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29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00)
환한 빛으로 그려진 듯한 바위, 그 너머가 그대로 보이는 듯한 투명한 풍경, 바위의 틈새를 타고 흐르는 검은 잉크, 프로브가 비춰주는 이러한 광경은 투란에게 낯설었고 이상했다.
‘가까운 거야, 먼 거야?’
흘러가는 시커먼 잉크에 담긴 윌 라이트를 기반으로 프로브는 아주 빠르게, 소리 없이 울며 바위든 뭐든 상관없이 지나가는 새처럼 암벽 속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둘이 아닌 잉크가 흘러가는 제각각의 틈새 가닥에서 잔뜩 흘러간 프로브 덕분에 순식간에 저 아래의 까마득하고 일그러져 보이는 곳까지 보이기는 했는데, 투란은 그 낯선 느낌 덕분에 거리를 알 수 없었고, 허공에 떠 있는 것인지 단단히 엉덩이를 딛고 앉은 것인지도 잠시 헷갈렸다.
―진정해라. 프로브를 처음 쓰면서 그렇게 왕창 풀어놓은 것 때문이니까. 원래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감각 범위 내에서 쓰일 마법이라고. 이렇게 왕창 풀어놓는 게 아니라…….
‘아.’
드라고니아의 설명은 문득 투란에게 다시 프로브 스펠과 함께 전해졌던 사연들을 되새기게 했고, 알아차리게 했다. 프로브를 사용하는 자의 가시역(可視域)이니, 가청역(可聽域)이니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겨우 깨달은 셈이었다.
드라코눔의 마법, 프로브는 이 마법의 사용자가 보고 들을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일차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은폐, 엄폐된 사물을 탐지하는 것은 그다음의 활동이었고, 어떤 경우이든 사용자가 보고 듣는…… 원래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어떤 것이라도, 사용자의 감각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내로 탐지된 정보를 치환(置換)시켜주는 방식으로 전하는 마법이었다.
그런 프로브를 잉크와 줄기, 몬스터의 조각을 이용해서 방출했으니…….
투란이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범위의 정보가 아니라, 몬스터 로드로서 발휘할 수 있는 범위까지 확장된 감각으로 주변 암벽의 정보를 고스란히 전해온 셈이었다. 만약 잉크나 줄기가 아닌 다른 몬스터의 형상까지 이용했다면 프로브는 지금보다 훨씬 현란하고 복잡한 정보를 전해왔을 것이다.
‘이거 조심해서 써야겠네. 이상한 것까지 보여주는 거…… 아닌가?’
다시 프로브 스펠의 구성과정을 더듬다가 투란은 문득 알았다.
프로브는 사용자의 감각을 훼손시킬 수 있는 정보를 미리 차단한다!
―내가 괜히 주문 이외의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알려줬을까.
의기양양해하는 드라고니아의 소리가 투란에게 납득이 되어서 쓴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 알겠어. 그런데…… 대체 저 아래, 저건 왜 저렇지?’
투란은 프로브를 통해 파악한 암벽의 하부, 처음 암벽을 오르기 시작한 지표(地表)보다도 더 깊고 까마득한 아래편의 일그러진 광경을 의아하게 여겼다. 그 광경은 프로브의 탐지를 거부하는 듯했고, 망가뜨리는 듯했다.
단단하고 두꺼운 암벽조차도 투명한 덩어리처럼 보이게 하는 탐지인데!
―거기 있는 뭔가가 네이처 포스를 왜곡시키고 있기 때문이지. 바로 저기에 처치해야 할 녀석이 있다는 뜻이다.
‘처치? 흠…… 여기는 춤추는 산맥인데…… 게다가 꽤 깊은 곳이고…… 드라코눔의 너네도 몇 번 수색하면서 그냥 넘어간 곳이잖아? 굳이 처치까지는…….’
투란이 맹한 시늉을 하면서 뻔뻔한 말투로 드라고니아에게 생각을 전했다.
그리고 이는 바로 드라고니아가 격렬한 기분을 뿜어내게 했으니…….
