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1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16)
Chapter 64. 레이디 & 나이트
―투란, 네키아는 이미 너를 알아봤다. 이대로 두고 가려 해도 따라붙을 거야. 아직 성장이 완료되기 전에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네키아의 본질은 정령보다 괴물에 가까워질 거다. 네가 이야기로 듣던 물의 정령, 본능에 따라 뭐든 삼키는 깊은 물의 괴물 말이야. 그리고 널 덮치려 하겠지.
드라고니아의 말에는 신중함과 함께 살짝 놀리는 낌새가 섞여 있었다. 투란은 그 낌새가 뭔 뜻인가 확실하게 느꼈고, 한숨 쉬면서 물을 수밖에 없었다.
‘괴물이 된 다음에 싸워 삼키느냐, 아니면 이대로 정령인 네키아와 약속을 하느냐?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드라고니아가 장난기 없이 진지하게 답한다.
―그래. 상위 정령의 힘을 지닌 몬스터, 그것도 그 안에 뒤틀린 정령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지. 네키아가 정령의 본질을 유지한 채로 그걸 억누르도록 돕는 게 좋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그게 가장 좋은 선택이 될 거야.
‘선택…….’
문득 투란은 다시 ‘네키아’의 모습을 살폈고, 주변을 둘러봤다.
벽처럼 지붕처럼 둘러친 채로 찰랑이는 물의 장막, 거울처럼 고요하게 깔린 물의 융단, 물방울이 맴돌면서 기묘한 몸의 굴곡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네키아’.
저절로 투란의 입술이 열렸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흘러나온다.
“네키아, 계약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기 온 것은 내가 처음이야? 미치지 않고 계약할 수 있는 누군가가 전에 온 적은 없어?”
―응?
드라고니아가 ‘네키아’보다 먼저 의아한 소리를 투란에게 흘려냈다.
하지만 ‘네키아’는 전혀 의아해하지 않으며 맑고 깨끗한 웃음과 함께 투란에게 답한다.
“네키아가 이곳에 놓이고 나서 몇 년 뒤에 한 사람이 왔어요. 네키아와 계약할 수 있는 능력은 있었지만…… 네키아는 그 사람과 계약할 수 없었어요. 그 사람이 네키아와 계약을 하게 되면, 네키아는 물의 정령이 아니라 불의 정령으로 변해버릴 테니까요. 네헬룬디아, 물결왕에게서 태어난 네키아가 불꽃왕의 아이가 돼 버릴 테니까요. 계약을 하지 않는 대신, 그 사람은…….”
“키린?”
“맞아요, 키린. 키린은 네키아에게 품고 있는 아이들을 다독이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그리고 그다음부터 네키아는 이렇게 거울처럼 고요해질 수 있게 되었지요. 진정한 이름을 모르는 투란도 키린을 알아요?”
“어, 좀 알지.”
투란은 왠지 멍하고 맹해지는 기분을 느끼면서 뚱하니 대답해야 했다.
키린이 여기에 먼저 온 것은 꽤 오래전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일을 알고 있어야 할 텐데, 왜 이놈의 드라고니아가 그런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단 말인가!
―전혀 모르는 일이야!
‘왜 몰라! 네키아가 여기 수십 년을 있었으면, 나랑 만나기 훨씬 전이잖아! 그때 키린이라면, 분명히 너도 함께 있었잖아!’
투란은 머리를 굴렸고, 나름대로 조리 있게 따지고 들었다.
이는 잠시 드라고니아를 망설이게 하는 듯했고, 곧 가라앉은 듯한 기척의 대답을 끌어냈다.
―나는…… 수십 년 전에는 생각할 수 없는 몬스터로 전락한 상태였다. 이렇게 윌 라이트를 이용해 자신을 드러낼 수조차 없는…… 키린에게 삼켜진 몬스터에 불과했을 뿐이다.
‘맞는 말 같은데, 뭘 감추는 것 같기도 하네?’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서 느낀 기척에 대해 바로 토해냈다.
‘네키아’가 이런 투란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물빛 눈동자 위로 살랑거리는 물결의 흐름을 드러냈다. 그리고 곧 묻는데…….
“아칸에게 화내는 거예요?”
“응? 에, 음…… 원래 우리가 좀 이래.”
누군가 드라고니아와의 대화에 끼어든 경우를 처음 겪는 탓에 잠깐 당황해하다가 투란은 어리바리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니, 애초에 윌 라이트를 알고 있던 ‘네키아’였고 드라고니아랑 대화도 하고 있었잖던가? 뭔가 투란이 느끼는 바가 너무 늦었을 뿐이다!
자신이 생각보다 둔감하다는 기분에 투란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고, ‘네키아’에게 묻는 말이 나온다.
“네키아, 계약을 못 하는 나랑 약속을 하게 되면…… 그 때는 어떻게 되는 거야? 아, 잠깐…… 무슨 약속을 하는 거지?”
뭔가 되는대로 말하려던 투란은 퍼뜩 깨닫고 말았다.
