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0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08)
‘가벼워!’
투란은 온몸에 스며오는 바람결을 알아차렸고, 소리 없는 비명처럼 온몸을 사로잡는 기분을 느꼈다. 눈에 보이는 풍경조차 조금 전과는 아주 다른 산뜻하고 명확해져 있었다.
드레이크의 날개, 눈동자를 끌어내면서 이글거리는 마그마 로드의 감각은 둔하고 뜨겁게 사방을 아지랑이와 뿌연 것으로 물들이는 흐릿함으로 가득 채워진 채였다는 점이 보다 분명해진 셈이었다.
다른 몬스터의 형상을 끌어냈을 뿐인데 투란이 바라보는 세상이 싹 바뀐 듯했고, 이 상황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판단이 끌려나오는 듯했다. 이제 와서 너무 새삼스럽다고 여기면서도 투란에게는 매우 색다르고 이상했다.
‘어떻게 된 거지?’
프로브가 그려내는 가늘고 흐릿한 빛줄기를 가늠하며 투란은 자신에게 물었다.
몬스터의 형상을 섞어 쓰거나 바꿔 본 것이 처음인 완전 초보였던 몬스터 로드가 아니었다. 여기에 도달할 때까지 꽤 경험이 생겼고, 심지어 문장조차도 두 가지나 지닌 채로 전혀 색다른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이 낯설고 이상한 느낌은 뭘까?
어째서 드레이크의 감각이 이렇게 기묘하게 느껴질까?
처음 꺼내는 형상도 아닌데!
이런 망설임, 의아함은 투란의 행동에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이미 투란의 등에 솟은 작은 날개는 퍼덕였고, 겨우 등에 그려넣은 듯한 크기에 불과한 날개로부터 피어난 바람의 압력이 주변에서 기울어져 오는 바위를 밀어낼 지경이었다. 색다른 경험이란 것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광경이었는데…….
―마력이다. 잔뜩 퍼뜨려놨던 마력을 집중시켜서 훨씬 작은 크기에 집중시켜놨으니까, 그 때문에 감각이 아주 예리해진 탓이야. 마법사가 한껏 마법을 쓰고 났을 때, 가끔 마력으로 인해 이런 식으로 느끼기도 하거든. 어떤 면에서는 몬스터 로드 역시 분명히 마법을 쓰는 경우라고 할 수 있으니까.
뭔가 차분하게, 살짝 혀를 차는 듯한 소리로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렸다.
‘음…… 그래?’
투란은 마그마 로드의 형상 속에서 더 짙은 열기가 뿜어져 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짧게 대꾸하고 말았다. 느닷없는 설명에 입을 저절로 연 듯한데, 정작 입에서는 용암이 바글거리며 들끓는 감각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용암의 형상은 순식간에 붉은 줄기로 변하고, 드레이크의 혀가 되어 날름거렸다.
그리고 혀가 공중을 핥는 순간, 투란은 자신이 품은 드레이크가 아직 어리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거둬들이고 있지만, 그 감각은 여전히 드레이크보다는 앞선 듯이 투란의 주의를 끌고 있었다. 프로브의 빛줄기를 타고 날기 위해서 투란은 드레이크의 감각에 집중하고 있는데…….
‘본능이 경쟁한다라…… 역시 그거로군.’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투란은 정신을 집중했다.
새삼스러웠던 감각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시작했고, 그 순간 투란은 자신이 지금 갖춰야 할 모습을 마음에 품었다.
머리와 어깨를 타고 드레이크의 금빛 비늘이 넘실거렸고, 눈동자는 훤한 빛을 머금은 듯한 채로 프로브 마법이 그려주는 환영의 빛줄기를 따라 오를 궤도를 확인하는 동안, 등에서는 작은 날개가 바람결을 끌어당기면서 세차게 꿈틀거렸다. 허리와 다리는 아직 시커먼 크리스털의 광택을 머금고 있기는 했지만 어느새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붉은 줄기가 사라진 채였고 그 대신이라는 듯이 검은 잉크가 요동치는 듯한 가죽의 질감으로 변해갔다.