―뭘 그냥 넘어가! 저런 녀석을 이 세상에 두면 안 된다고! 여기서 둠 고그와 다크 레이디를 잔뜩 키워내고 헬 임프를 와글거리게 하도록 두면 안 돼!
잠깐 귀가 멍한 시늉을 하면서 투란은 눈을 깜박거리며 제란드를 살피고, 시알라와 멜란드, 페란드를 둘러봤다. 그리고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소리 없이 드라고니아에게 묻는다.
‘나한테 저걸 잡게 하려고 프로브를 가르쳐준 거지?’
―무, 무슨 소리냐. 네가 몬스터를 사용해서 탐지하는 것을 보고 좀 돕겠다고 한 것뿐이잖아!
‘아, 그래? 그럼, 굳이 저 뒤틀려 보이는 곳에 가지 않고 그냥 빨리 이 암벽을 지나가도…….’
―처치해! 연옥의 불꽃을 이 세상에 풀어놓는 녀석을 그냥 두겠다니! 그건 몬스터 로드가 당연히 할 일이라고옷!
‘그러니까, 그거 부추기려고 프로브 가르쳐준 거지?’
다시 묻는 투란의 말에 드라고니아가 침묵했다.
계속 시치미를 떼기가 애매한 듯…….
그 사이에 투란은 고요하게 웃었고, 다시 네 남매의 상태를 엿봤다.
한창 몬스터를 삼키고, 서로를 지켜주는 모습들…….
그리고 안쪽 풍경이 조금 삭막한 세이프티 하우스의 주변에는 몬스터라든가 다른 위협은 없는 듯했다.
‘내 지금 마력, 아케인 포스로 여기에 한 번 더 방어 마법을 걸 수 있지?’
돌연 꺼낸 소리 없는 말에서 어떤 낌새를 느낀 듯, 드라고니아가 바로 대답한다.
―걸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네가 풀기 전에는 저 남매 넷이 감금된 꼴이 될 수도 있는데?
‘시간제한이 있는 방어 마법 있지 않나?’
―있다.
‘그걸로 한 닷새 유지되게 해줘. 풀릴 때는 위로 길을 열게 수작 좀 부려놓고. 할 수 있지?’
―할 수 있다.
‘좋아, 그럼…….’
투란은 숨을 세게 들이쉬었고,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바로 앞에서 거의 진정한 듯한 제란드가 살짝 눈을 떴고, 시알라와 멜란드는 잠깐 멈춘 듯이 투란을 봤다. 페란드는 갑자기 투란이 내는 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이었다. 다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겼는데 미처 모르고 있는 것인가, 하는 듯한데…….
“조금 애매한 게 느껴져서, 아무래도 직접 가봐야 할 것 같아. 나 혼자. 여차하면 잽싸게 도망칠 테니까, 일단 여기서 정리하고 기다려줘. 혹시 며칠 걸린다 싶으면…… 먼저 출발해. 표식 따라갈 테니까, 음, 금색 칠한 매의 조각을 표식으로 남겨줘. 내가 지금 거는 방어 마법이 풀리면 바로 출발해야 해. 그 전에 돌아오도록 할 테니까.”
주섬주섬 한마디 한마디 생각나는 것처럼 늘어놓는 투란을 네 남매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바라봤고, 중간에 한마디씩 끼어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투란이 손짓하고 눈짓해서 막았고, 결국 아무 대꾸도 듣지 않은 채로 말을 맺고 있었다.
싱긋, 말문을 닫으면서 한 번 웃어 보인 다음…… 투란은 바로 움직였다.
먼저 앉은 자리가 푹 꺼졌고, 깊은 구멍으로 투란이 뚝 떨어지는 듯했다. 그다음 투란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구멍은 다시 닫히고, 벽이 가볍게 울면서 보다 큰 기척을 드러냈다.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일에 제란드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는 말한다.
