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1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14)
―너한테 문제가 있다.
아주 진지하고 단호한 말이었다.
투란에게는 아주 어이가 없는 이야기였고!
‘그게 무슨…….’
―누군가, 언젠가 너에게 정령에게조차 의미를 갖는 이름을 부여했다는 뜻이다. 너는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고…… 그 이름이 네키아와 너의 계약에 필요하다는 단순한 이야기야.
‘자기가 모르는 이름이라도 붙여놓으면 된다는 소리야?’
울컥하는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차분하게 생각하듯 물었다.
드라고니아는 잠시 대답하기 곤란한 듯, 뭔가를 더 깊이 생각하는 듯이 틈을 두었고, 그 사이에 ‘네키아’가 말한다.
“투란, 진짜 이름이 아니에요. 하지만…… 투란이라고 부를게요.”
“아니, 그러니까 그게 내 이름 맞는데 말이지.”
이제는 슬슬 한숨을 쉬고 싶어지는 투란이었다.
‘네키아’는 투란에게 진짜 이름을 대신해서 투란이라 부르겠다 하는 것이잖은가.
이는 다른 사람에게 투란이란 이름을 들이댈 경우에 가장 흔하게 보는 상황이었다. 네가 가짜 이름을 대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불리는 게 소원이라면 일단 들어주마……라는!
도대체 어쩌다 세상에서 투란이란 이름을 이렇게 취급하게 되었는가 굉장히 알고 싶은 투란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네키아’를 붙잡고 이러쿵저러쿵 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의아한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도대체, 얘는…… 정령이 어떻게 사람 이름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알 수 있지? 자기도 모르는 진짜 이름이라니…….’
―트루 팩트. 정령이 이 세상에 자신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진실된 존재로서 섭리에 자신의 이름을 덧붙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애초에 섭리에 의해 존재가 규정된 생명…… 사람이라면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그 존재가 섭리의 일부로서 규정되기 마련이고, 나중에 덧붙여지게 되는 자기인식(自己認識)을 통해서 트루 팩트가 당연하게 이뤄지게 된다. 투란, 너의 경우에는 그러한 자기인식의 과정을 태어나고 나서 다른 누군가가 주도해서 끝낸 거다. 아주 높은 수준의 마법이지.
‘뭔 소리인지 정말 모르겠네.’
투란은 한숨부터 뿜어내고 말았다.
드라고니아는 분명히 이전의 이야기에 덧붙여서 뭔가를 열심히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전혀 투란에게 와닿는 설명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투란의 모든 삶은,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을 가슴에 박기 전의 모든 삶은 샤오콴 마을이 전부였다. 보이드 엠블럼인 상태로 떨어졌던 그 절벽에 도달하기까지가 샤오콴 마을에서 가장 멀리 나온 여행이었다. 그 전에는 그저 샤오콴 마을에서, 다른 어디론가 갈 곳이 없는 채로 열여섯이란 나이가 채워질 때까지 투란이라 불리며 자랐다.
누가 자신을 낳아줬는가 따위는 알 바 아닌 채로.
그런 일과 관련이 있을 뭔가가 있다면 단 한 가지…….
‘보석.’
보이드 상태인 몬스터 엠블럼을 새긴 이후로는 거의 희미해졌다고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집착과 갈망, 보석 하나뿐이었다.
지금도 언젠가 다시 그 보석을 되찾겠다는 기분은 충분히 남아 있기는 했다. 예전처럼 그 보석에 눈이 돌아갈 듯한 상태는 되지 않을 듯하지만…… 그 갈망을 품고 있던 시절의 기억은 여전히 또렷하게 투란에게 새겨져 있는 셈이었다.
“네키아, 그러니까 너는 내가 내 진짜 이름을 말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거지? 그래서 내가 투란이라고 말해도…….”
“계약이 되질 않아요. 네키아에게 진짜 이름을 말해주면 계약이 이뤄져요. 하지만 투란이란 이름으로는 네키아랑 계약이 되질 않아요.”
물빛으로 반짝이는 방울 같은 눈동자, 물결로 이뤄진 작은 소녀가 되풀이해서 대답하는 모습이었다. 투란에게는 새삼 신기하게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설마 이런 풍경 속에서 자신이 버려진 아이라는 것을, 기묘한 저주가 걸린 아이였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될 줄이야!
“나는 다른 이름을 몰라. 내 이름은 투란이지. 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야. 누가 내게 이름을 물어봐도 난 진짜로 내가 투란이라고 대답한다고. 그런데 이 이름으로는 정령과 계약을 할 수가 없다고?”
뭔가 넋두리처럼 투란은 중얼거렸다.
‘네키아’를 향해서도, 드라고니아를 향해서도 아닌 자기 자신을 되짚는 듯한 중얼거림이었다.
뭔가 아주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샘솟는 상황이잖은가?
