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0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02)
누런 빛이 광장의 벽과 바닥에서 번들거렸고, 뜨겁고 붉은 안개가 자욱하게 광장을 채워 나갔다. 광장은 금세 저편 벽에 새겨진 무늬가 튀어나오면서 물들인 듯한 풍경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땅울림이 짙어졌고, 돌바닥이 뒤틀리며 돌덩이가 불쑥 솟구치거나 푹 꺼지는 듯한 광경이 나타났다. 돌덩이의 크기는 사람만 하거나 더 큰 경우가 많았다. 그 틈새에 끼이면 어지간한 짐승이라도 돌이 씹힐 듯한 광경이었다.
투란은 마그마 로드의 검게 번들거리는 몸으로 이를 지켜봤고 광장의 벽과 바닥, 천장이 느릿하니 더 높이, 더 넓게 펼쳐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암벽의 내부에 더 큰 공간을 만들어내는 듯, 깊은 땅속을 더 밀어붙이는 듯!
‘저거 그냥 돌을 파내서 모양잡는 정도가 아닌가 본데?’
문지기라는 데몬이 광장을 이루고 있는 암반, 암벽 깊은 곳의 거대한 돌덩이를 주물럭거리면서, 그 힘으로 투란에게 대항하려 하고 있었다.
―암석조형(巖石造形)의 능력이 있다고는 해도…… 이건 그저 살아 있는 도구에 불과한 문지기가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군.
드라고니아가 뭔가 한탄하는 듯, 한숨을 쉬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으로서는 뭔 소리인가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었다.
한편으로는 그 소리에 대해 물을 때도 아니기는 했다.
광장을 가득 채우면서 짙어진 붉은 안개가 엮이고 얽히면서 뒤틀리는 듯이 보이더니, 불길이 되어 물결처럼 퍼지고 있었다. 그 불의 파도(波濤)에 벽과 바닥, 천장의 바위가 거품을 뿜어내는 꼴이 그냥 웃어넘길 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뭐야, 바위를 녹이는 건가?’
투란은 거품을 뿜어내면서 붉게 물든 암석류가 용암이 되어 흐르지 않는 상황에 조금 의아했다. 붉은 마그마의 호숫가 퐁퐁거리면서 거품을 뿜어내는 것이야 이미 잘 봤고 그 안에서 남다른 경험도 했다.
한데 그와 닮은 것처럼 바위의 표면이 부풀고 거품을 뿜어내는데, 정작 녹아 흐르는 돌은 없다니?
―연옥의 불꽃, 인페르노의 특성이라니까! 품고 있는 뜨거움을 주변 환경으로 퍼뜨리지 않아. 불을 먹는 불, 그렇게 불리기도 하는 까닭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태우고 녹이는 열기를 머금은 불이 아니라, 부수고 갈아버리는 불꽃이라고! 그러면서 다른 불꽃을 집어삼켜서 강화되는 불, 그게 바로 인페르노란 말이다!
‘다른 불꽃을 삼켜?’
투란은 의아해서 곧장 확인해보려 했다.
바로 윌 라이트에 집중해서 마력으로 불을 일으키는 순간,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붉은 안개에서 퍼져 나온 불길이 마력의 불을 덮쳤고…… 잡아먹으며 커졌다!
이 상황을 곧바로 확인하고 대응하겠다는 듯, 벽에 달라붙으며 등을 처박고 있는 문지기의 포효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훠어!
역시나 헬 스크림이었고, 투란은 몬스터의 감각으로 주변의 반응을 파악해야 했다.
이는 바로 투란이 지금 자신의 살갗이며 껍질을 이룬 마그마 로드의 감각에 집중하게 한 셈인데…….
‘어라?’
‘천칭’의 문장에 의해 정교하게 형성된 마그마 로드가 부들거리면서 들끓어 오르려 하는 본능을 잔뜩 억누른 채였다. 황금매의 문장이었다면 벌써 마그마 로드가 그 본능을 터뜨리고도 남았을 듯한 억제(抑制)였다.
