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0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04)
날갯짓 혹은 손뼉이라고 할 수 있는 문지기의 마지막 발악하는 짓 덕분에 기울어졌던 벽이 완전히 치워지면서 나타난 공간이었다.
‘에, 저거 분명히 어디서 본 느낌이지?’
―보기만 했냐? 겪었잖아. 맞아, 틀림없다.
‘나 거기서 완전히 벗어났잖아? 제란드까지 데리고 나왔다고.’
―그랬지. 하지만 그렇게 멀리 온 것도 아니지. 뭐, 이 정도 거리면…… 충분히 이 땅 밑에 직접 이어진 부분이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군.
‘아, 진짜! 저놈의 미로는 소금 들판으로 이어진 거라 이쪽에는 없을 거라며!’
―알 게 뭐냐, 저기 있는데 어쩌라고.
‘헐?’
투란은 시커멓게 열린 ‘광야의 미로’를 바라보며, 아주 무책임하게 답하는 드라고니아의 뻔뻔함에 감탄하는 소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콰드드득!
잠깐 눈길을 드러난 검은 구멍에 보내면서 주의가 산만해진 틈을 노리듯, 거대한 나방의 날개…… 넓고 큰 손아귀가 세차게 붉은 용암과 검은 수정의 거인을 으스러뜨리려는 압력을 뿜어냈다. 그 결과는 굵은 손가락의 마디까지 선명하게 드러낸 나방의 날개가 뒤틀리고 금이 가는 끔찍한 음향을 낳았으니…….
투란은 곧장 데몬의 외뿔을 움켜쥐었다.
검은 수정의 두 손이 붉은 용암의 힘줄을 꿈틀거리면서 바위로 이뤄진 데몬의 뿔을, 그 목을 잡고 조이자 곧장 ‘지옥의 절규’가 터졌다.
곧장 용암과 수정을 울리는 짙은 파문이 번져갔다.
찰랑이는 용암은 파문의 형상을 물결처럼 드러나게 했고 수정은 짙게 치링거리는 소리로 ‘지옥의 절규’에 대꾸하는 듯했다.
쩌엉! 콰앙!
돌이 갈라지고 크게 터지는 소리가 헬 스크림을 잇듯이 터졌다.
외뿔은 부러졌고 데몬의 목도 깨졌다.
주황색 불길이 방향을 잃은 듯이 뻐걱대는 무거운 돌문, 데몬 문지기의 등짝에서 격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불의 가닥이 용암과 검은 수정과 어우러지면서 맴돌았다.
투란은 바닥에 떨궈지는 데몬의 바위 몸을 그대로 용암 늪으로 빠뜨리려는 듯이 내리밟았다. 거인의 다리에서 흘러내린 용암, 바닥에 고여 있던 용암이 엉키면서 바위 몸통이 형체를 잃어가듯이 녹아갔다.
그 광경을 데굴거리는 마그마의 눈알로 확인하며 투란은 다시 벽 너머에 감춰져 있던 구멍을 살폈다. 분명히 ‘광야의 미로’가 뻗어낸 잔가지 같은 통로였다. 벽 너머의 공간에 솟구친 작은 우물처럼 자리 잡은 모양이 조금 특이해 보이기는 하지만, 제란드를 끌어내기 위해서 헤매던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스톤 가드인가 뭔가 나오는 거 아냐?’
문득 투란은 기억해냈다.
저 기묘한 미로는 안에서 뭔가 벗어나려 하면 분명히 돌로 된 이상한 놈이 쫓아 나오는 곳이었다. 어쩌면 그놈을 막기 위해서 문지기도 여기에 벽을 쌓아 막아놓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잖는가?
―투란, 문지기의 몸을 봐라.
‘몸? 돌이잖아? 바윗덩이…… 어?’
드라고니아의 새삼스러운 말에 당연하게 답하던 투란은 퍼뜩 알 수밖에 없었다.
