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
이빨은 먼저 왼쪽 어깨 아래를 쑤셨고, 심장 쪽으로 그어졌다.
거의 40센티 가까이 길어진 이빨은 샤벨투스의 명성에 걸맞게 날카로워서 살갗은 물론이고 닿은 뼈까지 파고 갈라내듯이 투란의 몸과 악마의 심장을 베었다.
꾸물거리던 악마의 심장이 단번에 두 토막 났고, 투란은 이빨이 자신의 심장마저 긁는 것을 느끼며 ‘아픈가?’ 하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아픈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문장이 끊임없이 이어 주는 파문, 그 감각으로 닿고 긁고 뼈까지 파고드는 사나운 자신의 손길을 느꼈을 뿐이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심지어 의지를 발하는 자신마저 한쪽에 따로 있는 듯, 이상한 혼란 상태였다.
그래도 투란은 처음에 작정한 대로, 약간씩 뭔가 어긋나는 느낌은 있었지만 ‘의지’가 부여된 손길로 그것을 무마하듯이 움직였다.
토막 난 악마의 심장이 흔들거리며 꽂힌 이빨을 타고 내려온 손아귀에 잡혔고 거세게 당겨져 가슴 가운데로 붙었다. 넝쿨이 출렁이면서 들이켰던 피를 분무해 가며 저항하려 했지만, 남아 있는 모든 ‘의지’를 전부 끌어다 쓰는 투란의 손이 더 빠르고 강했다.
‘삼켜! 이제 삼켜!’
투란은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에 집중하며 ‘명령’했다.
몬스터 로드는 몸에 문장이 새겨지면 손발을 움직이듯 그 작용을 다룰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배가 고프면 입가에 침이 고이듯 문장은 몸과 마음의 일부가 되어 작용한다고 했다.
그래서 투란은 어쩐지 뭉그적거리며 느리게 반응하는 문장에 더욱 집중하면서 더욱 거칠게 ‘명령’을 내렸다. 손발에 힘을 주듯, 문장에 ‘삼킨다!’ 하는 의지를 전했다.
‘채워! 비었잖아! 어서 이걸로 가득 채워!’
보이드 엠블럼을 향해 진짜 몬스터 엠블럼이 되라고 외쳤다.
문장이 그 외침에 느리게 호응하면서, 투란의 귀는 소리를 잃었고 손가락 끝의 감각이 사라졌다. 퍼져 나갔던 파문이 문장에 집중되고 투란은 새로운 풍경을 느낄 수가 있었다.
눈으로 보는 것과 다른, 그가 빠져 있는 늪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커다란 양손 저울, 그 한쪽 손이라 할 접시 위에 투란 자신이 서 있고 큰 톱니바퀴를 사이에 둔 채로 길게 뻗은 저울의 팔 저편에 뭉클거리는 악마의 심장이 보였다.
한순간에 투란은 이 저울이 언젠가 본 연금술사의 천칭인 것을 알아차렸다.
중심축에 톱니를 채우고 팔 길이를 조절해서 양쪽 손인 접시의 중량을 배분하는, 아주 미세한 무게도 달 수 있다고 떠돌이 연금술사가 신나게 자랑하던 그 천칭이었다.
투란이 살아오면서 본 가장 정교한 천칭이기도 했다.
사람이 통째로 올라갈 정도로 큰 천칭은 처음 보지만, 숨 쉬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해내듯 투란은 자신이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는 중심축에서 빙글거리는 톱니를 향해 걸어갔고, 저편에서 너무 느리게 꾸물거리면서 넝쿨 한 줄기를 간신히 중심의 톱니에 보낸 악마의 심장을 향해 손을 뻗어 줄기부터 마구 당기듯 중심축의 톱니로 끌어왔다.
저울의 양손 접시가 팔을 접듯이 다가와 그와 악마의 심장을 감싸 안았다.
풍경이 흐릿해지고, 투란은 자신과 악마의 심장이 섞이는 것을 느꼈다.
