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9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299)
“세이프티 하우스.”
투란은 낮고 빠르게, 윌 라이트의 마력을 퍼뜨리며 주문을 외웠다.
‘소일 헛’을 중심으로 삼아, 보다 큰 범위를 아우르는 벽이 치솟았다. 높이 치솟은 벽이 기울어졌고, 맞닿아 맺어지며 천장이 되었다. 벽의 아래에서 불끈거리는 돌이 가지런하게 정리되면서 실내의 포석으로 변해가며 벽 안쪽을 채웠다.
마법이 일으키는 변화 속에서 ‘소일 헛’은 그 안으로 스며오는 가벼운 영향력을 떨쳐냈고, 제란드는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 집중한 탓에 이러한 상황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발아래가 변하고, 머리 위에 새롭게 천장이 씌워지면서…… 얼핏 보려고 한다면 자신들을 감금하는 돌벽으로 여길 수도 있는 것이 단단하게 자리 잡는 광경을 보는 시알라, 페란드와 멜란드는 제란드처럼 모르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가구도 없고, 침대라든가 최소한 사람이 사는 듯한 실내의 풍경 따위는 전혀 없는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마법의 감옥이라니! 게다가 아주 잘 틀어막아 준 덕분에 순식간에 컴컴해졌다!
안전하다고 하지만 왠지 숨 막히는 풍경이 아닌가!
“에, 투란?”
멜란드가 뭐라 말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표정으로 일단 불렀다.
투란은 여기에 바로 대답처럼 새로운 주문을 외운다.
“메자이 토치(Magi Torch).”
벽이 맞물린 천장의 매듭지점에 불꽃이 피어났다.
횃불처럼 작은 꼭지에 불덩이가 달린 꼴이었는데, 위에 매달린 채로 아래로는 불티 하나 휘날리지 않는 것이 확실하게 마법이란 것을 과시하는 모양이었다.
“넉넉하게 볼 수 있겠지?”
절대로 밝다는 소리는 하지 않을 낌새로 투란이 멋쩍은 표정과 함께 말했다.
멜란드는 이 소리가 자신이 꺼낸 말을 ‘어둡잖아.’라고 해석한 결과란 것을 깨달았고, 더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페란드는 아예 표정이 어두워진 채로 ‘이게 뭐야.’ 하는 듯한데, 이게 그냥 이 실내의 어둠과 마법의 불빛이 엮인 탓인지 그냥 기분이 그런지는 알 수가 없었다.
시알라는 잠깐 주변을 둘러보다가 지친 모습으로 그냥 앉았다. 아무래도 뭔 세이프티 하우스가 이리 삭막하냐고 따지기보다는 쉬는 것이 먼저라는 듯…….
투란이 그런 시알라를 향해 바로 말한다.
“시알라, 작은 놈 하나라도 에센스를 삼켜둬. 큰 놈은 조금 쉬었다 하더라도. 일단 삼키고 완전히 아래로 가라앉히더라도, 삼켜두면 회복이 빨라질 테니까. 그리고 쉴 수 있는 만큼 빨리 쉬어야 해.”
시알라의 고개가 바로 끄덕여졌다.
몬스터 로드로서 날뛴 시간만큼 휴식이 필요한 몸 상태, 그러나 그냥 쉬어서는 정말 며칠을 누워 있기만 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럴 때 몬스터 엠블럼에 새로운 몬스터 에센스를 섭취하게 해주면, 그만큼 마력의 회복이 빨라지고……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은 고스란히 체력과 회복을 돕는다.
투란은 현재 시알라의 상태에 적절한 대책을 권하고 있는 셈이었다.
페란드가 바로 시알라의 곁으로 가서, 헬 임프의 사체(死體) 하나를 옮겨주면서 거리를 두고 마주 앉았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 경우에는 바로 앞에서 가드의 역할을 할 모습이었다.
멜란드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제란드를 바라봤다.
