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0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05)
‘저 안에서 짧게 보낸 시간이 밖에서는 길어지는 거 아니었나? 이건 내가 겪은 거랑 완전히 다르잖아?’
투란은 기억을 되새기다가 어리둥절했다.
시알라 남매 셋이 제란드와 자신을 기다리며 보낸 시간은 열흘이라고 했지만 안에서 뛰쳐나온 자신이 보낸 시간은 불과 몇 시간이 아니었던가. 어째서 이 지하 암벽의 구멍으로 튀어나온 마그마 로드의 파편은 그때 투란이 겪은 바와는 아주 반대되는 상황인가?
그냥 반대인 경우도 아니고, 시간의 흐름이 그야말로 수십 배를 넘어서는, 거의 수백 배 차이가 나는 경우라니!
―미로 안의 시간과 공간은 온통 제멋대로니까. 시간의 흐름이 온통 제멋대로라는 거는 너도 겪었잖아. 짧은 틈새 사이에서도 뒤죽박죽이라서 크리스털 애시까지 꺼내 그 흐름에 버틴 걸 기억해라. 그 덕분에 그냥 몇 시간을 경험한 느낌이 남은 거야.
‘그런가.’
문득 제란드가 어떤 꼴이었던가를 기억해내면서 투란은 어느 정도 납득했다.
한 몸으로도 전혀 다른 시간을 겪게 되는 곳, 바로 저 ‘광야의 미로’ 속이었다.
‘크리스털 애시’로 이뤄낸 크리스털 캐슬의 몸을 어느 정도 형성하며 대처했기 때문에 투란에게는 몇 시간 정도의 체험만 남았을 수도 있다.
상황에 대한 이런 납득은 곧바로 투란을 조금 더 궁금하게 했다.
과연 이렇게 한 가닥의 미로를 따라와 구멍을 막은 마그마 로드의 파편이 있다면, 그 구멍 깊은 곳의 마그마 로드의 다른 파편은 어떤 상태일까? 이어져 있을까? 모두 길마다 끊어진 채일까?
우우웅!
투란이 품은 의문에 답하듯, 투란보다 큰 마그마 로드의 파편이 깊고 그윽한 울림을 토해냈다. 그 울림은 곧바로 투란의 몸, 보다 붉고 찰지게 출렁이는 마그마와 검은 결정의 살갗으로 스며왔고…….
―응? 이건 대체!
투란보다 먼저 드라고니아가 놀란 외침을 흘렸다.
‘우하아― 와앗!’
투란도 비명을 지르는 듯한 기분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광야의 미로’라는 이름이 붙어 있기는 했지만 그곳은 어둠과 기묘한 시간의 흐름이 제멋대로 뒤엉켜 있을 뿐인 텅 빈 곳에 불과했다. 그곳을 채우는 것은 대부분 어디선가 끌려들어 왔거나, 운 나쁘게 빠져버린 존재…… 산 채로 빠지고 끌려들어 와도 금세 이상한 몰골의 죽은 자가 되어 형체로만 흘러다니는 곳이었다. 방향을 분별할 수도 없고, 분별해도 의미가 없는 아주 기괴한 영역…… ‘광야의 미로’라는 이름이 왜 붙어 있는가 어리둥절하게 하는, 땅도 하늘도 호수도 아닌 이상한 곳이었다.
때문에 그 안에 빠져들었을 때 투란은 ‘크리스털 애시’를 변화시킨 실 가닥으로 간신히 제란드의 위치를 잡고 움직여야 했다. 그 움직임 속에서도 도대체 자신이 위로 오르는 건지 아래로 빠지는 건지 옆으로 튕기는 건지 구분할 수 없다는 것만 잔뜩 느꼈을 뿐이었다.
한데 그런 미로의 한편에 뚫린 구멍을 막기 위해 남겨두었던 파편…… 투란 자신의 파편이면서 몬스터의 파편일 수밖에 없는 마그마 로드의 형상이 그 뭔지 알 수 없는 어둠과 텅 빈 곳을 채워가고 있었다. 가늘고 긴 포석으로 이뤄진 길처럼, 이정표(里程標)처럼 버티는 큰 바위처럼!
