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1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11)
Chapter 63. 네키아
햇살이 물끄러미 수면을 더듬었다.
반짝임 속에 맑고 고요한 물결은 거의 멈춘 듯이 보였지만, 아주 느리고 잔잔한 찰랑임으로 햇살을 뿌리치고 튕겨내는 듯했다.
그런 햇살을 외면하는 듯한 그림자를 드리운 채로, 굵직하게 몇 층을 품고 있는 듯한 집은 물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채였다.
바람이 고요하게 불어와 단단한 벽을 두른 채로 우뚝 선 집을 스쳐 갔다. 집 안으로는 세상의 고요함이 스며들지 못하고, 집 밖으로는 그 안의 숨결조차 흘러나오지 못할 듯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처음 이 집이 세워질 때의 풍경을 기억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이 새로운 풍경이 너무나 이상하고 낯설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호숫가에 자리 잡았던 집이 이제는 사방이 잔잔한 거울처럼 고요한 호수 한복판에 놓인 꼴이었으므로!
사아아…….
너무나 고요해서 들려올 리가 없는 바람소리를 대신하듯, 물살이 여리고 부드러운 울림을 퍼트리며 이 집을 향해 멀리서 다가오는 듯한 기척을 지닌 파문(波紋)을 드러냈다. 파문은 햇살을 뿌리치던 찰랑임을 삼켰고, 아예 완벽한 거울을 만들려는 것처럼 수면을 평온하게 억눌렀다.
어느 틈엔가 호수는 거울처럼 고요하고 정숙(靜淑)해져 있었다.
이 호수에서 이질적이고 이단적인 무엇인가는 오로지 멀뚱거리며 우뚝 선 단단한…… 몇 층을 품은 듯해도 광활한 수면 위에 그저 던져진 듯한 느낌의 반듯한 바위처럼 느껴지는 한 채의 건물뿐인 듯했다.
이제는 흘러오는 물결의 무늬만이 움직이는 듯할 때, 무늬 속에서 올망졸망하니 다른 고요한 수면과는 다른 물방울이 뭉치고 엉기며 집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아주 빠르지만, 번져가야 할 모든 파문을 자신의 안으로 뭉쳐들게 하는 탓에 호수의 거울 같은 정숙함을 전혀 건드리지 않는 기묘한 물방울이었고…… 어쩌면 호수에 놓인 집 한 채는 가볍게 삼킬 정도로 컸다!
그 크기에 걸맞지 않은 은밀한 흐름으로 다가서는 물방울이 가까워지면서 집 주변의 햇살은 유난히 더 밝게 반짝이는 듯했고, 그 반짝임이 한곳에 뭉치고 엮였다.
물결 속에서 물방울이 뭉치듯, 허공에서 뭉쳐진 반짝임이지만 그 모습은 물방울처럼 두루뭉술한 덩어리는 아니었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차림새를 갖춘, 지나가던 짐승이 봐도 다 차려입은 사람으로 여길 정도의 모습이었다.
물방울은 이런 빛의 형상을 느끼고 생각이라도 하는 듯, 다가서던 속도가 느려졌고 울퉁불퉁한 꾸물거림을 드러냈다.
거울 같은 호수 위에 선 빛의 형상은 느리게 앞으로 걷는 듯했고, 수면 위에 비치던 햇살의 뭉침 같은 모습에서 질감을 지닌 형체(形體)를 갖춰갔다. 그 걸음걸이는 분명히 다가오는 물방울, 꿈틀거리고 꾸물거리면서 작아지며 새로운 모습을 갖춰가는 물의 형상을 맞이하려는 듯했다.
―투란, 일어나야겠다.
드라고니아의 말은 소리 없는 것이었지만 차분하기 짝이 없어서 굳이 들어야 하는가를 의아하게 여길 정도였다. 하지만 잠들어 있던 투란은 그 차분한 말투 속에서 심상치 않은 무게를 느끼면서 깨어야 했다.
‘조금 더 자면 안 돼?’
잠결에도 조금 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투란은 일단 투정 부리는 대꾸부터 했다. 차분한 말투처럼 차분한 상황이라면 조금 더 푹신하게 짜인 침대에서 뒹굴고 뭉기적거리고 싶다는 기분을 또렷하게 담은 채로!
드라고니아는 이런 투란을 향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한마디를 되돌려준다.
―세란드가 맞서려 하고 있다.
‘에, 엥? 세란드?’
잠깐 투란은 하품처럼 뿜어내려던 숨을 죽이며 뭉그적대던 몸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곧 자신이 왜 긴장해야 하는가 하는 의아함으로 조금 느슨하게 몸을 풀면서 투란의 물음이 바로 나온다.
‘뭔 소리야? 세란드라니?’
―저 남매의 맏이, 저 남매가 찾기 위해 이곳까지 오게 한…….
‘야, 누구냐고 묻는 게 아니잖아!’
괜히 늘어지려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을 투란은 손등으로 눈을 비비면서 뚝 잘랐다. 대체 갑자기 세란드가 어디서 튀어나와 뭐랑 맞서려 한다는 소리인가, 그것이 궁금할 뿐이으므로.
