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1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15)
“새로운 왕 아닌데요? 아칸 프록세티아와 계약한 물결왕 네헬룬디아가 아칸 셀크로네이와 계약을 했어요. 그리고 네키아를 낳았어요.”
‘네키아’의 입술 속에서 물방울이 맴돌며 시원한 대답이 나왔다.
이는 바로 드라고니아에게서 신음하는 듯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계약 전승…… 그건 실패한 줄 알았는데…….
‘무슨 얘기야?’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반응을 느끼면서, 물결왕이 뭔가에 대해 의아해하면서 물어야 했다. 어딘가 키린의 불꽃왕과 비슷한 느낌이기는 한데…… 불꽃왕 같은 것이 세상에 또 있을 거라는 소리는 투란이 들은 적이 없었다.
―조금 복잡한 이야기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들려줄게. 그보다 지금은 네키아에게 물어야 할 것이 있어. 네키아, 물결왕에게서 태어났다면…… 너는 어째서 상위(上位) 정령이 아닌 거지? 너의 힘은 분명히 강대하다. 하지만 너에게서 느껴지는 격(格)은…… 아무리 높이 봐도 중위(中位) 수준을 넘지 못해. 다른 곳이라면 그 힘만으로 상위 수준이라고 하겠지만 이곳에서 정령은 지닌 격과 상관없이 강력한 경우가 많지. 하지만 네가 물결왕에게서 태어난 정령이라면…… 어째서 상위 정령이 아닌 거지?
드라고니아의 이야기는 투란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고, 주변 풍경을 거울처럼 뒤바꾸고…… 원래 꼬르륵거리며 빠져야 할 투란을 물 위에 서게 해 준 데다가 마법의 도움을 받자마자 사람처럼 말을 하고 있는 정령인데 최고 수준이 아니라 어정쩡한 중간이라니!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담긴 내용으로 판단하자면 이는 드라고니아도 궁금해하는 듯하잖은가?
‘네키아’는 머뭇거리지 않고 깨끗한 물빛으로 웃음을 그려내는 듯한 얼굴을 투란에게 가까이하면서 대답을 한다.
“어려요. 네키아가 너무 어려요. 아칸 셀크로네이가 물결왕에게 상위 정령의 생성을 부탁했을 때, 상위 정령이 여럿 태어났어요. 중위 정령이 여럿 태어났어요. 하위 정령이 여럿 태어났어요.”
“어, 음, 응?”
투란은 ‘네키아’의 말에 호응하면서 맹한 소리를 내야 했다.
요약하면 상위부터 하위까지 주르륵 물결왕이 만들어냈다는 소리 같은데, 말을 잘하던 ‘네키아’가 갑자기 처음의 더듬대는 듯했던 말투로 되돌아가 있잖은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탓이다. 드라코눔의 마법과 관계된 부분이야. 간단히 설명하자면, 가능한 한 자연적인 성질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계약이 가능한 한 정령의 일족이 나타났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자면, 물결왕을 통해서 정령의 일족을 이 세상에 불러냈다는 뜻도 되겠지. 그런데 네키아, 어리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투란의 의아함에 답하면서 드라고니아는 다시 묻고 있었다.
이 물음은 ‘네키아’보다 투란을 먼저 궁금해하게 했다.
‘응?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 아냐? 어리다는 거…….’
―정령의 성장 정도는 시간과 무관한다. 내가 궁금해하는 것은 거대한 힘을 지닌 네키아가 시간의 축적과 함께 성장하는 경우라면, 대체 왜 여기에 두고 갔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성장이 가능한 정령은 드라코눔에서 매우 귀하게 여긴다. 네키아가 일시적으로 소환된 정령이었다면, 그 임무가 끝났을 때 정령의 영역으로 되돌려 보냈을 테지. 태어났기 때문에 돌려보낼 필요가 없는 네키아, 성장이 가능한 네키아를 대체 여기 혼자 놔둔 이유를…….
“네키아는 혼자가 아니에요. 네키아와 함께, 어린 정령들이 많이 남았어요. 네키아는 그 어린 정령들을 품고 여기 머물면서 성장해야 한다고 했어요. 백 년이 넘어가면, 어린 정령들은 완전히 네키아가 되니까, 그 때가 되면 상위 정령이 되어 세상으로 여행할 수 있게 된다고 했어요.”
드라고니아의 말에 살짝 끼어들면서, ‘네키아’는 찰랑거리는 물결 속에 다양한 무늬를 드러내면서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그 무늬 속에서 다양한 형태를 봤고, 전혀 숨기지 않고 묻는 소리를 꺼냈다.
“우어? 저게 다 뭐야? 짐승이야? 괴물? 어디서 본 거야? 여기 와서 물 마시고 간 녀석들? 혹시 이 호수에 빠져 죽은 녀석들?”
‘네키아’가 바로 환한 웃음을 띠었다.
“혼돈의 조각, 섭리의 파편과 엮인 어린 정령들이에요. 네키아의 안에 머물면서, 네키아랑 반드시 함께해야만 하고, 네키아가 되어야 하는 아이들이지요.”
투란은 눈을 껌벅였다.
