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9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95)
“똥?”
투란은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이게 뭔 소리인가 하면서 옆을 보니 페란드와 제란드, 멜란드가 모두 눈가에 그늘을 매달고 살짝 하얗게 변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시 투란이 둠 고그를 보니, 그 불꽃이 간간이 피어나며 짙은 갈색의 살갗이 어딘가 마른 똥과 같은 빛깔처럼 느껴진다!
‘에, 욕하는 거겠지?’
그래도 일단 투란은 이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고, 기분을 가라앉히면서 조금 차분하게 상황을 보려 했다.
바아아, 바으아아앙!
둠 고그 몇 마리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듯한 몸짓과 함께 괴성을 질렀고, 그 몸 곳곳의 불길이 팍팍 피어오르면서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구멍 아래로 새로운 그림자를 어른거리게 했다.
시알라는 그런 괴성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두 손을 주먹 쥔 채로 쾅쾅 마주치면서 한결 더 짙은 도발을 해대고 있었다. 둠 고그가 그 말은 못 알아듣는다 해도, 그 손짓과 태도만으로 충분히 도발은 성공한 듯이 보였다.
시알라를 향해 둠 고그가 쿵쿵거리는 걸음 소리를 내며 반쯤 뛰고, 반쯤 걷는 듯한 어정쩡한 모습으로 달려들었다. 시알라가 그 속도에 맞춰 대응하려 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아! 저거 가속 능력이……!
돌연 드라고니아가 급히 한마디 투란에게 말하고 있었다.
‘뭔 능력?’
투란은 바로 무슨 뜻인가를 알아듣지 못했고, 거기에 대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시알라를 향해 느릿하게 달려드는 것처럼 보이던 둠 고그 한 마리가 느닷없이 발목 언저리에서 세찬 불길을 뿜어냈고, 한순간에 시알라 앞으로 달라붙어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그 주먹질하는 팔꿈치, 어깨에서도 역시 불길이 치솟았고, 휘둘러지는 주먹의 속도는 난데없는 번개처럼 보였다.
뻐억!
“어억? 누, 누나!”
멜란드가 놀란 소리를 질렀다.
페란드와 제란드가 몸을 엉거주춤하면서 반걸음씩 뛰어나갈 듯한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투란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어이없어하는 중얼거림을 흘렸다.
“뭐야, 힘없네?”
시알라를 향해 번개처럼 달려들어 벼락같이 주먹질을 해서 맞췄지만, 둠 고그의 손목은 내지른 채로 시알라의 우람한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볼에 찰진 소리를 울려내면서 맞기는 했지만, 그 돌아가는 팔뚝을 낚아채듯이 잡아버린 모습이었다.
맞고서 충격을 받거나, 뒤로 물러서거나…… 어떤 형태로든 타격에 의한 상처를 입은 낌새가 시알라에게 전혀 없었다.
―없긴 뭐가 없어! 저놈 발아래를 보라고! 저 속도로 질질 끈 발에 돌바닥이 패였다! 그 주먹질이 암벽에 꽂혔으면 어깨까지 파고들었을 거라고!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한마디에 반박했다. 둠 고그가 조금 전에 자신의 속도를 단숨에 끌어올려 보여준 공격에 대한 설명은 투란에게도 확실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왜 저걸 맞고도…… 으앗.’
시알라가 몸을 날렸고, 잡고 있던 둠 고그의 팔을 당겼다.
붉은 그랑츄의 부푼 다리 근육이 둠 고그의 목을 감았고, 두 팔은 둠 고그의 팔을 움켜쥐었다. 시알라의 머리가 땅을 향해 처박히는 듯한 광경 속에서 두 발이 둠 고그의 목을 뽑아 올리고 있었다.
뭔가 투란이 드라고니아의 말에 대꾸하려던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확실히 둠 고그가 달려들던 속도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느려 보였지만, 그 느릿한 움직임은 둠 고그가 했던 주먹질처럼 성과 없이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시알라의 움직임은 아직 느릿하게 뛰는 듯 걷는 듯한 둠 고그 몇 마리를 보다 세게 도발하고 있었다.
