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8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90)
‘일단, 확인해야겠다.’
투란은 마음을 가다듬고, 뛰어내렸다.
거뭇한 돌멩이가 깊이 박힌 자리에 맨발을 디디면서, 그 주변에 티끌처럼 휘날리는 검은 숯빛깔을 보니 투란의 기분이 조금 묘해졌다. 저것이 회오리치면서 날아오르면 딱 블랙 애시처럼 보일 듯한데, 그냥 얌전히 추락의 충격에 따라 살랑일 뿐이지 전혀 스스로 움직일 낌새가 없다니.
문득 투란은 자신이 제대로 카보닉을 삼키지 않았는가를 되짚어 봤다.
멜란드에게서 묻어나온 것을 ‘작은 늪’이 삼키고, 작은 돌이 반응한 다음에는…….
‘흠, 순수한 형태로는 내 문장에 담지를 않았나.’
살짝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손을 내밀어 땅에 박힌 돌멩이를 뽑아냈다. 살갗에 바로 묻어나는 검은 숯가루가 섬세한 감각을 타고 번지는 것이 곧장 느껴진다. 느릿하게, 그저 미세한 살점 하나씩 하나씩 옮겨가는 것이 정말로 이대로는 두어 달이 걸려야 겨우 손바닥에 검은 반점이 자리 잡을 듯했다.
―그렇게 느린 반응이 보통이었기 때문에 그 위험을 깨닫기까지, 그 참사가 일어날 때까지 아무도 큰일이라 생각하지 못한 거야.
드라고니아의 이야기는 확실하게 투란에게도 납득이 되었다.
세상에 숯가루에 피를 뿌려본다거나 하는 짓을 누가 하겠는가?
피가 배어나오는 고기를 굽더라도 달아오른 숯 위에 석쇠를 올려놓을 테고, 피가 숯에 닿는 경우를 피할 텐데…….
‘음, 그건 가끔 닿으려나?’
갸웃하면서 투란은 만지작거리던 돌멩이를 가슴팍에 댔다.
돌멩이의 한쪽에 순식간에 투명한 빛이 맺혔다가 사라졌다.
돌멩이는 아주 미세한 껍질을 벗어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투란의 눈이 가늘어졌고 어디도 보지 않은 채로 무엇인가에 빠져드는 듯한 눈빛이 맴돌았다. 드라고니아는 이렇게 몬스터 에센스를 정리하는 투란에게 빠르게 이야기한다.
―카보닉이 재앙을 일으켰던 과정은 단순하게 물들어서 죽어간다는 때문만은 아니었다. 카보닉에 물든 이들을 격리하려던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났고, 그 충돌 때문에 피가 흐르기도 했지. 그리고 그때부터 카보닉의 전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속되었다. 인간의 큰 도시 하나가 사나흘 만에 완전히 다이아몬드와 숯으로 바뀌었다니까. 투란, 만약 여기 어딘가에 카보닉의 근원이 있다면…… 없앨 수 있다면 없애야 한다. 너는…… 해낼 수 있을 거야.
‘어이, 말끝이 왜 그래?’
투란의 눈빛이 선명해지면서 드라고니아의 말끄트머리에 담긴 미묘함을 지적했다. 저건 꼭 해낼 수 있다고 부추기는 말인 듯하지만 거기 푹 빠져서 해결될 때까지 꼼짝도 하지 말하는 듯한 낌새가 역력하잖은가!
하지만 이런 드라고니아의 상태에 더 캐묻기 전에 투란은 귓가에 들려오는 선명한 외침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투란! 위! 거기 있지 마!”
멜란드의 목소리였고 투란은 위를 올려다봤다.
조금 전과 같은 상황이었다.
다만 투란이 돌 맞을 자리이고, 네 남매는 벽에 붙어서 피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인…….
“저거 좀 커 보이는데?”
중얼거리는 말투였지만 제란드는 크게 외쳐대고 있었다.
