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0)
밤하늘의 풍경 속에 보이는 것은 별빛만이 아니었다.
투란은 흩어지는 물기둥, 그 물결 속에 휩쓸려 가면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새카만 잉크가 허공에 뿌려져 생겨난 밤하늘 풍경, 그 속에서 별빛보다 가깝게 돌멩이들이 떠다녔다.
원래는 꽤 먼 곳에 있어서, 밤하늘의 바탕 속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 갑작스럽게 끼얹어진 잉크색 탓에 확 다가온 듯했다. 그렇게 가까이 보인 돌멩이는…… 절대로 돌멩이가 아니었다.
‘산……인가? 바위겠지?’
멍하니 왜 자신이 환상 속의 황금 해골이 휘두른 칼날 바람에 휩쓸린 채 날아가는 꼴이 되었는가 생각하며 투란은 희망적―어디 희망이 있냐고 스스로 되묻기는 했지만―으로,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황금 해골, 황금 칼자루, 빛의 칼날, 이런 것들은 사실 환상이지만 때로는 환상 속에 크고 거대한 힘이 실리는 경우도 있다지 않던가?
그러니 밤하늘을 건너오는 바위가 산처럼 크다 한들 저 잉크 색채 속에서 뭘 하겠는가? 이쪽으로 넘어오기라도 할 것인가!
쿠우우우우웡!
허공이 울렸고, 잉크색 창 하나에 거대한 산 하나가 불거져 나오는 모양이 보였다.
여전히 물결 속에 있었지만 투란의 입은 저절로 ‘히이이!’ 하는 비명 같은 외침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바위산이 새카만 잉크색 밤하늘을 다 지울 듯이 불거져 물기둥과 불기둥이 겨루는 전장의 한복판에 툭 튀어나오고 있었다. 거대한 힘의 파동을 일으킨 빛의 칼날과 다르게, 정말로 바위산은 저 밤하늘 속에서 이 세상을 향해 통째로 튀어나오려 했다!
그것이 날아오기라도 한다면 이 물결과 함께 깔려 버릴 텐데, 그렇게 되면 버틸 수 있을까? 물이 아닌 흙과 바위의 생매장을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못 버텨!’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투란은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 격류 속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이러고 있겠는가!
짧은 순간, 투란은 한 가지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렸다.
‘저리 가! 저리 가서 부서져라, 제발!’
열심히 마음을 다해 빌었다.
콰르르르르르르!
‘어?’
투란의 눈에 거대한 풍경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바위산이 깨부수고 나오려던 잉크색 창, 그것이 활짝 열렸다가 오그라들면서 바위산을 통째로 부숴 버리고 있었다. 그 파편이 불꽃의 구름 속으로 튀고 서리의 소용돌이로 튀어, 투란이 원하던 대로 녹고 얼며 파괴되었다.
그리고 그 여파가 거센 폭풍이 되어 날아들었다.
불꽃과 안개의 거센 회오리가 마구 뿌려지며 투란을 움켜쥔 채로 날아가는 물 더미도 휩쓸었다.
그 속에서 투란은 다시 소원을 빌 수밖에 없었다.
‘좀 살게 해 달라고! 젠장맞을!’
새카만 잉크색으로 그려진 밤의 하늘은 많은 것을 보여 주고, 많은 것을 토해 냈다. 불꽃구름과 안개서리의 격전조차도 집어삼킬 정도로 많은 것을 토해 내며 밤하늘의 풍경은 점점 오그라들며 사라졌고, 그 풍경을 관통하는 섬광이 칼끝처럼 몇 차례 번쩍거렸다.
그 빛의 난도질, 바위 무더기를 뒤이은, 투란이 상상한 적도 없고 들어 본 적도 없는 기괴한 현상과 괴이한 사물이 밤하늘의 풍경 너머로 언뜻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결국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새카만 잉크색의 풍경이 사라지며 불꽃의 구름과 서리의 안개도 잠잠해지며 격전을 멈추고 말았다.
남은 것은, 이 모든 뒤틀린 풍경이 낳은 거센 바람뿐이었다.
어지간한 사람 따위는 그대로 풀잎처럼 날려 버릴 바람은 산맥과 절벽이 이어져 성벽처럼 불꽃과 안개의 전장이 더 번지는 것을 막아선 곳까지 투란을 날려 버렸다.
더불어 온갖 밤의 파편들도.
* * *
콰아아아아!
투란을 작은 티끌처럼 담고 있는 물 더미가 회색의 절벽과 격돌했다.
물이 바위에 부딪쳐서 흔적을 남기려면 오랜 세월, 반복적으로 똑똑 떨어져야 한다는 상식 따위는 순식간에 무시당하고 파괴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절벽 한쪽이 폭삭 무너지며 파여 나갔다.
