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1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17)
―호들갑 떨지 마!
드라고니아가 외쳤다.
‘숨 막혀 죽을 뻔했잖아!’
투란은 잔뜩 호들갑을 떤 다음에야 반박했다.
그런 투란의 앞에 ‘네키아’가 환하게 물결치는 웃음을 그려낸 채로 바싹 붙어 있었다. 투란의 허리 아래는 물에 잠겨 있지만, 몸이 거울 같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서가 아니었고 물결이 치밀어 올라 휘감은 모습이었다.
‘네키아’의 몸 아랫부분이 투란의 몸을 향해 쏟아진 듯이 덮어버린 듯한 모습이기도 했다. 물의 성질이 그대로 발휘된 듯, ‘네키아’는 자신의 몸으로 투란을 그냥 덮어버릴 작정인 듯했다.
뺨을 쓰다듬고, 얼굴까지 물결이 차오르는 그 상황에서 돌연 몬스터 엠블럼 ‘천칭’이 웅크리며 정령의 힘에 조여드는 느낌이 찾아왔고, 투란은 자신이 몬스터를 형성하기 곤란한 상태란 것을 바로 깨달아야 했다.
몬스터 로드로서 ‘악마의 심장’을 형성할 수 없다면…… 헤엄치는 법이 엉망진창이고 물속에서 오래 버티는 재주는 없는 투란으로서는 바로 물에 빠져 죽는다는 상황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투란이 자신도 모르게 허우적대는 꼴을 보였는데…….
―뭔 숨이 막혀! 네키아를 구성하는 물은 정령의 힘으로 수중호흡(水中呼吸)이 가능하게 해주는데!
드라고니아가 짚어 말한 그대로였다.
코와 입으로 스며온 물결은 투란의 호흡을 전혀 방해하지 않았다.
숨구멍을 타고 넘어가 허파 가득 물이 차는 느낌은 시원했고, 깨끗해지는 기분이었으며 물에 빠져 질식(窒息)하는 상태가 아니라, 물로 숨을 쉬는 듯했다.
물론 그런 경험을 했음에도 투란은 반박할 수가 있었다.
‘내가 물고기냐! 물속에서 멀쩡한 사람이 숨쉬기가 될 줄 어떻게 아냐고!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오러 윌더의 능력만으로도 물속에서 한 시간 가까이 버틸 수 있잖아! 키린에게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배워놓은 것은 왜 잊어버리고 있는데!
‘아니, 그건…… 야, 근데 왜 니가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
드라고니아의 으르렁거림이 맞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고 있으면서도 투란은 다소 어이없어하며 묻고 말았다.
키린이 오러를 이용하는 방어술로 가르쳐준 것 중에서는 확실히 물, 불, 바람, 흙무더기 따위에 갑자기 휩쓸려서 숨쉬기가 어려울 상황에 대한 대처도 있었다. 조금 전에 느닷없이 ‘천칭’이 몬스터의 형상(形相)을 해체하는 상황에 당황한 투란은 잠시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천칭’은 몬스터의 형성(形成)이 방해를 받는다 싶은 순간에 세찬 오러의 힘을 대신 형성하기는 했다.
―정령과 계약…… 가계약이든 뭐든 하면서 정령을 웃게 만드는 놈이 있단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거든! 이게 대체 뭔 꼴이냐고!
‘어?’
투란은 설마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네키아’가 자신의 행동을 보고 웃고 있는가 싶었지만…… 그래도 일단 눈을 마주치며 바라봤다. 분명히 거기에는 웃음 짓는 듯한 물결이 있었다. 하지만…….
보글보글.
‘빛나네?’
입을 열었다가 거품만 내는 꼴이 된 다음, 투란은 생각만 하고 말았다.
이는 곧 드라고니아에게 전해졌고…….
―네 생명력이 네키아에게, 네키아의 정령 인장(印章)이 너에게 전해지고 있는 거야. 원래는 이렇게 또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데……네키아의 몸 안에서 생명의 빛이 무늬를 그려내는 이유는 오러 때문이다. 오러 윌더의 경우, 생명력이 보다 선명하게 압축된 형태를 띠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탓이지.
