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9)
괴물 두 패가 싸움을 관두고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야! 덩치가 있으면 새로운 곳에 도전을 해!’
투란은 물기둥에 휘말려 올라가면서, 진심으로 화를 내며 어버버 소리 없는 욕을 퍼부었다. 이 물기둥이 뒤끝이 좋지 않을 거라고 저놈들이 예고하는 꼴이잖은가!
불길 속의 뼈다귀 놈들이야 그렇다 쳐도, 물살을 가르던 저 가위 주둥이의 뱀 같은 놈들은 대체 뭔가!
물기둥인데 왜 도망치는가!
투란의 눈에서 울컥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는데, 눈동자 주변을 덮은 넝쿨의 실 가닥이 눈가에 맴도는 물방울을 쭉쭉 흡수한 것이다. 기분이랑 다르게, 새로운 양분이 없다면 약간 짠맛이 있는 눈물이라도 마셔야 하는 악마의 심장 탓이었다.
격렬하게 흐르는 주변의 물방울을 바로 들이켜기에는 조금 어려운 듯하니, 쉬운 것부터 들이마시는 것일까?
‘아…… 뭐냐고, 이게!’
소리 없는 투덜거림이 투란의 뇌리에서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릴없이 물기둥에 끌려 올라가면서 느닷없이 환하게 펼쳐진 불의 평원, 큰 물기둥을 시작으로 그곳에서 뻥뻥 터져 나오는 작은 물기둥과 치솟는 소용돌이를 구경만 할 뿐, 투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지켜보고, 터져 나오는 투덜거림을 딴 사람이 떠드는 말인 양 생각으로라도 흘려 보는 수밖에.
투란은 물기둥에 휘말려 높이 올라가며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불꽃의 평원을 관통하듯이 솟구치는 물기둥, 그에 대항하듯 내리꽂히는 불기둥,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되는 터전인 곳, 박살 난 분지의 위편에는 붉게 달아오른 태양처럼 보였던 것이 불꽃의 구름 사이로 반쪽인 둥근 모습을 보이는 채였고, 아래편에서는 자욱하게 갈린 안개의 소용돌이가 둥글게 번져 가며 불의 평원을 서리로 덮으려 하고 있었다.
‘저것들이 몬스터인가?’
하늘과 땅을 통째로 갈아엎고 있는 저 서리 안개와 태양, 과연 저런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것도 몬스터라 불러야 하는가?
투란은 속이 시리는 끔찍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 로드라면 보다 강한 몬스터를 원하기 마련이라지만, 저건 아니었다.
세상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재앙은 몬스터 로드가 선택해서는 안 되는 것.
이해할 수 없었지만, 투란은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 따위와 상관없이 물기둥은 계속 솟구칠 뿐이고, 위에서는 자욱하게 하늘을 메우며 번지는 불꽃의 구름이 기다릴 뿐이었다.
대체 이 물과 불의 괴현상이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투란은 어느새 투명해진 물결 너머로, 간혹 끼어드는 기포와 겹쳐지는 저편의 답을 볼 수 있었다.
솟구쳐서 새하얗게 번져 가는 물기둥과 흘러내리며 시뻘겋게 빛나는 불기둥이 교차하며 하늘과 땅 사이가 무지갯빛 잉크로 채색되었다. 그 불꽃과 물결 사이에 휩쓸려 간 것이 어떤 꼴이 되는가는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고, 투란으로서도 전혀 알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 무지갯빛 잉크는 황홀할 정도로 다채롭게 번져 가면서,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장난감을 떠올리게 했다.
‘그게 뭐였지? 무슨 스코프였나? 아니, 뭔 거울이라고…… 아, 그래 만화경(萬華鏡)! 연금술사가 그랬어, 만화경이라고!’
만 가지 광채를 조합해 내는, 부서진 석영(石英)이 가득 채워진 듯한 이상한 장난감을 그렇게 불렀다. 겨우 뚫린 구멍으로 본 그 다채로운 색이 좀 신기하기는 했지만, 굳이 그걸 계속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투란이 보고 있는, 볼 수밖에 없는 저 허공에 번지는 무지갯빛 잉크의 황홀함은 마냥 보고 있어도 절대로 질리거나 지루할 리가 없을 것 같다. 너무나도 짙고, 옅으며 한 가지 색만으로도 온갖 휘도(輝度)를 다 드러내는 아름다움이 뇌수를 후벼 파는 듯하잖은가!
그리고 투란은 정말 자신의 코와 귀로 피가 새는 것을 알아차렸다.
‘뭐……!’
이 감각, 이 상황에 대한 파악은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울려 나오고 있었다.
강렬한, 전신을 한꺼번에 후려치는 듯한 격한 힘의 파문으로 악마의 심장이 그의 의식을 명료하게 했다. 그 명료해진 의식 속에서 투란은 자기 두개골 안의 내용물, 뇌수가 엄청나게 부풀고 피를 흘리며 뒤틀리고 있는 것을 알아야 했다.