아주 센 정령이 계약을 하고 싶어 하는데,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얼른 그러자고 할 상황인 것 같은데…… 자기도 모르는, 정말로 있는 줄도 몰랐던 진짜 이름이란 것 때문에 멍청하게 ‘네 이름은 가짜.’라고 외치는 정령을 구경만 하는 꼴이라니!
누가 이 상황을 공평하고 공정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기분이 저절로 투란의 가슴속에서 불끈거리는 듯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바로 호응하듯 말하니…….
―네키아, 투란은 네게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으며…… 정령과의 계약에 필요한 진정한 이름은 그 자신도 모르고 있다. 네키아, 네게 숨길 생각 따위는 전혀 없으며…… 너와의 계약을 거부할 마음도 없다. 이럴 경우라면…….
“가계약?”
‘네키아’가 머리를 갸웃하는 모습으로 한마디를 꺼내고 있었다.
투란에게는 쉽게 이해가 가는 한마디가 아니었다.
‘가계약? 혹시 가짜로 계약하는 거?’
―가짜가 아니고, 임시로 맺는 협정 같은 것이야. 진실을 기반으로 현재 상황이 허용하지 않는 처지일 경우, 그 허용되는 상황이 갖춰질 때 계약으로서 효력이 시작되게 하자는 약속 같은 거지.
드리고니아의 이번 설명은 투란이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몬스터를 사냥하러 떠날 때, 길잡이와 몬스터 헌터 사이에서 흔히 맺는 약속을 금세 떠올릴 수 있었으므로!
길잡이가 안내한 곳에 몬스터가 있을 경우, 그 몬스터를 사냥해서 얻는 이득에서 길잡이의 몫이 올라간다. 몬스터가 없을 경우에는 길잡이는 오고 가면서 자신이 먹고 마신 비용도 메꾸지 못할 때도 있었다. 몬스터 헌터가 좀 성질이 더럽고 포악한 경우에는 길잡이에게 헛걸음하게 된 책임을 물어서 사냥준비에 소모된 돈을 전부 뜯어낼 때도 있었다.
―야,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드라고니아는 언뜻 투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엿본 듯, 어이없고 한심해서 짜증이 난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
‘응? 아, 그냥 그 임시로 맺는 협정이 잘못될 경우가 어떨까 해서…… 그런데 정령과 계약이라는 게 사람이 사람이랑 하는 거랑 같을 일은 없겠지?’
―인간끼리의 계약? 그런 거랑 비교하지 마라. 정령과의 계약은 한번 맺게 되면 곧장 섭리의 일부로서 작용하는 거야. 거짓말로 적당히 넘어가는 인간끼리의 계약과는 전혀 다르다.
‘아니, 사람이 하는 계약이라고 전부 거짓말로 적당히 넘어가는 거는 아닐 텐데? 약속을 지키려고 목숨을 거는 사람도 있단 말이야.’
―누가 없다고 했냐? 아주 드물어서 자주 못 보니까, 아예 대비를 해야 한다는 소리다. 굳이 거짓말이 아닌 경우라도, 지킬 능력이 안 되는 경우도 많으니까. 인간과의 계약은 늘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잖아.
‘아니라고 하기 어렵네…….’
쓴웃음을 지으며 투란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와 싸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한 일이었다.
반드시 잡겠다고 큰소리치고 가지만, 정말 능력이 안 돼서 다 죽어버리는 경우에는 거짓말을 했다고 하기 곤란하잖은가.
그저 멍청했다고 해야 할 경우이지…….
하지만 투란은 곧 느낄 수 있었다.
‘이거 해도 되는 약속이야?’
‘네키아’는 느닷없이 찾아왔다.
그리고 무엇을 했던가?
투란을 해롭게 하려는 행동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거대한 정령의 힘으로 투란을 보듬어주려는 듯한 행동만 했다.
그러면서 ‘네키아’는 투란과 계약을 하려 하고 있었다.
드라고니아의 태도를 통해 느껴보자면 엄청나게 좋은 상황인 듯했다.
하지만 이 좋은 상황이 과연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끗발 좋은 횡재인가?
조금 늦은 듯하지만 투란은 자신의 이름에 대해서 어쩌고저쩌고하기 전에 따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 왜 ‘네키아’가 자신을 계약의 대상으로 여기는가,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한 것이라면 왜 계약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부분을 떠올릴 수 있었다.
과연 ‘네키아’라는 정령과 계약해도 되는 것일까?
이름을 모르는 상태로 약속을 해도 되는 것일까?
투란이 확실하다고 자신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지금 그에 대한 훌륭한 지혜를 지닌 누가 있다면…….
―네키아와 조금 더 이야기하면서 몇 가지 확인해야 할 일이 있다.
드라고니아가 침착하게 말했다.
투란은 이런 침착하고, 어떻게 느끼자면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 아까부터 계속되고 있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달아야 했다.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소소한 일에 끙끙거리던 것은 투란이었고…… ‘네키아’에 대해서 보다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채로 드라고니아가 더 많은 것을 궁금해하고 있다!
