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31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319)
시알라는 잠결에 몸을 뒤척였다.
부드럽지만 조금 무거운 압력이 느껴졌고, 곧장 시알라의 눈이 띄었다.
무엇이든 잠들기 전후에 차이가 있다면 위험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에 와 있기에 몸에 저절로 스며든 습관이 시알라의 잠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오빠?”
시알라의 눈에 비친 것은 가벼워 보이지만 두터운 갑주, 그 위에 덧씌운 듯한 로브의 두건 아래에서 웃는 표정을 짓고 있는 세란드의 모습이었다.
“조용히, 모두 조용히 들어.”
“모두……?”
시알라는 두어 번 눈을 깜박이다가 재빨리 몸을 일으켜 앉았다. 침대로 쌓은 열린 층 아래로 비스듬히 페란드와 제란드, 멜란드가 모두 멍한 표정으로 세란드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딱히 시알라보다 먼저 깬 모습은 아니었다. 세란드가 한꺼번에 넷을 깨운 듯했다.
숨을 두어 번 깊이 들이쉬어 조금 더 정신을 맑게 한 다음, 시알라가 세란드에게 묻는다.
“어떻게……?”
“수호자의 경고, 무슨 일이 생기면 경고해줄 수 있는 능력이지. 원래는 깨우자마자 여기서 벗어나야 할 정도의 위험한 일이 예상될 경우에 알람 마법처럼 알려주는 능력이지만…… 지금은 도망치지는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고 알려줘야겠어. 하지만 위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투란이 해결했다. 다만 모두 알아둬야 할 일이 있어. 집 밖의 풍경이 많이 변했거든. 보고 놀라지 말라고.”
세란드가 부드럽게 말했고, 시알라는 조금 인상을 구겼다.
“아니, 겨우 그 말 하려고…….”
마법의 수호자로서 정말 목숨이 위험한 경우가 아니라면, 팔다리 하나둘 날아갈 정도의 상황에서는 나타나지 않을 테니 조심하라고 했었잖던가. 그런데 겨우 바깥 풍경이 변했다고 나타나다니?
시알라가 이렇게 의아해할 때, 멜란드가 재빠르게 움직였다.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데 놀라지 말라고 했는지 아예 직접 확인하겠다는 움직임이었고 제란드도 바로 그 뒤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페란드는 차분하게 세란드를 향해 묻는다.
“투란이 해결하는 동안 우리는 그냥 자게 둔 거야?”
“끼어드는 것도 위험해 보였거든. 아무튼, 투란이 호수의 숙녀를 잘 달래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으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투란이 해주면 듣도록 해. 캐묻지는 말고.”
세란드는 조용한 눈길로 시알라와 페란드를 둘러보고, 문을 열고 나서는 멜란드와 제란드를 보며 미소 짓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 남긴 말을 곱씹던 시알라와 페란드는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호수의……?”
“숙녀? 다크 레이디 얘기가 아닌데, 형?”
사라진 세란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페란드는 한숨을 쉬었고, 시알라는 혀를 차면서 멜란드와 제란드의 뒤를 따르듯이 침대에서 뛰어내려 문을 향했다.
“음.”
제란드는 곁에서 고민하는 소리를 내는 멜란드를 흘깃했다.
멜란드는 그런 제란드의 눈길에 전혀 상관하지 않은 채로 홀린 듯이 저편에 보이는 투란만을 바라보는 듯했다. 그리고 이런 멜란드에게 곧 합류하듯, 시알라가 뒤따라 나오며 말한다.
“응? 투란이 지금 뭐 하는 거야?”
“어? 음…….”
제란드의 입에서도 결국 멜란드랑 비슷한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가장 늦게 나온 페란드가 눈을 가늘게 하다가 중얼거린다.
“헤엄……치려는 건가?”
네 남매는 잠시 상황을 지켜보듯이 침묵했다.
그 눈길이 향하는 곳에서, 투란은 물속에 가라앉았다 떴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떠오를 때는 단지 물 위에 동동 뜨는 것이 아니라, 아예 수면 위로 두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팔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로 수면 위에서 공중부양(空中浮揚)을 하고 있는 그 광경은 분명히 마법에 의한 것인데…… 대체 왜 저러는가?
멜란드가 잠깐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 듯이 중얼거린다.
“플로트 주문을 시험하는 건가? 물속에서 걸면 물 위로 나와서도 계속 효과가 있는가 조금 궁금하잖아.”
제란드가 이 소리에 살짝 고개를 저으며 대꾸한다.
“물속에서 뜨는 거는 그냥 손발 늘어뜨린 채로 숨을 참고 있으면 된다고. 어지간히 이상한 물이 아니라면 말이야. 굳이 플로트 주문을 써서 물 속으로 힘겹게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시험까지 해볼 일은 아니지.”
이 소리에 멜란드는 ‘그런가? 그렇겠지.’라고 중얼거렸고, 페란드가 눈을 가늘게 한 채로 유심히 보다가 불쑥 웅얼거린다.