딱히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천칭’은 투란이 애초에 마그마 로드로 형성하고자 했던 형상의 규격을 지키려는 듯이 자연스럽게 이러한 억제를 하는 셈이었다.
굳이 지금 그럴 때가 아닌데도!
암벽 깊은 곳, 땅속으로 한참을 파고들어온 이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저 외뿔의 데몬 문지기와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이지만 광장 주변의 지하를 얼쩡거리며 맴도는 둠고그와 다크 레이디, 헬 임프에 불과했다.
정말 투란이 몬스터 걱정을 하며 굳이 억제를 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일단 온통 불을 질러놨고…… 그걸로 나를 부수고 갈아버리려 한다, 이거잖아? 내가 참을 필요도 없네?’
문득 투란은 한 번 더 상황을 더듬었고, 분명하게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은 곧바로 ‘천칭’을 울렸고, 마그마 로드의 형상에 대한 억제가 풀리도록 했다. 마치 꽉 잡고 있던 끈 하나가 저절로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처럼…….
투란의 ‘천칭’이 오롯하니, ‘악마의 심장’조차 거둬들이면서 마그마 로드의 형상만을 몸에 남겼다.
오직 한 가지 정수만이 그 형상을 갖추는 순간, 투란은 몸의 격변(激變)을 알아차렸다.
우르르!
검은 광채가 짙어지면서 마그마 로드의 살갗이 진동했다.
투두드득!
시커먼 수정처럼 번들거리던 살갗이 부풀고 갈라졌다.
콰아아아아!
붉은 안개가 꼬이고 엮여 넘쳐나는 불길을 향해 끈적거리며 찰랑거리는 용암이 노도(怒濤)가 되어 밀려나갔다.
‘아, 이거 꼭 자다가 깨서 쉬한 기분인데?’
투란은 뭔가 꼬였던 몸이 확 풀리는 감각을 이렇게 생각으로 표현했다.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이에 대꾸하니…….
―온몸으로 용암을 뿜어내면서 오줌 따위에 비교하나!
투란도 곧 미묘하게 민망한 것을 느끼며 답한다.
‘아니, 기분이 그렇다고. 그런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째서 마그마 로드가 인페르노라는 불길에 이렇게 반응하는가?
마치 헬 임프의 불꽃에 붉은 그랑츄가 반응하는 것과 닮은 상황인데…… 투란에게는 그보다 더 깊고 그윽한 차이가 분명히 느껴지고 있었다.
붉은 그랑츄의 에센스가 단순히 영향을 받고 육체적인 부분이 크게 강화된 것과 비교하면, 마그마 로드는 마치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채워 넣는 듯했다. 그 잃어버린 조각은 황금의 매를 통해 투란이 삼킨 마그마 로드에게는 이미 갖춰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은 가장 크게 변화한 부분을 곧장 깨달았다.
‘어, 몸이 커졌어?’
3미터를 넘기고 4미터를 넘지 못하던 형상이 거침없이 솟구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솟구치는 형상은 그저 그 윤곽만 사람과 닮았을 뿐이었고, 온통 끈적거리는 용암으로 채워진 모습이었다. 두 발, 두 손에서 용암 줄기가 끊임없이 뻗어나가며 몸 주변을 휘젓는 듯한…….
용암이 인페르노, 연옥의 불꽃을 삼키면서 광장을 채워 나가고 있었다.
더 이상 벽에서 흘러나온 무늬가 보이지 않게 하겠다는 듯, 끈적하게 찰랑거리는 용암이 문지기를 향해 짓쳐나가며 흘러넘치려 하고 있었다.
―겁화(劫火)조차 잡아먹는 놈이었더냐.
이런 상황에 대해서 드라고니아는 한층 더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이 용암과 오줌을 비교한 것 따위는 벌써 잊었다는 듯한 말투였다.
투란은 문득 드라고니아가 마그마 로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었던 이야기 한 가지를 되새길 수 있었다.