용암에 녹아내리는 문지기, 데몬의 바위 몸에서 주황색 불길이 사라진다면 이놈이 바로 스톤 가드라고 확신할 수 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의아함에 투란은 물었고, 주변의 용암은 끈적하게 드러난 구멍의 주변을 감싸듯이 번져갔다. 뭐가 나오든, 앞으로 어떤 묘한 일이 벌어지든 투란은 일단 저 구멍을 막을 준비를 하는 셈이었다. 소금의 정원에서 그랬듯이…….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했지만 상관없다는 말투로 묻는 말에 답한다.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야. 이 데몬, 문지기는 오래전에 고대악마종이 만들어낸 살아 있는 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연옥으로부터 소환해낸 것이지. 이걸 이용해서 헬 임프를 끌어내고 성장시키거나 변이시켜서 자신들의 군단으로 부려먹었다. 그러니까 그 군단과 싸우는 입장에서는 이런 문지기를 오래 두고 볼 수가 없었어. 당연히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없애야 했고…….
‘아항, 저 미로 구멍 속에 처박기도 했겠군! 거기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나온 건가? 그런데 왜 스톤 가드의 바위 몸이지?’
―녀석이 다룰 수 있는 암석류잖아. 스톤 가드에 들러붙는 게 쉽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미로 속에서 죽지 않고, 파괴당하지 않은 채로 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면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겠지. 그리고 성공해서 이리로 미로 구멍을 뚫고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저번에 너네 드라고니아가 여기를 조사했을 때는 없었고, 나중에 기어 나온 거?’
―그건 알 수가 없다. 저길 봐, 구멍 주변에 카보닉의 흔적이 보이잖아.
‘어?’
투란은 새삼 용암에 덮이면서 스러져 없어지는, 그러나 구멍 주변에 눅눅한 느낌으로 달라붙어서 바스락거리는 미묘한 꿈틀거림을 보이는 숯의 얼룩을 알아봤다. 확실히 카보닉이었다. 그 주변으로 주황색 얼룩처럼 보이는 옅은 불꽃도 있었다.
―여기는 깊다, 투란. 너처럼 직접 뛰어들고 안쪽에서 프로브를 던져 넣었다 해도 이 깊이에 도달하지 않는다면 여기서 벌어진 일을 알 수 없었을 수도 있어. 임프의 정원 암벽은 생각보다 높기도 하니까…… 스카우터가 하늘 높이 스쳐 가며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경우이기 쉽지.
쿠웅, 콰앙!
세차게 바닥을 딛으며, 움찔거리는 바위 몸을 보다 확실하게 밟아 으깨면서 투란은 마그마 로드의 결정을 주변으로 좀 더 짙게 퍼뜨렸다. 미로의 구멍 주변으로 검은 수정이 덧씌워지며 카보닉의 숯더미까지 조이도록…….
‘아무래도 이거 몬스터라고 하기는 좀 애매하네. 불길도 금세 사라지고…… 녹아 없어진 부분에서는 몬스터 에센스도 없는 것 같고…… 이게 대체 무슨 느낌이지?’
투란은 으깨지고 조각나서 용암의 열기에 녹아 사라지는 데몬의 바위 몸통을 보며 투덜거렸다.
―마법이다, 투란. 고대악마종, 그들이 사용하던 독특한 마법이 깨져나가는 거야. 살아 있는 마법이 으스러지는 것을 네가 느끼는 거다.
드라고니아의 설명에 투란은 갸웃했다.
‘카보닉은…… 저것도 비슷한 느낌이지만 몬스터 에센스가 있다고.’
―저건…… 현상(現狀)이 살아 있는 마법과 결합함으로 만들어진 몬스터였던 모양이다. 광야의 미로, 인페르노의 불길, 살아 있는 마법으로 이뤄진 문지기…… 이 복잡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태어난 듯하다. 불의 성질을 지닌 채로 번져가고, 불처럼 재를 만드는 대신이 숯과 다이아몬드를 남기는 꼴로 말이야.
‘흠…….’
투란은 구멍을 노려보면서, 용암 몇 방울을 카보닉의 얼룩을 향해 던져봤다.
마그마 로드의 용암과 만난 카보닉은 바로 붉은 방울을 피어 올리다가 용암 속에 녹아들었다. 그 상황을 주의 깊게 느끼면서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을 조금 납득할 수 있었다.