쪼개져 토막 났던 구근 덩어리 형상은 그 안에서부터 번져 나오는 검은 얼룩에 물들어 갔다. 검은 얼룩은 두 토막 난 구근을 모두 덮고 덩굴줄기로까지 번져 갔다.
일렁거리며 느릿하게 빙빙 맴도는 듯한 검은 얼룩이 보다 정교하게, 빠르게 돌기 시작하면서 악마의 심장은 둥근 뿌리와 줄기가 모조리 색채를 잃으며 투명해졌다. 검은 얼룩은 그렇게 투명해진 악마의 심장에서 꿈틀거리며 빙빙 도는 작은 움직임을 반복하면서 투란의 가슴으로 몰려들었다.
결국 가슴에 닿아 있던 악마의 심장이 완전히 투명한 거품처럼 변했고, 투명한 유리병의 맑은 물속에 던져진 물감처럼 흐느적대던 검은 얼룩은 투란의 가슴 한가운데서 뭉쳤다.
투란의 가슴, 딱 한 점으로 뭉친 얼룩도 사라지고 남은 것은 엄지손톱만큼이나 작고 정교한, 그림자로 그려 놓은 듯한 양손 저울뿐이었다.
작고 앙증맞아 보이기까지 하는 그 그림자 저울 또한 이내 희미해지며 사라졌다.
나뭇가지에 관통되고 꿰여 버린 어깨, 거기서부터 갈라지며 새로 생겨난 상처, 상처에 달라붙었던 투명한 잔해가 티끌처럼 흩어지더니 가슴에 대고 있던 투란의 오른손이 축 늘어졌다. 늪에 이미 푹 잠긴 허리 아래편에서는 새로 도달한 덩굴줄기 몇 가닥이 스멀스멀 투란의 몸을 긁으며 타고 오르려 했다.
그런 덩굴줄기를 도우려는 듯, 투란의 살갗에서 잔가시가 오돌토돌하니 일어났고, 덩굴줄기에 돋은 잔가시와 얽혔다. 순간 덩굴줄기가 찔끔하는 모습으로 물러섰다.
먹잇감을 열심히 핥으려는데, 갑자기 옆에 동종의 혓바닥이 닿아 놀란 듯한 낌새였다.
닿고 놀란 덩굴줄기의 행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느새 늪 아래에 잠긴 투란의 다리, 허리 언저리에 당도한 악마의 심장 떼가 모두 거칠게 넝쿨을 휘두르며 사라진 먹잇감을 찾듯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아, 살았나?’
투란이 시야를 점검해 보니 한쪽 눈은 반쯤 뜨여 있고 한쪽 눈은 부풀어 올라 감긴 채였다.
도대체 이 꼴로 어떻게 뭔가 보고 있었을까?
귀는 양쪽 다 막혀 버린 듯,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사실 눈도 뭔가 사물을 제대로 보는 상태는 아니었다.
심장에서는 베인 상처로부터 피가 여전히 새는 것 같고, 온몸의 살갗이 여기저기 긁혀 성한 곳이 드물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이거 느낌이 아닌데…….’
투란은 곧 자신의 ‘감각’을 새롭게 되새겨야 했다.
목 아래 몸뿐 아니라 머리도 뜨겁게 달아올라 제대로 뭔가 기억하고 생각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투란은 지금 명확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냉정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치 자기 몸을 또 다른 누군가가 보듯이…….
‘이건 뭐지?’
투란은 그 감각에 좀 더 집중했다.
아까와는 완연히 다른 자신의 상태가 보다 선명하게 의식 속에 그려졌다.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면서 한쪽으로 물러선 채로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이성도 따로 노는, 그 괴상한 혼란이 아니었다.
지금 투란은 완전한 하나, 몸도 마음도 생각도 한 가닥으로 뭉쳐 느끼며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뒤에 보다 명확하게 깨달았다.
‘아, 이거 보는 게 아니구나!’
