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8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89)
회색 암벽은 새로운 해를 맞이해서 잿빛의 반짝임을 뿌리면서 하얀 평원을 굽어보는 듯했다. 소금으로 이뤄진 울퉁불퉁한 바위와 돌이 굴곡(屈曲)을 만들며 암반(巖盤)으로 이뤄진 평원이 돼 버린 듯한 갈라진 땅에는 더 이상 갈라진 틈새가 보이지 않았고 그저 새하얗게 반짝이는 가는 모래가 햇살 아래 찰랑거리다가 멈춘 듯했다.
‘소금의 정원이라…….’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했던 말을 되새기면서 어렴풋이 그 뜻을 느낄 수가 있었다. 굉장히 넓기는 했지만 마치 소금으로 온갖 조각을 만들다가 만 채로 늘어놓은 듯한 느낌이 분명히 있었다. 엄청나게 넓다는 점을 빼면, 꼭 샤오덴 할배가 늘어놓은 꽃과 작은 나무를 담은 그릇이 가득한 뒤뜰과 닮아 있었다.
아마 그런 것을 정원이라 할 테니까…….
‘그럼, 저건 헬 임프가 바글바글 와글와글하려나?’
갸웃하면서 투란은 회색의 절벽을 바라봤다.
아침 햇살이 반짝이면서 불꽃이 오락가락하는 꼴은 보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불꽃이 절벽 쪽에서 일렁일 때는 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운 때라든가, 기운 해가 암벽에 그림자를 잔뜩 키워줬을 때였던 듯도 했다.
잠시 높이 솟은 회색의 절벽을 올려다보다가 투란은 긁적거리는 몸짓과 함께 아래를 내려다봤다. 멀리 보기 위해서, 남매가 만들어둔 쉼터의 꼭대기에 올라와 있는 중이었다.
시알라와 페란드, 제란드는 아래에서 기지개를 켜듯이 몸을 풀면서 멜란드가 뿔비비와 도마뱀의 형상을 결합하는 것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투란은 높은 지붕의 담장 위에 쪼그리고 앉아 그 광경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봤다. 위기를 넘기고, 다시 귀환의 길을 준비하는 남매들…….
‘역시 팀인가.’
슬그머니 따사로워지는 햇빛 아래에서 미묘한 졸음도 느껴졌다.
아무래도 조금 더 자는 편이 좋은 듯하다는 유혹이 저절로 마음속에서 피어오르기도 하는데, 돌연 투란의 뇌리로 드라고니아의 또박또박한 소리가 스며왔다.
―투란, 카보닉에 어떤 새로운 성질을 부여했지?
‘응?’
졸음이 살짝 흩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의아함부터 짙게 느꼈다.
한동안 침묵하고 있으면서 뭔가 고민하는 낌새를 흘리는가 싶었더니, 갑자기 꺼낸 소리는…… 이미 어제의 일이잖은가? 오늘 이야기할 것이라면 저 암벽을 넘을 것인가, 뿔비비가 누비던 숲을 지날 것인가 하는 저울질인데 말이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매우 진지했다.
투란은 갸웃했지만 일단 대답을 한다.
‘음, 우선 몸 냄새라든가 마력을 기억하게 했고…… 뿌리라고 해야 하나, 보금자리라고 해야 하나 그런 식으로 황금매를 향해 돌아오는 본능을 지니도록 했지.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를테면 시알라네가 원하는 경우가 아니면 다른 곳에 깃들거나 옮겨가지 않게도 해놨고…… 어쩌다 다른 곳에서 카보닉을 만나는 경우에는 잡아먹어서 성장도 하고…… 아무튼 황금매의 몬스터 로드인 저 넷이 아니면…… 꼼짝도 않게 해놨어.’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두서없이 우왕좌왕하는 설명을 차분하게 들었다. 말보다는 투란이 품은 마음, 그 심상 속에 품은 바를 집요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렇게 듣고 나서 드라고니아가 정리해 말한다.
―남매를 둥지로 삼아서 귀환하는 본능, 저 남매를 벗어나면 증식하지 않는 성질, 다른 환경에 적응한 카보닉을 만나면 흡수, 융합하는 능력 따위를 부여했다는 것인가?
‘그, 그럴걸?’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이 이해가 되면서도 어딘가 어렵게 느껴지는 탓에 약간 당황했다. 드라고니아의 말은 이런 어정쩡한 투란의 대답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이 이어진다.
―즉, 넷 중 한 명이 잘못해서 흘리고 다닌 것도 다른 셋이 수습할 수 있다는 말이지?
‘응? 그야 당연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어. 따로 떨어지게 되고 너무 시간이 지나면 일단 말라붙은 채로 새로 번지지도 않을 거야. 어쨌든 몬스터 로드의 마력에 의해 생성되고, 마력이 사라지면 몬스터의 성질이 싹 지워질 테니까 그런 일도 없겠지만…….’
투란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어떻게 그런 새로운 성질을 부여할 수 있는 거지?
‘어? 뭐야, 새삼스럽게. 전에는 아무 말 안 하더니…….’
