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8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88)
―어떻게라니?
겨우 가라앉은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소리가 투란의 뇌리에 울렸다.
투란은 조용히 네 남매가 집중하는 모습을 둘러보고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마치 자신도 몬스터를 다루는 데 집중하는 듯한 시늉을 하면서, 투란의 마음은 드라고니아와의 대화를 이어나간다.
‘카보닉, 엄청나게 큰일을 저질렀다면서? 재앙이니 뭐니 그랬잖아. 그런데 난 들은 적이 없어. 대체 그게 언제 어디서 벌어진 일이야?‘
다이아몬드로 변해버린 사람이라니, 이야기꾼이 덥석 물고 늘 침과 함께 뱉어낼 듯한 느낌이 드는 이야깃거리라고 팍팍 느껴졌다. 한두 사람만 그런 일이 생겼어도 아주 큰 소문이 났을 테고, 이야기꾼은 절대로 그 이야기를 놓치지 않을 듯한데…… 투란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보석을 툭툭 뱉어내는 몬스터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었다.
한데 드라고니아는 아주 유명한 것처럼 말하고 있잖은가.
투란에게는 그 틈새를 메울 필요가 있었다.
―그건…… 오래전의 이야기다. 그리고 아마…… 인간 마법사들이 노골적으로 덮으려 했던 일이기도 했을 거야. 보석을 만들어내는 몬스터라고 한다면, 그 보석이 몬스터이고 엄청나게 위험하다고 해도 찾아다닐 정도로 어리석은 인간은 반드시 있을 거라고. 그래서 아마 인간의 기록에서는 일부러 지웠을 거라고 들었다. 그런데 정말 그랬나 보군.
한숨처럼 흘러나오는 드라고니아의 이야기는 투란에게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어쩌면 흔히 보던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죽을 때 죽더라도 입에 금전을 물고 죽으면 분하지 않을 거라는 작자들…….
투란이 자라났던 샤오콴 마을까지 찾아온 이들 중에는 그런 작자들이 꽤 많았으므로! 그런 금전으로 대체 뭘 살 수 있는가는 샤오콴 마을 아이들에게 꽤 아리송한 일이었지만…….
보석은 때때로 금전보다 귀하다니까, 일단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보석을 툭툭 쏟아내는 몬스터는 챙기고 볼 일이라고 할 모습들이 구태여 상상하지 않아도 투란의 뇌리에 쑥쑥 떠올랐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래서, 어떻게 된 이야기인데? 한번 숯이나 다이아몬드가 되면 끝이야? 한두 달 걸려서 변한다면, 그 사이에 떼어내거나 하는 방법은? 이게 번지는 걸 어떻게 막았지?’
―막지 못했다.
무겁고, 간단한 대답이 먼저 투란의 뇌리에 울렸다.
‘어? 못 막아?’
―그래. 인간의 도시, 숲, 산 몇 곳이 완전히 다이아몬드로 덮이고 숯으로 가득 채워진 다음에야 카보닉에 대해 알게 되었지. 그리고 그 지역 전체를 옮겨버리는 방법을 썼다고 하더군.
‘뭐?’
투란은 잠시 생각이 멎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지역 전체…… 간단하게 가리키고 있는데, 지금 나온 말은 숲, 산을 포함한…… 투란이 언젠가 가보겠다고 벼르고 있는 큰 도시까지 한꺼번에 옮겨버리다니…… 전혀 그 규모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어쩌면 티탄 클래스니 뭐니 하는 것도 쑥 뽑아 옮길지도 모를 녀석들 아닌가!
‘너네…… 드라코눔, 진짜 무섭구나!’
―응? 우리가 안 했거든! 드라코눔의 아칸이 모여서 격리구역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걸 통째로 옮겨버린 것은 우리가 한 짓이 아니야!
‘엥?’
투란은 살짝 실눈을 떠서 시알라와 멜란드를 보고, 페란드, 제란드까지 쭉 둘러본 다음에 다시 감았다.
