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0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10)
쏴아, 싸아아.
물결은 부드러웠고,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호숫가에 지금 막 나타난 집, 마법으로 이뤄진 세이프티 하우스를 흥미롭게 여기며 더듬는 듯했다. 이 움직임이 그저 바람에 떠밀려 움직이는 것이 아니란 점은 너무 분명했다.
바닥과 간격을 두기 위해서 지네 다리처럼 촘촘하게 선 작은 집의 받침돌, 아주 작은 기둥처럼도 여겨지는 주춧돌을 덮는 얇은 물결이 투명한 껍질처럼 번져가며 집의 아랫부분에 맺히며 꾸물거리고 있었으므로.
페란드와 제란드는 눈을 껌벅거리면서 그 광경을 지켜봤고, 멜란드가 잠시 뒤에 묻는 말을 꺼낸다.
“음, 어떻게 한 거야? 집 안에서 쓸 물을 끌어당기는 짓도 하는 집인가? 마법으로 집에다가 그런 짓도 할 수 있었나?”
이 소리는 바로 투란의 귀를 쫑긋하게 했다.
“와아! 정말 그렇게 한 거야?”
하지만 페란드와 제란드는 서로를 마주 봤고 바로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이는 투란과 멜란드가 눈을 껌벅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짓게 했고, 시알라가 한숨과 함께 한마디 하게 했다.
“그래서, 저 물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거야? 집 안에 있으면 그냥 물에 잠기는 건가?”
“그럴 일은 없어. 벽을 더듬고 있는 것뿐이잖아.”
제란드가 잠깐 머뭇거리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고, 페란드도 여기에 바로 보태는 말을 꺼낸다.
“저 물살은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해…… 독을 품은 바람이 불어와도 막는 집이잖아. 물살이 스며들지는 못해…… 넘쳐서 집을 통째로 삼킬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사람 사이에서는 침묵이 흘렀고, 물결은 잔잔한 소리와 함께 바람결과 어우러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쏴아!
‘야, 저거 뭐야?’
투란은 소리없이 드라고니아에게 물었다.
드라고니아는 잠깐 고민하며 생각하는 듯한 낌새를 띤 채로 답한다.
―정령…… 일단은 그런 기척을 품고 있다. 정령이 마법에 반응해서 이끌려 왔다고 볼 수 있겠는데…… 이 산맥 안에서 계약자가 없는 정령은 그저 몬스터일 뿐이다. 뭐든 공격하고 잠식(蠶食)해서…… 물에 빠져 죽는 꼴을 만들려 할 뿐이지. 하지만…….
‘하지만?’
―저건 그런 움직임이 아냐. 이상하다. 저렇게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것은 마치…… 프로브 스펠을 품은 정령처럼 움직이다니…….
‘프로브? 그럼, 너네 마법사가 여기 남긴 걸 수도 있어?’
드라코눔의 마법이 쓰였다는 듯한 말에 투란은 바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곳에 드라코눔이 누군가 지금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르잖나?
―드라코눔의 누구라도 그런 짓은 하지 않아. 계약한 정령을 여기 홀로 떼어놓다니, 그건 몬스터를 심고 키우는 짓이라고. 드라코눔에 속한 자가 결코 할 짓이 아니다.
드라고니아는 여전히 깊이 고민하는 듯이 답했고, 이는 투란이 품은 의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때문에 투란은 다시 물어야 했다.
‘떼어놓지 않고 주변에 있을 수도 있잖아?’
―계약한 정령은 계약자의 주변에 항상 머물러야 한다. 투란, 너의 프로브는 아직 이 일대를 맴돌고 있다. 지금 여기서 사용되는 드라코눔의 마법은…… 너를 통해 내가 실행하고 있는 것뿐이다.
드라고니아의 대답에 투란은 눈살을 미묘하게 구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저 정령은 몬스터가 된 경우일 테고…….
‘흠…… 그래도 일단 마법사가 한 짓일 수는 있단 말이네. 그렇다면, 로그 메이지려나. 로그 메이지라면 가는 곳마다 이상한 짓을 한다고 하던데…… 아, 그보다 저거 꽤 얌전한데 집 안으로 억지로 스며들지는 않겠지?’
좋지 않은 경우를 상상하면서 투란은 집을 바라봤다.
페란드와 제란드가 열심히 지은 집인데, 허물고 옮겨야 하는가?
어딘가 쓴웃음을 짓는 듯한 느낌으로 드라고니아가 답한다.
―세이프티 하우스의 방어라면, 이 주변이 그냥 물에 다 잠겨도 상관없다. 그저 물속에서 문을 열고 들락거리는 꼴이 될 뿐이지.
‘그래? 그렇다면…….’
투란은 숨을 몰아쉬면서 네 남매를 향해 조금 들뜬 목소리로 크게 말문을 연다.
“찰랑대기는 하지만 우리한테 덤비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집 안을 채울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다들 일단 쉬고 나서 생각하는 편이 좋지 않겠어?”
