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0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03)
용암의 두 팔은 그 크기 탓에 일단 기둥처럼 보였다.
이미 10여 미터 이상 높아진 큰 키의 넓고 두꺼운 덩치에 매달린 팔이었으니, 맞먹는 크기의 거대한 뭔가가 아니면 용암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일단 부딪히고 싶은 생각을 없애줄 정도로 분명히 큰 기둥이었다.
하지만 그 팔이 양옆으로 펼쳐져서, 새로운 용암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며 넓고 굵어지면서 지하 광장의 양쪽 벽으로 노도처럼 밀려가는 광경은 기둥과 비교하는 것이 너무 겸손해 보일 지경이었다.
콰아아!
격류(激流)의 음향이 크고 웅장하면서도 어딘가 끈적이고 잔잔한 느낌으로 퍼져 나갔다. 그 반향(反響)을 느끼면서 투란은 다시 한 번 광장의 크기, 높이를 가늠해봤다.
문지기가 벽에 등짝을 담그며 한 짓 때문에 처음보다 넓고 높아진 광장, 위로는 거의 20여 미터, 폭은 80에서 90여 미터는 될 듯했고 길이는 대강 놓고 봐도 100미터를 한참 넘길 듯했다.
사방 벽은 울퉁불퉁, 삐죽삐죽했지만 전체적인 광장의 형상은 길쭉하게 늘인 원, 타원과 많이 닮았다.
거기에 투란이 쏟아낸 용암이 3, 40여 미터의 지름을 지닌 웅덩이처럼 자리 잡으며 번지던 중이었다. 이제 뻗어낸 기둥 같은 용암 줄기에서 뚝뚝 떨어지는 붉은 방울이 그 영역을 더 빠르게 확장하는 중이기도 했고.
문지기 데몬이 뿜어내는 붉은 안개, 바닥을 번져가는 노란 광택의 무늬는 용암의 흐름을 거슬리려는 듯이 꿈틀거리며 뭉클거렸다. 그러나 거기에 닿아 찰랑이는 용암, 마그마 로드의 형상은 맹렬한 파문과 함께 크고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 더욱 거세게 번지고 흘러갈 뿐이었다.
훼이!
새로운 외침이 문지기의 까닥거리는 외뿔 아래에서 보다 절박하게 터져 나왔다.
투란이 그 의미를 궁금해했고, 드라고니아가 바로 말해준다.
―빨리 오라고 하는 소리다…… 듣는 녀석들도 바빠진 것 같은데…….
‘그래? 그럼, 더 빠르게!’
―대체 지금 뭘 하는 거냐?
‘못 들어오게 막으려고.’
―뭐?
드라고니아가 한껏 의아해했지만, 투란은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더욱 마그마 로드의 활동에 집중했고, ‘천칭’이 지닌 몬스터 에센스를 더듬어갔다. 이는 바로 요동치며 번져가는 마그마 속에 어렴풋이 반영되고 있었으니…….
꿈틀거리는 용암이 구근(球根)처럼 뭉치고, 둥근 뿌리에서 흘러나온 붉은 줄기는 바닥을 기어가는 뿌리처럼 번져갔다. 용암의 줄기가 닿은 곳에서는 은근히 검은 재가 피어올랐고, 곧 불꽃이 되어 번지며 새로운 용암의 이슬을 뿌려댔다.
마그마가 번져가는 속도는 광장의 풍경을 아주 빠르게 바꿔나갔다.
바닥을 칠하듯이 번져간 용암이 벽을 채색했고, 곧장 천장까지 물들여갔다.
사방으로 번져가는 용암의 광채를 보며 투란이 거대한 두 팔을 다시 끌어당겼고, 이제는 딛고 있는 바닥을 통해 용암의 흐름이 이어졌다.
이 상황은 곧장 드라고니아가 날카로운 낌새로 투란에게 경고하게 했다.
―투란!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은 한계가 있다! 이런 무모한 짓을…….
‘괜찮아. 무모하지 않아!’
투란은 빠르게 답하고, 보다 더 집중했다.
