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0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07)
―골든 서클로부터 마력을 끌어오는 마법의 각인을 만들자는 말이다. 알기 쉽게 말하면, 파워 서클의 축약된 형태를 이곳에 그려놓자고. 그렇게 하면 네가 뿌린 마그마 로드에게 끊이지 않는 마력을 지원할 수가 있어. 그리고 그렇게 지원되는 파워 서클의 마력은 저 미로에서 튀어나올 어긋난 존재를 바로잡는 데 아주 효과적이지.
‘마그마 로드에게 파워 서클의 마력을……?’
투란은 미심쩍어하며 물어야 했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고 해도 마그마 로드는 마그마 로드, 몬스터였다. 본신이라 할 수 있는 몬스터 로드에게서 벗어난 채로 독립해서 움직이고 있다면, 영문을 모르는 낯선 이에게는 그저 몬스터일 뿐이다. 거기에 마력을 지원해준다고 해서 무슨 차이가 생길까? 게다가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란 부분을 다시 짚어본다면…… ‘천칭’은 황금매와는 다른 문장이고 마법을 거스르는 순수한 고유 마력을 지녔을 뿐인데?
의지를 기반으로 하는 윌 라이트, 이는 투란 자신이 이미 품고 있는 드라고니아의 능력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에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지만, 파워 서클의 마력을 받아들이는 각인을 남겨서 ‘천칭’의 마그마 로드를 지원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낯설고 이상하게 여겨지는 일이다.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품은 의혹에 바로 답한다.
―윌 라이트로 그 격차를 메울 수 있다. 황금매 쪽이든 천칭 쪽이든 너의 문장이니까. 너의 의지를 기반으로 형성한 윌 라이트라면, 너로부터 비롯된 고유 마력의 특성을 파워 서클의 축약본에 함께 새겨 넣어서 네가 독립시킨 마그마 로드를 지원할 수 있어.
‘헤에? 그런 것도 되는구나.’
뭔가 설명을 듣고 나니 당연하게 느껴졌고 새삼스럽게 무슨 의심을 했는가 싶은 생각이 투란의 뇌리에 스쳐 갔다. 마법이란 원래 그렇게 이상하고 야릇하게 안 될 듯한 일을 되게 하는 것이라 하잖던가.
―아니거든!
투란이 떠올린 말보다 품어버린 기분, 깊은 마음에 드라고니아가 반발하듯 버럭 한 소리를 내질렀다. 투란은 뭐가 아니란 것인지 굳이 따지지 않고 재촉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거야?’
드라고니아도 더 따질 여유가 없다는 듯, 바로 대답을 한다.
―손을 밀어넣어. 윌 라이트를 품은 손을…… 저 미로를 막고 있는 너의 마그마 로드에게 담가 넣는 거야.
갸웃하면서 투란은 그 말에 따라 오른손을 꼼지락거리면서 내밀어 검은 수정으로 된 바위처럼 도도하게 자리 잡은 마그마 로드의 형체에 닿게 했다. 마그마 로드의 형체 위로 잔잔한 파문이 번졌고, 검은 수정의 거인이 내민 손은 바로 그 파문의 중심이 되어 잠겨 들어갔다.
‘우와앗!’
투란은 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확연하게 색다른 느낌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광야의 미로’, 그 안쪽으로 느닷없이 깊고 넓게 뻗어가는 감각이 투란에게 아주 선명하게 찾아왔다! 마치 자신이 그 안에 느긋하게 자리 잡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 지하 암반의 광장 속에 있는 투란이 작은 가시처럼 돌출된 조각인 듯!
―정신 차려!
드라고니아가 강력한 사념(思念)으로 투란의 뇌리를 두들겼다.
온몸을 울리는 듯한 그 소리조차도 ‘광야의 미로’에 넓게,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을 타고 깊고 무겁게 자리 잡은 마그마 로드의 감각에는 아주 작은 메아리였다. 하지만 투란은 그런 마그마 로드의 본능 속에서도 분명하게 드라고니아에게 대답해줄 수가 있었다.
‘정신 줄 잡고 있거든. 안심하라고…… 아니, 그보다 이제 어쩔 건데?’
―이미 시작했다. 놀라지 말고, 손을 떼지 말고 가만히 버티고 있어 봐.
‘버텨?’
무슨 뜻인가 투란은 잠깐 갸웃거리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금세 드라고니아가 무엇을 버티라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격류(激流), 마력의 격렬한 흐름이 시커먼 거인의 온몸을 주물럭거리듯이 조여왔다. 검고 단단한 크리스털이 아주 미묘한 세동(細動)과 함께 분진(粉塵)이 되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으억!’
입을 열어도, 마그마 로드의 형상 속에서는 딱히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 대신 투란의 온몸에서 점차 강렬한 진동이 흘렀고, 검은 결정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음향이 두껍게 울려 나왔다.
쩌엉, 채애앵.
