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9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97)
찰랑이며 파문을 일으키는 검은 손아귀 속에서 꼬리가 불타올랐다.
그 감각은 곧바로 투란의 낯을 찌푸리게 했다.
‘뭐야, 이거 이상한데?’
원래의 생각은 움켜쥐고 ‘패러블랙 잉크’를 스며들게 한 다음, ‘천칭’의 정교한 제어를 통해서 마그마 로드의 검은 수정 껍질을 불어넣을 참이었다. 그렇게 해서 다크 레이디의 불길을 잡아먹고 꼬리를 끊으려 했다.
‘패러블랙 잉크’가 그대로 다크 레이디의 꼬리에 매달린 불길을 잡아먹고 있었다. 마치 피 속으로 섞여 들어갈 때처럼 자연스럽게 꼬리 안으로 스며들면서 그 그늘진 붉은 가죽살갗까지 번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뜨겁게 달아오른다!
투란은 바로 손에 힘을 줬고, 다크 레이디의 꼬리는 그 손아귀 속에서 녹는 것처럼 끊어져 버렸다. 예정했던 목적은 달성하기는 했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그 과정이 미묘하게 다르다!
‘이거 뜨겁기는 한데…… 생긴 것도 그렇기는 한데…… 불길이 맞나?’
투란의 마음속에 기묘한 의혹이 저절로 부풀고 있었다.
이에 대해 곧바로 드라고니아가 신음하듯 말한다.
―이런…… 연옥(煉獄)의 불꽃이라니!
‘뭐? 뭐야, 그게?’
엉겁결에 되묻는 생각을 떠올리면서도 투란은 바쁘게 움직였다.
시알라가 아직 목에 감긴 꼬리를 풀어내는 것은 한 손으로 도우면서, 다크 레이디가 괴성을 지르며 눈동자를 시커먼 구멍처럼 함몰시키는 꼴로 으르렁거리는 쪽을 향해 투란이 다른 한 손을 방패처럼 내밀었다.
다크 레이디는 아무래도 자신의 꼬리를 녹여 끊어버린 손에 대해 알아차린 듯이 재빠르게 투란의 손에서 멀어졌다. 그 주변으로 헬 임프가 떼로 몰려들면서 투란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꼴을 보였다.
그러면서 투란은 문득 헬 임프를 봤을 때 드라고니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연옥의 특성을 지닌 불꽃인가 뭔가 하는 그 얘기야?’
그때와는 조금 다른 말투가 분명했다.
그때는 그냥 그런 특성이 있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드라고니아가 확실하게 예상 밖의 상황이라고 놀라고 있었으니까.
―특성을 지닌 게 아니라, 연옥의 불꽃을 이미 품고 있다는 말이다.
‘헷갈리게 하지 마! 무슨 차이가 있는 건데?’
투란이 볼멘소리를 마음 깊이 내질렀고…….
―헬 임프의 불꽃은 닮은 것이라서 비슷한 성질을 지녔을 뿐이지만, 저 다크 레이디의 몸 안에는 진짜 연옥의 불꽃이 맴돌고 있다고!
‘흠?’
뭔가 알 듯 말 듯한 느낌이 투란의 가슴을 간지럽혔다.
하지만 그런 느낌을 더듬으면서도 투란은 먼저 시알라에게 묻는데…….
“시알라, 괜찮…….”
“저년! 내가 잡아먹을 거야!”
걸걸하고 굵직한 음성으로 포효하는 대답이 말허리를 끊으며 튀어나오잖는가!
“어? 어…….”
이번에는 투란의 입에서 소리가 나왔다.
아까 드라고니아에게 소리 없이 했던 것처럼, 엉겁결에…….
몬스터의 본능에 취해서 나온 소리 같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괜찮은 생각이기도 했다. 몬스터 로드가 자신을 위협한 몬스터를 잡아 삼킨 다음에 어찌하든, 결국 이 세상에서 없앤다는 것이니까. 단지 이게 시알라의 본심인지, 아니면 그랑츄의 맹렬한 투쟁심의 근원…… 파이로-칸이 되고자 하는 본능 때문인지가 애매할 뿐이다!