“네키아가 된다는 게 무슨 뜻이야?”
―네 생각한 그대로의 뜻이다. 저 특이한 형태를 품게 된 정령들이 네키아와 동화(同化)되고, 네키아의 일부가 된다는 말이지.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이제 짐작이 가는군.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품은 의문에 대해서, 그 마음을 채워주는 듯한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투란으로서는 조금 쓴웃음을 지어야 할 대답이었다. 투란이 이해한 ‘네키아’와 하나가 되는 정령들이란…… 몬스터 로드에게 삼켜진 몬스터랑 거의 같은 느낌이었으므로!
“그 얘기는 네키아에게, 음, 어, 그러니까 그게…… 말썽 부리게 생긴 녀석들을 전부 쓸어담은 채로 여기 놔둔…… 그런 얘기야?”
뭐라 말해야 할지 애매한 느낌이었지만, 투란은 그냥 나오는 대로 말했다.
드라고니아가 이해한 것과는 조금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네키아’의 말을 납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기분으로 말한 것이기도 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했나 싶은 미묘한 기분이 곧 뒤따르는 것이기도 했고.
‘네키아’는 가늘고 작아 보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물결 속에서 작은 방울처럼 뭉클거리는 형상들을 출렁이게 하면서 투란의 말에 답한다.
“정령은 섭리의 조각이어야 해요. 하지만 네키아와 함께 남겨진 어린 정령들은 나처럼 혼돈의 파편을 품은 채에요. 그러니까 네키아는 섭리의 조각으로 완전히 자라나서 혼돈의 파편을 정리한 다음에나 세상에 나가야 해요. 그러려면 백 년 동안 여기 있어야 하는 거였어요. 이렇게 네키아랑 계약할 수 있는 투란이 오지 않는다면, 네키아는 꼼짝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물결왕이랑 아칸이 시킨 대로 시간이 혼돈의 파편을 정리해주길 마냥 기다렸을 거예요. 하지만 왔잖아요. 투란…… 진정한 이름으로 네키아와 계약을 하면, 네키아도 여기서 떠날 수 있어요. 네키아가 투란의 힘이 돼 줄 거예요.”
“흠…….”
투란은 머리를 긁적였다.
‘네키아’의 말 속에서는 뭔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느낌이 실려 있었다. 뭔가 중요한 일을 맡았고, 이를 마칠 때까지는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는 느낌. 그러나 계약할 수 있는 누군가 나타난다면 계약을 통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왜 이렇게 복잡해?’
투란에게는 이상한 이야기였다.
물결왕이라니, 아칸이라니 하는 누군가가 그냥 ‘네키아’랑 계약해서 데려갔으면 되는 일이 아니던가? 뭔가 굉장히 능력 있고 강해 보이는데 왜 ‘네키아’를 여기에 내팽개쳐놓고 갔을까?
게다가…… 어째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맨 처음으로 되돌아온 듯할까!
결국 투란은 그 이름 때문에 ‘네키아’랑 계약도 못 할 처지인데, 대체 ‘네키아’는 왜 이렇게 물방울을 담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투란을 쳐다보는가!
―투란, 계약을…… 네키아에게 가계약을 해두는 편이 좋겠다. 정상적인 계약이 아닌 단순한 약속에 불과하더라도, 투란 네가 네키아를 받아들이겠다고 또박또박 말을 해두는 것이 좋겠어.
‘응? 또박또박?’
강조하는 말투가 어딘가 장난치는 것인가 했지만,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아주 진지하게 권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드라고니아는 아주 심각하게 ‘네키아’의 일을 검토하고, 투란에게 약속을 권하는 것이다. 그 까닭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할 낌새는 전혀 없고!
혼돈의 파편이 어쩌고 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몬스터 로드의 할 일이라고 하는 듯한 낌새도 있고…….
하지만 여기 있는 몬스터 로드가 투란뿐은 아니잖은가?
투란은 일단 불쑥 스쳐 가는 생각을 말해보기로 했다.
“음, 저기 네키아, 나랑 제대로 된 계약을 할 수 없다고 해도…… 여기 나만 온 거 아니거든. 저 안에…….”
“네키아랑 계약할 수 없어요. 저 안에 사람들이랑 저 수호자는 네키아와 계약할 자격이 되질 않아요. 억지로 네키아와 이어지게 되면, 모두 미쳐버릴 거예요.”
“에?”
투란의 눈이 끔벅거렸다.
수호자가 된 세란드야 마법으로 이뤄졌으니까 뭔 일이 생길지 모른다 쳐도, 남매들에 대해서까지 이렇게 단호한 말이라니?
드라고니아가 한숨을 쉬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투란, 네키아는 정화제(淨化祭)의 의식(儀式)을 품은 정령이다. 드라코눔의 비술을 기반을 바탕으로, 일부러 여기 남겨진 거야.
‘무슨 뜻이야? 그냥 넘어가지 말고, 하는 데까지 설명해보라고!’
못 알아듣는다고 또 그냥 넘어가려 할 경우에 대해서 미리 못을 치면서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으르렁대는 기분을 그대로 토해냈다. 씁쓸한 기척과 함께 드라고니아의 대답이 나온다.