‘뭐야, 이건!’
그런 자극을 일으키는 것은 눈으로 본 것들, 물기둥에 휩쓸려 온몸의 감각이 거의 다 차단된 듯한 상황에서 물이 아닌 다른 것과 접촉하는 유일한 감각, 시각에 의해 흘러든 풍경이 투란의 뇌를 파괴하고 있었다.
그에 대항해 투란이 반사적으로 움직인 것은 몬스터 로드로서의 본능이었다.
부풀고 깨지려던 뇌의 일부가 넝쿨 가닥으로 변해, 뇌 속에서 터진 혈관이 흘린 피를 마셔 버렸다. 그러면서 다시 뇌의 주름으로 스며들어 어떻게든 뇌를 회복시키는 중이었다. 이미 확보한 씨앗을 바탕으로.
다행이라면 파괴가 시작되는 동시에 악마의 심장이 두뇌로 이어지는 혈관 계통을 장악해 강한 피로 저항력을 높이면서 회복에 힘쓴 덕분에 ‘기억’이 보존된다는 점이었다.
이는 새 팔을 얻으면서 느꼈던, 팔에 담겨 있던 경험을 잃어버린 것처럼은 안 되게 막으려는 듯한 본능적인 방어였다. 그리고 더 이상 사람의 머리로 생각할 수 없게 된 투란, 몬스터 로드인 투란은 악마의 심장이 구성해 낸 의식을 통해 더욱 명료하게 사고하면서 시각에 의한 파괴 과정을 지켜보고 검토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투란은 깨칠 수 있었다.
‘그렇구나! 이렇게 쓰는 거였어!’
처음에 신기해하며 느꼈던 감각, 악마의 심장을 통해 의식하고 생각했던 것, 그 후에 갑자기 투란이 하나 더 늘어난 것처럼 스스로에게 말을 걸고 따로 생각했던 일, 그 결과 새로운 심장을 키워야 했던 것…… 그런 경험들이 한 줄기로 집약되면서 투란은 분명하게 깨쳤다.
몬스터 로드로서 몬스터에 어떤 식으로 의식을 투영하고 이를 움직이는지, 그 중심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로 할 수 없는 감각, 몬스터 엠블럼이 방출해 내는 힘을 통해 깨달았다.
‘고유 마력, 이거로구나!’
잊었던 명칭도 생각났다.
몬스터 로드가 문장으로 몬스터의 정수를 삼킴으로써 생성되는 특이한 마력, 그 때문에 고유 마력이라 일컬어지는 것.
그 힘을 바탕으로 투란은 악마의 심장을 두뇌처럼 쓸 수 있었다.
두뇌가 회복되면 다시 악마의 심장은 의식을 보조할 것이고, 두뇌가 활동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하면 또 의식의 기반이 될 것이다.
이는 팔다리로 흐르며 생성된 덩굴줄기에도 적용되는 부분이었다.
투란의 본래 힘줄, 근육과 살갗에 악마의 심장이 뿌린 덩굴줄기와 실그물이 엮이며 번졌고, 그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 할 때마다 나서서 강화시켜 주게 된 것.
‘이렇게 쓰는 거였어!’
덮어놓고 몬스터의 형상을 생성하고 놔두면서 관찰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받쳐 주도록,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일에 그 힘을 쓰도록 투란이 다스려야 했다. 그러기 위해 염원해야 하는 것이고, 그러지 않은 것이 투란의 첫 실수였다!
‘어, 잠깐.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어떻게 바라냐?’
투란은 냉정하게 악마의 심장을 통해 생각할 수 있었다.
무엇인가를 바라기 위해서는 그 무엇인가에 대해 아는 바가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막연하게 바란다면 투란은 악마의 심장이 공포에 떨며 사람인 자신을 배신하는 꼴을 다시 보게 될 수도 있었다. 모른다면 설마 그런 일이 펼쳐질까 하다가 당할 것이다.
지금 투란이 머리가 망가진 채인데도 가슴을 중심으로 의식을 활성화하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악마의 심장이 이럴 수 있다는 것을 겪으면서 관찰해 알게 된 덕분이었다.
뭔가 복잡한 기분 속에서, 투란은 머릿속이 안정되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지갯빛 잉크가 그려 내는 황홀하고 화려한, 하늘과 땅 사이의 만화경이 사라지고 없었다. 물과 불의 기둥이 격돌을 그쳐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격돌은 더 심해졌다. 거기서 시커먼 잉크가 번져 나와 무지갯빛의 황홀함과 화려함을 싹 날려 버린 것이었다.
‘검어!’
혹시 악마의 심장을 벌벌 떨게 했던 그것인가?
투란이 기억과 함께 떠올린 의심은 곧 사라졌다.
악마의 심장은 검은 잉크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겪어 봐서 겁먹지 않는다는 경우가 아니었다.
새카만 잉크, 그 잉크 속에 점점이 반짝거리는 뭔가가 보이는 풍경은 세상의 존재를 지우고 없애는 허무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 새카만 잉크의 풍경은 투란을 놀라게 했다.