용암의 거인이 된 몸은 붉게 달아오르는 채로 끈적하게 출렁거렸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단단한 돌덩이로 울퉁불퉁해 보이던 바닥은 번져가는 마그마의 늪 속에 잠겨버리는 듯했고, 그저 평평하게 펼쳐진 용암의 연못이 찰랑거리며 데몬이 몸을 박아 넣고 있는 벽을 향해 흘러가는 모양이었다. 그 연못 위로 굵고 큰 용암의 기둥이 휘적휘적 움직이는 것, 이것이 투란의 걸음이었다.
그 걸음 속에서, 투란은 보다 짙고 선명해진 채로 놀라는 드라고니아의 ‘의지’를 들을 수가 있었다. 윌 라이트의 마력을 통해, 소리가 아닌 채로 전해오는 말이었다.
―이럴 수가…… 아무리 마그마 로드의 정수를 완벽하게 발휘한다고 해도…… 반경 70미터 범위를 모조리 제압하는 마그마를 형성시키고 제어하다니……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정말 괜찮은가, 투란?
그 말에 빠져 있는 부분의 의미가 선명하게 투란의 마음에 닿았다.
투란은 그 까닭을 금방 이해할 수가 있었다.
몬스터 로드가 거대한 괴물의 정수를 얻었다고 해도, 그 괴물의 형상을 원래 모습 그대로 형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드라고니아가 염려하는 중이고, 아주 당연한 걱정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몬스터 로드가 수십 미터 크기의 몬스터를 그대로 형성했다 하면 이는 곧 미쳐 날뛰는 폭동…… 몬스터 로드가 제정신을 잃고 광란하는 상태를 의미할 뿐이었다. 그런 광란에 의한 폭동은 아주 빠르게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을 소모하고, 실신(失神)한 상태로 쓰러뜨린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을 저지를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것이고!
‘나는 쓰러지지 않아.’
일단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깊은 염려에 대해 짧게 답했다.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분명히 마그마 로드를 제어한다는 것을 파악한 듯, 더 이상 말을 멈추고 고요하게 지켜보는 기척을 전해왔다. 그 고요함 속에 가득 담긴 의문,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이 궁금해하는 낌새가 너무 짙었기 때문에 투란은 어딘가 속이 간지러운 느낌이었고, 어쨌든 마음 한구석의 여유를 이용해 설명해줘야 했다.
‘조건이 갖춰진 거라고. 마그마 로드가 자신을 확장해서 퍼뜨릴 수 있는 조건. 네가 예전에 말했던 거 있잖아, 화염을 삼키고 흐른다며…… 저 녀석이 바위를 다루기 위해 쏟아내는 불, 그게 마그마 로드의 힘을 확장시켜 준다고.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의 힘을 발휘한다는 건, 그 몬스터가 성장하거나 힘을 확장할 기회를 그대로 얻어 쓸 수 있단 말이거든. 저 녀석의 불은…… 헬 임프를 다크 레이디나 둠고그로 만들고…… 아마 붉은 그랑츄에게도 파이로-칸의 능력을 일깨워주겠지. 하지만 그 무엇보다고, 불을 삼키고 흐르는 마그마 로드의 성질에 딱 맞아. 대강 알겠지?’
―그래,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기는 하는군.
여전히 뭔가 미심쩍어하는 드라고니아였지만, 투란이 큰 걸음으로 용암의 다리를 움직이며 문지기 앞에 가까워지자 더 따지지 않았다. 상황이 투란에게 꽤나 유리해 보이기는 하지만 다른 곳에 정신을 쏟으며 상대하게 할 만큼 가벼운 적이 아니라고 여기는 듯했다.
투란도 드라고니아의 기묘한 배려를 느꼈고, 좀 더 강하게 문지기를 압박하기 위해 용암이 팔을 들어 올렸다. 거대한 팔이었지만, 아직 문지기에게 닿기에는 짧았다. 하지만 팔뚝을 감싸는 나선의 무늬가 나타나는 순간, 문지기는 벽에서 튀어나오려는 듯이 외뿔을 앞으로 들이밀며 윗몸을 앞으로 당겨 기울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확실하게 투란이 이 용암의 팔을 내밀면 어디까지 용암의 기둥이 줄기줄기 뻗어나가는가를 안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에 대하여 대응하겠다는 듯도 했다.