누가 곁에서 이런 의혹을 품든 말든, 시알라는 그랑츄의 목젖을 울리는 소리를 토해낸 다음으로 풀어낸 꼬리를 내팽개치려 했다. 하지만 투란이 재빠르게 그 떨어지는 꼬리를 팔뚝에 감았고, 다크 레이디를 향해 치켜 올려 보였다.
한껏 약을 올리는 웃음과 함께!
다크 레이디는 투란을 노려봤고, 시알라를 흘겨보더니 자신이 손톱으로 파내서 절단한 둠 고그의 머리를 들어 올리더니…… 핥았다.
절단면에서 뚝뚝 떨어지는 둠 고그의 피가 불붙은 기름처럼 보였지만 다크 레이디의 퍼런빛이 진하게 맴도는 혀는 전혀 뜨거움을 느끼지도, 불타오르지도 않으며 날름거릴 뿐이었다.
그 주변에서 다크 레이디에게 칭얼대는 애들처럼 달라붙기도 하고 맴돌기도 하는 헬 임프 떼의 모습은 어딘가 기묘해 보였고,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투란은 그 광경을 노려보면서도 주변을 냉정하게 감지했고, 여전히 괴성을 머금은 둠 고그 몇 마리가 시알라를 향해…… 다크 레이디를 향해 쿵쿵거리며 뛰려는 것을 파악했다. 한데 아까처럼 막무가내로 불길과 함께 가속하는 대신, 둠 고그들도 이제는 상황을 가늠하듯이 조심스럽게 맴도는 시늉을 하는 중이었다.
투란은 더 넓게 이 상황을 파악하려 했고, 저쪽에서 멜란드가 움찔거리면서 페란드와 제란드를 감싼 ‘소일 헛’의 상태를 살피다가 이쪽을 보며 뛰어들까 말까를 고민하는 모습을 알아차렸다. 멜란드 쪽 주변에서 기죽은 채였던 헬 임프 떼는 어느새 촐랑거리면서 날갯짓하거나 잰걸음으로 뛰어 다크 레이디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대체 얘네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거야?’
투란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의문이었다.
분명히 헬 임프는 처음 둠 고그를 보던 것처럼 겁먹은 시늉을 하면서 바라보더니, 이제는 마치 다크 레이디가 자기네 우두머리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쾅!
시알라가 발을 세게 구르면서 그랑츄의 괴성을 질렀다.
헬 임프 떼가 바르르 떨면서 바로 다크 레이디의 뒤로 숨으려 했다. 금세 자기네끼리 엉키며 자빠지고 구르고 난리를 치는 꼴이 되었다. 다크 레이디는 불꽃의 날개를 펼쳤고, 그런 헬 임프 떼의 난리통에서 멀어지려는 듯이 치솟았다. 그리 높지 않았지만 그 발아래 헬 임프 떼가 와글거리는 풍경을 내려다보는 자세는 확실히 잡고 있었다. 여전히 둠 고그의 목을 핥으면서…….
그 꼴을 향해 시알라가 내달리려 할 때, 투란이 재빨리 그 어깨를 꽉 잡았다.
“잠깐!”
시알라는 반사적으로 뿌리치려 하다가 투란의 손에서 흘러들어오는 순수한 마력에 움찔하며 멈췄다. 그 마력은 시알라의 눈동자에 번들거리며 맴돌던 포악한 낌새를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그러나 이렇게 투란이 시알라를 잡는 사이, 둠 고그들은 움직였다.
바로 돌바닥을 박차고, 높이 뚫린 구멍 아래 훤한 풍경 속에 둥실거리는 다크 레이디를 향해 둠 고그 세 마리가 뛰어올랐다. 팔과 다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이 마치 그 몸을 받쳐주는 듯한 광경이었고, 그 속도는 강궁(强弓)에서 쏘아진 화살보다 빠른 듯했다.