투란도 이 외침에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헬 임프 몇이 힘을 합쳐서 끙끙거리면서 꽤 큰 돌을 내던졌고, 떨어지면서 확대되는 꼴을 보니 분명히 사람 한둘 정도의 크기는 되는 널찍한 돌이었다. 역시나 거뭇하게 그을린 흔적이 가득한 채이고, 의외로 얇아 보이기는 했지만 맞아서 좋을 것은 없어 보이는 크기였다.
‘석판?’
투란은 갸웃하면서 몇 걸음 옮겼다.
쿠앙, 쩌억.
떨어지며 뒤집어지는 형체를 파악한 그대로, 석판이었다.
잔뜩 카보닉의 검푸른 얼룩이 두껍게 달라붙은 석판의 파편이 흩어졌고, 주변으로 카보닉의 티끌이 번져갔다.
“돌로 된 집이라도 뜯어 던지는 건가!”
제란드가 다시 외치고 있었다.
투란은 그 말을 들으며 석판의 조각을 집어 올렸다.
검푸른 얼룩이 손으로 느리게 스며오는 것이 바로 느껴졌다.
―투란, 번지게 두지 말라고!
드라고니아의 잔소리가 투란의 뇌리를 울렸다.
“음, 이거 아무래도 우리가 삼킨 그 얼룩인 것 같은데…… 퍼져서 좋을 것 없어 보이니까, 어서 지워버리는 게 좋겠어!”
투란은 네 남매를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시알라가 슬그머니 벽 아래에서 걸어나오며 위를 주의하는 태도로 가까운 곳에 번진 검푸른 얼룩의 조각에 손을 댔다. 그 손에서 끈적한 질감의 검푸른 색채가 번졌고, 조각 쪽의 얼룩이 그 색채에 휩쓸리며 사라졌다.
누나의 그런 모습에 페란드도 곧 그 흉내를 내듯 움직였다.
멜란드와 제란드는 잠시 위를 노려보며 투덜거리는 듯하다가 곧 마찬가지로 흩어진 검푸른 얼룩, 카보닉의 잔해를 찾아 없애기 시작했다.
위에서는 헬 임프가 다시 옹기종기 모여 있다가 돌을 던졌고, 아래에서는 이를 지우는 짓이 잠시 이어졌다. 결국 헬 임프 몇 마리가 짜증 난 듯이 손짓을 하다가 재미없다는 듯이 그 모습을 감췄다.
돌 떨어지는 꼴이 멈추고 난 다음, 투란은 잠시 위를 바라봤다.
페란드가 주변을 훑어보면서 투란의 곁으로 다가와 묻는다.
“이제 관둔 모양인데…… 투란, 저것들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음, 가는 길이 괴상해지겠지.”
투란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페란드의 낯이 조금 구겨졌다.
그냥 괴상해지는 정도가 아닐 터였다.
이 검푸른 얼룩은 생각 이상으로 기묘했다.
몬스터 엠블럼으로 형성되어도 번져 나가고 나면 제멋대로인 괴물…….
투란이 길들인 것으로 어떻게 제어가 되고 있기는 했지만, 그 전에 페란드는 이미 느꼈다. 너무나도 고요하고, 오직 그 자리에 머물기만 할 뿐이고 닿는 것에 살짝 옮아가는 이것이 얼마나 이상한지! 숯이 되었다가 집중하면 다이아몬드가 되고, 다른 쪽으로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 탓에 형성했다가 해체하는 것이 힘겨울 뿐이었다. 이제는 몸에서 차분하게 흐르며 제대로 반응하지만, 저 불꽃 꼬맹이들이 던지는 돌에 묻은 얼룩은 원래 그대로였다. 그 원래대로의 것을 조금이라도 몸이나 옷자락에 묻혀 나간다면…… 시간이 좀 흐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이 되질 않았다.
뿔비비의 강력한 재생력으로도 머리가죽이 벗겨지고 뼈가 드러난 채로 어쩌지 못한 꼴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상상하기조차 싫은 결과가 그냥 느껴질 지경이니!
