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1)
Chapter 7. 요술의 천칭
‘꿈?’
몽롱한 기분이 뭔가에 취한 듯, 딱 꿈을 꾸는 것이라고 여기게 했다.
하지만 투란은 곧 꿈이 아닌 것을 알았다.
바라보는 풍경, 느껴지는 바람, 쏟아져 내리는 햇살, 찰랑거리는 물결…… 샤오콴 마을 앞에 작은 호수가 생겨났을 때의 기억이었다. 그때, 그 순간의 모든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신기한 회상이 투란에게 마치 꿈속에서 다시 그 순간을 겪는 것 같다고 여기게 해 주고 있을 뿐이었다.
‘선명하네?’
원한다면 이 회상 속에서 그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다시 볼 수 있잖을까 하는 묘한 기분이 투란을 찾아왔다.
그래서 투란은 그 날, 그 자리에서 자신 눈부신 물결 속에서 봤던 풍경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봤다.
물살을 가르며 반짝이는 물결과 하나가 된 것처럼 헤엄치던 사람, 나중에 투란에게 이상한 소문이 붙게 했던 그 사람이다.
곧 투란은 꿈인 듯한 회상 속에서 다시 한 번 그 사람의 헤엄을 구경하는 자신을 깨닫고 쓴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 그때도 정말 홀린 것처럼 구경했는데…….’
선명하게 그 순간을 기억하게 되자, 다시 투란은 그 헤엄치는 솜씨에 홀린 느낌으로 지켜보는 꼴이 되었다.
뭔가 다른 일이 있는 것 같지만, 놓치고 싶지 않는 그 사람의 헤엄,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물속을 헤집는 투란의 네발 개헤엄이랑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솜씨였다.
다시 기억해도, 이 꿈결 같은 상황 속에서도 멍하니 봐야 할 모습이었다.
‘그래, 분홍색…… 밝은 빨강 머리…….’
기억은 다음으로 이어졌고, 투란은 그 사람이 물속에서 걸어 나오는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자신을 기억해 냈다. 너무나 멋지고 반짝거리는 헤엄 솜씨에 반해서 다른 생각이 전혀 없었던 그 시절의 자신을.
하지만 이 회상을 통해서 투란은 그 사람의 모습을 자신이 모두 지켜봤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가는 목, 좁은 어깨, 불쑥 불거져 나온 가슴과 가녀린 팔, 잘록한 느낌을 주는 허리와 물방울 같은 배꼽, 그 아래로 부드럽고 두툼해 보이는 허벅지 사이의 풍경.
이상한 일이었다.
머리카락 색깔조차 오락가락 제대로 기억 못 했던 그 사람의 모습이 어째서 이리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일까? 어떻게 바로 그 순간에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회상하는 중일까?
“뭘 그리 열심히 보는 거야? 여자가 신기하냐?”
“여자요? 어? 아, 그렇군요.”
“뭘 구경한 거야?”
“헤엄……치는 거요.”
용병 여인의 목소리는 밝고 맑았다.
투란이 자신을 보며 남자인가 여자인가조차 구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여인이 볼에 새겨진 흉터를 일그러뜨린 채로 웃게 했고, 헤엄치는 비결을 궁금해하는 투란을 물로 밀어 넣게 했다.
곧 허우적대며, 네발 헤엄을 치는 투란을 보며 그 여인은 무지하게 웃었다.
“너, 정말 헤엄치는 거 제대로 좀 배워야겠다. 강아지도 너처럼은 안 할걸.”
그러면서 망토를 몸에 감고는, 물속에서 파닥대는 투란을 남겨 놓은 채 그녀는 가 버렸다. 키득거리는 웃음을 잔뜩 흘리면서!
‘그랬는데 말이지.’
투란은 꿈속의 자신을 느끼며, 조금 삐딱한 기분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헤엄치는 여자 용병, 그녀에게 놀림받은 일은 거기서 끝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진 일들.
갑자기 건너편 이웃에 살던 계집애가 찾아와 생뚱맞게 말했다.
“투란! 치마 속 보여 줄게, 동전 줘!”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였다.
계집애 배꼽 아래에, 허벅지 사이에 보석이라도 박혀 있단 말인가!
미쳤나, 왜 그런 거 보는 데 동전을 주나!
아예 쉬하는 것까지 보여 주겠냐고 파닥대던 계집애를 피해서 투란은 샤오덴 할배의 거처로 도망치고 말았다. 샤오덴 할배도 그런 상황에 대해 어이없어했다. 다만 할배의 물음은 좀 기묘했다.
“치마 속이 궁금하지 않아?”
투란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거기 보석이라도 있냐고!
다시 생각해도 역시 화나는 일이었다.
“보석이라…….”
갸웃하던 샤오덴 할배의 모습이 그 주름살까지 또렷하게 떠오르고, 돌연 투란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보석!’
아련한 느낌이 찾아왔다.
언제나 생각만 하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저것은 내 것이다!’를 느끼게 해 줬던 그 보석.