한층 더 날카로워진 감각, 드리고니아의 말처럼 집중된 듯한 마력의 이글거림, 자신이 정한 모습……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투란의 마음을 꽉 채운 듯했고, 그 순간에 투란은 세상이 멎어버린 듯한 풍경을 봤다.
무너져 내리는 바위, 짙은 티끌, 온갖 돌 부스러기, 너무 큰 바위…… 드레이크의 시각이 아니라면 안개와 구름처럼 가득 채워진 먼지와 어둠 사이에 희미하게 보기도 힘든 하늘의 작은 조각…….
콰앙!
질풍이 암석을 걷어찼다.
돌풍이 바위를 기울여 밀쳐내며 치솟았다.
금빛의 궤적이 강한 압력으로 주변을 밀어내는 듯한 풍경을 만들어내면서 엉킨 채로 뒤틀리며 모든 것을 덮어 누르려 하는 암반의 잔해를 가로질렀다.
한 가닥 번개가 어두운 지하에서 피어올라 거대한 암반을 꿰뚫고 하늘에 닿는 듯한 순간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우하아!’
두 눈으로 보기에 세상이 너무 넓었다.
두쪽 눈알을 아무리 열심히 굴려도, 몸이 쉴 새 없이 맴돌아도 세상의 한쪽만 보는 기분이었고…… 사실 모든 방향을 볼 수는 없었다. 제아무리 드레이크의 눈이라 하더라도 두 눈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그래서 투란은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검게 물들며 찰랑이다가 눈꼬리를 타고 검은 잉크가 흘러넘치듯이 뺨으로, 어깨로, 두 팔로 번져갔다.
투란이 다시 눈을 뜨는 순간, 더 이상 눈은 둘이 아니었다.
활짝 펼친 팔을 따라 눈동자가 데굴거리는 눈알 위에서 선명하게 빛을 머금은 듯한 형상으로 번뜩거렸고, 손가락을 잔뜩 내뻗은 손등과 손바닥에도 제멋대로 데굴거리는 채로 박혀 있었다.
등에는 조금 큰 눈동자가 무늬처럼, 가슴과 허리를 따라서 번진 검은 잉크의 찰랑임 속에서도 무늬처럼 자리 잡은 눈동자가 쉴 새 없이 꿈틀거렸다.
투란은 자신이 뜬 눈동자가 모두 몇 개인가 세지 않았다.
그저 보고 싶은 방향을 향해 눈을 뜰 뿐이었다.
온 세상을, 온갖 방향을 한꺼번에 보기 위해서!
―뭔 짓이냐!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소리를 신음처럼 투란의 뇌리에 흘려넣었다.
드레이크의 날개는 이미 치워놓았고, 한껏 치솟은 하늘에서 아래를 향해 한없이 떨어져 내리는 듯한 꼴을 한 채로 투란이 풍경을 관람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에 실로 어이가 없다고 치를 떠는 듯한 기척이 가득한 소리였다.
빙긋, 작은 웃음을 입가에 매단 채로 투란은 뻔뻔하게 소리 없이 답한다.
‘찾는 중이지.’
굳이 무엇을 찾는가를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드라고니아도 금세 알아차린 듯, 한숨처럼 말한다.
―프로브가 아직 유지되고 있거든? 굳이 이런 식으로…… 응? 저기 있는 거, 세란드의 남매들 아닌가?
‘저거 호수 아냐?’
투란은 시알라 일행의 꼬물거리는 듯한 작은 모습을 바라보며, 그 주변의 풍경에 대한 의아함부터 떠올렸다. 드라고니아 역시 의아해하는 듯…….
―이 높이에서 저리 널찍하게 보이는 꼴로 봐서는 연못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 그런데 저런 게 있었던가? 이 임프의 정원에?