때문에 페란드는 내키지 않지만, 말해야 했다.
“해결하고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투란…….”
투란은 ‘어?’ 하면서 페란드를 바라봤고, 그 어깨 너머에서 제란드와 멜란드가 투덜대면서도 주변을 여전히 헤집고 다니는 모습과 시알라가 자기 주변은 정리했다는 듯이 다가오는 모습도 봤다.
“흠…… 그러는 게 좋기는 한데…….”
드라고니아의 재촉을 느끼면서 투란은 머리를 긁적였다.
저 암벽 위, 헬 임프의 정원이 몹시 궁금하기는 했다.
카보닉을 묻힌 돌을 어떻게 저 녀석들이 던져대고 있는가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투란의 호기심일 뿐이다.
네 남매를 끌어들여서 어떤 것이 튀어나올지 모를 곳으로 끌고 갈 수는 없잖은가? 겨우 뿔비비를 삼키려고 하다가 이상한 것에 엮여버린 것처럼, 또 무슨 예상하지 못한 일이 터질지 모르는데!
‘나중에 이를 갈면서 원망할지도 모르는데 말이지.’
종종 왜 그런 이상한 사냥에 꼬드겼냐고 화내던 이들을 봤던 투란이었기에 시알라나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를 드라고니아가 부추기고 있는 일에 끌고 가는 것이 조금 망설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허? 이제 와서!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한소리 했다.
하지만 투란은 뇌리에 울리는 그 소리를 무시하고, 페란드와 그 곁에 서는 시알라에게 말한다.
“저기 위에 뭐가 있을지 알 수가 없거든. 저것들만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뭔가가 있을지…… 이 얼룩도 뭔가 이상한 놈이 질질 흘린 것일 수도 있고 말이야. 그러니까 올라가는 것은 일단 각오를 해야 하는데…….”
“뭔 소리야? 우리한테 짱돌 던진 것들을 그냥 두고 가자고? 그럴 수는 없지!”
시알라가 돌연 발끈한 기색으로 으르렁거리는 말을 쏟아냈다.
이는 투란을 멈칫하게 했고, 살짝 당황하게 했는데…… 곁에 있던 동생인 페란드는 아예 질린 표정으로 누나를 보면서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투란처럼 당황하지는 않은 듯한데, 페란드는 누나인 시알라에게서 오래전에 봤던 좋지 못한 뭔가를 다시 보는 듯한 해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늦게 다가오던 제란드가 주춤거렸고, 멜란드는 다가오던 걸음을 멈칫하면서 시알라를 바라보고 있잖은가!
“어, 그러니까 시알라……?”
투란은 뭔 말이든 일단 좀 더 해서 위편에 있을지 모를, 알 수 없는 위험에 대해서 다시 주의를 주려 했다. 하지만 이 말을 끝맺을 수가 없었다.
이미 시알라가 조금 더 발끈한 낯빛으로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으니까!
“우리가 먼저 건드린 게 아니잖아! 저것들이 먼저 우리한테 짱돌을 던졌다고! 그냥 던진 것도 아니고, 분명히 무슨 일이 생길지 구경할 낌새로 던졌어! 뿔비비한테도 분명히 그랬겠지! 우리가 뿔비비는 아니잖아! 대놓고 시비 거는 것들을 그냥 두고 넘어갈 수는 없다고! 가서 한 대씩 후려치거나 아예 저 소금 벌판에 내던져놔야지!”
조금 더 길어지려던 말은 페란드가 시알라의 어깨를 꽉 잡으면서 멈춰졌다.
페란드는 해쓱한 표정을 간신히 억누르면서 누나에게 말을 꺼내는데…….
“누나, 우리 지금 동네 애들 상대하는 거 아니야! 여기는 깊은 산맥 안이라고! 저것들은 애들이 아니고 몬스터고!”
시알라의 눈이 두어 번 깜박거렸다.