“일단 시키는 대로 하자고. 급한 경우라면, 잽싸게 도망쳐 나올 때니까 그 경우에만 대비하면 되겠지. 페란드 형, 금색 매 조각은 형이 미리 하나 만들어두지. 지금 형만 손이 비니까.”
시알라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을 감았다. 일단 자신의 황금매를 통해 새로 얻은 몬스터 에센스를 진정시키고 쉬는 것이 우선이라는 듯한 태도였고, 이를 본 멜란드도 입을 꾹 다문 채로 따라 했다. 페란드는 한숨을 가볍게 내쉰 다음에 바닥에서 돌 하나를 파내서 조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오오오오―!”
바위 틈새로 뻥 뚫린 구멍을 타고 내려가면서, 위로는 바로 메워지는 광경을 보면서 투란은 일단 마음껏 소리 질렀다. 하지만 이 소리는 모두 사방이 막힌 구멍 속에서만 울릴 뿐이고…… 그 구멍은 마법으로 뚫리고 메워지면서 투란을 아래로 떨구는 데 집중할 뿐이다!
‘야, 이게 뭐야! 뭔 구멍이……!’
―마법이다, 투란. 마법이야.
‘내 마력!’
급속도로 윌 라이트에서 빠져나가는 거대한 마력의 흐름을 느끼면서 투란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마음의 비명과는 전혀 다른 색채였으니…….
“우히에에에―! 에헤헤헤헷!”
―기분 좋지?
드라고니아가 놀리는 말인지, 진심으로 즐기라 하는 소린지 모를 말을 해도 따질 수가 없다!
물론 투란은 그 와중에도 냉정하게 가늠하며 다시 물을 수 있기는 했다. ‘악마의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으니까!
‘내 마력! 이렇게 퍼 써도 되냐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건 너의 순수한 마력이 아니야. 파워 서클로부터 끌어낸 마력이다. 너를 매개로 삼아, 네이처포스―자연력(自然力)을 거스르고 일그러뜨리는 존재를 바로잡기 위해 끌어쓰는 거지.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이 정도면 드라코눔의 아칸이 열흘은 미쳐 날뛰면서 마법을 낭비할 수 있거든! 원한다면 지금 이 암벽 지역 전체에 이런 크기의 구멍으로 미로(迷路)를 깔 수도 있다!
‘야, 인마!’
투란은 끌어 쓴다고 해도, 결국 자신을 거쳐나가면서 자신만의 순수한 마력을 갈아버리는 듯한 거대한 흐름을 느끼면서 드라고니아에게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직접 이런 구멍을 뚫는 마법, 아주 이상하게 뚫고 메우는 이중 작업을 한 번에 해치우고 있는 괴팍스러운 느낌의 이 마법을 자신만의 마력으로 직접 사용할 경우에 비하면 아주 적은 마력이 소모될 뿐이지만…… 이렇게 갈려나가는 상태가 지속되면 정말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나 지쳐서 저 아래 녀석이랑…….’
―도착했다. 자세 잡고!
‘엥?’
투란은 반사적으로 두 다리를 엉거주춤하니 굽혔고…….
콰앙! 빠드득!
검게 물든 채로 일렁거리는 수정의 형상을 한 다리가 뒤틀리면서 금이 쩍쩍 갔다. 그 금 간 틈새로 붉은 줄기가 치솟으며 이글거리는 열기를 뿜어낸 것은 순식간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곧 투란은 프로브가 탐지하지 못한 뒤틀리고 일그러진 곳의 풍경을 보고 듣고,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투란이 그 풍경에 대한 기분,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차가우면서도 활활 타오르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의지가 전해져 온다.
―강하하면서 암벽 틈새에 흘리고 남겨놓은 잉크, 심장 줄기 속에 새겨진 윌 라이트가 계속 파워 서클…… 너의 골든 서클에서 마력을 끌어낼 거야. 그리고 만약의 경우에는 암벽 속에 통로를 뚫고 너를 바로 빼낼 수 있는 준비까지 갖춰놨다.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면…… 여기 있는 저놈을 광야의 미로로 암벽째로 날려버릴 준비가 끝날 때까지만 버텨.