문지기 데몬이 바위를 이용해 팔을 만들고 몸을 만들 듯, 카보닉도 뭔가 다른 것에 빠져들면서 만들려 하는 듯했다. 다만 그 결과는 숯이나 다이아몬드, 그런 기묘한 결정(結晶)을 형성할 뿐이고…….
‘어쨌든 카보닉이 새로 생길 일은 없는 건가?’
불쑥 투란이 꺼낸 물음에 드라고니아가 잠깐 한숨을 쉬는 듯하다가 답한다.
―여기서 새로 생기는 것을 막았다고 해도, 이미 암벽 전체에 번져 있는 것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야. 게다가 광야의 미로와 닿은 부분, 저게 미로 안으로까지 번진 채라면…… 세상 어딘가에 미로를 통해서 다시 나타날 수도 있겠지.
‘그러네. 저 꼬맹이들이 돌에 묻혀 던질 정도였으니까, 여길 정리한다고 해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겠구나.’
왜인지 모르겠지만 투란은 살짝 아쉬운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기분에 더 몰입할 수는 없었다.
쿠릉, 쿠르르.
미로의 구멍이 검게 출렁이면서 허공을 뒤흔드는 울림을 토해냈으므로!
‘스톤 가드가 나오는 건가?’
투란은 그 울림이 이전에 느낀 바와 어딘가 닮은 것을 느끼면서 긴장했다.
여기에 벽을 만들던 놈, 스톤 가드에 덧씌워진 채로 미로에서 벗어나 이곳에 둥지를 틀었던 놈을 얇은 용암의 늪에 다 녹여 없앴다. 즉, 스톤 가드를 마그마 로드에게 먹어치우게 한 셈이었다. 미로의 경험을 되살린다면, 이렇게 손실된 부분을 다시 채워서 그 의무를 다하려는 스톤 가드가 새로 몰려온다!
―조금 다르지 않나?
드라고니아가 뭔가 미묘하게 다른 감각을 짚으면서 대꾸했다.
‘낯익잖아, 뭐가 다르다고?’
―좀 지나치게 낯익지 않나?
‘응? 지나쳐?’
우르르! 콰아아!
검은 구멍이 일렁거렸고, 그 안에서 보다 시커먼 광택의 뭔가가 뿜어지는 듯한데…… 구멍은 순식간에 시커먼 윤기를 과시하는 덩어리로 채워지고 메워졌다. 검은 돌, 어딘가 흑요석(黑曜石)의 느낌이 선명한 돌은 살아 있는 것처럼 꾸물거렸고 툭툭거리며 넝쿨의 줄기, 혹은 뿌리와 같은 가닥을 표면에 드리웠다. 그 가닥은 곧장 허공으로 쑥쑥 가지를 치듯 뻗었고, 흑요석을 닮은 덩어리에서는 새롭게 붉은 줄기가 툭툭 불거져 나오며 허공으로 뻗어나온 곁가지를 뒤따르듯이 더듬으며 퍼졌다.
투란이 여기서 완전히 낯익은 뭔가를 보게 된 것은 저 시커먼 돌가지가 붉은 색의 무늬를 얼룩처럼 두른 다음이었다. 이는 허공에 뚫린 듯한 구멍을 꽉 채우고 메워버린 듯한 바윗덩어리가 붉게 데굴거리는 눈알을 드러낸 순간이기도 했다.
“어으?”
뭔가 말이라 할 수 없는 괴상한 소리가 마그마로 이뤄진 두부(頭部), 투란의 얼굴 쪽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투란은 자신이 저 바위랑 똑같이 마그마의 눈알을 데굴거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네가 뿌린 씨잖아! 이렇게 빨리 다시 만날 줄은 몰랐는데!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어하며 외쳤다.
‘그, 그러게?’
투란도 어쩔 수 없이 드라고니아에게 동의해야 했다.
미로의 가닥, 구멍을 메운 저 흑요석 바윗덩이는 투란의 고유 마력을 품고 있었고…… ‘천칭’을 근원으로 삼은 채로 성장한 몬스터 로드의 몬스터 파편이었다!