투란이 느끼는 감각은 거의 시각 같지만 사실은 아주 정교하고 섬세한 촉각이었다. 사람이 지닐 수 없는 극단적인 촉각, 악마의 심장이 지닌 감각 능력!
어느새 투란의 몸속 몇 줄기의 혈관은 악마의 심장에서 나온 넝쿨처럼 변했고 그의 살갗은 악마의 심장이 지닌 표피로 바뀌어 있었다. 거기 닿은, 몇 걸음 늦게 도착한 악마의 심장 떼가 당황하는 것이 투란에게 보이듯이 느껴졌다.
이 새로운 감각에 대한 자각은 바로 경고가 되었다.
‘이거 위험한데!’
악마의 심장 떼가 일단은 동종 괴물보다 먹잇감에 집중하고 있지만, 먹잇감을 찾을 수 없게 되면 이렇게 떼로 근접한 상태에서는 서로를 잡아먹는 놈들인 것이다. 서로 엉겨 붙어서 짓누르고 융합하는 형태로 포식하는 것이 악마의 심장끼리 지닌 관계!
샤오콴 마을에서 가끔 항아리 안에 악마의 심장을 담아 놓고, 어느 쪽이 어느 쪽을 잡아먹나 내기 걸자고 하는 몬스터 헌터도 있었잖나. 어디 재료로 팔 수도 없는 놈이지만 그런 내기의 도구로는 쓸 만하다고, 사실 악마의 심장이 유일하게 쓸모가 있는 곳이 도박판이라고 떠들고 그랬다.
하지만 지금 투란에게는 보이드 엠블럼의 끔찍한 상황을 피하게 해 주고, 유일하게 남은 놈이 바로 악마의 심장!
어떻게든 매달려 볼 것이라고는 이놈 하나뿐이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그냥 죽을 거라면 매달리지 않아도 되겠지만…….
“주……으……그어…….”
분노로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연 투란은 숨만 차오르고 말은 제대로 된 소리로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죽을 것 같으냐!’ 하고 터트리려던 외침은 포기하는 수밖에!
그래서 투란은 집중하기로 했다.
결심하자마자 바로 한마디가 기억 너머에서 툭 튀어나왔다.
“몬스터 로드에게는 문장이 전부지!”
‘그래, 믿어 보자고.’
샤오콴 마을에 들락대는 이들은 몬스터랑 관련이 있는 자가 많았다.
몬스터 헌터라든가 몬스터 로드, 혹은 그들에게 뭔가 사거나 팔려고 하는 연금술사, 마법사…… 대부분 정착할 마음이 없는 뜨내기, 떠돌이 들.
그중에는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소리로 잘난 척, 과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남들은 보지 못한 온갖 괴물에 대한 이야기, 그 괴물을 사냥한 것이 자기라는 허풍, 몬스터 엠블럼의 비전에 대한 은근한 허풍까지…… 묻지 않아도 마구 늘어놓아 듣기 싫어도 들어야 했던 이야기들.
어디서부터 진짜고 어디서부터 거짓말인지 알쏭달쏭한, 그 얄팍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투란은 이제 몸으로 겪으며 확인해야 하는 처지였다.
물론 그 하고많은 이야기 중에 악마의 심장을 삼키고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이 녀석을 삼킨다는 것은 이미 바보인 놈이 바보임을 증명하는 짓이라고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
때문에 투란은 결심을 굳히면서도 뭔가 억울했다.
차라리 웨어비스트(Werebeast)의 손모가지라도 삼킨 거라면 온갖 짓을 해 볼 텐데…….
손목만으로도 웨어비스트의 짐승 형태를 손에 넣었다든가 손목에서 팔뚝까지만 웨어비스트의 형태로 변했는데 온몸에 회복력이 작용한다든가 늑대인지 곰인지 혹은 드문 사자인지에 따라 웨어비스트의 인간형으로 발휘되는 힘이 다르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엄청나게 많았는데, 악마의 심장에 대해서는 전혀 없었다.