‘너, 인마!’
보고 듣는 상황을 마음 한쪽으로 치워놓고, 투란은 일단 드라고니아가 갑작스럽게 불타오르며 뿜어내는 드라코눔 아칸의 자세와 패기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구멍 속에 미끄러지면서 가늘게 칠하듯이 남겨놓은 잉크, 줄기 가닥마저도 철저하게 이용해서 여기를 박살낼 궁리를 하다니!
―정신 차리고, 앞을 봐! 저 녀석이 바로…… 문지기다.
보이지도 않는, 몸도 없는 심상 속의 드라고니아랑 말다툼하고 있을 때가 아니기는 했다. 때문에 투란은 이 지경이 되도록 잠깐 마음을 놓은 자신을 살짝 탓하면서 자신이 보고 듣는 광경에 집중했다. 그런데…….
“문지기?”
어스름한 너머로 보이는 것은 문이었다.
붉게 그어진 듯, 노랗게 타오르는 듯한 무늬가 넓게 펼쳐진 암벽 하부의 광장(廣場) 곳곳에서 반짝이면서 어스름하고 흐릿한 풍경을 보여주는데, 저편의 높이 치솟은 듯한 벽의 낮은 부분에 두툼하니 달라붙은 듯이 보이는 것은 분명히 문이었다.
그 문 곁에는 아무도 없었고!
이 광장의 외벽, 광장 바로 바깥 부분에서는 둠 고그의 기척, 다크 레이디의 기척 사이로 헬 임프가 와글대는 분위기가 선명했다.
“문이잖아? 문뿐인데?”
투란은 시각을 강화하면서, 문 주변으로 거뭇하게 휘날리는 재가 광장 곳곳을 어스름하게 밝히는 붉고 노란 무늬 주변으로 스며드는 듯한 움직임까지 확인하고 다시 작게 말했다.
―일어선다.
‘응?’
투란의 중얼거림을 외면하듯, 뭔가 전혀 다른 것을 보는 것처럼 드라고니아가 말했고 그 순간에 문이 기울어졌다.
왼편으로 기우뚱, 오른편으로 기우뚱.
그리고 문의 양쪽 위, 아래가 꿈틀거리며 바위가 벽에서 쓰윽 떨어져 나오는 듯했다. 문이 박힌 커다란 바위가 꾸물거리며 돌아섰고…….
―이제 제대로 보이지? 봐라, 문을 지고 있는 놈. 문지기잖아.
‘너, 나 놀리는 거야?’
너무 어이가 없다 보니, 오히려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냉정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되물어야 했다.
문을 지고 있으니까 문지기라니!
말장난도 아니고, 대체 뭔가!
그리고 저 바위는 뭔데 등에 문을 박아놓고 있는가!
―데몬, 게이트 키퍼. 저 녀석은 저렇게 문을 등에 지고…… 뭐, 세심하게 말하자면 그 문을 중심으로 형성된 바위 데몬이지만, 저렇게 다니면서 전술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곳에 문을 연다. 그래서 게이트 키퍼, 흔한 말로 문지기라고 했지. 이 세상에 단 한 마리도 남겨놓지 않고 없앤 줄 알았는데…….
설명을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투란은 게이트 키퍼―문지기라는 데몬을 살폈다.
어스름한 광장에서 바위를 기반으로 등짝에 문을 새겨 넣은 모습, 하지만 그 가슴팍은 바위가 근육처럼 율동하며 뭉쳐진 꼴이었다. 길쭉하고 사람을 닮았지만 미간 한복판에서 솟아난 외뿔은 굽어진 형태로 노랗게 타오르는 광채를 뿜어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눈…… 기괴한 형태는 둘째 치고, 입에서 내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처럼 그 눈빛 또한 미약한 지성(知性)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데몬, 게이트 키퍼는 뭔가 청하지 않은 방문자, 투란에게 말하고 있었다.
과연 저것이 몬스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