“설마…… 헤엄치려는데 잘 안 돼서 저러나…….”
멜란드와 제란드가 흠칫하고 페란드를 바라봤다.
페란드는 동생들의 눈길에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물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둥실거리면서 떠올라서 잠시 쉬는 듯하다가, 다시 퐁당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또 둥실 떠오르고…… 투란이 하는 짓은 물가에서 헤엄치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이 곁에 부표(浮標) 삼은 나무통을 띄운 다음에 그 주변을 맴돌거나 매달린 채로 물속에서 팔다리 쓰는 법을 익힐 때랑 닮아 보였다. 그래서 한 말이기는 했지만, 하고 나니 뭔가 굉장히 말이 안 되는 듯했다.
투란이 설마 헤엄을 못 칠까 싶은 느낌이었으니까.
시알라는 동생 셋이 의아해하고 추측하는 꼴을 보다가 어이없다는 듯이 한소리 꺼내고 만다.
“대체 지금 뭘 보고들 있는 거니? 이 주변이 뭔 꼴인가는 보이지 않아? 우리 잠들기 전이랑 지금 상황이 비교가 안 되는 거니? 문을 열고 내다보고 있는 중이면 주변이 어떻게 되었는가부터 궁리해야지! 그래야 투란이 왜 저러고 있는가도 제대로 짐작을 할 것 아냐!”
“어, 그러네.”
멜란드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누나의 말을 받아들였다.
주변의 상황은 분명히 시알라가 말한 것처럼 격변(激變)해 있었다.
멜란드나 제란드가 그런 광경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 격변해버린 풍경 속에서 투란이 허우적거리며 퐁당거리고 둥실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뭐가 어찌 되었든 간에 그리 급하게 주변을 경계하고 돌아볼 상황이 아니라고 느껴서 멍하니 멀뚱거리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대체 투란이 뭘 하고 있는 중인가 궁금해한 것이고…….
페란드는 시알라의 잔소리에 주변을 둘러보는 척하며 말한다.
“투란 말고 뭔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시알라가 그 소리에 대뜸 앞장서서 문턱을 넘어서 물속으로 발을 디뎠다.
첨벙, 촤악.
무릎 정도에 올라온 물을 내려다보면서 시알라는 몇 걸음 걸었다.
발끝으로 더듬는 바닥에서는 부드러운 흙이 물을 흠뻑 먹은 듯이 뭉클거리는 것이 느껴졌고, 대충 가늠한 저쪽의 깊이 역시…… 투란이 허우적대고 있어도 겨우 허리 높이 정도로 얕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
시알라는 바로 동생들에게 손짓했고,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물이 꽤 넓게 퍼져 있어. 울퉁불퉁하던 곳을 다 밀어버린 것처럼…… 하지만 밀어버리면서 오히려 잘 다듬어서 깊지는 않게 해준 모양인데…… 혹시 주변에 숙녀 비슷한 것이 있나 좀 둘러봐.”
이 소리에 페란드가 쓴웃음을 지었고, 멜란드와 제란드는 어리둥절했다.
“숙녀 비슷한……?”
“다크 레이디 찾는 거야?”
이 되물음에는 시알라 대신 페란드가 답한다.
“아니, 세란드 형이 남긴 소리야. 호수의 숙녀인가 뭔가를 투란이 달랬다고 했거든.”
“응? 세란드 형…… 어? 그러고 보니 없어졌네?”
멜란드가 조금 섭섭한 듯이 말했다.
제란드는 잠깐 세이프티 하우스를 돌아봤고, 곧 투란을 향해 나아갔다.
페란드와 멜란드는 제란드와 다른 방향으로, 시알라가 말한 대로 둘러보기 위한 방향을 잡는데…….
“투란! 무슨 일이야? 뭘 하고 있는 거야!”
제란드의 큰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시알라가 그 모습에 약간 당황해서 눈을 껌벅이다가 투란을 바라봤다.
페란드와 멜란드도 잠깐 ‘어?’ 하는 소리를 내다가 곧 민망한 웃음을 띠고 말았다.
투란이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면 투란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라고 제란드는 당장 그 걸음과 외침으로 드러낸 것이다. 투란이 말해주지 않으면 그 때부터 짐작을 하든 추측을 하면 될 일이지, 묻지도 않고 멋대로 억측할 일이 아니다.
물론 제란드도 처음에는 함께 궁금해하는 듯했지만…….
푸아핫!
투란이 둥실거리면서 떠오르는 몸을 세워 서면서 제란드에게 눈길을 옮겼다.
한데 그 모습…… 물방울이 서린 얼굴, 몸에 가득 흘러내리는 물에 젖은 모습은 울먹거리는 듯도 했고 울컥하며 짜증과 화를 내는 듯도 했다.
그 모습에 제란드는 아주 잠깐, 살짝 후회하는 기분을 느꼈다.
괜히 물어봤나 싶을 정도로 절실한 표정이잖은가.