그나마 듣도 보도 못한 몬스터를 삼켰을 경우, 가장 먼저 본능적으로 구현되는 부분과 그 괴물이 지닌 핵심이 뭔가에 대해 문장을 통해 파악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둔 것이 다행이랄까?
그래서 투란은 자신의 몸 상태, 마음을 더듬는 넝쿨의 감각에 보다 깊이 몰입했다.
‘나…… 용케 생각을 하네?’
먼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보통 머리에 심하게 충격을 받거나 하면 사람의 의식은 그냥 저 멀리 날아간다. 절대로 주변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한데 투란의 머리통은 정말 심한 충격으로 두개골에 금이 갔고 피가 고인 상태였다!
머리를 감싸며 은근하게 몬스터 엠블럼, 문장이 일으킨 여린 파문이 번지고 있어서 가능한 일인가?
궁금했지만 투란에게 누가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일 따위는 없었다. 지금은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놓고 고민할 때도 아니었다. 머리가 완전히 망가져서 저 여린 파문도 어떻게 못할 지경이면 이런 생각조차 할 수 없으리라는 희망적 위안으로 넘어가는 수밖에…….
‘회복! 회복하는 방법이 뭐라고 했지?’
투란은 허리 아래의 참혹한 부분까지 파악하고 생각을 서둘렀다.
엉덩이 위부터 허리뼈가 토막 났고, 발목 언저리는 도대체 뭔 놈들인지 모를 것들이 갉아 대는 중이었다. 넝쿨이 허벅지랑 사타구니를 헤집는 것은 애교에 불과했다.
“광란, 완전한 몬스터의 형태가 되는 거지. 하급 몬스터 로드라도, 그런 상황에서 적당한 몬스터만 갖추고 있다면 상처를 고칠 수 있어.”
나름대로 중급이라고 뻐기면서 목에 힘을 주었던,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늙수그레한 몬스터 로드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 녀석에게 회복 능력이 있나?’
걸림돌이 된 것은 이 의문이었다.
식물에 근원한 몬스터라서 두 쪽을 내 따로 두면 그럭저럭 반 토막 크기 그대로 헤엄치는 꼴을 본 적은 있지만, 지금 투란이 두 토막 나서 허리 위랑 허리 아래가 따로 놀고 싶은 것은 아니잖나?
투란은 몸속 곳곳에서 따로 놀며 독특한 촉각으로 지각 능력을 발휘해 주는 넝쿨의 조각들에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 허리 위로 기어오르려는 다른 넝쿨들에 대해 반발하는 본능에 호응하며, 사람 몸의 제대로 기능을 못하게 된 부분에 스며들어 본능적으로 그 기능을 대체하려는 시도 같았다.
‘어쨌든 뿌리가 필요하네.’
작은 넝쿨의 조각, 껍질이 몸 곳곳에서 상처에 대응하려 하는 상황을 깨닫고 투란은 결정했다. 이미 몸의 혈관 절반 이상으로 번져 나간 넝쿨을 제대로 악마의 심장과 잇기로.
그리고 잠깐 고민했다.
‘어디를 변신시키지? 역시 심장인가? 피가 고인 머리? 아, 아무래도 머리는 아니다. 머릿속에 악마의 심장이라니, 그건 아냐!’
생각이 닿을 때마다 문장이 맥동했고, 생각이 닿은 부분에 작은 변화가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투란은 좀 더 신중하게 자신을 다독였다.
몬스터 로드의 힘에는, 그 기량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미친 듯이 날뛴다고 해도 기력이 다하면 변신은 풀리고 그냥 주저앉아 헉헉대는 꼴이나 되고 말 것이다.
지금 투란을 간신히 버티게 하는 것은 문장이 쥐어짜 내는 여린 파문, 진짜 오러인가 의심될 만큼 방울방울 새는 기력뿐이었다. 그러니 이 변신은 어쩌면 그가 살아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일지도 몰랐다.
다시 투란은 악마의 심장에 대해 아는 바를 쥐어짜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