정령과 계약한다는 것이 대체 무슨 뜻인가?
물의 정령이란 것이 투란이 들었던 이야기 속의 정령과 아주 다르다는 것을 ‘네키아’는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키린이 불꽃왕을 다룬다는 것은 알지만, 그게 대체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해 투란은 전혀 모른다!
딱 잘라서 정령과의 계약이 뭔지, 투란은 정확하게 아는 바가 없다!
그런데 계약이 아닌 약속이란…… 대체 뭘까?
―호오? 훌륭한 생각이로군. 자신의 무지(無知)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지혜의 길을 향한 첫걸음이지!
‘조용히 해!’
울컥해서 바로 ‘닥쳐!’라는 생각이 치솟았지만, 투란은 ‘네키아’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생각을 조였고 나름대로 부드러운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똑같을 수밖에 없지만!
―흠? 이제는 스스로의 생각조차 조절하는 거야? 그건 인내(忍耐)를 키우는 좋은 방법이다.
드라고니아가 연이어 칭찬하는 시늉으로 놀리는 소리에 투란은 아예 생각을 잠깐 멈추면서 심호흡을 한 다음에 ‘네키아’를 바라봤다.
‘네키아’가 그런 투란을 지켜보다가 말한다.
“약속은…… 진정한 이름을 모르는 투란이 진정한 이름을 알게 될 때, 네키아를 부르는 거예요. 네키아에게 새로운 이름을, 진정한 이름을 알게 된 투란이 부를 새 이름을 선물하면서…… 불러주겠다고 약속하는 거죠.”
“응? 부른다고?”
투란의 눈이 저절로 껌벅였다.
‘네키아’가 마주 껌벅이는 물방울이 춤을 추는 눈동자를 투란에게 들이대듯이 가까이 얼굴을 붙이면서 말한다.
“약속이 지켜지면, 그 때 네키아는 계약자가 있는 정령이 돼요. 그러면 여기서 더 머물지 않아도 돼요. 진정한 이름을 모르는 투란 곁으로 바로 갈 수 있어요. 그리고 함께하게 되는 거예요. 정령과 계약자가 함께하는 거예요.”
“음, 에…… 흠…… 새 이름은 뭐야?”
팔짱을 끼었다가 한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턱을 벅벅 긁적이면서 투란은 ‘이게 대체 뭔 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묻고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네키아’보다 먼저 답한다.
―정령이 품은 진정한 이름이란, 그 본질을 두드리는 ‘힘’이다. 계약과 함께 부여되는 이름은 그 ‘힘’을 다루는 열쇠가 되지. 원래 정령의 진정한 이름을 알아내는 것이 계약을 원하는 자가 해결해야 하는 첫 번째 단계야. 대부분 첫 번째 단계를 넘지 못해서 정령과의 계약에 실패한다. 그 첫 번째 단계를 거치고 알아낸 진정한 이름 위에 자신과의 계약을 증명하는 근거로서 새로운 이름을 덧붙이는 것이 계약의 두 번째 단계가 된다.
‘이름을 알아내야 한다고? 그냥 말해줬잖아, 네키아라고.’
―그래, 그게 바로 이 녀석이 위험한 까닭이지. 이렇게 된 원인을 간단히 말하자면 춤추는 산맥은 그런 정령의 규율(規律)을 망가뜨리는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고…… 혹은 투란 너에게 자격이 있기 때문에 이름을 알려준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자격?’
―정령은 격을 갖춘 자가 계약을 원할 경우에 자신의 본질…… ‘힘’을 보여준다. 그걸 읽고 말하는 것, 그게 바로 첫 번째 단계를 마치는 거야. 네키아는 아예 자기 입으로 말해준 것뿐이고…… 이런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냐?
‘아니.’
투란은 고개를 한 바퀴 돌리면서 팔짱을 풀었다.
‘네키아’가 그런 투란에게 잔뜩 기대를 하는 듯한 눈길을 보냈다.
투란의 눈길은 ‘네키아’를 거쳐서 하늘을 바라봤다.
투명한 물빛으로 가득 채워진 듯이 보이는 하늘이었다.
온 세상이 ‘네키아’가 펼쳐놓은 물의 장막에 내린 듯했다.
밟고 있는 거울에는 장막에 비친 세상이 고스란히 담긴 듯했고.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자신의 지루함, 답답함을 알아차리고 물었던 것을 되뇌었다. 분명히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지는 않았다. 뭔지 애매했고, 뭔지 투란에게서는 멀게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몬스터 로드인 채로 마법을 쓰게 해주는 황금매를 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마법사가 되고 싶은가? 그렇지는 않았다. 너무 깊이 알면 미쳐버리기도 한다는 것이 마법의 지혜라고 하니까…… 그래서 세상에는 미친 마법사가 많다고 하잖던가.
‘약속…… 새 이름이라…….’
물빛 가득한 세상을 바라보며 생각하던 투란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묻는다.