콰륵, 키이익.
‘어?’
투란은 내민 팔로 문지기를 겨냥하면서, 문지기의 등에 아주 짧은 날개처럼 뭔가 펼쳐지는 것을 봤다. 널찍한 판처럼도 보이는 것이었고, 문지기의 등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고려한다면…….
―문을 열었다! 투란, 조심……!
불기둥이 솟구쳤다.
투란은 문지기의 등짝 문이 열린 것과 함께, 그 문에서 튀어나온 것을 다르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외뿔의 데몬은 두 팔, 두 다리를 벽에 붙들린 것처럼 파묻어놓고 한껏 윗몸을 당겨 기울인 채로 등의 문을 열어 불기둥을 뿜어낸 것이다.
붉은 안개에서 피어난 불길과는 질이 다른 짙은 주황색(朱黃色)이 불기둥은 굵은 물줄기처럼 기울어지는 호(弧)의 궤적을 남기며 투란이 내민 용암의 팔을 덮쳐왔다. 그 불기둥의 머리는 지렁이의 열린 입처럼 보였고, 드라고니아가 다시 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투란의 뇌리에 울린다.
―인페르널 웜(Infernal Worm)! 위험해, 저건…….
조금 전처럼 투란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가 없었다.
대신 드라고니아가 말하려던 것을 직접 체험했다.
용암의 팔을 덥석 물고 그대로 팔을 삼키며 밀려오는 불기둥…… 마치 용암 위에 두꺼운 불의 가죽을 덮어씌우는 듯한 꼴이었다.
“오으어?”
엉겁결에 투란의 머리 언저리에서 나온 소리는 웅웅거리는 기괴한 울림이 되고 말았다.
사람답게 반사적으로 투란은 어깨를 뒤로 빼며 물린 팔을 뺄 듯한 시늉부터 했다. 불기둥, 인페르널 웜은 이미 잔뜩 삼킨 팔을 놔주기는커녕 사방으로 불줄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더욱 세차게 불의 회오리처럼 맴돌면서 투란의 어깨까지…… 그대로 용암의 거인을 삼키겠다는 듯이 밀려온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한편으로는 물려 삼켜지고 있는 팔을 느끼면서 투란은…… 미친 듯이 소리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이상한 웃음에 대응하듯 바로 드라고니아는 윌 라이트를 통해서, 아주 침착하고 냉정하며 고요한 의지를 통해 말하려 했다.
―투란! 정신 차……려?
최대한 다독이는 말투로, 한편으로는 투란이 당황해서 이 상황에 대처를 못 하고 우물쭈물할 때를 대비해 마법까지 준비하던 드라고니아가 당황했다. 왜냐하면 웃고 있는 투란의 정신은 몬스터 엠블럼 ‘천칭’을 명쾌하게 두드렸고, 그 속에는 망설이거나 혼란스러워하는 흔적이 전혀 없었으니!
그리고 굉렬(轟裂)한 폭음(爆音)과 함께 불기둥이 사라졌다.
새까맣게, 그 검은 색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투명한 크리스털이 불기둥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용암의 팔을 대신하듯!
곧바로 드라고니아가 신음하듯, 경이(驚異)에 대한 순수한 감탄을 투란에게 보냈다.
―마그마 로드, 불을 삼키고 흐르는 대지의 결정(結晶).
‘아, 그래. 맞아, 이게 마그마 로드의 정수라고!’
소리 없이 외치면서 투란은 시커멓고 투명한 크리스털의 기둥을 휘둘러 외뿔 데몬을 움켜쥐어갔다.
그 등짝의 문은 아직 열린 채였고, 새로 돋아나고 흘러나온 연옥의 불꽃이 채찍처럼 휘날리며 크리스털의 공세에 대항했다.
촤아앙!
크리스털 위에 떨어진 불채찍이 짙은 색채만큼이나 선명한 소리를 울려냈다. 불로 이뤄졌지만 탄탄하게 채워진 것이라 과시하는 듯한 소리였다.
