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9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94)
‘느려. 그런데 오기는 오네!’
헬 임프가 쪼르르거리고 파닥대는 움직임이 그리 빠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느리게, 보다 무겁게 뭔가가 다가오는 중이었다. 암벽 속의 돌바닥을 밟으면서, 은은한 울림을 확실히 전해오는 채로!
투란은 즉각 주변을 둘러봤고, 미끄러져 온 구멍이 꽤나 높다는 것을 다시 가늠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녀석들의 방향을 가늠하니…….
‘내려오는 중이네, 뭔지 모르겠지만.’
시알라가 헬 임프 떼를 두들겨 패는 곳은 넓고 큰 동굴 속의 마당처럼 보였다. 그 마당을 향해 위쪽으로 높이 파인 구멍이 있었고, 묘하게 선명한 낮의 빛살이 이 마당을 훤히 비춰주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깊은 동굴 속이었지만, 이곳은 밝았다.
시알라가 보인 변신과 이 상황이 많이 예상에서 어긋난 것이라 뒤늦게 이런 환경을 알아차린 셈인데…….
“무슨 소리지?”
페란드가 낮고 분명하게 말하면서 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제란드와 멜란드는 이 소리에 ‘어?’ 하면서도 다시 시알라를 봤고, 험악한 찰싹거림과 시원한 타격음이 세차게 피어나는 광경을 확인했다. 도대체 페란드는 저 소리의 어디가 이상해서 뭐냐 묻는 것일까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투란이 쓴웃음을 억누르면서 페란드의 말에 보탠다.
“뭐가 오고 있어. 우리가 미끄러졌던 곳…… 그 벽 너머 깊은 곳에 있다가, 우리가 미끄러진 것을 따라오는 것처럼 이리로 내려오고 있어. 여긴…… 여러 곳으로 뚫린 채니까, 다른 길을 타고 내려오는 셈이지.”
이는 바로 제란드와 멜란드를 이미 자세를 갖추고 있는 페란드처럼 긴장시켰다.
시알라와 수십 마리의 헬 임프가 엉켜서 두들겨 패고 맞는 광경을 한쪽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로 구경해도 좋을 만큼 넓은 곳이었다. 미끄러지는 비탈 말고도 여기저기가 훤히 열린 듯한 분위기를 지닌 굴이 몇 개나 되는 채였다. 그러니까 일행이 미끄러져 온 곳 말고도 어디서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세 형제가 뒤늦게 이런 주변을 둘러보니, 시알라가 찰진 소리를 내며 불타는 날개와 머리카락을 지닌 어린애…… 간혹 얼굴만 파삭 삭고 주름진 경우라든가, 사람보다는 개나 돼지에 가까운 머리통도 섞여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체격만으로는 확실하게 어린애인 저 이상한 꼬마 괴물을 패는 것만 바라볼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이 상황을 향해 뭔가가 다가오는 중이라는 것을 깨닫고, 세 형제와 투란이 긴장을 한다 해도…….
퍼억! 퍼퍽! 퍼어억! 빠악!
“이게 어디다 손을 내밀어! 애새끼처럼 생겨먹었다고 애새끼처럼 엉큼하게 만지게 둘 것 같아! 애새끼도 쳐맞을 짓인데!”
굵고 쩌렁거리는 목소리는 가랑이 사이를 채일 듯해서 걸걸하게 성질을 내는 사나이의 외침처럼 울렸지만, 정작 정수리가 쪼개져서 날아가는 작은 손길이 향한 곳은 우람한 어깨와 가슴 사이에서 불끈불끈하는 근육이었다.
시알라는 그렇게 자신의 성별(性別) 따위는 어딘가에 숨겨둔 강렬한 근육질을 과시하면서, 그 위에 불꽃을 얹은 채로 헬 임프 떼를 밟고 짓이기며 날뛰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옆에서 조심하라 말린다고 들을 모습이 아니다!
“어, 누나 어쩌지?”
