.
“투란이 말한 대로 일단 셋이서 두들기는 거니까, 우리에게는 강력한 회복마법도 있으니까, 약간의 상처는 나중에 돌봐도 된다고 생각하고 조금 과감하게 녀석을 두들겨도 봤어. 그런데…… 녀석의 회복, 재생 능력이 우리보다 더 빨라.”
멜란드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 말에 보탠다.
“내 발톱이랑 녀석의 손톱이 엇갈리면서 대충 비슷한 상처가 생겼는데…… 내 상처에 파고들며 자라는 살점이랑 독을 내가 손으로 긁어내면서 보니까, 녀석의 상처는 그새 거의 봉합되고 있더라고. 파낸 살점도, 쑤셔박은 돌창도 채워지고 빼내고 하면서 훨씬 빠르게 재생되고 회복되는 거야. 굉장하잖아, 투란?”
“황금매보다 빠르게 재생되고 회복되다니, 대단한데!”
투란은 순수하게 멜란드의 기대에 부응하듯 감탄했다.
제란드는 조금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로 멜란드에게서 페란드, 시알라에게로 눈길을 돌리며 묻는다.
“그렇다면…… 지금 몸들은 괜찮은 거야? 그 손톱에 입은 상처가 그리 이상하다면…….”
“어? 아, 잘라내고 잘 먹은 다음에 쉬면 나아. 지금도 다 잘라내고 잘 먹고 있었잖아. 형도 얼른 먹으라고. 먹은 만큼 회복도 빨라지던걸.”
멜라드의 대답은 어딘가 쾌활했다.
때문에 제란드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구덩이 화로는 고기가 사라진 다음에 열기가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의 살갗을 데워줄 온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그 위에 흐트러진 뼈다귀들은 좀 더 구워지듯 검게 그을리고 있었다.
제란드는 이런 광경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누나, 형, 동생의 모습을 보며 어딘가 낯설면서도 묘하게 안도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특별히 걱정할 것이 없는, 다들 무사한 그런 모습이잖은가.
거기에 투란은 바로 어우러지는 말을 꺼내놓고 있었다.
“그렇다면…… 머리통을 팍 깨놓는 거는? 일단 생김새가 뿔나비이고, 비비나비 쪽의 몬스터라면 머리가 없으면 몸이 허우적거리더라도 일단 제자리에서 팔딱거릴 것 같은데?”
“에, 그게…….”
멜란드가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었고,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시알라는 혀를 차며 그런 멜란드를 흘겨봤고, 페란드가 이야기한다.
“한 닷새 지난 다음, 저녁 무렵에 해보려 했지. 일단 녀석의 손발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 거는 멜란드의 다리였으니까…… 멜란드가 힘껏 걷어차고 짓밟아서 으깨도록 계획을 짜서 해봤어.”
“오?”
투란은 눈을 반짝거렸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분명히 실패한 시도였다.
하지만 어떻게 실패했을까?
계획이 잘못된 것이라면 다시 계획을 잘 세워 해볼 일이었다.
그러나 계획대로 해서 실패한 것이라면…….
“저게 머리통이 엄청나게 딱딱하고, 단단하고, 튼튼하더라고. 멜란드가 거의 서너 번을 쉬지 않고 차고 밟고 할퀴었지만, 머리가죽이 벗겨지고 대가리 뼈가 보였지만 금이 가거나 깨지질 않아. 그래도 머리를 그렇게 쳐맞은 탓에 반응은 있었지.”
페란드가 아직 약이 오른다는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시알라가 그 표정을 보며 이어 말한다.
“팔 힘이 더 세진 채로 잡고 있는 그랑츄의 몸통 둘을 한꺼번에 내던지는 거? 그건 반응이라기보다는 정말 더 밟히고 채이면 죽을까 봐 발악한 것 같았는데…….”
듣고 있던 투란이 눈을 끔벅거리며 갸웃했다.
이야기의 상황으로 봐서는 그렇게 날려간 것이 시알라와 페란드였을 터였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찬 것은 멜란드일 텐데, 정말 그 발길질에 밟히고 채였는데 머리통이 빠개지지 않았냐고 묻는 듯 투란이 바라보니…….
멜란드는 고개를 떨구면서 민망해하며 투란의 눈길에 답한다.
“진짜 단단하더라고. 차다가 울컥해서 나도 모르게 입이 튀어나가서 물어뜯을 뻔했는데…… 내가 입을 움찔대는 사이에 그게 누나랑 형을 내팽개치고 도망치더라고. 아, 정말 정신 차리고 한 대 더 세게 목 줄기를 차서 끊어놨어야 했는데!”