모두 집중하느라 투란이 어떤 낌새를 보이는지 모르는 듯했다.
그 사이에 드라고니아는 말을 잇고 있었다.
―카보닉에 대해서 모른다면, 쥴이라는…… 하이로드에 대해서 아는 건 없나?
‘하이로드? 뭔가 가물거리는 게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몬스터 로드, 그중에서도 특별한 자를 일컫는 말이다. 몬스터 하이로드, 몬스터 로드 중에서도 드높은 자라는 뜻으로…… 그렇게 부른다고 들었다. 쥴은 그런 하이로드 몇 중에서도 꽤나 특별한 경우였고…… 그 자신이 지독한 재앙을 겪으면서 믿기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고 하더군.
‘거대한 힘?’
투란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드라고니아의 말투는 마치 티탄 클래스조차도 작은 조각처럼 느껴지게 하는 기묘한 기척을 담고 있었다. 하이로드 쥴이라는, 뭔지 짐작도 가지 않는 몬스터 로드가 티탄 클래스로 꼽히는 몬스터보다 더 위험하다는 듯한 낌새가 아주 또렷하잖은가.
―간단히 말하자면, 그가 해결했다. 다이아몬드와 숯의 도시, 숲, 산을 그가 처리했고…… 카보닉 또한 그가 지워버렸다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내가 본 기록에 없어. 다만, 보통 몬스터 로드가 다룰 수 없는 카보닉 같은 몬스터조차도 그는 간단히 다룰 수 있는 무서운 자…… 하이로드라서 가능한 일이었다는 짧은 설명이 전부였어.
‘야, 그게 전부야? 아니지?’
서늘해졌던 가슴을 울컥하는 기분으로 채우면서 투란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보닉에 대해 뭔가 쓸 만한 이야기를 하는가 싶었는데, 결론은 옛날에 무시무시한 누군가가 영문을 모를 방법으로 처리했다……라니!
이쯤 되면 드라고니아가 괜히 심술을 부리는 것뿐이라는 생각만 저절로 들지 않는가! 괜히 투란이 하려는 일에 이러쿵저러쿵하고 있을 뿐, 전혀 도움이 될 소리는 하지 않는다니!
이런 투란의 기분을 고스란히 느낀 듯, 드라고니아가 발끈한 기색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하이로드 쥴이 카보닉을 어떻게 처리했는가는 기록에 없다! 드라코눔에 그 기록이 없는 까닭은 우리가 그 방법을 재현할 수가 없기 때문이란 뜻이야! 하지만 카보닉에 대한 부분은 잔뜩 기록되어 있어!
‘하아…… 그럼, 이게 마그마 속에서 녹아 없어지는 것도 알고 있다는 거야?’
투란은 으르렁거리려는 듯한 드라고니아에게 불쑥 물었다.
잠시 움찔한 기색이 먼저 투란에게 전해져 왔다.
―어느 수준을 넘어선 열에 쉽게 상태가 변하기도 하지. 문제는 그 정도 온도와 조건이 갖춰지게 되면, 다른 것들도 함께 망가진다는 거야.
‘어쨌든, 나한테는 별문제 없고…… 헬 임프가 카보닉에 숯이 되거나 다이아몬드가 되거나 하는 일도 없겠네? 그것들은 몸 안에 불꽃이 흐른다면서?’
―그렇지. 하지만 몬스터 엠블럼으로 구현된 카보닉이라면 어찌 될지 모른다. 헬 임프의 불꽃은 항마력으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애초에 삼키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카보닉은 잠깐 방심하면 줄줄 새 나와서 주변에 번지고 물들이는 괴물이란 말이다!
‘뛰고 날면서 미쳐 날뛰는 놈은 아니잖아.’
투란은 태평하게 대답하면서 숨을 고르게 가다듬었다.
이런 태도는 드라고니아를 한껏 의아하게 했다.
―그러고 보니, 너 왜 이렇게 여유 있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저 남매를 모두 죽여서 처리할 생각이야?