‘바, 밤이냐? 밤하늘이야!’
무지갯빛 잉크가 온갖 화려함으로 그의 뇌수를 으깨 버릴 정도의 다채로운 풍경을 한꺼번에 들이댔다면, 새카만 잉크는 오직 한 가지 색채로 한 가지 풍경을 보여 주고 있었다.
바로 밤의 풍경이었다.
‘아니, 왜 밤하늘이냐고!’
맞닥뜨리며 서로를 갈아 먹자고 싸우는 불꽃과 물결의 기둥, 그 시뻘겋고 새하얀 충돌이 자아내는 단순한 색채가 아니던가? 아무리 다채로운 빛깔을 띠었다고 해도, 아무리 단순한 색채가 되었다 해도 색은 색일 뿐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상식이 그의 뇌수처럼 파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은 상식을 벗어난 밤하늘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경험을 해야 했다. 물기둥에 휩쓸려 올라가는 저편의 하늘에는 불꽃의 구름이 여전히 보이는데 어째서 하늘과 땅 사이의 풍경에 밤하늘이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보이는데 어쩌겠는가!
그 속에서 반짝이는 것이 정말 별일까?
마구 뿌려진 새카만 잉크 속 풍경에는 아예 신월(新月) 셋이 삼각형으로 붙어 있는 것도 보였다!
해도 하나, 달도 하나인 것이 투란이 아는 세상의 이치인 것을!
‘환상인가?’
깔끔하고 시원한 결론은 이랬다.
별이 보이는 밤의 풍경도, 이상한 달의 형상도, 그저 요술쟁이가 보여 주는 환상 같은 것이라면 그냥 볼만한 것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삼각형으로 달라붙은 세 개의 신월 아래 뾰족하게 솟아난 거대한 검의 끝자락 같은 바위 언덕이 보이는 것도 환상일 뿐이고, 그 바위 언덕 끝에 보이는 두꺼운 망토를 휘날리며 깊이 머리를 덮은 두건을 쓴 자의 모습 역시 환상이라 여기면 되는…….
‘에?’
그런데 그 환상 속의 기이한 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투란의 눈길을 느꼈다는 듯, 이쪽을 돌아본 것이다.
중간에 뿌려진 검은 잉크 같은 허공의 풍경을 넘어, 포말이 피어오르는 물기둥 속에 그저 휘말려 높이 치솟아 가는 물방울과 비슷한 처지인 투란을 향해 환상 속의 기이한 형상이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내 드는 듯한 움직임.
‘해, 해골! 황금 해골!’
그 움직임으로 인해 투란은 환상 속의 인형(人形)이 살점 하나 없는 황금 뼈다귀인 것을 알아차렸다. 온전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깡마르고 살갗 없는 이상한 몸통에 대해 투란이 떠올린 것이 해골뿐이었지만.
해골이 꺼내 든 것은 칼날이 없는 황금 칼자루였다. 가느다란 뼈다귀 손가락이 칼자루를 쥐고 허공에 높이 치켜든 다음, 투란은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를 느꼈다. 이 물결 속으로, 저 풍경을 가로지른 채로 과연 환상 속의 해골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겠느냐는 의심부터 가슴속에 피어올랐다. 하지만 환상인데, 굳이 시각으로만 환각을 느끼란 법도 없잖은가?
‘에이, 뭔 일 나겠어?’
환상의 좋은 점은 망상과 같다.
그저 보고 듣고 넘기면 그만, 현실에 아무런 영향력도 없다는 것!
그래서 투란은 황금 칼자루 끝에서 시퍼렇게 솟구쳐 새빨갛게 변한 빛의 칼날을 보고도 침착할 수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그것이 휘둘러져 새카만 잉크색 풍경을 쪼개 버리고 물기둥을 휘청이게 하는 거대한 충격을 던져 왔을 때도 넋이 빠진 것처럼 헤헤거리며 날려 가는 자신을 걱정하지 않았다.
비록 입가에서는 보글거리면서 토해져 나가는 숨결이 쌍욕을 해 대는 꼴이었지만, 그래도 투란은 자신의 섣부른 판단에 환상 속의 해골이 ‘내가 여전히 환상으로 보이나?’라고 놀리는 듯 느껴지는 것은 자신의 망상일 뿐이라고 확신했다.
저 해골, 빛의 칼날을 휘둘러 새카만 잉크색의 틈새를 가르고 저편과 이편의 경계를 아예 파괴한 놈에게 투란 자신은 의미가 없을 테니까.
그저 하늘로 솟구치는 물결 속 거품 한 방울에 불과할 테니까.
‘빌어 처먹을!’
거기에 대해 화를 내 봐야 의미가 있을 리 없다.
투란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날려 가는 것뿐이었다.
불꽃과 물결이 사투하는 전장에서, 다른 하늘과 땅 사이로부터 불어온 바람에 휩쓸린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