“그럼, 그 사이에 물어뜯는 거는 안 해본 거네?”
투란이 새삼 멜란드가 삼켰던 랩티어…… 멜란드에게는 랩티드로 알려졌을 도마뱀 괴물을 떠올리면서 물었다. 랩티어의 튀어나가는 주둥이라면, 일단 절단(絶斷)과 잠식(蠶食) 현상을 일으켰을 테니…… 대가리가 단단하고 말고는 문제가 아니다!
멜란드가 눈을 껌벅이다가 세차게 도리질한다.
“안 물었어! 그거 자제하느라고 고생했다고!”
이에 제란드가 다물었던 입을 열고 만다.
“왜?”
이 짧은 물음은 멜란드뿐 아니라 페란드, 시알라에게도 던져지는 것이었다.
페란드가 표정을 묘하게 구기면서 멜라드를 바라봤고, 시알라도 한숨지으며 멜란드를 쳐다봤다. 멜란드는 입술을 삐죽이면서, 살짝 입술을 깨물며 지금도 튀어나오려는 입을 억제하는 듯한 태도로 대답한다.
“물고 찢어 삼키면…… 몬스터 엠블럼으로 삼키질 못하잖아!”
“아항…….”
제란드는 납득하는 표정을 먼저 지어 보였다. 하지만 곧 제란드의 눈길은 가늘어졌고, 누나와 형, 동생을 향해 ‘제정신이었어?’라는 의심이 가득 담긴 광채를 뿜어내는 듯했다.
아무리 지금 멀쩡하게 살아 있는 상태라 해도, 겨우 그런 욕심 때문에 몬스터를 처치하지 않고 이 짓 저 짓 다 해보고 있었다는 것은 어디서 나온 망발이냐고 따지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곳은 여차해서 발 한번 잘못 디디면, 그저 떨어져 빠진 것만으로도 정신이 확 나가게 하는 지역인데!
시알라가 슬쩍 눈길을 다른 곳을 향한 채로 말한다.
“멜란드가 원한 것도 있지만…… 우리도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든 강해질 필요가 있었어. 투란은 기다리라고 했지만…… 솔직히 며칠을 기다리다 보니까, 가능한 한 강해져서 찾으러 들어갈 궁리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어? 아…….”
제란드가 크게 숨을 몰아내쉬면서 눈을 감았다.
투란은 빙긋 웃으면서 말한다.
“헤헷, 조금 늦게 나왔으면 그거 삼키고 멜란드가 나랑 제란드를 찾아 뛰어들 뻔한 거야? 저 컴컴한 바닥으로? 다행이네, 꽤 적당한 때에 잘 나왔잖아! 음, 지금 그냥 말해둬야 할 것 같은데…… 저 안에는 들어가면 안 돼. 방금 떨어진 사람이 눈에 보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질 않아. 제란드를 바로 쫓아 들어갔지만, 진짜 까마득해 보이는 저쪽에 있었다고. 게다가…… 그 멀리 보이는 곳도 눈에 보이는 대로 먼 곳이 아니지만…… 보이는 대로 다가갈 수도 없었어. 뭔가 굉장하고 이상한 미로야, 저 아래는…… 그러니까, 혹시 누가 빠졌다고 해도 웬만하면 따라 들어가지 마. 빠질 때 잡아채서 끌어 올리지 못하면…… 정말 포기하는 게 좋은 곳이야. 응? 어, 나도 몰랐으니까 뛰어들었지 뭐…… 다음은 없어.”
혀를 날름하면서, 묘하게 가늘게 쏘아보는 남매의 눈길에 대답하는 말로 투란은 이야기를 맺었다. 그리고 다시 멜란드에게 묻는다.
“그래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지? 멜란드, 저 뿔비비인 척하는 녀석 잡고 싶은 거지?”
“여태 한 짓이 억울해서라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아, 게다가 음…… 저게 우릴 그냥 지나가게 두지도 않을걸.”
“응? 그냥 지나가게?”
투란이 의아해하자, 페란드가 멜란드의 말을 이어 답한다.
“우리가 온 길, 저 녀석이 보금자리로 삼은 숲의 저편이야. 숲을 지나가지 않으면, 이쪽 암벽을 바로 올라가야 해. 저 위에 뭐가 있는지는…… 열흘이나 여기 머물렀지만, 잘 모르겠어. 올 때도 저 위를 거쳐 온 것도 아니고…… 얼핏 뭔가 불꽃이 날아다니는 것 같았는데…….”