광활하기 이를 데 없는 이상한 미로를 완전히 채울 수는 없다고 느껴지고 있지만, 마그마 로드의 형상이 끊어지지 않고 끈질기게 이어지면서 미로를 지키는 스톤 가드와 미로에 떠도는 것들을 집어삼키며 차지하는 광경이란…….
‘성벽(城壁)을 쌓는 건가? 아니, 그냥 성채(城砦)를 짓는 건가!’
투란에게 여러 층으로 쌓아 올리고 미로처럼 복잡한 복도를 지녔다는 성의 이야기를 바로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단지 그 성이 너무 길고 가늘게 이어진 끈으로 만들어졌고, 간간이 세워진 바위로 만들어진 꼴이 괴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말로만 듣던 성이라면…… 도시를 품은 성이라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만?
‘어? 아냐?’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심상에 살짝 당황한 듯이 말하고 있었고, 은근히 실망한 낌새로 투란은 시무룩한 기분을 담아 되물었다.
―성이란 어쨌든 크더라도 한자리에 뭉쳐 있는 거라고! 저건 미로의 가닥을 따라 길게 그물질하는 것처럼 늘어져 있고…… 성을 찢고 토막 내서 미로 안에 뿌려놓은 채로, 끊어지지 않게 가늘고 긴 끈으로 겨우 이어놓은 꼴이지!
‘음, 어쨌든 성이랑 닮기는 했지?’
실망한 자신을 위로하려는 것처럼 드라고니아가 박살난 성의 풍경이 미로 안에 흩어진 채라면 닮았을 거란 말을 꺼내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곧바로 씩씩한 기분을 뿜어냈다.
―안 닮았다고!
약간 누그러진 듯하지만 드라고니아는 한숨처럼 답하고 있었다.
투란도 더 따지지 않았다.
대신 투란은 생각했다.
‘이거 이대로 놔둬도 되나? 스톤 가드를 녹여 삼키고, 이것저것 떠다니는 것을 만나면 잔뜩 먹어치우면서 자라난 것 같잖아.’
마그마 로드는 바위를 녹이고, 마그마를 흘리며 영역을 넓힌다.
한자리에서 오래 머무는 것은 일도 아니었고, 결국은 방대한 호수처럼 자리 잡는 것이 당연한 몬스터였다.
그런 몬스터가, 비록 몬스터 엠블럼으로 형성한 파편일지라도 몬스터처럼 활동하게 놔둔 녀석을 이대로 성장해서 계속 자라나게 둬도 괜찮은 것인가?
지금이야 꽤 컸다고 해도 여전히 투란에게 반응하고 있었고,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에 공명(共鳴)하며 분명하게 몬스터 엠블럼에 귀속(歸屬)된 존재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기는 하는데…… 만약 투란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형상까지 성장하게 되면 그다음에는 어찌 될 것인가?
이런 파편을 흘려놓은 몬스터 로드, 투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감당할 수 없을 규모의 몬스터를 형성했던 몬스터 로드란, 결국 폭동과 광란을 일으킨 자일 뿐이다. 이렇게 분리시켜 독립한 몬스터가 그런 거대한 규모를 갖추게 된다면…… 본체 혹은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몬스터 로드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투란은 그런 경우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드라고니아가 잠깐 머뭇거리며 뭔가 망설이는 듯하다가 말한다.
―이제 와서 그런 걱정을 하는 게 어이없다만…… 그렇게 걱정할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문장의 고유 마력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몬스터 형상이 괴멸하면서 역류현상(逆流現狀)을 일으킬 테고…… 음, 흔히 말하는 몬스터 로드의 폭동이 잠시 일어났다가 가라앉는 정도일걸…….
‘뭐? 이보세요! 폭동이라니! 대체 왜! 아니, 잠깐! 그렇게 되는 걸 어떻게 알지?’
몬스터 로드가 가장 피하려 하는 폭동을 가볍게 말하는 태도에 발끈하던 투란은 곧 드라고니아가 어떤 지식, 무슨 이야기를 감추고 있는 것을 깨달으며 물어야 했다. 아무래도 투란이 듣지 못한 몬스터 로드의 이야기를 아는 듯한 낌새가 이렇게 무럭무럭 피어나는 경우를 처음 보이는 드라고니아잖은가.