멜란드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발구름을 확연하게 느끼는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제란드와 페란드는 잔뜩 긴장하면서 다가오는 것에 대비하는 듯한데, 역시나 뛰어나가서 누나를 돕거나 말릴 낌새는 전혀 없었다.
투란도 가만히 구경만 하는 모습이었고, 결국 투란의 뇌리로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뭐 하는 거냐? 저대로 둘 거야? 뭐가 오든 제일 먼저 맞서게 두는 거냐?
‘에, 그러니까 말이지…… 지금 몬스터의 성격이 나오는 중이거든. 몬스터 로드가 울컥했을 때 그 기분에 호응해서 삼킨 몬스터가 튀어나와 날뛰는 꼴이 저건데…… 저럴 때는 보통 그냥 두라고 하거든. 그래서 다들 손 놓고 보는 꼴인 거고…….’
―뭐?
‘몬스터 로드는 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힘을 깨닫고 조금씩 강해지는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 끼어들기가 아주 애매해. 게다가…… 시알라, 조금씩 더 강해지고 있어. 말도 똑바로 하고 있잖아. 완전히 몬스터의 성격에 정신이 억눌린 채로 발광하는 중이 아니라고. 음, 그리고…… 지금 뭐가 오든 시알라보다 그리 세게 느껴지지 않……어?’
콰아앙!
저편에 뚫린 굴의 귀퉁이가 터지면서 파편이 튀었다.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말하던 것을 멈추고 그 광경을 가늘게 뜬 눈으로 세심하게 지켜봤다. 곁에서 세 형제도 폭력적인 누나의 행패에서 눈을 돌려 그쪽을 보는 중이었다.
터지듯이 깨진 굴은 한쪽 옆과 그 위편이 부서지는 중이었다.
뭔가 굴에서 나오면서, 그 체격에 걸리적거리는 부분을 아무렇게나 후려치며 나오는 듯했다. 그 티끌과 파편이 가라앉기 전에 뚫고 튀어나온 크기로 봐서는 저렇게 난폭한 짓을 하는 게 당연해 보였다.
―둠 고그(Doom Gog)? 저게 왜?
드라고니아가 놀란 소리를 투란에게 전했고, 그 사이에 투란은 굴을 깨며 휘날린 티끌과 파편을 안개 가르듯이 뚫고 나온 녀석을 살폈다.
키는 대강 3미터가량이었고, 넓게 펼쳐진 어깨와 가슴 아래로 굵직하게 돋아난 뱃살에 근육의 윤곽이 보일락 말락 한 덩치였다. 그 덩치가 꽤 커서 키와 상관없이 어딘가 팔다리가 짧은 느낌이 들게 하지만, 그 굵은 팔다리의 팽팽한 근육질은 방금 부수고 나온 굴이 바위든 뭐든 상관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머리와 배꼽, 팔에 돋아난 녀석의 터럭 언저리는…….
‘둠 고그? 저놈도 불덩이네?’
그 체격이나 힘보다 먼저 눈에 띄는 불꽃의 색채였다.
헬 임프처럼 둠 고그도 몸 곳곳에 불길을 매달고 있었다.
의아해하는 투란의 뇌리로 드라고니아가 재빨리 냉정을 찾은 듯한 말투로 이야기한다.
―헬 임프가 오우거가 된 경우라고 보면 된다. 헬 임프가 지닌 불꽃을 저놈도 지녔지. 헬 임프처럼 날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 저 체격 그대로의 괴력을 지녔다. 어지간한 쇳덩이는 저 녀석이 손으로 쥐는 순간에 찌그러질 거야. 불에 대한 내성은 당연히 강하고…… 내부에 불길이 맴돌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얼어붙게도 할 수 없어. 기본적으로 항마력이…….
바아아아―!
괴성이 짙게 울려 퍼졌고, 모두의 관심을 끄는 듯했다.
한창 시알라에게 덤벼들던 헬 임프 떼가 그 괴성에 응하듯이 입을 맞춰 애앵거리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마치 이제껏 시알라에게 밟히고 짓이겨진 자신들의 원수를 갚아달라는 듯한 분위기가 그 애앵거리는 칭얼거림 속에 짙게 배어있는 듯했다.