크리스털의 검고 투명한 광채 위로 붉은 흔적이 남았다.
이 흔적은 금방 달아오르면서 뚝뚝 떨어질 듯한 마그마의 이슬처럼 맺혔고, 곧바로 붉게 꿈틀거리는 줄기처럼 크리스털의 모서리를 따라 번졌다.
콰악! 쩌억!
크리스털 기둥은 거대한 손아귀를 열었고, 그대로 외뿔 데몬을 움켜잡아 벽에서 뜯어낼 듯이 당겼다. 하지만 외뿔 데몬, 문지기가 벽에서 떨어지는 대신 상하좌우의 수십 미터 벽이 통째로 뜯기듯 기울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등짝 열린 문에서 더욱 광폭하게 불길이 뿜어져 나왔고, 불기둥은 아니지만 불의 뱀은 될 듯한 가닥들이 마구 날뛰었다.
그 덕분이라는 듯, 용암의 색채 사이에서는 계속해서 크리스털의 조각들이 튀어나왔으니…… 문을 열고 번져 나오는 연옥의 불꽃이 짙어질수록 시커먼 크리스털이 두껍고 빠르게 용암을 메우듯이 채워 나간다.
훠우워어!
문지기의 외뿔 아래에서 끔찍한 음향이 퍼져 나왔다.
크리스털의 검고 투명한 광채가 흔들렸고, 용암 위로 짙은 파문이 찰랑이며 퍼져 나갔다.
‘꽤 센데?’
투란은 헬 스크림에 새삼 감탄했다.
마그마 로드의 감각은 마비되거나 멈추지 않았지만, 수정과 용암을 관통하듯이 울려 퍼지는 이 음향은 정말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도 이 정도 소리를 지를 수 있다니, 정말 데몬이라는 것을 놓고 방심할 수 없는 듯하잖은가.
―비명 지른 거야. 뭔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듯한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어디를 말하고,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군.
드라고니아가 한숨 쉬듯, 쓴웃음을 짓는 듯한 낌새로 말했다.
투란에게는 무슨 뜻인지 전혀 납득이 가는 말이 아니었다.
‘돌아가? 뭔 소리야.’
―글쎄, 나도 무슨 말인가는…… 응?
‘응?’
훼에엣!
문지기가 외뿔을 마구 흔들면서, 그 바위몸을 움켜쥔 크리스털의 거대한 손에 매달려는 듯한 기묘한 움직임으로 다시 헬 스크림을 질러댔다. 뭔가가 무서운데, 바로 앞에서 자신과 싸우는 투란에게 오히려 기대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듯한 모습, 그 태도와는 상관없이 문지기랑 함께 뜯겨 나온 벽이 꿈틀거렸고…… 거대한 나방의 날개처럼 펼쳐지면서 갈라졌다가 큰 손아귀처럼 투란을 덮쳤다.
용암과 수정이 뒤섞인 거인의 몸통이었지만, 이 손아귀는 너무 컸다.
콰르릉!
돌이 움직이는 소리가 요란했고, 날개가 합쳐지듯이 손뼉 치듯이 맞물린 바위벽의 손아귀는 그대로 용암과 수정의 거인을 뭉갤 듯이 부딪혔다. 그 틈새로 굵은 불줄기가 거침없이 뿜어지고, 불길이 장막처럼 펼쳐졌다.
차랑거리는 기묘한 음향이 천장과 바닥까지 모두 칠해놓은 용암의 표면(表面)을 울리며 퍼졌다.
―투란?
드라고니아는 조심스럽게 부르고 있었다.
외뿔 데몬, 문지기가 뭔가를 두려워하며 내지른 마지막 공세, 거기에 용암과 수정의 거인은 완전히 물린 꼴이 되었다. 하지만 마그마 로드의 형상은 아직 사방을 꽉 채우고 있었고, 한숨짓는 듯한 기척으로 잠시 고요한 투란이 크게 다친 낌새가 전혀 없다.
‘아아, 괜찮아. 그런데…… 저게 뭐래?’
문지기가 박혀 있던 벽 너머로, 시커먼 공간이 열렸다.
살아 있는 듯이 꿈틀거리는 기묘한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