‘소일 헛’은 투란이 손을 내밀어 가볍게 문지르는 순간에 사라졌고, 제란드의 몸에서 힘줄처럼 돋아났다가 꺼졌다가 하는 불꽃 줄기는 아직 완전히 진정되는 형태로는 보이지 않았다.
투란은 그런 제란드를 찬찬히 바라보다가 멜란드에게 말한다.
“멜란드, 저기 큰 놈 하나 삼켜둬. 제란드는 내가 보고 있을 테니까.”
“응? 아, 큰 놈…….”
멜란드는 새삼 시알라가 난투를 벌이던 상대, 둠 고그를 바라보면서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과연 이놈을 삼켜야 하는 건지 그냥 넘길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듯한 그 표정에 투란이 다시 권한다.
“섞지 말고, 작은 놈이랑 큰 놈이랑 따로 둔다고 생각하고 삼켜놓으라고. 아까 땅울림을 일으킨 것이 뭔지 모르지만……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써서 상대해야 할지도 몰라. 그러면…… 뭐든 하나라도 더 있는 편이 좋으니까. 음, 작은 놈의 에센스도 부족하다 느껴지면 더 삼켜두고. 잔뜩 잡아놨잖아.”
“알았어.”
멜란드는 투란의 말에 대답하고는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투란은 멜란드가 페란드 곁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제란드에게 눈길을 돌리며 생각했다.
‘뭐 알아낸 것 있어?’
드라고니아가 바로 이 소리 없는 물음에 답한다.
―땅울림 너머로 잡히는 소리를 분석해봤다. 그건 그냥 꽥꽥대던 소리가 아니라, 확실하게 형태를 갖춘 언어였다.
‘언어? 말이라고? 그게 누가 한 말이라고?’
―그래.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요약하면 이리 내려오란 뜻이었다. 뭔지 모르지만 이곳의 몬스터, 헬 임프나 둠 고그, 다크 레이디 중에 뭔가를 지배하고 명령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뜻이지.
‘음…… 둠 고그는 먼저 튀었잖아? 헬 임프는 다크 레이디를 따라갔고…… 그러면 다크 레이디 쪽이 명령을 듣는 거라고 봐야겠네.’
―그게 가장 타당한 결론이겠지. 하지만 내가 감지한 바로는 둠 고그 역시 그 땅울림과 함께 행동을 바꿨다. 제멋대로 흩어지던 행동방향이 모두 아래 깊은 곳을 향했어. 다크 레이디 또한 헬 임프 떼를 이끌고 아래쪽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 명령의 영향력은 여기서 만난 몬스터 전체에 미친다고 봐야겠지.
‘몬스터를 부리는 놈이라…… 짐작 가는 건?’
―고대 악마종. 연옥의 문을 열고 닫으며, 헬 임프를 소환해서 둠 고그나 다크 레이디로 성장변이시키는 일은 고대의 악마종이 꽤 흔하게 저지르는 짓이었다. 지금 시대에는 아주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 정도 추측을 가능하게 하지.
‘헤에…… 금색의 마도사도 고대 악마종의 비술인가 뭔가를 쓰더니, 여기 아예 그런 놈이 있을 수 있다는 거야?’
―그렇지. 그렇게 되는 셈이군.
드라고니아의 대답은 어딘가 씁쓸했다.
마치 옛날에 훌훌 털어버렸을 일이 끈질기게 달라붙고 있다는 듯한 씁쓸함이었고, 투란은 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바로 훌훌 털어낸다는 듯이 경쾌한 말투를 떠올리면서 투란이 소리 없이 말한다.
‘그렇다면 진짜 어떤 놈인지 빨리 찾아내서 신속하게 정리해야겠군.’
―응? 뭐라고?
드라고니아의 이 대꾸는 투란에게 조금 황당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왜? 신속하게, 빨리 정리하자는데 뭐 잘못되었어?’
―넉넉히 지켜보면서 끈질기게 관찰하자고 할 줄 알았지. 너, 이제까지 뭘 잡을 때 그러는 편이었잖아.
투란은 드라고니의 이 말에 쓴웃음을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자제했다. 그러면서 투란이 바로 주변을 둘러보니…….