시알라가 ‘어?’ 하는 소리를 냈고, 페란드와 제란드는 ‘응?’ ‘어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멜란드는 피식 새는 웃음을 흘리고서 짓궂은 표정으로 투란에게 대꾸한다.
“투란, 지쳐서 지금 더 생각하기 싫구나!”
“당연하지! 깔려 죽는가 싶어서 쉬지 못했어! 일단 좀 자고 나야 생각을 하든 뭘 하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친 표정을 짓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면서 기운 없다는 태도로 투란이 투덜거림을 토해냈다. 이 모습은 네 남매로 하여금 쓴웃음과 한숨이 섞인 표정을 짓게 했다. 그리고 시알라가 바로 말한다.
“맞는 말이야. 투란만 지쳐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다 같이 들어가서 쉬자. 마법의 집이잖아. 집이 부서지기 전에는 안전하다고.”
멜란드가 머리를 긁적였고, 제란드는 앞장서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시알라가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는 모습을 보며 투란도 제란드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모두 호숫가의 집 안으로 들어간 다음, 마법의 집이 문을 닫았다.
찰랑거리는 물결은 조금 더 짙고 깊은 소리를 내며 집 아래를 채우고 주변을 맴돌면서 물로 이뤄진 마당처럼 집을 감쌌다. 하지만 물은 깊어지지 않았다. 그저 이제부터 집을 보듬으면서 구경이라도 하듯이.
그리고 집 안에서는 투란이 놀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와! 침대로 기둥을 쌓은 거야?”
―탑이겠지.
투란의 말에 드라고니아가 딴지 걸 듯이 툴툴거렸다.
물론 투란은 그런 내면(內面)에만 울리는 소리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집 안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이제까지 꾸며냈던 집과 다르게 이 집은 벽에 붙은 채로 침대를 구성해놓지를 않았다. 사다리와 작은 계단이 매달린 침대를 쌓아놓은 모양을 집 한복판에 떡하니 버티게 해놓았다. 마치 침대가 작은 층을 이룬 모양이었고 사방을 향해 독립된 방을 이룬 것처럼도 보였다.
그리고 사방의 벽에 서려 있는 마법은 밖에서 보았을 때는 쉽게 알 수 없는 강력한 방어의 힘을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누구든 저 벽을 어떻게 하지 않고서는 집 안에 들어설 수 없지만, 벽을 어찌한다 하더라도 침대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간격을 넘어야 하는 구조였다.
“조금 신경을 써봤어. 벽이 깨지거나 하면 경보 음향이 아주 크게 울릴 테고, 덩달아 깊은 잠도 단번에 깨어나도록 해주는 알람 주문이 발동할 거야.”
제란드가 차분하게 꺼낸 설명이었다.
투란은 고개를 끄덕거리다다 대뜸 사다리와 계산을 무시하듯이 쌓여 있는 침대의 층을 손발로 짚고 올라서며 외친다.
“맨 위는 나!”
이 소리에 멜란드가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한다.
“맨 위라니…… 침대가 한 층에도 여럿…….”
“위에 두 층은 침대가 하나씩이야. 내가 두 번째 층 침대를 쓰지.”
제란드가 멜란드의 부주의한 관찰력을 짚는 듯이 말하고서는 바로 투란의 뒤를 따르듯이 쌓여 있는 침대로 올라섰다. 사다리를 잡고 계단을 밟으며…….
멜란드는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고, 페란드가 시알라에게 말한다.
“위에 두 층은 침대가 하나씩이고, 그 아래에는 셋, 맨 아래편에 넷이야. 여유 있으니까 좋은 걸로 골라.”
시알라가 고개를 끄덕였고, 멜란드는 페란드 곁에 붙으며 묻는다.
“아니, 왜 층마다 침대 수를 다르게 했는데?”
페란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한다.
“아래쪽에 넓은 간격을 만들다 보니까 위로는 집이 폭을 좁힌 꼴이 되었어. 침대는 다 편안하고 일이 터졌을 때는 위보다 아래가 좀 안전하지. 그러니까 넌 아래층 침대를 써, 멜란드.”
끙하는 소리와 함께 멜란드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결국 투란이 가장 방어가 약한 층을, 제란드가 그 아래를 버티겠다는 듯이 층을 차지한 셈이었다. 사소한 듯하지만 이곳에서는 당연한 선택을 장난처럼 해버린 것이다.
나름대로 상황을 느낀 멜란드가 침대를 고르고 난 다음, 페란드는 시알라와 멜란드가 잡지 않은 방향의 침대를 골랐다.
그리하여…….
―진짜로 잘 거냐! 왜?
맨 위의 침대에 발랑 누워서 푹신하게 꾸며진 모양을 토닥이며 투란이 그대로 늘어져 잘 태세를 갖추자 드라고니아가 바로 버럭대는 외침을 뇌리에 꽂아 넣고 있었다. 그 소리 없는 외침이 이어지면 잠들 일은 꿈도 못 꾸게 할 정도로 세차게!