그리고 두 마리 둠 고그는 투란과 시알라를 향해 그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시알라가 이를 빠득거리면서 자신을 향해 내질러오는 주먹에 머리를 갖다댔고, 투란은 왜 그런지 금세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와, 생각보다 빠른데!’
손을 들어 막고 어쩌고 할 여지가 없었다.
아예 같은 속도로 가속하든가 미리 손을 내밀고 있지 않는다면, 둠 고그의 가속된 주먹질은 그대로 맞아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시알라처럼 작정하고 고개를 살짝 돌려서 거기에 머리로 들이박는 것이 제대로 된 반격이 맞다!
멀리서 보던 것과는 꽤 다른 그 속도는 투란의 예상 범위 밖이었고, 투란이 할 수 있는 것은 보다 빠르게 형상을 변화시켜 맞서는 것뿐인데…….
퍼억!
시알라의 머리에서, 투란의 목덜미에서 거의 동시에 우렁찬 소리가 터졌다.
―왜 맞고 있는 거야!
드라고니아가 황당하다는 듯이 외쳤다.
‘음, 그러네?’
문득 투란은 자신이 지닌 붉은 늑대의 속도라면 그럭저럭 이 주먹을 피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할 수 있었다. 미리 대비했다면 확실히 피했을 텐데…….
―카프리곤의 반사속도는 그보다 더 빠르다고!
드라고니아는 투란에게 어이없어하면서 짚고 있었다.
‘응? 아, 그건 비밀.’
살짝 키득거리는 표정을 심상 속에 집어넣으면서 투란은 목덜미를 때린 둠 고그의 팔뚝을 움켜쥔 손에 힘을 넣었다. 피하거나 막지는 못했지만 꽂힌 다음에 계속 밀어붙이려는 둠 고그의 팔뚝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비밀?
‘내 문장의 비밀처럼, 몬스터 몇 가지는 시알라네한테 보여주지 않을 거라고. 잉크처럼 아예 감추고 쓰든가 말이지!’
의아해하는 드라고니아에게 대답하면서, 투란은 붉은 그랑츄와 잿빛바위 그랑츄가 안팎으로 섞인 손아귀에 힘을 줬다. 둠 고그의 팔뚝에 그랑츄의 손이 파고들었고, 둠 고그는 그제야 주먹을 펼치며 손을 빼려 들었다.
콰직!
투란은 곁에서 나는 뼈가 뽑히고 부러지는 소리에 움찔했다.
둠 고그의 팔을 잡고 힘을 겨루려 한 잠깐 사이에 시알라가 자기를 때린 둠 고그의 머리통을 잡아 뽑은 것이다. 이번에는 그 어깨를 올라타고 밟아 부숴 버리는 듯한 모습으로!
‘엄청나게 빠르네!’
그 속도가 빠르다기보다는 그 순간에 시알라가 둠 고그를 올라타고 가차 없이 머리를 뽑아낸 판단에 투란은 감탄했다. 그리고 머뭇거림 따위는 전혀 없는 시알라가 껑충 뛰면서 투란이 팔뚝을 잡은 둠 고그 어깨를 밟더니, 그 입안에 굵은 손가락을 밀어넣고 강제로 여는 듯하다가…… 그대로 머리를 찢어냈다.
머리를 목에서 뽑아내는 광경도 상당했지만, 그대로 입을 위아래로 턱과 분리하듯이 찢어내서 머리를 통으로 부숴 내는 상황은 투란을 조금 멍하게 했다.
시알라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고, 뚝뚝 불덩이를 품은 듯한 기름 같은 피를 흘리는 둠 고그의 찢어진 머리를 내던지고 있었다. 다크 레이디를 향해…….
불길의 날개를 펄럭이던 다크 레이디의 발아래에는 둠 고그 세 마리가 나가떨어지면서 짓이겨 놓은 듯한 헬 임프들이 퍼덕대는 중이었다. 기세 좋게 쏘아진 화살처럼 뛰어들었지만, 둠 고그 세 마리가 아주 심하게 쳐맞고 나뒹군 듯했다.
투란은 재빠르게 세 마리 둠 고그의 몸에 새겨진 흔적을 살폈고, 조금 전에 어렴풋이 감지했던 상황을 되짚어 봤다.