―세란드를 기억할 정도로 깨어났나? 흠…… 일단 밖으로 나가. 나가보면 금방 알 수 있을 테니까.
‘시알라랑 페란드, 제란드, 멜란드는?’
―자고 있지. 밖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을 느끼려면 저 벽이라도 무너지야 할걸.
‘그럼, 몰래 나가란 소리야?’
문득 투란은 자신이 일어나서 부스럭거리며 움직일 경우에 대해서 생각했고, 그러다가 네 남매 중 누군가 깨어나면 함께 나가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는 편이 저들에게 더 안전할 것 같군. 세란드도 그래서 안쪽에 기척을 흘리거나 경보를 넣는 대신에 직접 나서서 움직이는 듯하다만.
‘그래? 음, 그러면…… 천장을 뚫고 나가는 게 빠를 것 같은데, 조용히 할 수 있을까?’
투란은 슬그머니 팔다리를 펴면서 눈에 바로 보이는 천장의 단단함을 가늠하며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맨 꼭대기 층의 침대에서, 훤히 열린 아래층의 침대를 밟고 내려간다면 가뜩이나 예민한 몬스터 로드인 넷이 어찌되었든 일어날 듯한 느낌이 있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그런 식으로 버릇을 키워놓기도 했으니까…….
―윌 라이트로 부유(浮游) 마법을 쓰면 된다. 천장도 아예 마법으로 잠깐 열었다가 닫을 수 있으니까 문제없다.
‘그럼, 나가게 해줘.’
투란은 자신이 대답하자마자 몸이 둥실 뜨는 것을 알아차렸다.
거의 아무런 느낌도 없이, 주변에 부스럭거리는 기척 따위는 전혀 내지 않고 투란의 몸은 천장에 닿았고…… 말랑거리는 진흙을 통과하듯이 지나쳤다.
‘으앗!’
갑자기 햇살 가득한 풍경을 느끼고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감고 말았다. 잠이 덜 깬 시늉을 할 때랑은 달랐다. 천장 아래에서는 밖의 풍경 따위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고, 흐릿한 빛의 등잔이 매달려 있기는 했지만 고요한 밤의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잠에 취해 있기 딱 좋았다. 한데 밖으로 나오자마자 온 세상이 환한 낮의 풍경이었고…….
“케엑?”
주변 풍경은 투란이 집에 들어서서 꼭대기 침대를 차지할 때랑은 완전히 달라 저절로 비명을 쥐어짜 낼 정도였다!
이렇게 느닷없는 주변의 변화는 바로 투란의 경계심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렸고, 발딱 일어나 앉는 자세가 되게 했다. 자세를 바꾸면서 투란은 곧바로 드라고니아에게 소리 없이 말하기도 했으니…….
‘집을 좀 더 단단하게 할 수 있나? 뭔 일이 생겨도 안쪽에 일이 생기지 않게 말이야.’
―마법의 방어를 하나 더 걸어두지. 마력으로 이뤄진 방벽이라면 적절하게 형태를 변화시키셔 소란스럽지도 않을 거야.
투란은 말과 함께 드라고니아가 곧바로 윌 라이트로부터 기묘한 힘의 흐름을 끌어내 집을 덮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아케인 포스가 한 겹의 장막이 되어서 페란드와 제란드가 만든 집을 감싸는 듯한 느낌이었고, 어쩐지 마음이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때문에 투란은 자신의 작은 비명을 쥐어짜 낸 풍경의 변화에 곧 집중할 수가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보다도, 대체 이게 무슨 광경인가부터 투란에게는 낯설었다.
‘어째서 이 집이 물 한복판에 있는 거야? 설마 자는 동안 떠내려왔나?’
―아니야. 호수에서 흘러온 물이 주변을 완전히 덮고 삼킨 탓이지. 이 집만을 내버려둔 채로, 주변을 몽땅 그렇게 덮고 다지는 것처럼 삼켜버렸다. 집 주변으로 잠긴 부분은 거의 침몰했다고 하는 편이 좋을 정도로 깊이 가라앉았지.
‘집이 떠내려간 게 아니고 물이 몰려온 거라고? 그런데 집만 남겨두고 주변은 몽땅 물에 잠겨버리고?’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설명을 납득하려고 애쓰면서 주변을 빙 둘러봤다.
처음 봤을 때처럼 충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다시 봐도 역시나 투란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이상했다.
‘뭔 거울도 아니고…… 구름이 비추는 게 아니라 아예 하늘이 비쳐 보이잖아!’
―그렇군.
드라고니아도 새삼 투란이 무엇을 느끼는가를 알아차렸다는 듯이 대꾸하고 있었다. 투란은 그 낌새를 깨달았고, 한숨을 쉬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드라고니아는 이 풍경이 꽤나 당연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잖은가.
하지만 지금은 그걸 파고들 때가 분명히 아니었다.
하늘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호수 한복판에 오롯하게 떠 있는 꼴이 된 집, 그 집에서 조금 떨어진 물 위에 단정하게 서 있는 누군가의 모습, 그 너머로 뭉클거리는…… 커다란 형상의 물로 된 괴물!
‘세란드라고, 저게?’