“화염(火焰)을 삼키는 대지(大地)가 흐른다.”
‘아, 그렇구나. 흘러야 하는구나!’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느낌이 투란에게 분명해졌다.
어째서 ‘천칭’의 마그마 로드가 그 크기에 한계가 있는 형상을 이루고 멈췄는가를 투란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용암의 호수를 펼쳐놓고 있던 마그마 로드와 왜 격차가 있는가를 투란이 분명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투란은 제란드를 구해내기 위해서 광야의 미로 속을 헤매던 때에 잠깐씩 자신이 ‘천칭’의 마그마 로드를 한계선 이상으로 끌어올렸던 것도 기억해냈다. 그때는 마그마 로드만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있었던 것…….
‘그렇게 된 거였구나.’
블랙 애시를 통해 얻었고, ‘천칭’을 통해 정제해낸 마그마 로드의 정수(精髓).
그 속에는 오직 투란의 의지, 투란의 모습만이 선명하게 각인된 채였고 고여 있을 뿐이었다. 세상 어떤 것과도 제대로 뒤엉킨 채로 흘러본 적이 없었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으로 형성되었고, 몬스터 로드의 의지에 절대적으로 따르는…… 문장 속에서 태어난 정수, 어떤 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마그마 로드였다.
결코 어긋난 맞물림 따위는 없는…….
잠깐만 느슨해지면 쉴새 없이 블랙 애시를 뿌리면서 펑펑 불꽃을 터뜨리는 황금매가 품은 마그마 로드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투란이 이 녀석에게서 한계를 넘어서는 형상을 끌어낸 때는 다른 정수와 섞어 흘려낼 때였다.
‘악마의 심장’을 품은 채로, 단단하게 사람의 기본적인 규격을 맞춘 채라면 당연히 그 체격과 높이에 한계가 생겨난다!
투란은 마음을 활짝 열었다.
찰랑거리는 용암이 소용돌이처럼 맴돌았다.
붉은 용암 속에서 검은 수정(水晶)이 가시처럼 삐죽거리며 나타났다.
사람 모양을 갖춘 용암의 형상이 더 크고 두꺼워졌다.
문지기는 이를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지옥의 절규’가 울려 퍼졌고, 문지기의 바위 손이 기대고 있던 벽 깊숙이 팔뚝째로 박혀들었다.
문지기의 팔뚝이 꿈틀거리며 벽에서 바위가 굵은 뿌리처럼 불끈거리는 광경이 드러났다. 바위 뿌리는 벽을 타고 바닥으로 내려와 용암이 흘러오는 풍경을 가로지르며 투란을 향해 세차게 날아들었다. 바위 뿌리가 바닥을 박차고 치솟았고, 그 끝은 돌로 된 주먹의 모양이었다.
퍼억!
이미 8, 9미터의 높이와 넓게 펼쳐진 체격을 갖춘 용암 덩어리에 바위 주먹이 파묻혔다. 용암이 끈적한 소용돌이처럼 뒤틀렸고, 큰 돌 주먹과 이어진 암석의 뿌리가닥이 그대로 녹았다.
크훠!
바닥에서 불끈거리던 바위 뿌리를 따라 용암의 광채가 번개처럼 역류했고, 문지기는 이제까지와는 조금 색다른 헬 스크림을 뿜어냈다.
‘지옥의 절규’에 자극을 받은 듯, 용암 위로 여리고 느린 파문이 번져갔다.
파문의 찰랑임에 닿은 검은 수정의 가시가 창처럼, 화살처럼 사방으로 날아갔다.
벽과 바닥, 천장을 가리지 않고 수정가시가 시커먼 빛을 번들거리며 꽂혔다.
수정이 박힌 주변은 금세 붉게 달아올랐고, 용암을 이슬처럼 뚝뚝 흘려냈다.
용암이 수정을 휘감으며 번졌고, 떨리는 검은 수정은 시커먼 재를 피워냈다.
그 광경을 온갖 형태로 느끼면서, 투란은 알 수 있었다.