“네키아, 어떤 이름을 붙여줘야 하는 거야? 이미 이름이 있는데 새 이름을 붙이는 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네키아’가 투란처럼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는다.
“이름 지을 줄 몰라요?”
“응? 아, 아하하…….”
투란의 입가가 살살 꼬이면서 어딘가 멋쩍고 민망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샤오콴 마을의 꼬마 투란은 이름 짓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해본 적이 있었다.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면 몇 번이 몇 십 번이 되기도 했다. 샤오콴 마을에 누군가 찾아오면 거기에는 늘 자신을 투란이라고 하는 누군가 있었고, 그런 사람들을 보다 보면 꼬마 투란은 자기 이름이 정말 세상에 흔하다고 금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옆집의 티아라든가, 건너 집의 로잭 같은 아이들을 보면서 자신도 너무 흔하지 않은 이름을 갖기를 상상하면서 이름 짓기를 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투란이 짓던 이름은 늘 남자아이의 이름이었고, 사내가 지녀야 할 이름이라면 무엇일까 하는 쪽으로만 생각이 굴러갔었다.
덕분에 ‘네키아’처럼 작은 여자, 어리지는 않지만 작은 여자의 모습을 한 정령에게 붙여줄 이름 따위는 정말 한 가지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씩씩한 사나이의 이름을 ‘네키아’에게 붙여주는 것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고…… 결국 투란의 잔머리가 맹렬하게 굴렀고, 이 상황을 회피하는 말이 술술 흘러나온다!
“하하. 네키아, 혹시 불리고 싶은 이름 같은 거 없어? 내가 붙여줬으면 하는 이름 같은 거 말이야. 생각해둔 좋은 이름 있다면, 내가 그 이름을 붙여줘도 되는 거잖아?”
“네헬리아.”
“어?”
투란의 눈이 껌벅거렸다.
‘네키아’가 꺼낸 한마디는 무슨 뜻인가?
―이름이다.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하면서 말했고, ‘네키아’가 다시 또박또박 말한다.
“네헬리아. 네키아가 원하는 이름은 네헬리아.”
“네헬리아……?”
―네헬룬디아의 아이라는 뜻인 듯하군. 마치 인간이 이름을 물려주는 듯한 방식인데…… 얘가 어디서 이런 식으로 이름 짓는 것을 배웠지?
투란이 ‘네키아’의 말을 되뇌는 사이, 드라고니아는 어이없음에 의아함을 덧붙이며 말하고 있었다. 무엇이 이상한지 투란에게는 알 수 없었지만, 투란은 확인하기 위한 말을 꺼낸다.
“그 이름이 좋아? 네헬리아?”
“네키아는 진정한 이름을 모르는 투란이 진정한 이름을 알게 되어서 불러줄 때, 네헬리아라는 새 이름을 붙여주길 원해요!”
물방울이 입술 사이에서 세차게 끓어오르듯이 짙어졌고, ‘네키아’의 형체를 이루는 물이 세차게 파문을 흘렸다. 그 파문은 발아래의 거울 위로도, 사방에 둘러쳐진 장막으로도 번져갈 정도였다.
투란은 그 파문이 일렁이는 광경을 봤고, 어렴풋이 깨달았다.
“네키아, 그거 혹시 키린에게서 들은 이름이야?”
“아니요! 키린이 가르쳐준 이름 짓기로 네키아가 직접 지어놓은 이름이에요!”
물빛이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네키아’가 힘차게 말했다.
“어? 아…….”
―키린, 또 무슨 짓을!
투란이 납득하는 사이, 드라고니아는 발끈했다.
‘네키아’가 기대에 가득 찬 듯한 태도로 투란을 바라봤고, 드라고니아가 뭣 때문에 발끈하는가 약간 의아해하면서도 투란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헬리아, 그 이름으로 하자. 에, 그러면 약속은…… 손가락 걸면 되나?”
막상 말을 꺼내놓고 나니 뭔가 장난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투란은 조금 멋쩍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야기 속에서는 그저 몇 마디 잘못 건넸다가 물의 정령이 그걸 빌미잡아 사람을 덮치고 물에 잠겨버리게 한다던데…… 설마 지금 투란 자신이 그런 위험을 자초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불쑥 찾아오는 순간, 투란은 물결이 자신의 살갗에 닿고 질주하면서 온몸을 덮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
순식간에 얼굴과 머리카락 사이까지 물결이 가득 채워졌고…… 이건 어떻게 봐도 한순간에 온몸이 물에 잠긴 꼴이잖은가! 의심의 여지도 없이, 아예 코와 입까지 물에 덮여 숨을 쉬는 것이 물을 들이켜는 상황이었다.
‘아냐, 괜찮아! 나에게는…….’
몬스터 로드로서 자신의 능력을 되새기며 투란이 침착하려는 순간, ‘네키아’의 물결이 투란의 온몸에 맑고 깨끗한 ‘힘’을 쏟아넣었다. 이는 바로 몬스터 엠블럼에 영향을 끼쳤다.
투란은 몬스터의 형상을 전혀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보글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