―물결왕, 네헬룬디아는 인페르노의 재앙과 함께 세상에 나타난 화염계 몬스터를 맞상대하기 위해서 드라코눔의 아칸 프록세티아가 자신의 생명을 소모해 간신히 불러낸 정령이다.
‘또 그 재앙이야?’
투란의 낯이 살짝 구겨졌다.
드라고니아는 그런 반응에 아랑곳없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오직 하나뿐이고, 둘이 있을 리가 없는 물의 정령…… 이름 그대로 물의 모든 정령 위에 서는 왕이지. 하지만 그런 정령의 왕이라 해도, 이 세상의 모든 물을 한꺼번에 그 의지 아래에 두고 뒤틀 수는 없다. 그건 섭리에서 어긋나는 일이고, 정령의 왕이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때문에 물결왕에게는 수하가 필요하다.
‘네키아 같은 정령을 낳게 되는 거로군.’
―맞아. 강력한 힘을 휘두르도록 형성된 상위 정령, 물결왕은 그런 정령의 군단을 거느림으로써 자신의 힘이 섭리에 호응해서 발휘되게 하는 거야. 그러나 물결왕이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게 하는 것 또한 마법이다. 기본적으로 섭리를 뒤틀고 있지. 계약자는 그 뒤틀림을 다시 바로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흠? 그래서 계약자가 필요한 거야? 마법의 뒤틀림을 막아주려고?’
―그래, 그리고 계약할 정령의 수준은 계약자에게도 까다로운 조건과 높은 수준을 필요하게 해. 아칸 프록세티아는 정말 간신히 그 조건과 수준을 맞출 수 있었다. 물결왕을 불러내는 것만으로 다른 일은 아무것도 못 할 지경이었지.
‘키린이랑 다르네?’
―그놈이랑 비교하지 마! 그놈은 완전히…… 젠장, 일단 닥치고 끝까지 들어! 아무튼, 물결왕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 드라코눔의 현자들이 생각해낸 방법은 물결왕이 불러낸 수하와 드라코눔의 형제들이 계약을 맺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물결왕으로부터 흘러나온 상위 정령, 그 정도라면 어떻게든 드라코눔의 일족 중에서 감당할 역량을 갖춘 자가 있다고 본 거지. 그 결론은 옳았다. 물결왕을 통해 생성된 상위 정령은 정말 강력했고, 드라코눔의 일족과 계약할 수 있었지. 하지만 그 과정에는 위험요소가 있었다. 많은 수의 정령을 한꺼번에 세상에 나타나게 한 탓에, 혼돈이 생겨난 거야. 작은 조각처럼, 혼돈의 파편을 머금은 정령…… 뒤틀려서 금세 괴물이 될 수 있는 정령이 강력한 상위 정령과 함께 나타났다. 드라코눔의 현자들은 그렇게 일그러진 정령을 방치할 수가 없었지. 그래서 ‘정화제의 의식’을 고안해냈다. 그릇이 되는 정령, 이름을 지니고 확실하게 자신의 경계를 지닌 정령에게 혼돈을 품은 정령을 삼키게 했다. 그래, 분명히 어떤 면에서는 몬스터 로드의 역할을 한다고도 할 수 있지.
‘네키아…….’
―그래, 네가 들었다는 이야기 속의 물의 정령은 그런 역할을 하는 물의 정령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고 해야겠지. 혼돈을 품은 일족을 삼키고, 잠재운다…… 그게 바로 ‘정화제의 의식’을 품은 정령의 역할이지. 그리고 그 역할은 꽤 길지만, 끝없이 지속되는 일은 아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애초에 섭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정령이기에 세계의 흐름은 그 존재 안에 끊임없이 순환하니까, 세월과 함께 의식이 끝난다. 그 의식을 무사히 마친 정령은 계약자 없이도 세상에 머물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로서 재생성되지. 이 세상의 새로운 주민이 된다고 할 수 있겠군.
‘끝나기 전에 계약을 하면……?’
투란은 물빛이 일렁거리는 ‘네키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마법의 의식을 품었다는 정령…… 도대체 이 정령 ‘네키아’는 왜 투란과 계약을 원하고 있을까? 왜 다른 사람이 있는데도 투란이 가계약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인가?
―정화제의 의식을 품은 정령과 계약을 한다는 것은 정화가 끝나지 않은 정령의 일족을 몽땅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충 감이 오나?
투란의 생각이 잠시 멎고 말았다.
드라고니아의 말은 느닷없이 아주 선명하고 또렷하게 투란이 납득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이야기를 끌어와 준 듯했다.
금세 괴물이 될 수 있는 정령……이라는 소리는 투란에게 그냥 몬스터인 정령이나 마찬가지였고 그런 것을 품은 ‘네키아’랑 계약한다는 것은 몬스터 엠블럼을 통해 몬스터 에센스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한다면…… ‘네키아’가 말한 미쳐버린다는 상황이 아주 분명하잖은가.
문득 투란은 ‘네키아’에게 이곳에 계속 머물면서 백 년을 채우도록 깊이 권장하고 싶은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