‘아니거든! 세란드랑 약속도 했잖아. 일단 지켜봐.’
투란은 투덜거리면서 집중했다. 드라고니아의 이야기를 한쪽으로 치워놓은 채로, 스스로 겪고 느낀 카보닉에 대해서 생각하고 궁리했다.
그리고 몬스터 로드가 되어 이제까지 겪으며 헤쳐나왔던 일과 샤오콴 마을에서 자라며 들었던 이야기들도 투란은 함께 더듬었다.
하나씩 하나씩…….
카보닉, 드라고니아의 이야기는 옛날에 들었던 블러드 크러쉬의 사건과 조금 닮아 있었다. 카보닉의 경우에는 쥴이라는 하이로드, 뭔지 잘 모르는 이가 해결했다는 부분에서 완전히 달라지지만!
작은 돌을 통해 ‘작은 늪’을 만들어냈던 경험.
아르고누스의 일부인 ‘패러블랙 잉크’에 가죽을 기억하게 했던 일.
카보닉이 피와 섞이면 보다 활발하게 늪의 성질을 드러내는 것.
투란은 이를 차분하게 짚었고, 마음을 정했다.
“시알라.”
투란이 불렀을 때, 시알라는 볼과 목이 거뭇하면서도 반짝거리는 알갱이가 주근깨처럼 박힌 모습으로 낯을 찌푸리던 중이었다. 일단 형성한 다음에는 뜻대로 되지 않는 카보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어?”
볼에서 콧등으로 카보닉의 검은 색채가 번져가는 채로 시알라는 투란에게 눈길을 돌렸고, 투란이 내미는 것을 봤다.
검게 뭉클거리면서 끈적해 보이는 조각이 투란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이걸 황금매로 삼켜봐.”
“이건?”
갸웃하면서도 시알라는 황금매의 발톱을 준비했다.
페란드, 제란드가 지친 표정으로 무슨 일인가 지켜봤다.
멜란드는 눈을 꽉 감고 집중하느라 듣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대신 뿔이 이마 옆으로 돋아났다 지워졌다를 되풀이하는 괴상한 꼴을 보이고 있었다.
시알라가 투란이 내민 조각을 가슴에 얹는 순간, 조각은 소용돌이처럼 오그라들면서 바로 황금매의 부리 속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시알라는 이런 괴상한 현상에 움찔했지만, 곧 차분하게 자신을 가다듬으면서 집중했다. 그리고…….
“어? 어! 어머나!”
연이어 놀란 소리가 시알라의 입에서 툭툭 튀어나왔다.
그와 함께 시알라의 주변에 티끌처럼 흩어졌던 반짝거리는 검은 숯을 향해 곧바로 뭉클거리고 끈적여 보이는 얇은 막이 번져갔다. 반짝이던 검은 숯은 그 얇고 검은 막에 녹아들 듯이 바로 사라졌다.
“투란, 이거?”
시알라는 놀란 채로 투란을 바라봤다.
“길들인 몬스터 에센스인 셈인데, 괜찮아?”
조금 조심스럽게 묻는 투란의 말이었다.
“완전히 내 마음대로 움직여!”
시알라가 투란의 말에 냉큼 대답했다.
페란드와 제란드는 이 소리에 눈을 크게 뜨면서 투란을 다시 봐야 했다.
이제까지 이 숯이면서 다이아몬드 알갱이를 품은 몬스터, 정체가 뭔지 모를 놈을 다루려 했지만 이 녀석은 꾸준히 스며들고 번지기만 할 뿐이지 뭔가 스스로 역동적인 부분은 전혀 없었다. 뭔가에 옮아가는 것 또한 그쪽에서 먼저 다가오면 살짝 묻어나는 듯이 들러붙을 뿐이었다. 그런 성질머리인 것이 꾸역꾸역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형성되기만 하는 탓에 조금만 방심하면 살갗으로 드러나고 살점 속으로 자리 잡으면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일단 다른 뭔가에 들러붙으면, 그때부터는 몬스터 로드의 감각에서 떨어져 나가며 독립된 꼴이 된다!