‘인장?’
투란은 자신의 생명이 ‘네키아’의 눈동자 속에서 물거품을 빛나게 하는 광경을 봤고, ‘네키아’의 물결이 자신의 살갗에 스며들어 뼛속까지 물들이는 것을 느꼈다.
‘네키아’의 몸 안을 누비는 생명의 빛은 잘 펼쳐진 나무뿌리를 보는 듯했고, 정령의 눈동자는 그 뿌리의 근원처럼 점점 밝게 빛나고 있었다. 더 이상 투명할 수가 없이 또렷한 빛의 눈동자로 ‘네키아’는 투란을 바라봤고, 그 눈동자를 마주 보면서 투란은 팔다리를 거쳐 서서히 심장으로 밀려오는 물결을 깨달았다.
‘내가…… 물이 되는 것 같은데?’
약간 당혹스러운 기분이 투란의 가슴에 불쑥 피어났다.
몬스터 엠블럼을 중심으로 몸이 변화하는 과정에는 익숙하지만, 이렇게 몸 밖으로부터 밀려오는 물결에 물들어가는 것은 아주 낯설었기 때문이다. 이 낯선 기분은 투란의 마음에 미묘한 불안함을 생겨나게도 했다.
마치 이대로 물이 되어 거울처럼 모든 것을 비추는 호수, ‘네키아’의 품 안에 녹아버릴 듯한 이상한 느낌…… 어딘가 기분 좋을 듯하지만, 자신이 사라진다는 생각은 투란의 불안을 차츰 더 짙게 하고 있었다.
이런 불안감은 곧 투란의 ‘천칭’을 두드렸고, 반사적으로 더욱 자신을 내세우듯이 강렬한 오러의 힘을 끌어내게 했다. 하지만 강해진 오러의 광채는 ‘네키아’의 물로 이뤄진 몸 안에 더욱 밝은 무늬를 퍼뜨리면서 투란이 느끼는 물결을 한층 더 짙게 했으니!
‘에, 이게 아닌가!’
투란이 불안함을 덮고 누르는 민망함을 느끼는 순간, ‘네키아’가 물거품 대신에 빛의 무늬를 머금은 입술을 달싹였다.
“진정한 이름을 모르는 투란, 네키아는 투란이 진정한 이름을 알고 네헬리나라고 불러주기를 기다린다고 약속해요. 진정한 이름을 알게 된 투란은 네헬리나라고 네키아를 불러주겠다고 약속하죠?”
“어, 응. 그래.”
보글거리는 대신에 입에서 또렷하게 흘러나가는 말소리는 투란을 흠칫하게 했다. 아까는 입만 열면 물거품이 보글거렸는데, 갑자기 말하는 대로 소리가 나다니…….
‘네키아’의 손길이 투란의 입술을 가만히 덮었다.
“물을 겁내지 말아요, 진정한 이름을 모르는 투란. 네키아와 약속을 했으니까, 이제 물은 투란의 힘이 되어 줄 거예요. 투란이 진정한 이름을 알아낼 때까지, 이 아이가 투란 곁에서 네키아 대신에 물의 힘을 부여해줄 거예요. 이 아이는 네키아가 투란에게 주는 약속의 존재…… 투란은 네키아에게 생명의 휘장을 드리워줬으니까…… 네키아는 이 아이…… 휘드라곤(Hydragon)을 맡길게요.”
“응? 뭐?”
―휘드라곤? 아니, 그건……!
투란이 ‘네키아’가 맡긴다는 것이 뭔가 하고 의아해할 때, 드라고니아는 화들짝 놀랐다. 투란은 놀라는 드라고니아에게 설명을 들어야 하는가 싶은데, 그 전에 이미 몸으로 스며오는 색다른 감각을 알아차려야 했다.
‘어? 이게 뭐야? 몬스터?’
―아니야. 정령수(精靈獸)라는 거다…… 이 산맥에서는 몬스터라고 할 수밖에 없나…… 이 뒤틀린 영역에서는 정령수가 살지 못해. 아마도…… 투란 너에게는 이야기로도 듣기 힘든 존재일 거야.