“어, 투란…… 괜찮은 거야?”
대답도 듣기 전에 제란드의 입에서는 우선 걱정하는 소리부터 나와야 했다. 힘들고 어려워서 끙끙거리는데 뭘 하고 있느냐고 묻는 것보다 먼저 안부를 확인해야 했었는데……라는 미묘한 뉘우침도 함께 하는 물음이었다.
그리고 투란은 징징거리는 목소리로 이에 크게 답한다.
“헤엄쳐지질 않아!”
“어? 에, 응?”
제란드는 눈을 껌벅였고, 어느새 촥촥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물에 다리를 담그고 다가온 멜란드가 재빨리 묻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무슨 소리야? 헤엄칠 수 없게 된 거야? 언제부터? 왜? 무슨 일이 있었는데?”
페란드와 시알라도 다가와서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로 투란의 대답을 기다렸다. 제란드도 입을 다물고 ‘응? 그런가?’ 하는 눈빛을 번뜩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사람이 몸에 익힌 재주…… 헤엄을 친다거나 칼, 방패를 휘두르거나 하는 버릇이 된 움직임은 쉽게 지울 수가 없다. 머리를 세게 얻어맞아 자기가 누구인가조차 잊어버린 작자라도 손에 익은 도구를 쥐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도구를 제대로 쓴다 하잖던가.
하물며 지금 투란처럼 물에 몸을 던져가면서 헤엄을 치려 하는데, 꼬르륵거리면서 마법에 의해 떠오르는 것이 고작이라면……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몸에 밴 능력이 싹 지워질 수 있는지, 주의해서 들어야 했다.
때문에 네 남매가 짙은 의혹을 품은 눈빛을 번쩍거리듯이 바라보는 광경은 슬쩍 투란을 움츠리게 했고 웅얼대는 대답을 하게 하는데…….
“어, 그러니까…… 물의 정령이랑 알게 되어서, 물의 정령이 지켜주기로 했거든. 그런데…… 물이 날 받쳐주질 않아! 그냥 꼬륵거리면서 가라앉는다고! 그러면 어쨌든 물 속에서 물고기처럼 헤엄이라도 칠 수 있게 되었나 싶었는데…… 어림도 없잖아! 왜 물의 정령이 지켜주는데 난 여전히 헤엄을 못 치는 거지? 이상하잖아, 안 그래?”
“자, 잠깐만.”
멜란드가 먼저 두 손을 올리고 투란에게 진정하라는 손짓부터 했다.
페란드는 투란이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입을 다무는 모습을 보며 낮고 담담한 말투로 묻는다.
“여전히 못 친다라…… 투란, 원래 헤엄을 칠 수는 있었어?”
이 물음에 투란이 대답하기 전에 제란드는 주변을 둘러봤고, 텅 빈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물의 정령이라…….”
시알라도 여기에 한소리 보탠다.
“호수의 숙녀…… 물의 정령?”
불쑥불쑥, 어딘가 어이없어하는 낌새로 나오는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면서 투란은 재촉하는 눈빛을 느꼈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페란드의 물음에 답한다.
“아니, 원래 헤엄칠 줄 몰라. 그치만! 그래도 물의 정령이랑 알게 되었는데! 나름 친하게 지내기로 했다고! 그런데 왜 마법을 안 쓰면 물에 홀랑 가라앉느냐고! 이게 뭐야!”
“제발 그게 뭔 소리인지부터 설명 좀 해줘!”
멜란드가 꽥 소리를 질렀다.
투란이 움찔하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쉰 페란드가 다시 차분하게 묻는 듯이 말한다.
“투란, 물의 정령이라고 하면……사람을 물속으로 끌어들여 꼭 끌어안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정령이라잖아. 사람이 죽거나 말거나는 전혀 마음 두지 않고 말이야. 그러니까, 물의 정령이랑 친하면 물가에 가까이 가면 안되는 말이 있지. 자, 그래서 말인데…… 어째서 물의 정령이랑 친해졌으니까 헤엄을 칠 줄 모르는데도 물에 둥실거리며 떠서 헤엄을 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는지부터 말해줘. 아, 혹시 그게 무슨 호수의 숙녀랑 관계된 이야기야? 우리 자는 동안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것부터 조금 이야기해 주면 안 될까?”
시알라도, 제란드도, 멜란드도 슬슬 페란드의 곁에서 두어 걸음씩 물러서는 몸짓을 보였다. 이 꼴을 곁눈질로 알아차린 투란은 페란드가 느릿하니 말이 길어지는 이 모습이 좋은 징조가 아닌 것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체 투란이 무슨 말을 잘못했다고 페란드가 이렇게 배를 째고 들어오듯이 따진단 말인가!
“에, 그러니까 그게…….”
―정신 차리고, 조리 있게 좀 말해봐.
페란드는 입을 다물고 투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늉을 하는데, 드라고니아가 그 대신이라는 듯이 놀리는 소리를 투란의 뇌리에 꽂아 넣고 있었다.