금이 간 틈새로 붉은 광채가 스며나왔고, 금방 뜨거운 열기를 자연스럽게 뿜어내는 마그마로 채워졌다.
‘이거 왜 이래!’
투란은 자신이 겪는 이 현상에 당황했다.
마그마 로드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검은 결정, 시커먼 크리스털로 보이는 몸의 단단함은 암석이나 바위를 부드럽고 찰진 흙덩이처럼 뭉갤 수준이었다. 어지간해서는 금이 갈 일은 없고, 그 속에서 유동(流動)하는 용암을 흘릴 경우에는 알아서 틈을 열어놓을 뿐이었다.
한데 이 기묘한 마력의 격류는 그런 마그마 로드의 몸, 투란의 몸통을 갈아대면서 균열(龜裂)을 일으키고 있다!
―버티라고!
드라고니아는 다시 강하게 한마디로 대꾸했고, 윌 라이트 속에서 아주 복잡한 마법의 각인을 끌어냈다. 그 집중력은 곧 투란에게 또렷하게 영향을 끼치면서 드라고니아가 뭘 하는가를 알게 해줬다.
‘안팎으로 무늬를 그리는 거?’
무슨 무늬인가는 굳이 물을 필요가 없었다.
파워 서클의 첫 번째 사본, 투란이 검은 큐브의 여섯 면(面)에 새겨 넣었던 것처럼 드라고니아가 윌 라이트를 이용해서 ‘광야의 미로’ 안팎을 잇는 통로를 가로막는 문짝처럼 버티고 있는 마그마 로드의 결정에 파워 서클의 각인을 박고 있을 뿐이니…….
하지만 이렇게 상황을 알게 된 덕분에 투란은 한층 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사본을 그려넣을 때, 투란 스스로 강대한 마력을 휘두르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격렬하게 반발하는 듯한 일은 없었다. 지금 상황은 분명하게 윌 라이트에 의해 이끌려온 파워 서클의 마력이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으로 형성된 마그마 로드를 거슬려하는 탓이었다.
대체 그때와 지금 무슨 차이가 있기에?
투란은 금방 그 차이가 뭔가 깨달았다.
‘천칭, 황금매…….’
거의 반사적으로 차이점이 또렷하게 느껴진 셈이었다.
마치 입안에 머금은 것이 단맛인가 매운맛인가를 알아차리는 것처럼 투란은 그 차이를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황금매는 문장 속에 원본 파워 서클을 머금었고, 그로부터 흘러나온 마력으로 첫 번째 사본을 그려냈다. 하지만 천칭은 지금 아늑한 저 너머에 있는 원본 따위는 잊은 채로, 드라고니아의 능력에 기대고서 첫 번째 사본 파워 서클, 골든 서클로부터 마력을 끌어내서 강제로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을 기반으로 성장한 몬스터에게 그 각인을 부여하려 하는 것이다.
당연히 ‘천칭’의 고유 마력이 불쾌한 느낌으로 그 각인에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렇게 되나?’
마법에 대한 기묘한 의문, 은근히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투란에게 새삼 찾아왔다. 황금매이든 천칭이든 투란 자신에게 새겨져 있는 문장이다. 따로 놀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어긋난 짓을 할 줄은 상상한 적이 없었다. 그저 황금매가 아니니까 윌 라이트를 거쳐야 마력이 흘러오는구나 하고 막연하게 그냥 그러려니 여겼는데…….
마그마 로드가 아니었으면 벌써 몸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흩어졌을 듯하다니!
―딴생각하지 말고, 힘주고 버티라고!
어느 틈엔가 투란은 자신이 선 자리에서 조금 뒤로 미끄러진 듯한 꼴로 밀려난 것을 알아야 했다. 검은 수정의 거인이 다리에 금이 간 채로, 발이 미끄러진 것처럼 용암의 자취를 남기면서 반 발자국 정도 밀려나 있었다.
이 꼴을 보니 담가 놓은 팔이 빠지지 않고 있는 것이 대단한 듯한데…….
‘에, 늘어나 있냐?’
다시 보니 마그마가 뚝뚝 붉은 방울을 뜨겁게 흘리면서 ‘광야의 미로’를 막고 있는 검은 결정에 밀어넣은 팔이 조금 가늘고 길어진 채였다.
―투란!
‘알았어.’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집중하라 부르는 소리에 바로 반응했다.
마법에 대해 지금 투란이 새삼 궁금한 것이 생겼다고 해도 정신을 거기 쏟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아주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다.
온몸을 두들겨 패듯이 스쳐 가는 마력의 격류에 흔들리지 않도록, 드라고니아가 그려내는 파워 서클의 조각…… 저 각인이 완성되도록 버티는 것.
콰득, 콰드득!
거인의 몸에서 거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갈라지고 금이 가는 소리였고, 그 소리를 메워버리는 듯한 붉은 방울이 뜨겁게 튀어올라 흩어졌다.
우으으으!