이전에 접하지 못한 새로운 지형의 등장에 어리둥절해했다.
그리고 투란은 거기에 한 가지 더 보탠다.
‘저기…… 저 호수 주변은 전혀 무너진 흔적이 없는데?’
―자연스럽지 못하군. 마치 억지로 암반을 움켜쥐고 버티는 뭔가가 있는 듯하다. 투란, 저기로 내려갈 참이냐?
‘일단 가야잖아. 시알라네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잖아. 게다가 뭐가 있든지 간에 헬 임프 녀석들이랑 덩치, 꼬리 달린 것까지 잔뜩 저리로 피하고 있다고. 당장 무슨 일이 생길 곳은 아니지 않겠어?’
―그렇군, 확실히 저 녀석들조차 대피할 정도라면…….
드라고니아도 헬 임프와 둠고그, 다크 레이디가 암반의 붕괴를 피해 모여드는 광경을 파악하면서 투란에게 동의했다. 자연스럽지 못하고 뭔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지금 당장 날뛰지 않는다면 잠시 쉬어가는 정도야 할 수 있잖은가.
투란은 팔을 휘저었고, 내려가는 방향을 잡았다.
‘천칭’으로부터 스며나오는 고유 마력이 투란을 감싸며 보이지 않는 날개처럼 방향을 잡는 과정을 도왔다. 그저 돌처럼 뚝 떨어지던 투란의 하강은 곧 비스듬히 미끄러지는 듯한 궤도로 옮겨졌다.
“음? 응?”
제란드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놀란 소리를 내고 말았다.
호숫가에 번져 있는 수풀, 은근히 숲처럼 우거진 나무 그늘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모처럼 야외의 햇살과 바람을 쪼이듯이 퍼져 누워 있던 시알라, 페란드, 멜란드가 바로 몸을 일으켰다.
경계를 맡은 제란드가 저런 소리를 냈으니, 다들 더 이상 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몸으로 외치는 듯한 태도였다.
하지만 놀란 소리를 낸 제란드는 대체 자신이 뭘 보고 놀란 소리를 냈는가, 경계를 서는 보초답지 않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뭐야, 저게!”
멜란드가 이 말을 가장 빠르게 받았다.
“몬스터야? 어딘데? 형? 어디 보는 거야?”
재빨리 호수 쪽과 암석이 우거진 쪽을 두리번거리던 멜란드는 새삼 제란드의 눈길이 묘하게 위를 향한 것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튕겨 올라간 바위가 떨어지는 건가?”
페란드가 가만히, 처음부터 멜란드의 눈길을 따라 보다가 뒤늦은 소리로 침착하게 어림짐작을 토해냈다. 아직 땅울림이 이어지고 있었고, 호수를 중심으로 한 이 근처에는 닿지 않고 있기는 했지만 저편에서는 뒤틀린 지형으로 인해 튀어 오르는 큰 바위가 자갈처럼 간혹 보이기도 했으므로.
그리고 시알라는 제란드가 놀란 까닭을 깨달은 듯이 중얼거린다.
“저거…… 투석기로 겨냥해서 쏜 것처럼 날아오는데?”
한 박자 더 늦게, 시알라는 말꼬리를 올리며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면서 중얼거렸지만 정작 그 의미는 나중에 깨달은 듯!
여기에 제란드가 보태듯이 말한다.
“무슨 새처럼 멀리서 날고 있던 거라고! 굉장히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우리를 겨냥한 것처럼 날아오고 있어!”
이는 왜 제란드가 처음에 놀란 소리를 냈는가를 밝혀주는 소리였다.
멜란드와 시알라가 바로 팔뚝의 모양을 바꾸면서 뭐가 오든 맞설 각오를 드러냈다.
페란드가 그런 누나와 막내를 흘깃하고서는 바로 흙바닥에 손을 대며 중얼거린다.
“소일, 월.”
꿈틀거리는 움직임과 함께 흙 부스러기가 차분하게 솟구쳤고, 금세 두꺼워졌다.