“애 머리통 같은 것이 불꽃을 피워올리면서 절벽을 오르내리는 것 같은 꼴은 몇 번 봤어. 이전에 왔던 길에서는 아주 멀리 아래에서 그냥 위편에 뭔가 불빛이 보이나 싶었던 건데…… 여기서 보니까, 그렇게 보이네.”
시알라는 페란드가 잠깐 자신이 본 것을 정리하는 표정을 지을 때, 대신 말했다.
투란은 이 이야기를 잠시 정리하려는 듯이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고기 뼈가 거뭇해지는 것을 쿡쿡 손끝으로 눌러 부수면서…….
‘에, 지금 말나온 게 그 헬 임프인가 하는 거야?’
투란의 마음은 바로 드라고니아를 향해 묻고 있었다.
―그런 듯하군. 이곳에 크게 일이 터지지 않았다면, 암벽에서 목격한 그 불꽃을 달고 다니는 어린애 머리통을 보인 놈이 확실히 헬 임프일 거다.
‘많아?’
투란은 짧게 다시 물었다.
시알라나 페란드가 말하는 상황으로 봐서는 어쩌다 한 마리 괴물이 암벽에서 들쑥날쑥한 광경을 본 것이 아니었다. 뭔가 우글거리는 느낌이 가득했다. 어떤 능력을 갖췄든, 그 숫자가 어느 정도 된다는 것은 일단 위험하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네 남매가 갈라진 땅을 넘을 때는 암벽을 넘지 않고 돌아온 듯하니…… 결국 금색의 마도사 아겔페스가 어떤 이유에서든 헬 임프를 꺼렸다는 점도 분명했다.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생각을 느낀 듯, 차분하게 다독이는 말투로 대답한다.
―많다. 애초에 헬 임프라는 이름은…… 지옥에서 올라온 고블린이란 뜻으로 붙여놓은 거니까, 녀석들의 습성이 고블린처럼 무리 짓는 쪽이라서 말이지. 물론 고블린과 분명히 다르기도 하다. 녀석들은 몸의 내부가, 거의 절반이 불로 채워져 있다. 불이 피를 대신해서 흐르고, 털을 대신해서 자라고, 불로 된 작은 날개도 있지.
‘헐? 그럼, 불이 안 통한다는 말이야?’
―그건 아니야. 헬 임프가 내는 불꽃이 확실히 고열(高熱)을 품기는 하지만, 바위를 녹여 마그마를 만들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다. 그저 바위가 새빨갛게 달아오르게는 하지. 쇠는 그렇게 한참 달궈놓으면 녹아 흐를 테지만. 대신 녀석들의 불꽃에는 독성(毒性)이 있다고 해야겠지. 아무튼 그 몸에 흐르는 불이 특별하고, 나머지는 그냥 인간의 어린애 수준이라고 보면 될 거야. 어쨌든 위험한 몬스터이고 말이지.
‘그래? 아참, 혹시 여기 뿔비비에 대해서는 짐작가는 거 없어?’
―글쎄, 비비나비란 품종이 워낙 개체 간의 편차가 심한 경우인 데다가…… 랩티어의 발로 그렇게 찼는데 두개골이 멀쩡하다니…… 그냥 특화(特化)해버린 개체가 아닌가 싶다.
‘특화?’
―특별하게 혼자 잘나게 된 놈이라고.
‘음…….’
투란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고개를 들었다.
네 남매도 잠시 조용히 저마다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투란의 움직임에 반응하듯 서로 마주 보는 눈길을 보였다.
투란이 입을 연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 뿔비비를 피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정리하는 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해. 우리가 암벽을 기어올라가는데, 아래에서 구경만 할 것 같지도 않고…… 뿔비비 같은 놈이 나무를 타든 절벽을 타든 우리보다 못할 것 같지 않잖아? 그 숲을 통과하려면 어차피 발악하면서 덤빌 테고!”
제란드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열흘 가까이 잡지 못했다면…… 그 사이에 중상을 입은 채로 도망을 친 놈이 다시 덤비는 짓을 멈추지 않고 있다면, 숲을 지나서도 쫓아올 수도 있어. 제 보금자리 가진 놈이 그 보금자리를 침입한 누군가 지나갔다고 포기하는 경우는…… 아마 거의 없지 않나?”
“몬스터는 포기하지 않아. 마수라면…… 적당히 넘어가주기도 한다지만…….”
투란이 제란드의 말에 호응했다.
이에 멜란드가 바로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