마그마 로드의 정수가 담긴 검은 수정이 꽂힌 곳, 거기서 녹여낸 암석의 성질을 느끼면서 배우고 있다! 전혀 다른 성질인 암석을 따로 더듬다가 블랙 애시의 가닥이 만나면…… 맞물리지 못한 채로 터져버리고!
용암이 흘러내리며 휘날려가는 검은 재를 삼켜는 것 또한 투란에게는 새롭게 느껴졌다. 어떤 성질이든, 마그마 속에서 한가지 흐름으로 삼켜버린다! 그 흐름 속에서 정교하게 맞물리고 남는 것은 어찌하면 어긋나는가에 대한 기억과…….
크워훠어어!
새로 울려 퍼진 헬 스크림이 투란의 주의를 끌었다.
‘뭐야, 저 녀석 아까는 제멋대로 제 팔뚝 잘라놓고 멀쩡하더니, 이제는 뭘 아픈 시늉이야? 그냥 헬 스크림으로 또 내 감각을 교란하는 건가?’
외뿔을 흔들면서 입을 열고 절규하는 문지기를 보니 투란으로서는 살짝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정말 아파하기라도 하나? 바위로 된 놈이? 돌바닥에다가 끊어진 팔을 대고 바로 새 손을 끌어내는 놈이?
―감각 교란은 그저 헬 스크림의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다. 저 녀석, 지금 자신의 기본구조에 타격을 입어서 괴로워하는 중이다. 아까처럼 타격을 입기 전에 스스로 절단해서 피하지 못했으니까. 진짜 뭔가를 느끼는 안쪽 몸에 용암이 닿은 셈이지.
‘부수적인……? 그럼, 진짜 효과는 뭔데?’
뒤쪽 설명을 제친 채로 투란이 조금 어이없어 되물었다.
―그야 말하는 거지,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소리를 지르는 거…… 인간들도 흔히 하는 짓 아닌가? 사냥을 하거나 뭘 할 때, 소리치거나 하면서 짐승이나 상대를 협박하거나 하잖아.
드라고니아의 대답은 뭔가 투란을 좀 더 어이없게 만들려고 노력이라도 하는 듯하잖은가!
‘여태 저게 지른 소리에 말뜻이 있었다고?’
―당연히 있었지. 죽어라, 토막 내 주마, 깨져라…… 대부분 단편적이고 자신이 보일 행동의 결과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말이었다만.
잠깐 투란은 기분이 묘해졌다.
서로 말도 없이 서로를 향해 돌기둥을 휘두르고 바위덩이를 내지르고 불길을 퍼뜨리며 용암을 뿜어내던 중인 줄 알았는데, 저 녀석은 그래도 나름대로 성의껏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위해서인가 떠들고 있었다?
정작 투란은 생각만으로 드라고니아를 상대로만 말하고 있었는데!
‘어, 몰라도 되는 말이구나.’
―그러니까 일부러 네게 말하지 않았다만?
‘그래, 잘했어.’
어쩐지 민망해지는 기분을 억누르면서 투란은 조금 더 헬 스크림을 질러대는 데몬 문지기에 대해서 생각했다.
과연 저 녀석을 몬스터라고 할 수 있는가?
드라고니아는 무슨 도구로 만들어졌지만 살아 있는 것이라고, 인간이 가축을 대하는 것처럼 말했는데…… 정작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뭔가 가축이라든가 도구라든가 할 수가 없어 보였다.
훠이, 크어어어!
‘에, 저건 무슨 뜻이 있나?’
새삼 울려 나온 헬 스크림에 투란은 용암으로 이뤄진 채 찰랑이는 귀를 쫑긋하면서 물었다.
―모두 와서 도우라고, 외치는 명령이다. 사방 벽 너머에 있는 둠고그, 헬 임프, 다크 레이디를 부르는 소리지. 바로 들어올 통로가 없어서 우왕좌왕하고는 있는데, 저 부름에 호응하기는 하는 모양이군.
‘그래? 그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