―잉크의 경우라면, 원래 잉크는 마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새로운 성질을 부여하는 것이 까다롭더라도 가능한 범위야. 하지만 이건 몬스터다, 순수한…… 순색(純色)의 속성을 지닌 가장 까다롭다고 여겨지고, 몬스터 로드조차도 그 성질에 말려들어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위험한 놈이라고.
‘뭐? 죽어? 몬스터 로드도 죽어? 하이로드인가 하는 몬스터 로드가 해결했다면서?’
―그 전에 많이 죽었다. 쥴, 그가 나서서 해결할 때까지 많은 마법사, 몬스터 헌터, 몬스터 로드…… 여러 곳에서 찾아온 종족들이 숯이 되고 다이아몬드가 되어 죽었지.
‘어, 그랬었구나.’
―투란…… 네가 만들어낸 것은 카보닉을 바탕으로 했지만, 카보닉이 아니다. 카보닉에는 그렇게 상황과 조건을 판단하고 움직이는 역동적인 성질이 없어. 아무 반응도 없이, 그저 칠해지듯이 번져갈 뿐이다. 그런 몬스터를 기반으로 너는 아주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냈다. 투란, 이건 위험한 재주다. 절대로……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 돼.
‘비밀로 했잖아. 길들였다고, 적당히 넘어갔다고.’
―그 정도로는 부족해. 앞으로는…… 너는 아예 몬스터 에센스를 남에게 넘기지 않는 편이 좋겠다. 너에게 길들여진 몬스터는…… 너무 위험해!
고요하던 드라고니아의 기척이 보다 강렬해졌고, 극단적인 위험을 어떻게든 투란에게 경고하려는 듯했다. 투란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일단 달래기 위해서라도 적당히 대답해야 했다.
‘알았다고. 그거 키린이 아주 아프게 가르쳐줬다고. 그런데…… 카보닉은 꼭 숯과 다이아몬드만 되는 거야? 너무 무르거나 너무 단단한 거…… 중간은 없어?’
살짝 말을 돌리는 시도였고, 쓴웃음 짓는 듯한 기척과 함께 드라고니아의 대답이 바로 나온다.
―카보닉은 어디에 깃드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상태가 되기도 한다. 강철 속에 깃들면 이전보다 몇 배나 더 강한 쇠가 되기도 하지. 몬스터 로드의 경우라면, 숯과 다이아몬드 사이의 어느 선을 찾아서 자신에게 맞는 상태를 찾아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다이아몬드를 만들어서 거래를 하네 어쩌네 하는 짓은 하지 마라. 그게 애초에 카보닉으로 도시를 파괴한 몬스터 로드가 하던 짓이니까.
‘별로 비싸지도 않잖아. 다이아몬드면 공방 장인들이나 좋아하지, 보석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내켜 하지 않던데.’
투란은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드라고니아가 조금 기묘한 기척을 흘렸다.
―큰 다이아몬드는 굉장히 귀한 취급을 받지 않던가? 보석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거래된다고 하던데?
‘그래? 쇠를 가공하는 도구에 박아서 쓰는 것 말고 보석으로 제대로 취급하기도 하나? 잘 모르겠는데, 그런 쪽은…….’
드라고니아는 보석에 대해서, 드라코눔에서의 취급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으며 조금 전에 진지하게 경고하던 태도를 슬쩍 벗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보석에 관한 것은 투란에게는 한 귀로 듣고 그냥 흘려내버릴, 그저 묘한 이야기에 불과했다.
덕분에 문득 찾아온 나른함이 투란을 하품하게 했을 뿐이었다.
그 하품 사이로 올려다보니 햇살이 보다 나른해졌고, 어느새 몰려든 구름이 암벽과 숲에 넓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높은 절벽 위편에 살랑거리는 불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응? 저것들, 뭐 하는 거지?’
저절로 투란의 눈이 가늘어졌고, 까마득한 점이었던 불꽃은 꿈틀대던 형상이 또렷하게 그 표정을 드러내도록 확대된 채로 보였다.
―뭘 들고 있는데?
드라고니아가 보석에 대한 말을 멈추고 의아해했다.
투란도 확실히 어린애처럼 작은 헬 임프…… 불꽃의 머리카락과 몸을 띄울 수 있는가 의심스러운 불의 날개를 지닌 녀석들이 손에 까맣게 물든 돌멩이를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부러 불에 그을리고 재를 붙여놓은 듯한 돌멩이처럼 보였다.
그런데 저 위에서 저런 돌멩이를 들고 왜 저 녀석들이 아래를 내려다보는가?
‘어라?’
투란은 그중 하나가 눈동자가 꺼지면서 눈구멍 속에 불길이 치솟는 것을 봤다. 마치 살덩이로 된 눈알이 순식간에 불덩이로 된 눈알로 갈아치워지는 듯한 변화였다. 이는 바로 투란의 눈가에서 아르고누스의 본능이 꿈틀거리게 할 정도로 기묘한 광경이었다.
저 신기한 눈알을 하나 뽑아 갖는다면…….
―던진다?