그 떨어져 나간 것에 손을 대고, 다시 형성한 검은 숯을 들이대고 집중해야 겨우 거기에 그게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 고작…….
길들이고 어쩌고 할 단계는 엿보이지도 않았고, 오직 그 형성과 해체를 다루는 것도 벅찰 뿐이었다.
투란이 도대체 뭘 어찌한 것일까?
“어? 왜 그래?”
뒤늦게 소란스러운 누나와 형들의 기척을 느낀 멜란드가 눈을 깜박이면서 묻고 있었다. 그런 멜란드를 향해 투란이 바로 손을 내민다.
“멜란드, 이거.”
“응? 이게 뭐……?”
“황금매로 삼키라고.”
“응? 이걸?”
여전히 끔벅거리는 눈으로 멜란드는 엉겁결에 투란이 가슴에 들이대는 작은 조각을 향해 황금매의 부리를 열었고…… 곧 시알라처럼 놀란 소리를 냈다.
“우앗! 뭐, 뭐야 이거! 이게 어떻게!”
“이제 그 무늬 지울 수 있는 거야?”
설명보다 먼저 투란이 물었고, 멜란드는 즉각 가슴에 그어진 크로스 무늬의 검푸른 얼룩을 줄여 없애는 모습을 보였다.
“된다! 어, 여전히 뿔비비랑 조금 섞이려는 것 같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되는데! 이제 뿔비비만 써먹을 수 있겠어!”
환해진 표정으로 멜란드가 외쳤다.
페란드와 제란드는 누나를 보고 막내를 보면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둘을 향해 투란이 스윽 가슴에 올렸다 내린 두 손을 내밀면서 앉은 채로 엉덩이를 폴짝대는 꼴로 다가갔고…… 곧 둘의 가슴에도 검게 끈적이는 작은 조각이 달라붙었다.
“음…… 음?”
“에…… 으흣!”
페란드와 제란드도 황금매의 부리로 조각을 삼키고 나서 곧 놀란 표정과 함께 부르르 몸을 떠는 모습을 보였다.
시알라가 잠시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쉰 다음, 완연하게 자신의 주변에 뿌려졌던 검은 숯과 반짝이는 알갱이를 싹 손으로 쓸어서 정리하며 묻는다.
“투란, 대체 어떻게…….”
“몬스터 에센스가 몬스터 로드 사이에서 옮겨질 때, 이미 길들여진 몬스터의 에센스는 새로 받는 쪽에서 훨씬 다루기 쉬울 때가 있으니까. 오히려 새로 받는 쪽에서 더 쉽게 다루기도 하고…… 음, 이 경우에는 비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나도 이렇게 쉽게 될 줄은 몰랐거든.”
살짝 어깨를 으쓱하면서 투란이 뻐기는 말투로 떠들었다.
네 남매는 ‘그런가?’ 하면서도 이제 마음먹은 대로 형성되고 해체되는 카보닉을 느끼면서 투란의 이야기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미 그 실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물어볼 여지가 없어진 셈이었다.
그리고 투란의 뇌리로는 드라고니아가 은은하게 경악한 소리를 전하고 있었다.
―너, 지금 카보닉에게 복종하는 성질을 부여해서 새로 만들어낸 거냐? 그것도 저 넷에게 맞춰 네 가지 종류의 카보닉을 만들었어!
‘응. 덤으로 다른 것에 깃든 카보닉을 만나면 집어삼키기도 하지. 후훗, 하이로드인가 뭔가는 아니지만…… 이제 카보닉을 완전히 잡아먹는 몬스터 로드가 넷이 생겨난 셈이야! 아, 나도 세면 다섯인가? 내 경우에는 작은 늪이 알아서 삼키는 거지만…….’
투란은 의기양양해했고, 드라고니아는 침묵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