퍽!
붉은 그랑츄의 발에 뽑힌 머리통이 채였고, 달려오는 둠 고그 한 마리의 몸통에 튕겨졌다.
바아앗!
몸통에 잘린 동족의 머리통이 닿은 놈이 가속했다.
불길의 자취가 허공에 남았고, 새로 시알라와 맞닥뜨린 둠 고그의 주먹은 물구나무선 시알라의 배를 세게 치고 있었다. 시알라의 몸이 배에 닿은 주먹을 중심으로 굽어졌고…… 둠 고그가 거꾸로 뒤집히면서 허공으로 떠올랐다.
콰앙!
두 발에 어깨를 잡힌 채로 뒤집힌 둠 고그는 머리통부터 바닥에 내리찍혔다.
“촐랑거리지 마!”
시알라의 고함이 울렸고, 바닥에 박힌 둠 고그의 머리는 이전 동족과 마찬가지로 몸통에서 분리되었다. 이번에는 붉은 그랑츄의 발이 둠 고그의 입을 파고들어 눌렀고, 그 몸통이 시알라에게 안기면서 끌어올려져 머리통만 남는 꼴이었다.
시알라는 그렇게 들어 올린 둠 고그의 머리 없는 몸통을 옆으로 내던졌고, 또 한 마리의 둠 고그는 자신에게 날아든 그 몸통을 후려치며 괴성을 질렀다. 그 괴성과 함께 그 한 마리 또한 불길의 자취를 남기면서 가속했지만…….
퍼억, 뻐억!
쩌억! 우직, 와지직!
연이은 둠 고그들의 가속, 타격과 두부(頭部) 강제분리의 광경이 이어졌다.
어떻게 봐도 이 상황은…….
“음, 질 것 같지가 않네.”
투란은 결국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뛰쳐나가려던 페란드와 제란드가 얌전히 내밀었던 발을 거둔 채로, 그래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뛰쳐나갈 준비는 갖춘 채로 앉았다. 그 곁에서 멜란드가 해쓱한 목소리를 울린다.
“어, 정말 질 것 같지 않아…… 누나, 너무 무서워.”
제란드가 바로 멜란드의 볼을 꼬집었고, 짧게 이 상황에 대한 의문을 토한다.
“어떻게 된 거지, 대체…….”
페란드는 이 소리에 슬쩍 고개를 돌려 투란을 바라봤다.
황금매와 함께 붉은 그랑츄를 얻었고, 오면서 새로운 몬스터를 삼켰기도 했고 여러 가지 마법을 응용하는 법을 익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붉은 그랑츄의 여러 가지 성질을 더듬어봤지만 저런 위력은 전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뭔가 있다면, 세 형제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시알라가 투란에게서 뭐든 굉장한 몬스터라도 넘겨받았다고 생각하는 것뿐인데…….
투란은 제란드의 말을 들으면서, 페란드의 눈길을 느끼면서…… 멜란드가 꺼낸 말꼬리에 살짝 공감하면서 시알라와 둠 고그 패의 싸움이 아닌 주변을 둘러보고 살폈다.
“알아볼까?”
한쪽을 보며 투란은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과 함께 투란의 손이 한쪽을 향해 뻗었다.
거기에는 시알라와 둠 고그 패의 격투를 지켜보는 헬 임프 녀석들이 있었다. 나름대로 암벽에 기대거나 큰 돌덩이 뒤에 엎드리고 숨은 꼴을 하고는 있었지만, 훤히 보이는 채로!
‘윌 라이트.’
투란은 자신의 손에 어린 마법을 불렀고, 그 안에 담긴 주문을 품었다.
끼에!
투란이 내민 손에서 보이지 않게 뻗어나간 고스트 핸드가 냉큼 한 마리 헬 임프를 움켜잡고 채왔다.
“응?”
페란드가 흠칫했고, 제란드와 멜란드도 눈길을 투란에게 옮겼다.
―투란?
드라고니아도 느닷없는 투란의 행동에 의아함을 드러냈다.