‘꼬리였지? 갈라진 거였나, 아니면 엄청 빠른 거였나?’
세 마리 둠 고그는 거의 동시에 다크 레이디의 꼬리에 쳐맞았다.
―갈라지지 않았다. 그냥 꼬리로 팬 거야. 아주 빠르게.
드라고니아도 조금 전 투란이 감지한 것을 잠깐 되새긴 것처럼 답했다.
지금 다크 레이디의 꼬리는 찰랑거리며 흔들렸고, 시알라가 던진 찢어진 머리통을 낚아채서 그 손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두 손에 하나씩, 둠 고그의 머리통을 든 채로 다크 레이디는 혀를 날름거렸다.
손톱자국이 가득한 목의 흔적을 담은 머리통, 입에서부터 찢겨 너덜거리는 머리통이 마치 양손에 든 고기라는 듯…… 거기에 꿀과 양념이 잔뜩 되어 있다는 것처럼 핥은 동작에는 기묘한 여유가 넘쳐나고 있었다.
투란은 주변을 흘깃했고, 아직 멀쩡한 둠 고그 두엇이 저편에서 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더 덤벼봐야 계속 머리가 잘려 쓰러진다는 것을 깨달은 듯, 남은 둠 고그는 이곳에서 벗어나는 모습이었다.
시알라는 밟고 있던 둠 고그의 몸통에서 껑충 뛰어내리며 다크 레이디를 향해 크앙대는 소리를 지르며 포효하는 중이었다.
‘어째 쟤네들이 더 생각 있어 보이냐.’
투란의 생각은 시알라와 둠 고그를 비교했고, 스스로 생각해도 많이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니, 이번에는 제대로 생각하고 저러는 것 같은데?
드라고니아가 시알라의 상태를 관측하면서 하는 말이었다.
투란도 다시 시알라를 제대로 봤고, 드라고니아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조금 전처럼 과격한 시늉을 하고는 있지만, 시알라의 태도 속에는 그랑츄의 아무 생각 없는 과격함이 어느새 빠져나간 채였다. 눈빛도 아까처럼 완전히 몬스터의 광기가 아닌, 차분한 생각을 품은 듯했고…….
‘다크 레이디를 겁주려는 건가.’
문득 그 의도를 생각하면서 투란의 손이 다시 시알라의 어깨를 짚었다.
곧 낮고 빠른 시알라의 말이 투란에게 전해온다.
“됐어. 이제 괜찮아. 머리가 맑아졌어.”
“정말?”
슬쩍 놀리는 듯, 투란이 되물었다.
시알라가 고개를 꺾는 모습으로 그랑츄의 입가에 사람의 미묘한 웃음을 담으면서 대답한다.
“정말. 저것도 눈치챘나 보네. 아까보다 날갯짓이 느려. 덤비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건가…….”
“그럼, 덤벼줘야지!”
투란은 바로 시알라의 한쪽 손…… 그랑츄의 두툼한 손아귀를 두 손으로 잡은 다음에 휘둘렀다. 시알라가 그대로 다크 레이디를 향해 던져지는 광경이었다.
“으…… 어?”
뒤늦은 시알라의 고함이 괴상하게 울렸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낸 것과 다르게 허공에서 멋대로 데굴거리며 굴러가는 모습으로 날아간 시알라는 제대로 다크 레이디를 향해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손보다 발이 먼저 닿으니, 일단 걷어찬다는 듯!
히이아아앗!
다크 레이디가 곧장 괴성을 질렀고, 내지르는 시알라의 두툼한 발을 향해 자신의 다리를 휘돌리듯이 후려갈기고 있었다.
이 광경은 투란을 새삼 감탄하게 했다.
‘와, 저거…… 보통 아니네?’
―그래, 분명히 연옥의 세례(洗禮)를 받은 마물(魔物)이로군.
쩌억!
격돌의 음향 속에서 드라고니아의 침울한 소리가 투란의 마음을 울렸다.
새삼 투란의 의혹을 짙게 하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