두근, 두근.
투란은 그 느낌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세찬 심장의 고동뿐인 것을 깨달았다.
‘어…… 왜?’
이전과 달랐다.
그때 기분을 기억하고 있었다.
선명하게, 보석에 대한 지독한 갈망을 기억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억뿐이었다.
심장은 평온하게 두근거리면서, 잠에서 깨어날 때라고 알려 주고 있었다.
온몸의 피가 솟구치게 하는 그런 갈망은 더 이상 없었다.
‘이상해.’
보석에 대한 갈망을 잊은 자신이 투란에게 낯설었다.
어쩌면 깨어나지 앉은 채, 이렇게 꿈속에서 회상을 하고 있는 탓일까?
‘깨어나면…… 그때처럼 느낄 수 있나?’
기묘하다 여기면서 투란은 아쉬움 속에 기대했다.
갈망은 그때처럼 절실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것이니 당연히 자신이 가져야 한다는 기분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깨어나면 그 기분이 어떤가, 보다 명확해질 듯하다.
‘그래, 일어나야지. 일어날 때가 되었어. 일어나면 샤오덴 할배네 가서…… 가서…… 어?’
차가운 느낌이 등골을 쑤셨다.
투란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주변의 풍경이…… 이상했다.
뭔가, 얇은 포대 속에 자신이 옆으로 누운 채였다.
포대 위로는 실핏줄 같은 붉은 선이 보였고, 손발이 꽁꽁 얼어붙은 것처럼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숨도 겨우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왜 몬스터 로드가 된 자신이 이런 이상한 포대 속에 누워 있단 말인가!
‘아……!’
투란은 웅크린 채로 눈길 닿는 곳에 꼭 포개진 채 놓인 손을 보는 순간, 기억해 냈다. 그 손을 덮고 있는 덩굴줄기, 맥동하는 악마의 심장 조각을 보는 순간, 모두 기억해 냈다.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포대 안에 누운 꼴인가를.
‘잤구나! 성공했어!’
그리고 방금 깨어난 것이다.
잠시 숨을 멈췄다가 크게 내쉬면서 투란은 악마의 심장을 가슴속으로 다시 불러냈다.
쿠우우우우웅! 솨아아아아!
거센 북소리처럼, 억센 바람처럼 귓속을 관통해 흐르는 피의 격류가 맥동과 함께 느껴지고 들렸다.
동시에 투란은 머나먼 기억이 아니라, 잠들기 전의 기억을 되새길 수 있었다.
다시 생성되는 악마의 심장과 함께, 아주 선명한 감각이 되돌아왔다.
‘떨어져 나갈 뻔했군!’
살갗 너머로 부풀려 끌어낸 악마의 심장, 그 넝쿨로 자아낸 그물 포대에는 빈틈이 없었다. 그 위에 조금씩 형성되어 있는 구근 덩어리, 악마의 심장은 이제 서서히 독립을 준비하듯 서로를 잡아먹으려는 듯이 은근히 다른 맥동을 흘리는 중이었다.
‘거둬!’
이제 다시 저 심장의 파편들을 끌어들일 때였다.
몸 밖으로 내보내는 넝쿨의 가닥, 척후병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그 성질을 이용해서 몸을 덮어 감싸는 포대처럼 꾸미고 조각난 여러 개의 불완전한 심장을 이용해서 사람인 투란의 몸을 유지시키도록 명령해 놨다.
그렇게 해서 겨우 숨 쉴 수 있는 작은 틈새, 포대 속의 잠자리를 만들어 내고 투란은 잠들었다. 엮어 놓은 넝쿨 포대가 아주 오래 버틸 수 없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유 마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잠이 필요했다.
위험한 모험이었지만, 투란은 선택해야 했다.
그렇게 짧았을지 모르지만 깊은 잠을 자고 깨어난 것이다.
이제 투란이 할 일은 항아리 싸움이었다.
작게 뿌려 놓은 여린 악마의 심장, 온전한 놈은 하나도 없어서 제대로 독립할 수 없게끔 해 놓은 그것들에게 흘려 놨던 피와 살을 돌려받아야 했다. 크고 강한, 완전한 형태를 갖춘 악마의 심장으로!
두근, 두근, 쿵, 쿵!
반발은 없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에 잔뜩 긴장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방출했던 넝쿨의 회수가 쉽고 빠르게 끝났다.
‘음, 조각내서 반편이를 만들어 놓은 게 잘한 일이었던가?’
악마의 심장으로 항아리 싸움을 시킬 때, 가끔 불리한 상황을 꾸며 내서 돈을 더 걸게 하는 야바위꾼도 있었다. 그때 이기는 쪽은 크기가 아니라 보다 완전한 형태를 갖춘 구근 쪽이었다. 크냐 작으냐의 문제가 아니고, 악마의 심장은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춘 놈이 그렇지 못한 놈을 먹는다. 그리고 둘 다 제대로 형태를 갖추면 더 빠르고 두근거리기를 잘하는 놈이 그러지 못하는 놈을 삼킨다.