투란은 어깨를 펴고 숨을 깊이 들이쉬면서 가만히 오른손을 내밀었다.
윌 라이트가 담긴 오른손 주변으로 ‘네키아’의 물결이 자연스럽게 가지치며 흘러드는 광경이 보였다. 때로는 허공에서, 때로는 투란의 몸을 거쳐서, 때로는 ‘네키아’의 형상 속에서 가지치는 물줄기가 윌 라이트를 향해 춤을 추듯 흔들거리면서 섬세하게 다가서는 셈이었다. ‘네키아’는 물빛 속에 호기심을 간직한 채로 드라고니아의 물음을 기다리는 듯했고, 드라고니아가 묻는다.
―네키아, 너는 계약자가 없는데 어떻게 이름을 부여받았지? 어째서 이런 곳에서 머물고 있었지? 어떻게 이곳에서 계약을 기억하며 정령으로서 온전하게 머물 수 있었던 거냐? 누가 너를 이곳에 불러내 묶어놨지?
한 가지씩 묻는 말이 아니었다.
투란이라면 분명히 한 번에 한 가지씩 물으라고 울컥할 듯한데, ‘네키아’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듯했다. 대답이 바로 줄줄 새는 물줄기처럼 쏟아져 나온다.
“네키아는 태어났어요. 그리고 낳아 준 분이 바로 세상에 내걸 수 있는 이름을 붙여줬지요. 하지만 이름이 있다 해도 네키아는 갓 태어난 아이였고, 갓 태어났지만 지나치게 강한 정령이었어요. 자기 힘을 제대로 다룰 수도 없는 그런 정령이었지요. 그래서 여기에 머물게 되었어요. 네키아가 자신의 힘을 남용(濫用)하지 않고, 다스리는 법을 알 때까지 여기에 있으라고 했어요. 여기서 백 년 정도 있으면, 네키아는 완전히 자라나서 홀로 세상에 나갈 수 있다고 했어요. 하지만 드라코눔의 아이와 여기서 만나게 된다면…… 네키아가 다른 존재와 계약을 할 수 있다면, 완전히 자라기 전에 떠날 수 있다고 했어요.”
―누가 너를 낳았지?
짧은 물음이었다.
조금 전의 쏟아내는 듯한 물음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났다.
하지만 투란은 지금 이 짧은 물음이 앞서 물었던 모든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여기에는 다른 것을 섞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다고.
‘네키아’의 대답은 여전히 거침없이 나온다.
“물결왕 네헬룬디아. 네키아를 낳아준 분이세요.”
“오? 그럼, 네키아는 공주님인가?”
불쑥 투란이 중얼거렸다.
왕이란 한마디를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뱉은 소리였다.
이 소리에 ‘네키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하는 태도를 보였고, 그 순간에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너무 고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치 너무 놀라서 잠시 할 말을 잃어버린 듯한 기척이라고 할 지경이다?
‘어이, 왜 그래?’
투란이 강한 의지를 담아 소리 없이 불렀다.
드라고니아가 그제서야 자신의 정적(靜寂)을 깨달은 듯, 하지만 거침없이 바로 물음을 토해낸다.
―네키아, 넌 여기서 얼마나 머문 거냐?
“수십 년? 아직 백 년이 되려면 멀었다고 느끼고 있어요.”
‘네키아’는 끊임없이 흐르는 시냇물처럼 맑고 깨끗하게, 전혀 거리낌없이 바로 대답하고 있었다. 한데 여기에 드라고니아가 조금 불편한 기척을 뿜어내며 말하니…….
―네키아, 물결왕 네헬룬디아는 드라코눔의 아칸 프록세티아의 동반자였다. 그건 벌써 수백 년 전의…….
“아칸 프록세티아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어요. 네키아를 낳을 때에는 아칸 셀크로네이가 물결왕 네헬룬디아와 함께했어요.”
―뭐?
드라고니아가 이번에는 할 말을 잃지는 않았지만, 당황해서 뜨악한 듯한 소리를 냈다는 것을 투란은 금세 느낄 수 있었다. 어째서 그런가에 대해서 투란은 바로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언제? 네키아, 언제 프…… 그 아칸이 세상을 떠났고 셀……이란 아칸이 언제부터 물결왕과 함께하기 시작했어?”
키린, 괴물 왕자님의 이야기를 하는 이야기꾼은 늘 수십 년 전에 있던 일이라고 했다. 그런 키린과 함께 했던 드라고니아가 춤추는 산맥 깊은 곳에서 머물면서 기억하는 드라코눔의 사정이라면, 확실히 몇 십 년 동안 똑같을 리가 없잖은가.
그러니까 약간 차이는 있을 수 있을 듯한데, 투란의 문장 속에서 드라고니아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놀라는 듯하다?
―새로운 물결왕에게 옛 이름을 그냥 붙여줬다고?
이건 무슨 이야기인가?
투란에게는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