하지만 둠 고그가 내지른 주먹이 바닥을 깨면서 돌조각이 튀어올라 덮친 풍경에는 헬 임프 떼가 시알라와 함께 있었다. 칭얼거리든 말든, 자신과 같은 불꽃을 몸에 달고 다니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로 둠 고그는 쿵쾅거리는 주먹질로 먼저 돌조각을 휘날렸고, 그다음에는 주먹질할 때 난 소리를 발걸음으로 내면서 시알라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께엑! 케에엑!
파편에 맞은 헬 임프 몇 마리가 날려 가 뒹굴었다.
“시끄러운 놈! 넌 또 뭐야!”
시알라의 굵은 음성과 함께 그 손에 잡힌 헬 임프가 둠 고그를 향해 날아갔다. 돌을 날려줬으니, 대신 뭐라도 던져주겠다는 듯한 손짓이었지만…… 날아가는 헬 임프에게 부딪히면 돌도 깨질 것처럼 보였다.
바아앗!
퍼억!
둠 고그는 망설임 없이 날아드는 헬 임프를 휘둘러 쳤고, 헬 임프는 머리가 박살난 채로 옆으로 튕겨졌다.
“어쭈? 한패가 아니라고 시침 떼는 거야?”
시알라는 괴상한 말을 했고, 둠 고그를 향해 뛰었다.
그 뜀박질 아래에서 헬 임프가 밟히고 배가 터졌다는 듯이 몸부림을 쳤지만, 뛰는 시알라는 둠 고그만큼이나 무신경한 모습으로 헬 임프에게 관심이 없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 자신이 패고 있던 헬 임프였는데!
바아아―!
“시끄러!”
괴성과 고함이 맞닥뜨렸다.
둠 고그는 거침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시알라는 그 앞으로 바로 내달렸다.
붉은빛이 맴도는 짙은 갈색의 주먹은 갈기 같은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갔다.
시알라의 붉은 손아귀가 바로 둠 고그의 커다랗게 열린 입안으로 들이박혔다.
이빨과 혀를 대신하는 듯한 불꽃이 둠 고그의 입에서 괄괄거리는 꼴로 흘러넘쳤다. 둠 고그는 두 팔을 휘저으면서 품 안에 뛰어 들어온 시알라를 잡으려 했다.
이 순간에 둘의 키는 시알라가 조금 작은 듯이 보였지만, 덩치는 둠 고그 쪽이 거의 두 배를 넘는 듯했다. 그러나 이 기묘한 체격의 차이는 곧 묘한 광경과 함께 아주 달라져 보였다.
시알라가 둠 고그의 허벅지와 뱃가죽을 밟으며 뛰어올랐고, 때문에 둠 고그가 어린애처럼 어른 허리에 달라붙은 듯한 꼴이 된 때문이었다. 단지 이 어린애는 어른보다 옆으로 두어 배는 더 부푼 몸집을 한 채였고…….
“어디서, 떽떽거리며 덤벼!”
시알라의 굵직한 음성이 쩌렁쩌렁 암벽의 깊은 공동(空洞)을 모두 울리겠다는 듯이 퍼져 나갔다. 그 외침과 함께 시알라는 둠 고그의 뒤통수를 한 손으로 잡았고, 입에 쑤셔 박아놓은 다른 손에 힘을 줬다. 허리를 끌어안은 둠 고그의 두 팔이 조여드는 것 따위는 아랑곳없다는 듯…… 둠 고그의 입에서 흘러넘치는 불길이 시알라의 두 팔, 붉은 그랑츄의 두 팔을 더욱 붉게 물들이는 듯한 광경 속에서 근육이 부푸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쩌어억!
둠 고그의 머리통이 시알라의 두 손에 받쳐지며 위로 높이 치솟았다.
둠 고그의 목 아래는 그대로 시알라의 두 발에 마구 밟히면서 바닥에 드러눕는 중이었다.
쿠웅.
‘에, 저게 뭐야?’