‘왜라니, 나 며칠 동안 깨어 있었다고! 잠깐이 아니었잖아. 당연히 쉬어야지! 몬스터 로드라도 먹고 자야 한다고! 쉬기도 해야 하고.’
―필요 없잖아, 너! 지금 상태로라면 앞으로 열흘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잖아! 거기에 마법과 괴물의 체력, 오러까지 동원하면 그 이상도 끄떡없으면서!
‘아니, 대체 왜 내가 깨어 있어야 하는데?’
뇌리에서 울리는 쩌렁거리는 외침을 무시하듯이 뒹굴거리면서 한껏 잠들 태세를 꾸미면서 투란은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쉬어야 할 때 쉬는 것, 그야말로 이곳에서는 죽냐 사냐 하는 상황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그새 잊었냐고 따지듯!
한데 드라고니아는 이렇게 투란이 느끼고 주장하는 바를 완전히 긍정하는 대답을 꺼내놓으니…….
―지금이 쉴 때냐! 저 물결이 무슨 움직임을 보일지 지켜보면서 조심할 때잖아! 저러다가 갑자기 단숨에 벽을 허물 정도의 괴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야, 너 지금 완전히 넋 놓고 자려는 참이었어! 그럴 때가 아니잖아!
‘맡길래.’
투란의 대꾸는 짧고도 느긋했다.
―뭐?
‘윌 라이트, 유지되잖아? 넌 그걸로 지켜볼 수 있고…… 나처럼 틈날 때 쉬지 않아도 되고…… 어떻게 할 수 없으면 그 때 가서 깨워줘. 그리고…… 내가 쉬지 않고 본다고 뭘 알겠어? 저거, 드라코눔의 냄새가 나는 거잖아? 어차피 네가 봐야 할 일이라고…… 그럼, 난 잔다.’
느릿하게 잠에 빠져들어 가면서 투란은 이러쿵저러쿵 늘어놓는 척했고, 말을 끝내자마자 깊이 잠든 상태가 되었다. 드라고니아가 다시 투란을 깨우려면 아무래도 뭔가 요란한 짓을 해야 할 상태였다.
―이 자식이!
잠든 투란을 향해 짙은 불만이 서린 소리를 쏘아내기는 했지만, 드라고니아는 그 잠을 바로 깨우지는 않았다. 졸려서 되는대로 갖다 붙인 듯한 핑계처럼 늘어놓은 투란의 이야기, 거기에는 확실히 드라고니아도 납득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물결에서 드라고니아가 느끼는 정령의 기척, 거기에 엮인 프로브 마법과 닮은 움직임…….
확실히 투란이 그 상황을 두 눈 부릅뜨고 관찰한다고 해봐야 결국은 드라고니아가 파악하고 설명할 일이었다. 투란은 드라코눔의 근처에도 간 적이 없었고, 드라코눔의 마법이 지닌 깊이라든가 그 심원한 지식과는 전혀 무관하니까!
―언젠가 널 드라코눔의 도서관에 처박고 말겠다!
투란이 전혀 들을 리가 없는 말을 소리 없이 내뱉고, 드라고니아는 마법의 힘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윌 라이트를 중심으로 드라코눔의 마법, 프로브가 새로운 활동을 하도록!
멀리서 계속 피어나는 듯한 땅울림, 지형이 엉켜가는 변화…… 그로 인해 퍼져가는 호수의 물결과 마법의 수상가옥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 드라고니아가 지휘하는 프로브는 그 모든 상황을 차분하게 관측해나갔다.
정령(精靈)은 각성(覺性)했다.
깊이 몰려드는 혼돈의 힘에 침식(侵蝕)당해 파묻혀 있던 정령의 자아(自我)가 그 이름을 되찾았다.
정령은 곧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자신의 각성을 부른 누군가에게 찾아가야 하는 일, 그것은 의무였고 그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정령은 형체(形體)와 감각(感覺)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촤아아.
정령은 자신의 성향이 어느 갈래에 속하는가를 기억(記憶)해 냈고, 형체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세계의 조각을 끌어모았다.
물결이 잔잔하게 흔들렸고, 소용돌이쳤다.
소용돌이는 몇 개가 피어났고, 그중 몇몇은 둥글고 큰 물방울을 뭉쳐냈다.
물방울은 소용돌이에 맞춰 회전했고, 곧 소용돌이의 결을 끌어당겨 깜박거림을 만들어냈다.
정령이 시각(視覺)을 갖췄다.
곧 정령은 자신을 깨운 마법을 바라봤다.
암반을 깊이 꿰뚫고 허공에 넓게 퍼진 지각(知覺)의 마법.
정령의 자아 깊이 박혀 있는 마법이었다.
―프로브, 이 마법이 너의 기본 능력이란다.
정령은 자신을 깨운 이를 찾아 움직여야 했다.
자아 깊이 새겨져 있는 본능이자 의무에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