‘광야의 미로’가 진동하듯, 그 속으로 그물처럼 뻗어나가 있는 마그마 로드의 형상이 투란의 몸과 하나임을 증명하겠다는 듯한 도도한 울림을 토해냈다.
우드득.
갈라졌던 틈새가 악다물린 이빨처럼 다시 맞물렸다.
붉은 방울은 시커먼 결정 위로 흐르면서 다시 검은 얼룩처럼 변하며 굳어졌다.
‘아으읏, 언제 끝나냐고!’
투란은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윌 라이트에 집중되는 마력을 느끼며 어떻게든 빨리 각인이 끝나기를 염원했다. 그리고 이 염원이 투란의 마음에 떠오른 순간, 미로를 봉쇄하기 위해서 뭉쳐 있던 결정…… 시커먼 광택을 품은 바위 속에 금색의 미로처럼 빛나는 무늬가 나타났다.
―어?
‘응?’
드라고니아가 돌연 당황한 낌새를 보였고, 투란은 바로 앞에 나타난 금색 광채의 무늬가 ‘광야의 미로’ 안쪽에서도 빛나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치 문의 안팎에 새겨진 문양처럼 미로의 안팎으로 순식간에 마법의 각인이 자리 잡은 듯했다.
그리고 마력의 격류가 금색의 문양, 미로 속으로 파고들려는 폭풍처럼 몰아닥쳤다.
순간,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새기려는 각인이 끝난 것을 깨달았고 재빨리 이 섬뜩한 폭풍처럼 몰아닥치는 마력과 거리를 둬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기 위해서 할 일은 간단했다. 아직 미로 속에 담긴 듯한 팔을 슬쩍 빼는 것…….
―안 돼, 아직은!
다급한 드라고니아의 외침이었지만, 조금 늦었다.
‘어? 왜!’
소리 없이 되묻는 투란의 팔은 이미 미로에서 빠져나왔으므로!
콰아앙!
같은 크기의 암석보다 확실하게 무거운 거인의 몸이 튕겨졌다.
파워 서클의 문양이 빛과 함께 뿜어낸 압력은 돌풍이 되었고, 문양을 품고 있는 마그마 로드의 파편은 도도하게 암반 위로 살짝 솟구치는 것처럼 보였다. 바닥에 박혀 있던 모습에서 살짝 부유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쿠릉, 키이익!
거친 마찰음과 함께 구르고 미끄러지면서 투란은 당황했다.
‘야, 이거 뭐야!’
―마력을 진정시키지 못했단 말이야! 파워 서클의 각인이 마력을 완전히 가라앉힐 때까지 윌 라이트로 그 핵을 잡아주고 있어야 했다고!
‘헐? 그럼, 실패한 거야?’
―실패는 무슨! 각인은 완성되었고…… 저절로 진정될 거다! 단지 그 전에…….
콰아아아!
투란은 굳이 드라고니아의 다음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아야 했다. 마력의 격류가 암반 지하를 뒤트는 맹렬한 압력을 형성했고, 드라고니아가 새겨 넣은 각인을 품은 마그마 로드의 파편을 중심으로 뿜어져 나왔다.
미로 속에 하나로 이어진 마그마 로드의 형상은 압력을 뿜어내는 핵이 되고 있었지만, 거기서 팔을 빼고 슬쩍 발을 뗀 꼴이 된 투란은 압력에 휘날려 날아가야 하는 돌멩이 꼴이었다.
‘아, 이게 뭐야!’
―왜 손을 빼냐고!
이리하여…….
* * *
콰득, 콰르르…….
“아, 그만 좀 무너져!”
우렁차게 외치면서 투란은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하며 몸집을 줄여나갔다.
크고 튼튼한 몸으로 버틸 수는 있지만, 아래로 처박혀서 깔려버리는 꼴을 피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무너져 내리는 바위 틈새를 헤집고 올라가기 위해서는 커다란 몸집을 줄야야 했고, 날렵하게 틈새를 지나가야 했다.
콰쾅, 쾅!
작아도 세찬 주먹과 발, 여전히 검은 결정을 살갗으로 덮은 손발이 바위를 쪼개고 깨뜨리며 흘러내렸다.
투란은 그 파편을 몸으로 받으며 비켜내고 빠르게 위로 치솟아야 했다.
―틈을 찾았다. 프로브가 그려내는 궤적을 따라 올라가.
잠깐 투란이 바위랑 툭탁거리며 하는 짓을 지켜보는 듯했던 드라고니아가 피곤한 기색을 가득 담아 말했다.
그 말과 함께 시야에 그려지는 가늘고 환한 빛줄기를 보며 투란은 울컥한 기분부터 느껴야 했다.
‘발판이 없잖아!’
프로브가 그려낸 탈출로는 손발로 긁고 기어 올라갈 수가 없다!
―날개 있잖아!
드라고니아가 투란보다 더 울컥한 외침을 토해냈다.
‘아, 그랬지.’
문득 투란은 어딘가 멋쩍은 기분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