씁쓸하게, 한편으로는 여전히 꺼리는 기색을 가득 담고서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물음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한다.
―인페르노의 재앙…… 전에 잠깐 이야기했던 것 기억하나?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너에게 그게 어떻게 수습되었는가를 말하지 않았다. 일부러 피했지. 뭐, 그때는 파이로-칸과 마그마 로드와 얽힌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기도 했었고…… 그 재앙을 수습해낸 이가 몬스터 로드였고, 지금 네가 떠올린 일을 직접 겪기도 했었다. 그때의 기록이 드라코눔에 남겨져 있어. 난 그 기록을 읽었다.
‘인페르노? 음, 좀 자세히 말해줘. 어떻게 겪었고, 어떻게 해결 봤지? 그냥 폭동을 일으키고 날뛰다가 죽었다든가 뭐 그런 이야기라도 상관없으니까, 아는 대로 좀 말해줘.’
투란은 최악이라 할 수 있는 참혹한 상황까지 염두에 둔 채로 물어야 했다.
몬스터 로드의 폭동, 광란이 좋게 끝나는 경우란 흔히 말하는 기적(奇蹟)이었다. 그리고 보통 기적이란, 절대로 일어날 리가 없다는 뜻이고! 샤오덴 할배의 비웃음 섞인 말에 따르면, 기적이 일어났다고 호들갑 떠는 것은 손 놓고 구경하던 것들이 그 일을 해낸 이들의 노력과 열정을 인정하지 못해서 지껄이는 헛소리라고 했다. 그러니까 뭔가 기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일이라면, 열정을 가득 담은 노력으로 길을 찾아야 할 일이라고…….
만약 과거 누군가가 투란이 지금 겪은 일을 겪어냈다면, 설혹 그 누군가가 실패를 했다 하더라도 투란에게는 성공의 열쇠가 될 경험을 남겼을 수 있다!
이렇게 각오와 생각을 굳히며 슬슬 끓어오르는 듯한 투란의 기분을 느낀 듯, 하지만 이를 가라앉히려는 듯이 보다 차갑고 단정한 말투를 유지하며 드라고니아가 이야기를 잇는다.
―벨카인, 정확하게는 벨카인 가문의 카엘이라는 인간이었다. 대마도사 카엘의 이름을 부여받았다고 하지만, 마법에는 전혀 소질이 없었다더군. 인간의 관습이 얼마나 괴상한가를 보여주는 본보기 같은 경우인데…… 아니,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그런 게 아니고! 벨카인 카엘은 무투(武鬪)에 뛰어난 자질을 지녔고 오러 윌더로 뛰어난 재능을 꽃피웠다. 그러나 가끔 나타나는 강력한 몬스터 앞에서는 오러 윌더가 설 자리가 없는 경우가 많았고, 벨카인 카엘은 몬스터 로드가 되었다. 그리고 인페르노의 재앙이 시작되었을 때 몬스터 로드로서 맞섰다…… 정확하게 짚자면, 인페르노의 재앙에 맞선 수많은 이들 중 한 명에 불과했었지. 그가 인페르노의 몬스터를 삼키고 그 불꽃의 재앙(災殃)을 자신의 능력으로 삼기 전까지 말이야.
‘인페르노의 몬스터? 아까 봤던 그 길쭉한 불덩이 벌레 같은 거?’