투란은 솔직하게 마음 깊은 곳을 향해 물었다.
드라고니아는 침묵했다.
그래서 투란은 소리를 내서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었지?”
페란드가 입술을 벙긋거렸지만 아무 말도 못 했다.
제란드와 멜란드는 입을 벌린 채로 아무 소리도 못 내며 눈가에 깊은 그늘을 칠한 듯한 모습으로 맹해져 있었다.
도대체 지금 투란과 세 형제는 뭘 본 것일까?
어째서 본 광경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지는 것일까?
시알라가 저편에서 포효하며 외치고 있었다.
“나와! 깨작거리며 숨어 있지 말고!”
대체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둠 고그의 목이 순전히 힘으로 뜯겨 나가는 순간, 헬 임프 떼는 벌레 떼가 놀라 흩어지는 꼴을 보이며 사방으로 도망쳤다. 앵앵대던 칭얼거림도 전혀 내지 않은 채로, 그야말로 뒤돌아볼 여유조차 없다는 듯이 시알라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모조리 도망쳐버렸다!
그렇다면, 지금 저 소리는…….
투란과 세 형제는 서로를 흘깃거렸고, 일어설까 말까 하는 고민을 나눴다.
하지만 시알라는 기다릴 마음이 없었던가, 들고 있던 둠 고그의 머리통을 내던지며 다시 외치고 있었다.
이쪽이 아닌 저쪽으로…….
살짝 투란과 세 형제가 안도하는 분위기를 띄울 때, 저쪽에서 괴성이 여러 가닥 울려 퍼졌다.
바으으―!
바앗!
“엥?”
투란이 눈을 껌벅였고, 세 형제도 동시에 ‘어?’ 하는 소리를 냈다.
조금 전에 시알라가 목을 뽑아낸 놈과 꼭 닮은 생김새와 체격을 지닌 녀석들이 이 구멍 저 구멍에서 느릿하게 쿠쿵거리는 발걸음을 울리며 나오고 있었다.
순간 투란은 울컥해서 더 세차게 마음속을 향해 외쳤다.
‘야, 오우거라며! 왜 오우거가 떼로 몰려나와!’
오우거는 무리 짓지 않는 폭군이었다.
어딜 가든 다 때려부수고, 망가뜨리며 홀로 날뛰는 괴물이었다.
그 유명함에도 그렇게 많은 수가 발견되는 일은 없는 크고 힘센 몬스터의 표본 같은 놈이었다.
그러니까 뭔가를 오우거에 비교한다는 것은…… 적어도 두세 마리가 몰려나오지는 않을 거라는 의미를 담기 마련이다. 한데 드라고니아는 저렇게 구멍마다 한꺼번에 십여 마리가 잠자다 깬 듯이 기어 나오는 놈들을 어째서 오우거에 비교했단 말인가!
때문에 투란이 따질 수밖에 없는데…….
―투란, 저것들이 있는 기척을 느꼈나? 어디서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 느꼈어?
드라고니아는 아주 엉뚱하게 말을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투란으로서는 이 말을 그냥 넘길 수도 없었으니…….
‘어? 그런 거 없었는데?’
정말로 저 십여 마리의 둠 고그는 기척이 없었다. 위에서 아래로 요란하게, 시알라가 헬 임프 떼를 신나게 두들겨 패는 소음 사이를 뚫고 기척을 전하며 내려왔던 놈과는 아예 다르다는 듯!
‘저거 둠 고그 아냐?’
―둠 고그 맞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나타난 거지?’
―다른 뭔가가 저놈들의 기척을 감춰준 거야.
‘다른 뭔가?’
―아무래도, 이 헬 임프의 정원은 오래전에 드라코눔의 스카우터가 조사했을 때와는 아주 다르게 변한 모양이야.
‘변해? 그렇다면…….’
투란이 무슨 생각을 하기 전, 드라고니아가 뭐라 더 설명을 잇기 전에 강렬한 고함이 터졌다.
“덤벼, 이 불붙은 똥덩이 새끼들아!”
시알라가 둠 고그 십여 마리를 도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