그러나 세차게 젓는 시알라의 고개는 잠깐 뭔가 착각을 했다가 제정신을 차리겠다는 쪽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더 그냥 두고 갈 수 없지! 몬스터 따위가 지나가는 사람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가 버릇을 고쳐놔야 한다고! 그래야 다음에 또 누가 지나갈 때 저리 까불지 않을 것 아냐! 저게 또 저 얼룩진 돌을 던지지 못하게, 던지면 어떻게 되는지 아주 단단히 야단을 쳐놔야 한다고!”
“어?”
투란은 눈을 깜박거리면서 시알라를 바라봤다.
어째 시알라의 이야기는 어딘가 드라고니아랑 닮아 있잖은가?
물론 이 이야기에 세 동생이 완전히 납득하고 찬성하는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페란드가 머쓱하니 완강한 누나의 어깨에서 손을 뗄 때, 멜란드가 중얼대듯 묻는 소리를 꺼낸다.
“누나, 다음에 또 여기 오려고? 여기 대체 누가 온다고? 마법사도 여기 정보를 자기가 와서 얻은 거라고 한 적 없다고. 오래전에 자기 학파 선배가 발굴해낸 고대의 기록이라고 했잖아. 어, 그 선배가 실종돼서 찾으러 왔다고도 했지만…….”
“그딴 얘기는 믿을 수가 없고! 기분 나쁘잖아! 여기 며칠 있는 동안, 우린 저것들한테 아무 짓도 안 했어! 근데 저것들이 우릴 내려다보고 깔보면서 짱돌을 던졌잖아! 어디서 뜯어왔는지 모를 석판도 던졌고! 멜란드, 여기 있는 동안 다짐하지 않았어? 페란드, 앞으로 우리는 누가 뭐라 하든 당당하게 살자고 했잖아!”
시알라가 하는 말은 멜란드와 페란드를 당황시키면서도 입을 다물게 했다.
제란드는 그런 누나와 형, 동생을 보면서 ‘대체 언제?’라고 중얼거렸다.
시알라의 목소리는 바로 제란드의 낮은 중얼거림에 답한다.
“너랑 투란을 기다리면서 다짐한 거야! 몬스터든 뭐든…… 앞으로 우릴 깔보고 시비 거는 놈을 그냥 두지 말자고!”
“그거 좀 무모하잖아, 누나. 세란드 형에 대해 결말을 지으면, 그다음은 조용히 사는 거 아니었어?”
제란드가 어이없다는 듯이 다시 중얼거렸다.
페란드와 멜란드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소식을 전혀 알 수 없게 된 세란드의 일을 알아내고 어떻게든 결말을 지은 다음에는…… 사람답게 평온하게 살자고 다짐해왔다. 여기 머무는 동안에 시알라가 힘내자고 기죽지 말자고 몇 차례 다짐하는 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지금 이 경우에는 조금 심하게 막 나가는 것 아닌가!
이런 동생들의 조용한 항의가 가득 담긴 태도에 시알라는 위를 흘깃하면서, 투란을 똑바로 바라보며 더욱 박력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한다.
“올라갈 거지, 투란?”
“어? 어…….”
투란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드라고니아가 부추기는 것은 한쪽으로 치워놓더라도, 사실 투란은 궁금했다.
헬 임프가 절벽에서 작은 날갯짓으로 오르내리는 모습도 신기했고, 카보닉의 얼룩진 돌을 어떻게 내던지는가도 굉장히 알고 싶었다. 다만 거기에 남매를 데려가는가 마는가 하는 일이 조금 꺼려졌을 뿐이었다.
“올라가야겠군.”
제란드의 말은 페란드를 한숨짓게 했고, 멜란드가 머리를 긁적이게 했다.
누나가 조금 요란하게 외쳤지만, 정말 저기 올라가고 싶은 쪽은 투란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듯한 세 형제였다. 그리고, 그렇다면 당연히 자신들도 올라가야 하는 것이니, 필요한 것은 그냥 각오뿐이라는 듯한 표정이기도 했다.
이리하여 헬 임프의 정원은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