대체 뭘 하려는가 다들 궁금해하는데…….
“확인해 보려고. 시알라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그 짐작이 맞는가 말인가?
‘응.’
드라고니아가 묻는 말에 투란은 짧게 대답했고, 세 형제는 투란이 무엇을 확인하려는가를 곁눈질하면서 누나의 격투가 위험하지 않는가도 지켜보며 주의했다.
투란의 두 손이 붉게 물들었다.
끌려온 헬 임프의 작은 목이 한 손에, 작은 머리가 다른 손에 잡혔다.
헬 임프의 불꽃 머리카락, 날개의 불길이 바로 휘청이고 파닥거리면서 투란의 두 손과 팔뚝으로 번졌다. 투란의 두 팔이 달아오른 듯이 붉게 물들었고, 굵어졌다. 두 손은 더 이상 새끼손가락이 없는, 굵은 엄지 둘이 세 손가락을 받쳐주는 형태가 되었다.
뽀각.
헬 임프의 머리가 두어 바퀴 돌았고, 뼈가 세차게 으스러졌다.
투란은 헬 임프가 축 늘어지면서 불꽃이 잦아들고, 붉게 빛나는 숯처럼 머리와 날개가 오그라드는 광경을 지켜봤다. 두 손, 두 팔에 스며오는 헬 임프의 불꽃이 선명하게 느껴질 때, 투란은 헬 임프를 내려놨다.
투란의 두 팔에서 힘줄과 핏줄이 불끈거렸고, 보다 선명하게 갈라지는 근육의 형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설픈 살덩이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근육이 갑옷처럼 단단하고 질긴 형상을 드러냈고, 그 위로 그보다 더 질긴 살갗이 들러붙으며 붉게 번들거렸다. 마치 저쪽에서 시알라가 드러낸 팔다리와 비슷한 형상이었다.
“과연, 이렇게 된 거네.”
―추측한 그대로이군…… 파이로-칸과 같은가?
‘아니. 파이로-칸처럼 불을 느끼고 다루지는 못하는 것 같아. 단지…… 마구 부푸는 힘이 모조리 뼈와 살로 번지는 느낌이야.’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물음에 답하면서 늘어진 헬 임프를 잡아 가슴으로 당겼다. 불꽃이 있던 자리에 붉게 빛나는 숯조각이 박힌 듯한 꼴로 오그라든 헬 임프를 투란이 왜 끌어안는가, 세 형제가 잠깐 의아해하는 사이에 투란의 팔이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가슴팍에서 황금의 광채가 번뜩였다.
―투란?
‘위장 잘 되는군.’
투란은 ‘천칭’의 문장을 품은 지금, 황금매의 문장처럼 보이는 환영을 살짝 덧씌운 채로 헬 임프의 에센스를 삼켜버렸다. ‘천칭’의 풍경을 향해 마음을 살짝 쏟아부으면서 투란의 눈길이 시알라를 향했고, 문득 처음 만났을 때의 시알라가 떠오르면서 투란은 미묘하게 웃었다.
그때는 누군가 언짢은 느낌으로 자신을 쫓는다고 여겼고, 붉은 그랑츄의 보금자리에서 기다리며 대비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때려잡은 붉은 그랑츄를 황금매와 ‘천칭’ 두 문장 속에 각각 나눠 삼키기도 했고, 혹시나 해서 어느 정도 저장도 해놨었다.
그런 투란을 향해 대뜸 날아들 듯이 달려오며 세란드냐고 묻던 시알라…… 지금 상황으로 되짚어 본다면, 확실히 보통 때와 다르게 욱하고 성질이 치솟으면 시알라는 조금 성급해지고 난폭한 판단으로 먼저 움직였다.
그런 성격의 시알라에게 붉은 그랑츄의 난폭하고 저돌적이며 지치거나 포기 따위는 전혀 모르는 몬스터의 근성이 곁들여진 채라면, 거기에 헬 임프의 불꽃이 붉은 그랑츄의 본성을 콱콱 쑤시면서 스며든다면!