‘처음 듣는 거 맞기는 하네. 그러니까 어쨌든 여기서는 몬스터란 말이지? 대체 뭐 하는 몬스터인데?’
온몸으로 스며오는, ‘네키아’의 물결과는 전혀 다른 빠르고 섬세하면서 가늘고 날카롭게까지 느껴지는 새로운 물의 형상에 놀라면서 투란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네키아’의 물결이 넓게 퍼지며 스며오는 것과 다르게 이 새로운 것, 정령수 휘드라곤이라는 녀석은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온 다음에 휘감고 실 가닥처럼 엮이려 하고 있었다. 넝쿨처럼, 혹은 수십 가닥으로 흩어진 듯하지만 한 덩어리인 실뭉치처럼!
―휘드라곤은…… 글쎄다, 이걸 뭐라 해야 할지…… 지닌 능력은 딱 잘라 말할 수 있다. 가속분류(加速分流), 흐르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빨라지고 빨라질수록 가지를 치며 갈라져 흐르는 물결. 그게 바로 휘드라곤이다.
‘세다는 거야, 약하다는 거야?’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투란은 간결하게 되물었다.
점차 깊이 팔에서, 다리에서…… 배 속으로 스며오며 휘감는 휘드라곤이라는 녀석이 핏줄을 타고 심장에 가까워지려 하는 것을 선명하게 느끼는 투란이었다. 그 흐름은 꾸물거리며 기어다니던 ‘악마의 심장’과 닮았다면 닮은 구석이 조금 느껴지는데…… 이건 피와 살, 뼈를 쿡쿡 찌르고 감으면서 쉬임 없이 흐르는 것이 넝쿨줄기랑은 아예 다른 느낌이었다.
과연 이 녀석을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
이대로 몸에 스며들게 해서 마음먹은 대로 부릴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몬스터 엠블럼이 제 효과를 발휘할 때, 날름 삼켜서 문장 속에 품은 채로 써야 하는가?
그렇게 할 만큼 쓸모가 있을까, 없을까?
이렇게 떠올린 여러 생각은 결국 단순하게 말하자면 강한 놈인가, 약한 놈인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압축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이런 투란의 번잡한 생각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조금 느릿하게 대답이 나오는데…….
―그건 순전히 네게 달린 일이다. 휘드라곤, 드라코눔에서 정령수 휘드라곤과 계약한 이들은 적지 않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저 물의 정령과 계약한 것뿐인 일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아주 강력한 도움이 되었지. 휘드라곤은 그 능력 이외에는 아주 단순하다. 그러니까…… 계약자, 혹은 휘드라곤을 너처럼 맡게 된 이가 어떤 식으로 부리는가에 따라서 아주 다른 역량을 보이는…… 투란?
얘기가 길어지는 동안 투란의 정신은 완전히 자신의 몸에 스며오는 물결, 두 가지 형태의 물결이 어떻게 자신과 엮이는가에 집중해버렸다. 더 이상 누가 뭐라 떠들든 말든 전혀 상관없다는 듯, 투란은 ‘네키아’와 휘드라곤이 제각각 전하는 물결의 무늬와 자신이 뿜어내는 오러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와, 이 녀석 신기하잖아!’
투란은 점차 은밀해져 가는 물결의 흐름이 재미있었다.
‘네키아’가 방긋 웃는 듯한 표정과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드라고니아가 뭐라고 떠드는 것도…… 휘드라곤이 길고 가는 실타래처럼 몸 안을 헤집듯이 파고드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를 막지를 못했다.
그 재미에 집중하느라 투란은 보는 것과 듣는 것을 그저 마음 한구석 귀퉁이에 담아두기만 할 지경이었다. ‘천칭’의 오러는 어째서인지 투란이 품고 있는 몬스터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악마의 심장’을 통해 또 하나의 ‘투란’이 보고 듣는 것처럼 투란의 감각을 나눈 채로 활용하게 해주고 있었다.