―비슷하다. 다만 단순히 작은 틈새로서 문을 열고 일시적으로 형성되는 인페르널 웜과는 다르게, 완전히 독립된 채로 날뛰는 괴물이야. 정확하게 어떤 형상, 어떤 특성의 괴물인가는 몰라. 다만 우리 선조(先祖)의 추측에 의하면 파이어그릴과 닮은꼴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아무튼, 벨카인 카엘은 인페르노의 몬스터 로드 카엘이 되었고…… 불을 불로 막는다는 발상에 따라서 인페르노의 재앙에 맞섰다. 저 연옥의 겁화가 닿는 곳에 뛰어들어 자신의 몬스터인 인페르노의 형상을 내뿜어 그 불길을 삼키기 시작한 거야. 그리고 어느 순간, 카엘의 불꽃이 인페르노의 재앙을 일으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 그때 카엘은 퍼져가는 인페르노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서…… 자신의 일부를 따로 부리는 방법, 자신이 형성한 불꽃으로 이뤄진 군단을 생각해냈고, 실현했다. 그래, 꼭 투란 너처럼…… 네가 마그마 로드의 조각을 흘린 것처럼, 그는 인페르노 몬스터의 파편을 사용한 거지. 아니, 어쩌면 너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었지. 그가 뿌린 인페르노의 형상은 제각각 생각하면서 흩어졌고, 정말 군단으로서 기능했으니까. 그리고 네가 걱정하던 때가 찾아왔다. 독립된 인페르노의 군단이 카엘 자신의 의지를 넘어서서, 자신들의 본능에 따라 활동하려 든 거야. 그리고 그때 카엘은 광란했고, 인페르노의 폭동을 일으켰다.
‘으아, 그래서 죽은 거야? 아니, 많이 죽였나?’
투란은 몬스터 로드의 흔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렇게 물어야 했다.
드라고니아가 곧 쓴웃음 짓는 듯한 말투로 답한다.
―아니, 카엘도 너처럼 그 상황에 대해서 염려했고 그에 대해 나름대로 대비를 했다. 그래서 흔히 이야기되는 참극 따위는 없었지.
‘그래? 어떻게 대비했는데?’
―춤추는 산맥 안으로 들어갔지.
‘에, 뭐?’
―지금 여기보다 더 깊은 산맥 안쪽으로 숨듯이 사라졌다고! 그다음, 카엘의 인페르노 군단이 그 뒤를 따랐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은 군단의 근원이었고, 카엘의 의지를 넘어선 순간에도 그 상태에는 변함이 없었지. 그러니까 군단은 재앙을 물리치고, 재앙이 되기 전에 이 산맥 안으로 사라진 셈이었어.
투란은 잠깐 할 말을 잃었다.
산맥에서 벗어나려는 투란에게 이 이야기는 대체 뭔가!
‘광야의 미로’를 채우고 있는 마그마 로드의 파편이 걱정되면, 발길을 돌려 도로 저 산맥 안으로 들어가라고!
‘야!’
뭔가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저절로 울컥하는 기분이 으르렁거림을 토해내게 하잖는가!
―끝까지 들어!
드라고니아도 살짝 울컥한 듯이 외쳤다.
투란은 주춤했고,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카엘의 광란, 그 폭동은 인간 쪽으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감당할 수 없게 된 몬스터를 짊어지고 스스로 산맥에 잠적한 것뿐이라고 여겨졌지. 하지만 그때 우리 선조들은 그를 추적해 이 안 깊이 들어왔고, 어떻게 되었는가를 확인했어. 덕분에 우리는 그 상황에서 카엘이 광란하고 폭동을 일으킨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폭동은 그렇게 길지 않았고, 광란이라고는 해도 카엘이 제정신을 잃지 않은 상태를 유지한 것도 확인했다.
‘뭐야, 그게? 정신 줄 놓지 않았는데 광란이라니? 그런 광란도 있어?’
투란으로서는 이 의아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제정신이 아닌 것, 정신 줄 놓고 미쳐 날뛰니까 광란(狂亂)일 텐데 이게 무슨 말인가?
―카엘은…… 그냥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고 해. 산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흩어진 자신을 향해 외치듯이 한 사흘 정도를 소리 지르고 있었다는 거야. 멀쩡한 인간이 할 짓은 아니잖아? 그래서 일단 광란이라고 하는 거고…….
‘아니, 그게 뭐야?’
투란은 납득할 수가 없었고, 한층 더 의아했다.
도대체 소리지르는 것이 폭동과 뭔 상관이란 말인가?
이런 궁금함은 곧장 한번 해보면 알 수 있는가 하는 기분을 투란의 가슴에 담았고, 마그마 로드의 본능이 바로 호응을 했다!
우우웅!
―야!
문지기라 불리던 데몬의 헬 스크림을 짓이길 듯한 웅장한 음향이 곧장 마그마 로드의 형상으로부터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