‘가, 가까워서 이리로 금방 나와본 건가?’
투란은 뭔가 스스로 생각해도 아닌 듯한 생각을 떠올려봤다.
소금의 정원, 거기 열렸던…… 투란과 제란드를 쫓으려 하는 스톤 가드를 뿜어내던 구멍을 메우려고 분리시키고 독립시켜놨던 마그마 로드의 파편이었다. 불과 며칠 되지도 않은 자신의 일부가, 이렇게 몇 십 년 묵은 느낌으로 돌아오다니!
―몇 십 년?
투란이 느낀 바를 더듬듯이 드라고니아가 웅얼거렸다.
그리고 투란은 곧 그 웅얼거림에 담긴 의혹, 자신이 느낀 바가 지니고 있는 깊은 의문을 금세 깨달았다.
‘이거 큰데?’
용암과 검은 수정으로 만들어진 채 우뚝 선 거인의 형상, 투란은 여전히 그 모습인데 이 구멍을 메운 파편은 이보다 컸다!
투란 스스로도 이 정도 크기를 만들기 힘겨웠고, 인페르노의 영향력을 받은 다음에야 쑥쑥 키웠는데 저건 문장의 근원에서 떨어져 나간 주제에 어찌 저리 큰가!
벽으로 구멍을 감싸 막았던 데몬 문지기의 체격조차도 작게 만드는 크기, 거의 천장과 바닥에 두툼한 기둥처럼 놓인 바윗덩어리는 마그마 로드의 파편으로 보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지금 상황은 마치 저 크고 무거운 바윗덩어리에서 투란과 용암의 잔해가 흘러내린 채로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편이 더 어울렸다.
쿠릉, 쿠르륵.
투란은 바위가 붉은 용암의 눈알을 끔벅이다가 가늘고 긴 가지를 내미는 것을 봤다. 거친 음향이 바위의 무거운 움직임을 설명하는 듯했고, 아래로 흘러내린 다른 가지를 통해 자신의 근원과 다시 맞닿으려는 의지가 분명하게 전해져 왔다.
마치 투란에게 어찌 이 짧은 시간 동안 이리도 많이 변했느냐고 되묻는 듯한 느낌이 섞여 있기도 했다. 그러니까 얼른 다시 맞닿아 알고 싶다는 듯한…….
‘그래, 나도 궁금하다.’
마음으로 느낌에 답하며, 투란은 두 팔을 내밀었다.
꿈틀거리고 끈적한 용암의 팔에 검은 수정이 손바닥이 되어 매달린 듯한 채로 거대한 흑요석에 닿았다.
순간,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 ‘천칭’ 깊은 곳에서 맹렬하게 끌어올랐고 마그마 로드의 형상 전체에 파문처럼 퍼져 나갔다. 미로의 구멍을 메운 채인 거대한 덩어리가 붉게 달아오르며 이에 호응했고…….
‘아, 진짜로 며칠이 아니라 몇 년이 넘었어!’
투란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제란드를 데리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시간, 투란에게는 며칠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그 짧은 시간이었지만 ‘광야의 미로’를 막으며 그 안에서 헤매다가 이 새로운 구멍을 찾아 나온 마그마 로드의 파편에게는 몇 년의 세월이었다.
드라고니아가 말하던 시공(時空)의 유리(遊離)가 어쩌고 한 이야기가 이런 뜻인가 싶다.
문득 투란은 지금 이 자리에 노출된 마그마 로드의 파편이 미로를 막고 있는 전부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미로에는 수많은 가지가 있었고, 그 가지는 제멋대로 어디론가…… 이 세상의 어딘가로 길을 열고 있었다. 스톤 가드는 그 길을 봉쇄하기 위해 활동하는 중이고, 투란이 남겨놓은 마그마 로드의 파편 또한 열린 구멍을 이렇게 메우고 막기 위해 움직인다!
단순히 ‘소금의 정원’에 열렸던 작은 통로를 막고 끝나지 않았다.
투란에게서 태어나 흘러나간 마그마 로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