‘저게 당연한 건가?’
투란은 붉은 그랑츄의 정수와 헬 임프의 정수를 두 손에 모아 이리저리 형성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얌전하고 차분한 사람이라도 헬 임프의 불꽃에 물든 붉은 그랑츄의 본능에 접한다면, 저렇게 몬스터를 도발하고 머리통을 뽑아 팽개치는 짓이 당연히 할 일이라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시알라는 그런 치솟는 몬스터의 본능 속에서도 주변 모두를 적으로 삼아 미쳐 날뛰지는 않고 있다. 싸워야 할 대상, 이 상황에서 투란이나 동생들에게 위험할 수 있는 ‘적’을 향해 그 성질을 드러내고 풀어내는 중이었다.
이는 분명히 시간을 벌어주는 행동이니, 투란은 더 머뭇거리지 않기로 했다.
“요령이 필요해.”
불끈거리는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덧없이 스러진 채로 뼈와 너울거리는 껍질만 남긴 헬 임프를 털어내며 꺼낸 투란의 말에 세 형제는 바쁘게 눈동자를 움직였다. 한쪽으로는 투란을 보고, 한쪽으로는 시알라를 살피는 눈짓이었다.
투란은 그런 형제를 보고는 다시 헬 임프가 숨은 쪽을 바라봤다.
한 마리 낚아채 오기는 했지만, 이 꼬맹이 몬스터 떼는 이쪽에서 뭔 일이 났는가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둠 고그와 시알라의 격돌 속에 피어나는 괴성, 고함 따위에 파닥대면서 부르르 떠느라 신경 쓸 여유가 전혀 없는 듯…….
“우선, 한 마리씩 삼켜놔.”
세 형제는 뭐라 대꾸하지 못했다.
투란이 이미 헬 임프를 고스트 핸드로 잡아 끌어당겨 왔고, 그걸 각자 받느라 바쁠 뿐이었다. 곁에서 지켜본 바가 있기 때문인지 페란드와 제란드는 바로 붉은 그랑츄의 손발을 드러내면서 헬 임프의 목을, 머리를 밟고 으깨서 뭉개놨다.
멜란드 또한 그러려 하는 모양이기는 했는데…….
“으윽? 케엑!”
뿔비비의 팔에 헬 임프의 불꽃이 옮겨붙으면서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는 표정부터 짓는 꼴이었다.
제란드가 바로 멜란드를 할퀴고 날뛰려는 헬 임프를 붙잡아 머리를 으스러뜨리고 목을 비틀었다. 그리고 멜란드를 향해 낮게 추궁한다.
“왜 그래! 그랑츄가 안 나와?”
“아니…… 그게 요새 버릇이 들어서…….”
멜란드는 불꽃에 닿아 털을 태우며 오그라드는 뿔비비의 팔뚝을 아파하면서 자신의 실수에 이를 악무는 표정으로 대꾸하고 있었다. 제란드가 그 모습에 몇 마디 더 야단을 칠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서둘러. 시알라가 시간을 벌어줄 때,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겨야 해. 저 녀석들이 끝이 아닐 수 있다고.”
투란이 재촉했다.
페란드는 곧 제란드의 어깨를 툭 쳤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로 자신이 뭉개놓은 헬 임프를 향해 황금매의 문장을 사용하여 삼켜갔다. 제란드는 숨을 골랐고, 곧바로 멜란드를 향해 마력을 불어넣은 다음에 헬 임프를 삼키기 시작했다.
투란은 그런 둘의 뒤로 돌아가 멜란드 곁으로 붙었고, 낑낑거리는 멜란드에게 속삭였다.
“침착해. 나도 마력을 보태줄 테니까…… 침착하게 붉은 그랑츄를 마음에 품어. 그러면 되는 거야.”
“어, 미안.”
멜란드는 제란드가 부여해준 마력, 투란이 새로 넣어주는 마력을 느끼면서 황금매에 집중했고 곧 붉은 그랑츄의 형상을 드러냈다. 불꽃이 일그러지던 팔이 순식간에 팽팽하게 부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