제란드는 마법이 발휘되는 순간 재빨리 페란드의 곁을 스쳐 그 뒤로 물러섰다.
하얀 털이 가득한 팔뚝을 드러냈던 멜란드와 붉은 살갗이 근육으로 터질듯한 팔뚝을 한 시알라가 살짝 멋쩍은 표정을 짓고 말았다. 뭐가 온다고 하는 순간, 대뜸 자신들이 지닌 몬스터의 힘으로 맞서겠다고 들이대려 한 셈인데 페란드의 대처를 보니 너무 서둘렀다는 감이 팍팍 치밀어 오르잖는가!
페란드는 조금 더 침착하게, 마법을 두어 번 더 반복했다.
흙벽은 더욱 두꺼워졌고, 겹으로 쌓이면서 이쪽으로 쏘아져 내려오는 것에 대해서 방벽의 노릇을 확실하게 할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꽤 먼 곳에서 날아오는 바위는 흙벽에 닿기 한참 전에 땅에 닿았고 데굴거리면서 굴러와 부딪혔다.
퍼어억.
“으에엑, 아이구!”
찰진 소리와 함께 사람이 허둥대면서 낑낑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는 흙벽을 쌓고 나서도 몇 걸음 물러선 채로 대비하던 페란드를 가장 먼저 움직이게 했다. 주저 없이 페란드는 흙벽을 넘어갔고, 그 뒤를 바로 쫓는 듯한 제란드가 외친다.
“투란!”
시알라와 멜란드는 잠깐 주춤하다가 서로를 마주 봤고, 기억을 되살렸다.
그러고 보니 투란이 몸을 검게 물들일 때, 검은 바위처럼 보이고는 했었다.
“아니, 근데 왜 하늘에서 내려와!”
멜란드가 어째서 전혀 투란을 예상하지 못했는가를 변명처럼 토해냈고, 시알라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얼른 흙벽을…… 발로 걷어차서 구멍을 내며 지나쳤다. 떨어져 내린 것이 이상한 괴물이 아닌 이상, 페란드가 쌓은 흙벽에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멜란드도 얼른 그 구멍을 넘어 뒤따랐다.
그리고 투란의 목소리가 낑낑거리면서 울려 퍼진다.
“이거 뭐야? 집이 아니네?”
페란드가 이 소리에 답한다.
“떨어지는 게 투란인 줄 몰라서 아무렇게나 일단 벽을 쌓은 거야. 그리 튼튼하지도 않고…… 음, 누나가 발로 차서 금방 뚫어버릴 지경이지.”
투란은 일어서면서 벽을 뚫고 나온 시알라와 멜란드를 보며 살짝 질린 표정부터 지어 보였다. 제란드는 그런 투란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 말았다.
떨어져 내린 뭔가가 투란인 것을 알고 페란드는 흙벽에 주입하고 있던 마력을 거둬들였다. 만약 투란이 아닌 다른 무엇이었다면, 위협적인 뭔가였다면 이 흙벽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을 터였다.
투란도 이를 알아차린 듯, 고개를 갸웃하면서 묻는다.
“나 아니었으면 어떻게 할 참이었는데? 뭘 준비하고 있었어?”
왕성한 호기심이 가득 담긴 채로, 반짝거리기까지 하는 투란의 눈동자에 페란드는 당황한 표정부터 지었다. 한데 여기에 제란드도 보태듯이 묻는다.
“그러고 보니 나도 궁금하네. 엘레멘탈 링을 이용한 거였잖아? 하지만 벽을 쌓고 마력을 그렇게 집중한 다음엔 어쩌려고 한 건지 짐작이 안 가는데? 세이프티 하우스는 분명히 아니고…… 뭘 하려던 참이었어?”
시알라와 멜란드도 뒤늦게 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페란드를 바라봤다.
하지만 페란드가 이에 답하기 전, 저 멀리서 짙은 땅울림이 울리며 먼지구름이 치솟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