불쑥 나온 투란의 물음, 눈길을 뭉클대는 물덩어리에 둔 채로 묻는 것이었기에 드라고니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를 하고 만다.
―그쪽 말고, 그 앞에 사람 모습을 하고 있잖아!
‘어? 아…… 두건을 뒤집어쓴 채라서…….’
투란이 생각해보니, 세란드가 당연히 이쪽이고 저 물렁거리고 뭉클대는 쪽이 세란드를 끌어낸 괴물이 맞는 듯했다.
―야! 대체 어떻게……!
투란의 생각을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면서 드라고니아가 인내심이 바닥나서 울컥한 듯한 소리를 지르려 할 때, 투란은 지붕에서 뛰어올랐다. 눈길을 아래로 돌려 자신의 모습이 거울 같은 물 위에 고스란히 비치는 광경을 보면서 투란은 곧 두건과 망토를 두르고 거울 위에 선 듯한 세란드의 곁으로 떨어져 내리는데…….
첨벙!
꼬르륵.
“우파팟! 어프픗!”
곧장 세상이 물결 저 너머에 보이는 듯한 풍경이 두 눈 가득히 들어오면서 자신이 침몰하고 있다는 것부터 깨달아야 했다!
―야!
드라고니아는 실로 뭐라 할 말을 찾을 길이 없다는 듯이 외쳤지만, 투란은 거기에 대꾸할 여유가 없었다. 놀라서 숨을 들이쉬는 코와 입으로 쑥쑥 쳐들어오는 물부터 어떻게 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놀라는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바로 코와 목, 입안을 맴돌며 ‘악마의 심장’ 줄기가 가늘고 섬세하게 퍼지면서 거슬리는 느낌이 사라졌기도 했지만…… 퐁당 물에 빠져서 침몰해가던 몸이 부드럽게 물컹이는 물결에 받쳐지면서 다시 부상(浮上)했기 때문이었다. 물이 물이 아닌 듯, 찰지고 물컹대며 단단히 뭉친 형상으로 투란을 수면 위로 올려준 것이다.
그에 대한 감상을 말하기 위해 투란은 입을 열었고…….
“우웨엑.”
뒤집어진 속을 달래는 헛구역질부터 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온 소리랑 다르게 투란은 마음속으로 드라고니아에게 감탄하고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으…… 고마워. 늦게나마 빠져 죽는 꼴은 피하게 해줘서!’
감사하는 말이면서도 슬쩍 가시가 박힌 듯했는데…….
―내가 아냐.
드라고니아가 단번에 부정하고 있다?
‘어? 너 아니라고?’
투란은 슬쩍 옆을 보았고, 두건 아래에서 확실하게 보이는 세란드의 얼굴을 확인하고서 소리 내 말한다.
“어, 고마워. 그냥 바닥까지 가라앉는 줄 알았…….”
“내가 한 거 아니야.”
세란드가 낮으면서도 담담하게, 하지만 전혀 들었을 리가 없는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부정하고 있었다.
“응?”
투란은 멀뚱하니 앉은 꼴로 엉덩이를 받쳐주고 있는 물결을 더듬었다.
부드럽고, 찰랑이면서도 묻어나지 않는 기묘한 물…… 사람을 물 위로 밀어 올려주는 기괴한 물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간다.
‘헛, 괴물!’
바로 소리없이 숨을 들이쉬면서 투란은 자신이 이 상황을 너무 뻔뻔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반성부터 해야했다. 뭔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대뜸 세란드가 나타나서 맞서고 있는 이상한 녀석…… 뭉클거리며 서서히 수면 위로 솟아나는 형상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뭘 감사하는 말부터 챙기고 있단 말인가!
―아니야, 투란.
새삼 정신 줄을 다시 바싹 조이려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무겁고 차분하게 말하고 있었다. 마치 투란이 급하고 위험한 상황일 리가 없다는 듯한 담담한 소리였다.
숨을 고르면서, 투란은 엉덩이 곁의 물을 손으로 가볍게 두드리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얘가 날 받쳐주는 건데, 얘 뭐지?”
드라고니아를 향해서, 세란드를 향해서 동시에 묻는 말이었다.
세란드가 두건 아래에서 그늘에 가려진 얼굴에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한다.
“정령이야, 투란. 왜 여기 있는지, 뭘 하려고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이 물 전체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큰 녀석이다.”
“이 호수 전부?”
“그래, 이 호수 전부. 뭉치면 단숨에 바위도 녹여 뭉갤 정도로 강한 집중력도 지닌 물의 정령이다.”
세란드의 이어지는 대답 속에서 투란은 왜 이 상황이 위협적인가를 금세 느낄 수 있었다. 물은 그저 사람을 덮고 휘감기만 해도 질식(窒息)해 죽일 수가 있다. 그렇게 숨이 막혀 죽는 경우를 익사(溺死)라고 따로 부를 정도로 위협적인 물이 집 주변을 완전히 장악한 것이다.
그리고 그 물이 지금 이쪽의 모습에 맞춰 형상을 새로 갖추고 있었다.
곧 부드럽고 아름다운 물결로 이뤄진 여자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