다른 때라면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가를 먼저 살펴봤겠지만, 투란은 휘드라곤의 흐름에 몰입해서 이 또한 마음 한 귀퉁이로 치워두고 있었다.
그렇게 투란의 마음을 가장 넓고 크게 차지한 휘드라곤, 이 기묘한 흐름은 투란에게 물레와 톱니, 실뭉치를 갖고 놀게 하던 샤오덴 할배를 바로 떠올리게 하는 중이었다.
‘멀리 갈수록 빨라져, 아니 제자리에서 맴돌아도 계속 빨라져…… 빨라지면서 갈라지고…… 방향을 정해주면 작은 가닥들이 하나로 거의 뭉치듯이 굵어지는 건가? 아니, 꼬인 실처럼 두꺼워지는 쪽일까?’
드라고니아가 말한 ‘가속분류’가 무엇인가를 투란은 정확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휘드라곤이 지금 전해오는 감각을 고스란히 삼키면서 재미있어할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흐름을 좀 더 빠르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점차 가늘어지는 이 흐름에 한 가지 방향성을 부여해서 뒤엉키게 하고 꼬이게 할 수 있는가, 그렇게 꼬인 흐름이 결국 굵은 흐름이 되면서도 섬세하고 가느다란 본래의 흐름을 간직하는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인가!
어느 순간, 투란은 휘드라곤의 흐름 속에서 소용돌이를 느꼈고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소용돌이의 형태를 기억해냈다.
마그마 로드, 오러 몽거, ‘천칭’의 정교하게 맞물린 톱니들…….
투란이 쌓아온 경험, 기억, 지켜본 모든 것을 휘드라곤은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몸 안을 맴돌았다. 그 맴도는 흐름을 그대로 둔다면 심장 속으로 스며들 듯했다.
‘아, 그건 아니지. 전에 한 번 생각 없이 그랬다가 아주 큰일 날 뻔했다고!’
투란은 퍼뜩 처음 ‘악마의 심장’에게 심장을 파먹게 했을 때를 떠올리면서 일단 자제했다. 이런 투란의 마음을 따르듯, 휘드라곤의 흐름은 심장을 비켜갔다. 대신 휘드라곤은 왼쪽 어깨를 타고 올라서면서 팔로 흘러가 중심을 옮기듯 새로운 소용돌이로서 뭉치는 형태를 이뤘다.
투란은 손가락 끝에서 어깨까지 이어지는 소용돌이로 이뤄진 팔을 느꼈고…….
“멋져요. 이 아이를 이렇게 빠르게 몸에 적응시키다니, 투란은 진정한 이름을 모르지만 키린만큼이나 굉장하게 생명의 휘장을 다루는군요!”
‘네키아’가 빛을 머금은 물결치는 눈동자를 환하게 드러낸 채로, 투란의 왼손 위에 자신의 한 손을 포개고 있었다. 물줄기로 이뤄졌지만 섬세한 손가락, 손목이 고스란히 투란의 왼손에 담기는 소용돌이와 엮였고…… 곧바로 ‘네키아’의 손을 타고 역류하기 시작했다.
“어? 에…… 이러면…… 돌아가는 거야?”
‘네키아’가 움직이면서 어느 틈엔가 투란은 몰입에서 벗어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휘드라곤이 ‘네키아’의 몸으로 새로운 흐름을 심어가는 것을 보면서 묻는 소리를 꺼내고 말았다.
“아니에요. 투란에게 맡긴 아이는 내게 돌아오지 않아요. 단지 새로 배운 것을 내게 알려주고 있을 뿐이에요. 이건…… 네키아가 전혀 모르는 ‘소용돌이’로군요. 깊고 작고, 그윽하고, 생명이 넘쳐나는…… 진정한 이름도 모르는 투란이 어떻게 이런 ‘소용돌이’를 알고 있어요?”
“네키아, 그 진정한…… 어쩌고 하는 부분은 빼고 물어봐도 되거든!”
한숨처럼 말하면서 투란은 아까부터 짚고 싶었던 부분을 짚었다.
―이 자식이! 물의 정령에게 어비셜 볼텍스를 왜 가르치는 거야!
드라고니아는 화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