눈으로 보면 엄청나게 헷갈려서 구분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직접 심장을 생성시키는 입장이 되어 보니, 전혀 헷갈릴 일이 없었다.
투란은 밖에 두는 넝쿨을 유지할 녀석들은 여럿을 두면서, 완전한 형태는 갖추지 않은 것으로 방출시켰다.
잠에서 깬 지금, 완전한 심장이 뛰는 순간부터 모두 쉽게 다시 돌아와 융합하는 꼴을 보니 꽤 괜찮은 방법이었던 모양이다.
천천히 코와 목, 허파로 이어지는 쪽으로 넝쿨의 실그물을 채워 넣으며 투란은 몸을 일으켰다.
‘크앗!’
짜릿하게 살점 어딘가가 찢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투란은 그 느낌이 심한 발가락을 봤다.
굵게 부푼, 엄지발가락 크기 정도의 구근 하나가 부들거리는 꼴이 보였다.
어느새 나름대로 완전한 형태에 가까워진, 작지만 완성도 높아 보이는 악마의 심장이었다.
‘이게 내 살을 그냥 뜯어 먹겠다고!’
투란은 눈을 부릅떴다.
종아리와 발목 언저리에 굵은 힘줄이 도드라졌고, 거센 혈관의 맥동이 이어졌다.
발가락에 매달린 발가락 크기의 구근이 순식간에 오그라들고, 사라졌다.
하지만 투란이 발가락에서 느끼는 시큰하게 찢어진 느낌은 여전했다.
이미 파먹힌 살점이 있는 듯이.
‘발가락만이 아니네.’
투란은 입술을 꽉 다물며 몸을 일으켜 보려 했다.
몸 곳곳에서, 은근히 살점이 뜯겨 나가 빈 곳이 느껴졌다.
얼핏 가늠해도 몸이 앙상해진 것이 분명했다.
잠 한번 자려다가 몸이 싹 마를 정도로 양분이 빠져나간 셈이었다.
다시 쭉쭉 빨아 몸속으로 끌어들여도, 소모된 양분과 체력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뭔가를 먹어야 했다.
‘일단은…….’
투란은 손바닥을 펴고 꼼지락거리면서 샤벨투스의 이빨을 날카롭게 세웠다.
오른쪽 엄지와 검지 사이에 뾰족해진, 얄팍한 이빨을 뿌리부터 꼭 잡은 투란의 손이 무릎 아래의 바지를 가르고 찢어 냈다.
가죽 바지 조각 속에는 넝쿨의 실그물이 촘촘히 스며들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에 악마의 심장은 자기들끼리 잡아먹는 것들, 악마의 심장을 품은 투란이 그 섞인 껍질 조각 따위가 거슬릴 이유가 없었다. 가죽 사이에 슬쩍 섞인 그 실그물이 좀 더 맛있는 양분이 되기를 바란다면 모를까!
잠깐, 바지를 베고 찢고 토막 내면서 투란은 앉은 채로 가죽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삼켰다. 입을 움직이는 것도 손을 움직이는 것도 확실히 힘겨웠다. 조금 움직일 때마다 찰랑이는 물결을 몸속으로 쑥쑥 끌어들이는 것이 느껴졌다.
물과 빛, 두 가지 요소만 있다면 일단 악마의 심장은 유지될 수 있다.
‘배고픈 상태로 물 밖으로는 못 나가게 되려나?’
몸을 움직일 때마다, 몸을 덮은 섬세한 넝쿨이 깔고 앉은 얕은 물웅덩이를 들이마시는 것을 느끼며 투란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행동에는 상당히 큰 제약이 생겨난다. 어쩌면 이 물가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고!
바지 양편을 골고루 잘라 먹어 치운 다음, 투란은 일어섰다.
내려다보니 긴 바지가 아닌, 무릎 위로 꽤 올라온 반바지를 입은 꼴이 되었다.
꽤나 한심하게 느껴졌다.
‘뭐, 그래도 설 수 있고 걸을 수도 있으니까.’
누가 보는 곳도 아닌데 지나치게 품위 챙길 필요는 없잖은가?
사실 벌거벗고 뛴다고 해도 보는 사람이 없다!
다만 껍질까지 벗은 맛있는 먹잇감이라고 뛰어오거나 날아올 괴물이라면 있을지도 모른다.
투란은 완전히 세웠던 몸을 살짝 굽히며, 주변을 둘러보면서 찰랑거리는 물결을 밟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짝 안개가 맴도는 물가를 첨벙거리며 걸으면서, 투란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잠에서 깨어나기 전의 이상할 정도로 선명한 꿈—기억—이 되새겨졌다.
어째서 그렇게 선명했을까?
왜 잠에서 깨어난 지금도 그 느낌이 분명할까?
‘도움도 안 되는 일이잖아.’
기왕 기억날 것이라면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에 대한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더 좋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