산맥이 부르르 떠는 듯한 격한 진동이 일어났고, 물 더미는 자신이 얼마나 빨리 날아왔는가 아냐는 듯이 격류의 줄기를 만들면서 흘러가는 자리마다 푹푹 파내듯이 고랑을 그려 냈다.
그 속도가 사라진 곳에는 달아오른 주전자에서 새 나온 듯한 증기가 맴돌고, 속도를 잃어버린 물살이 작은 웅덩이를 만들면서 낮은 곳을 향해 천천히 흘러갔다. 이제 겨우 제대로 된 물과 땅의 형상으로 돌아간다는 듯이.
서서히 고요해지며 파괴를 잊어 가는 이 풍경 속에서 투란은 꿈틀거리며 물웅덩이 한 곳에서 기어 나오는 중이었다.
“아프다고.”
작은 중얼거림을 토해 내고 몸을 돌려 누웠다.
기면서 봐야 했던 물이 찰랑이는 바닥 따위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듯이.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물 더미 속에 있던 투란이 받은 충격은 물결처럼 흘려 내고 여기저기로 흩어지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뼈마디가 으스러지고, 그 작은 조각이 핏줄과 힘줄 사이로 찔러 대며 아픔을 마구 퍼뜨렸다.
온몸의 뼈대 중 성한 것이 없고 정신이 멀쩡한 데다, 투란은 악마의 심장이 부여하는 놀라운 지각 능력으로 인해 그 모든 것을 다 알면서 겪어야 했다. 편하게 잠시 기절했다가 깨어나 보니 아프다고 투정부리는 사치가 아니고, 모두 부서지는 과정을 낱낱이 겪으면서 최대한 버텨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악마의 심장이 그 상황 속에서 격렬하게 뛰며 뿜어내는 피의 격류가 한 번씩 고통을 씻어 버린다는 점이었다. 몸은 뼛속까지 으스러지고 있는데, 상쾌한 것이 괴상망측하기는 했다.
하지만 투란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배고파.’
양분이 부족했다.
이대로는 악마의 심장이 몸을 완전히 회복시킬 수가 없었다.
투란이 소모한 체력을 회복하려면 뭔가 제대로 먹어야 했다.
하지만 주변에는…….
‘물, 물, 물뿐이냐!’
허물어진 절벽이 열린 문처럼 보였다. 그를 담고 날아간 물 더미가 깨고 들어온 절벽이 병풍처럼 저편을 막아서며 둘러친 듯한 풍경.
얼핏 보이기에는 저쪽의 재앙과 이쪽의 풍경을 완전히 가르는 성벽이니 안이 무슨 정원이라도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도 해 볼 만했다.
하지만 풀밭조차 없었다.
하늘에 불꽃이 자욱하지도 않았고, 해는 아예 보이지 않는 회색이었다.
희미한 안개 혹은 구름처럼 보이는 것이 절벽 위부터 낮게 깔린 채인데, 딱히 춥거나 덥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망가진 몸이 욱신거리면서 열을 내고 싶어 할 뿐이었다.
‘졸려.’
배고픔의 뒤를 이어 투란이 느낀 것은 지독한 졸음이었다.
더불어 떠오른 기억의 단편…….
“자야 해! 잠을 자야 몬스터 로드는 마력을 회복하거든. 안 자면 몬스터의 힘을 사용할 수가 없지!”
‘망할!’
졸음 속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투란은 자신이 언제 잠이 들었던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가를 따져 보려 했다.
금방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정신 줄이 반쯤 나갔다 들어왔다 하고 있었고, 때로는 주변의 풍경을 아주 느릿하게 보던 순간조차 섞인 탓인가 도무지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악마의 심장을 생성시켜 유지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졸음이 심해지고, 배고픔이 그 바탕에 깊이 깔려 들었다.
‘생각해!’
졸음에 쓰러지기 전에 투란은 기억을 헤집고 더듬어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이 안에서, 악마의 심장이 없어지거나 하면 투란이 버틸 수가 있을까?
칼날 풀잎 위에서 겪었던 일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쿵, 쿵, 쿵.
투란은 느릿하고 선명하게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기억의 저편에서 뭔가 튀어나왔다.
“몬스터가 뭐냐에 따라 다르지. 몬스터 중에서는 단순히 발현이라는 과정만 필요한 놈이 있고, 때로는 구조 자체를 바꾸는 변환까지 해야 하는 놈도 있어. 그리고 가장 골치 아픈 놈이 생성해야 하는 경우인데…….”
‘아니, 이게 아냐!’
투란은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의 힘을 발휘하기 위한 변신에 관련한 논의를 따지려는 게 아니었다. 그 복잡하고 괴상한 얘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논의를 하던 사람 중 한명도 그러지 않았던가!