제란드는 여전히 머리카락, 어깨 주변으로 붉게 부풀어 오르며 달아오르는 힘줄, 핏줄의 형상을 키웠다 꺼뜨렸다 하면서 집중하느라 투란의 기척이 어떻든 거의 상관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저쪽에서 페란드는 시알라와 멜란드가 몬스터 에센스를 삼키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는 중이고…….
모두 투란이 이 자리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뭔가랑 대화하다가 쓴웃음을 지었다고 눈치채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한편으로는 투란이 이곳에 대해 눈치챈 부분에 대해서도 아직 느끼지 못하는 듯도 했으니…….
‘여기서는 그럴 여유가 없다고 해야겠지.’
사뭇 신중하고 진지한 말이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의 심정을 고스란히 전했다.
―여유?
짧은 한마디의 의아함에 투란은 곧 입술을 살짝 핥으며 답한다.
‘뭐야, 너도 아직 못 느꼈어? 여기 먹을 것 없어.’
―먹을 것?
‘야, 우리는 먹어야 한다고! 너 자기 몸이 없다고 그렇게 모르는 척하는 건 아니지!’
―아니, 그러니까 뭘 근거로 그러는 거냐고. 여기 먹을 것이 없다니, 시체지네를 그리 잘 잡아먹으면서 뭔 소리를 하는 거냐?
드라고니아의 대꾸는 투란을 잠시 멍하게 했다.
‘이 자식, 너 진짜 눈치 못 챘어?’
―이 암벽 속에 시체지네가 없는 것은 분명하군. 하지만 그렇다 해도 헬 임프와 다크 레이디가 서식하고 있다. 저것들은 먹을 것 없이는…….
새삼 윌 라이트 속에서 주변을 점검한 듯, 드라고니아는 침착하게 말하고 있었다. 때문에 투란이 바로 짜증 내는 소리를 내놓아야 했으니…….
‘아, 진짜! 저것들 서로 잡아먹고 있다고!’
―뭐?
드라고니아가 짧게 놀란 소리를 흘렸다.
투란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네 남매를 쭉 둘러보며 깊고 빠르게 자신이 본 상황을 되짚어가며 드라고니아에게 설명해야 했다. 여전히 소리는 없지만, 대신 투란이 시알라의 난투에 끼어들면서 관찰한 바가 생생하게 드라고니아에게 말과 함께 전해진다.
‘둠 고그 머리통을 다크 레이디가 핥았잖아. 그게 겁주려는 게 아니라고. 분명히 혀로 깊이 파먹는 거였어. 그리고 둠 고그도 입에서 불을 푹푹 내쉬기는 했지만, 역시 다크 레이디나 헬 임프, 어느 쪽이든 잡아먹을 궁리였다고. 시알라에게도 그런 낌새로 덤벼들고 있었고…… 시알라가 그 입에다 손을 밀어넣을 때 잡아 뽑기보다는 깨물고 으깨서 먹으려고 했어. 네 말처럼 여기는 시체지네가 없지만, 있어도 저 녀석들의 먹이가 되지는 않을 거야. 땅울림을 일으킨 놈, 뭔지 모르지만 그게 몬스터들에게 활동할 영역만 지정해주고, 다른 부분은 알아서 하게 놔둔 거라고.’
―그렇다면, 투란 어쩔 거냐?
‘앙? 말했잖아. 빨리 찾아내서 정리해야 해. 헬 임프가 다크 레이디가 되고 둠 고그가 되는 거라면, 녀석이 명령하고 지배하는 상황에서 그러는 거라면…… 더 많은 둠 고그, 다크 레이디가 생겨나는 중이라고 봐야 하니까. 일단 몬스터 증식의 원인을 제거하고…… 다음 일은 그다음에 생각해야지.’
소리 없이 떠들던 투란은 문득 샤오콴 마을에서 몬스터 격퇴를 주도하던 오라클 워리어의 말투를 따라 하며 이야기를 매듭지었다.