몬스터의 본능에서 스며오는 잡념을 깨듯이 드라고니아의 한마디가 세차게 울렸다. 투란은 즉각 저 그을린 돌멩이가 어디를 향하는가를 파악했고, 바로 아래쪽을 향해 외쳤다.
“조심해! 돌 떨어져!”
이는 곧바로 네 남매를 반사적으로 움직이게 했다.
넷은 즉각 투란이 올라선 지붕 담장 아래로 달라붙으면서 위를 내려다봤다.
헬 임프 몇 마리가 던진 돌멩이가 떨어지는 데는 살짝 시간이 걸렸다.
남매 넷은 일단 안전한 곳을 차지한 다음에 이를 지켜봤고…….
“왜 저래?”
“우리를 노리는 건가?”
“여태 안 그랬잖아?”
“뭘 던지는 거야?”
각각 갸웃거리면서 의문을 토해냈다.
그러는 사이에 그을린 돌멩이 여러 개가 바닥을 찧으며 통통 튀어올랐다.
아무도 그 돌에 맞지 않았고, 튀는 흙먼지와 작은 파편에도 닿지 않았다.
워낙 높은 곳에서 떨어진 탓인가 단단하지 않은 바닥에 닿은 돌멩이는 그냥 푹 파고들며 묻히기도 했다.
투란은 갸웃하면서 떨어진 돌멩이를 흘깃하며 다시 위를 봤다.
헬 임프 몇 마리는 절벽에 몸을 걸친 채로 아래를 향해 아주 흥미로운 구경거리라도 생기길 기대하는 듯이 바라보는 태도였다. 눈알이 모두 불덩이가 되어서 보는 꼴이 마치 시각이 강화된 채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런 태도가 투란을 한결 더 의아하게 했다.
‘얼레? 맞지도 않았는데?’
던진 돌멩이에 누가 맞는 것을 아예 기대하지도 않은 듯, 구경은 이제부터라는 듯한 헬 임프의 태도는 대체 무슨 뜻인가?
―투란! 돌이다! 거기 묻은 검은색!
드라고니아가 급한 듯이 외쳤다.
떠오른 의문과 드라고니아의 말은 투란이 다시 아래를 보게 했고, 네 남매가 새롭게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했다.
“뭐야, 저 거뭇한 것이 왜 번져?”
“돌멩이에 묻은 색이지?”
“저거?”
“우리가 삼킨 거잖아!”
이 목소리 위로 드라고니아의 세찬 한마디가 덧씌워지며 투란의 뇌리를 쩌렁쩌렁 울렸다.
―카보닉이다!
‘어, 엥?’
잠시 투란은 마음을 텅 비웠다.
가슴 깊은 곳에서 ‘악마의 심장’이 두근거렸고, 냉정한 사고가 이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투란의 빈 마음을 바로 채워줬다. 때문에 투란은 금세 이게 무슨 일인가를 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야, 헬 임프가 왜 돌멩이에 카보닉을 묻혀 던지는 거야? 맨 처음 카보닉이 대체 어떻게 생겨났었어?’
아주 침착하고 차분하게 드라고니아를 추궁할 수 있었다.
드라고니아도 이에 호응하듯, 보다 냉정하고 침착한 대답을 해온다.
―카보닉은 다이아몬드를 낳는 기묘한 숯덩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참사(慘事)가 이어진 다음에 대책을 마련하느라 바빴지! 그 대책을 찾지 못할 때, 하이로드 쥴이 나선 것이고.
‘몰랐구나.’
투란은 길어지려는 드라고니아의 말을 딱 잘라서 정리했다.
드라코눔도, 숯과 다이아몬드로 변한 도시를 겪은 마법사들도 카보닉이 애초에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쥴이라는 강력한 몬스터 하이로드가 상황을 정리했고, 또다시 그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여러 가지 대비를 하기는 했겠지만…… 처음에 카보닉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해서는 몰랐다.
‘음, 몬스터가 그렇기는 하지. 그렇기는 한데…….’
이 암벽을 헬 임프의 정원이라고 불렀고, 저 갈라진 땅이 본래는 소금의 정원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있는 괴상한 곳을 광야의 미로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저 헬 임프가 저렇게 장난삼아 카보닉이 묻은 돌멩이를 던지는 사태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채!
이건 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헬 임프와 카보닉의 관계 따위는 전혀 없다고!
드라고니아는 간결하게 투란이 품은 의문에 답했다.
투란은 다시 위를 보면서 내려다보는 헬 임프의 상태를 살폈고…….
‘어쨌든, 쟤들은 카보닉이 묻어도 전혀 괜찮은가 본데? 아니면 몬스터라서 숯이 되든 다이아몬드가 되든 상관 않는 건가?’
새롭게 호기심이 솟아나는 상황을 확인했다.
그 사이에 쉼터의 벽에 붙은 네 남매는 기막힌 상황에 으르렁거림을 잔뜩 토해내고 있었다.
“저것들이 던진 돌에 맞아서 뿔비비가 그 꼴이었구나!”
멜란드부터 성난 소리를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