“뭘 따져? 따진다고 달라져? 그냥 몬스터의 모습을 꺼내서 몬스터의 힘을 발휘하는 거잖아!”
그걸 ‘발현’이라 부른다고 했고, 가장 단순하게 팔다리를 같은 구조이지만 질이 다른 괴물의 것으로 바꾸는 것이라 했다. 가장 쉬운 ‘변신’에 속하는 것이라고.
‘시간, 시간에 관련된 것!’
투란은 자신을 향해 외쳤다.
마치 자기 안에 과거라는 긴 목록을 지니고 있고, 그 목록에서 필요한 것을 열심히 찾는 자신을 재촉한다는 듯이.
곧 투란은 자기가 정말 그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악마의 심장 속에서 투란의 마음, 그 조각이 움직이며 생각하며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아, 그게 뭐였지?’ 하고 생각이 날 듯 말 듯 하다며 웃고 넘길 일을 진지하게 구석구석 감춰진 기억을 더듬는 듯했다!
투란도 이를 돕기 위해 이를 악물었고, 스쳐 가는 기억의 작은 조각을 붙들 수 있었다.
‘그거! 그거다!’
“구현 시간? 흠, 그건 몬스터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은 몬스터 로드 자신의 역량에 따라 다르지. 똑같은 그랑츄의 팔다리를 나눠 가진 경우에도, 한 녀석은 하루 종일 구현하고 있을 수 있지만 다른 녀석은 겨우 두어 시간 만에 구현해제가 돼 버리기도 하거든. 뭐, 보통은 많은 몬스터를 삼킬수록 구현시간이 늘어나고, 칼질 연습하듯이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 늘어난다더군.”
‘젠장!’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기억이잖은가!
언제 투란이 연습을 해서 이 상황을 극복할 것이고, 어떻게 더 많은 몬스터를 삼킬 것인가! 문장으로 삼키는 것은 고사하고, 지금은 입으로 씹어 먹을 놈도 없는 상황도 문제였다.
아니, 있다고 해도 그걸 문장을 통해 삼킬 수도 없다.
‘여긴 안전한가?’
투란은 새삼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해 내야 했다.
여기는 과연 사람이 숨을 쉬고 누워 있을 만한 곳인가?
알아볼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숨을 고르고, 목과 허파를 조이며 촘촘히 뻗은 덩굴줄기를 거둔다.
쿨럭.
투란은 입으로 핏물이 올라오는 것을 손으로 막았다.
다시 목과 허파, 얼굴의 살갗 사이를 스미는 악마의 심장 덩굴줄기가 핏물을 싹싹 흡수해 갔다.
여전히 숨조차 쉴 수 없는 곳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기 안개는 슬러시로 변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로 피를 얼리지도 않았고, 그저 사람이 숨 쉬면 피를 토하게 하는 독한 안개에 불과했다!
‘지랄!’
잠깐 투란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자신을 욕했다.
독이 가득한 안개 속에서, 이 안개가 몬스터가 아니라도 안심하다니!
이 무슨 멍청한 생각인가!
하지만 곧 투란은 이게 정말 ‘그나마 다행’인 상황인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피를 탐해 다가오는 것도 없고 그저 사람이 숨을 못 쉬게만 하는 것, 투란이 얼마 동안 겪은 일을 생각하면 꽤나 얌전한 상황이 아닌가?
‘짜증 나! 바로크 근위대라면 이럴 때…… 어?’
울컥하는 생각 속에서 투란의 정신이 한순간 반짝했다.
여전히 기억을 더듬던 심장 속의 의식, 마음의 한 조각도 바로 이 반짝임에 주의하며 섬세하게 ‘바로크네 병신들’ 에 대해 회상해 냈다.
번개를 뿜는 검은 털 마견의 몬스터 로드, 바로크 왕국의 왕실 근위대를 구성하는 자들이었다.
바로크 왕국 출신의 몬스터 로드들이 ‘병신들’이라고 하는 괴상한 호칭으로 불리는 반면에 그들은 ‘근위대’라는 독특한 호칭과 함께 아주 특별한 몬스터 로드로 알려져 있었다.
손등에 문장을 지닌 자들, 그들은…….
‘마견을 파수꾼으로 부릴 수도 있다고 했어!’
투란은 기억해 냈다.
바로크 왕국의 왕실을 지키는 근위대를 구성하는 몬스터 로드들, 그들은 마견을 물려받으며 몸 밖으로 따로 구현해낸다.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타입의 몬스터 로드인 그들은 그 마견으로 파수를 세우고, 자기네는 아주 편하게 잠도 잔다고 했다!
악마의 심장으로 이를 흉내 낼 수는 없을까?
척후로 넝쿨 가닥을 보내기도 했잖나?
투란은 졸음과 배고픔 속에서 머리를 쥐어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