드라고니아는 이를 차분히 들었고, 확실하게 납득한 듯이 묻는다.
―그러면, 남매가 몬스터 에센스를 흡수해서 연옥의 불꽃에 대한 저항력을 지니게 한 다음에 흩어져서 수색할 계획이었냐? 그건 꽤 위험하잖을까? 너 말고 저 넷에게 말이야…….
‘응? 무슨 이야기야? 찾는 거는 나 혼자 할 건데? 지금 당장 시작할 거야.’
―뭐? 뭘 어쩌……?
투란이 너무 당당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한 말에 드라고니아가 어리둥절한 소리를 내다가 바로 멈췄다. 투란이 말과 함께 곧장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능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때문이었다.
―잉크!
바닥을 깔고 앉은 투란의 엉덩이, 다리 아래쪽 그림자가 짙어졌고 찰랑거리면서 세이프티 하우스의 포석으로 스며들며 흘러내려 가고 있었다. 살갗 사이로 오돌토돌하니 튀어나온 ‘악마의 심장’이 꾸민 작디작은 돌기(突起)로부터 ‘패러블랙 잉크’가 흘러내리는 광경이었다.
그 시커먼 잉크 속에는 ‘악마의 심장’ 줄기 가닥이 씨앗처럼 섞여 있었고, ‘천칭’의 마력을 품은 채로 투란의 지각(知覺)이 되고 있었다. 저 잉크가 흘러가고 그 속에 담긴 ‘악마의 심장’ 줄기가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보고 들으며…… 시각(視覺)과 청각(聽覺) 이외의 후각(嗅覺), 미각(味覺), 촉각(觸覺)마저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라고니아에게 전해졌다.
―과연…… 이런 수도 쓸 수가 있군. 잠깐, 투란? 잉크에 윌 라이트까지 붙여놨나?
‘의지가 닿으면 되는 마법이라며? 너랑 나랑 느끼는 바가 다르니까, 윌 라이트가 함께 스며가야 내가 미처 모르는 것을 네가 느낄 수도 있잖아. 빨리 찾아야 한다고, 빨리.’
투란은 마치 뒤에 처진 꼴로 구경만 하려는 드라고니아를 독촉하고 나무라는 것처럼 떠들고 있었다. 이는 곧 드라고니아가 쓴웃음 짓는 듯한 기척을 흘리게 했고…….
―그런 거라면…… 프로브 스펠을 가르쳐주마. 몬스터 로드의 지각능력과 별개로, 독립적인 마법탐지의 능력으로 쓸 만할 거야.
‘프로브?’
투란이 갸웃하는 순간, 뇌리 깊이 마법의 주문이 스며왔다.
단순히 마력을 발휘하는 주문의 골자만이 아니었다.
그 핵심을 구성하기까지의 짧은 사연, 드라코눔의 프로브 스펠이 몇 차례에 걸쳐 개정된 이야기도 함께 투란의 뇌리에 새겨지고 있었다. 이 세계를 탐색하기 위해서, 다른 세계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사용되던 탐지 마법을 근원으로 삼는, 낯선 곳에 불려왔던 드라고니아, 먼 옛날 드라코눔의 선조들이 지닌 지혜의 눈과 귀가 어떻게 이 프로브 스펠을 창안해냈는가를.
‘와, 대단하다!’
마법 속에 담긴 드라고니아의 긍지를 느끼면서 투란은 어쩔 수 없이 칭찬해야 했고, 바로 활용해야 했다. 곧, 흘러내린 잉크와 함께 넘어갔던 윌 라이트의 조각 속에서 프로브 스펠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란은 주변의 암벽을 투명하게 꿰뚫어 보는 듯한, 자신과 세이프티 하우스의 모든 것을 한자리에 놓고 보고 듣는 듯한 상황을 깨달았다. 이는 드라고니아가 어떻게 흩어져 간 둠 고그의 움직임을 관찰했는가를 알게 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저기……려나?’
암벽의 최하층을 내려다보듯이 엿보면서 투란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